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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5장 10-15절(요약)

박이레 2026. 9. 2. 21:05

성경읽기 : 창세기 35장 10-15절(요약)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창35:10-15,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35장은 성경에 죽은 사람 3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고, 라헬이 죽습니다. 그리고 35장의 끝에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죽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야곱이 그 자리에 기둥을 세우고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붓습니다. '전체물'이라는 단어가 이곳에서 성경에 처음 나옵니다.
그 이후에 라헬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 장소도 교훈을 주는것 같고요. 그리고 라헬이 부르는 아들의 이름을 야곱이 바꿔서 부릅니다. 이도 교훈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10-15절을 교제해 주시고, 이후로 시간이 되면 라헬의 죽음에 대해서도 교제를 나눠 주시면 되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각 절별로 말씀을 살피면 10절에는 이스라엘로 그 이름을 확증하시고 11절부터는 그 언약을 다시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14절-15절에서 야곱의 반응이 나옵니다.
10절을 볼때,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처음 주어진 이름이 아닙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은 이미 하나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이름이 다시 언급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면, 그는 얍복강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후에도 새로운 사람이 바로 되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형과 대면할 때에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34장에서의 디나의 사건과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속이고 살인을 한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야곱은 가만히 있고, 아들들을 탓하고 주변 족속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벧엘로 부르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재확증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완성되었거나, 그가 신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재확인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는 실수하고 계속 넘어지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계속 그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본질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받은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에 있는것이 아니라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근거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이름,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실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탓하지 않으시고 오셔서 그 약속을 재확증 해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형제 자매님들도 다 동의하시겠지만 야곱처럼 복을 갈구한 사람이 없었을것 같습니다. 그는 복을 얻기 위해서 어렸을때부터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에게서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 팥죽을 쑤어 형을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아내를 위해서 7년을 두번 봉사 했습니다. 또 라반의 밑에서 그 삯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가야만 진정한 복을 얻을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에게 복을 주시고"(9절) 야곱의 어떠함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하신 그 선택하심을 이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1절에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전능하냐면, 야곱이 원하던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국민과 많은 국민이 나고 많은 왕들이 야곱의 허리에서 날 것입니다. 그와같은 축복을 약속하시기 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13절)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땅 가운데 오셨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소망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교훈받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Q.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윤철 형제님께서 교제하신 내용중에서 야곱이 한 것중에 잘한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신것처럼 교제되었는데요. 그러면 잘한것이 없는데 왜 복을 주셨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A. 먼저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셨음에도 야곱은 여전히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해서 다시한번 확증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그렇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가 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을 받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명확히 있어야 됩니다. 그 부분도 교제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저는 야곱 측면에서 뭔가를 한다고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측면에서 주어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확증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구원받은 사람이 받은 구원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면, 그렇다면 사람쪽의 측면에서 할것이 전혀 없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맞습니다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전부 은혜라면 이것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은혜라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왜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가, 그러한 차이가 어디가 기인하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 교제되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쪽에서 해야할 책임의 부분이 관과될 수 있는 염려가 있습니다.

저희가 야곱을 얘기할 때에 보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뭔가를 하는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 보면 개차반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또 순종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야곱이 잘한 것보다 잘못한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미 리브가와 함께 이삭을 속여서 복을 취하려고 했던 부분이 그렇고요. 그럼에도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28장) 그때 야곱이 서원을 합니다. 그 서원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도 굉장히 교제 되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그가 반응하는 서원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잊지 않으시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그 벧엘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즉각적으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또 라헬과 연애함으로 라반의 집에서 고난이 시작되는데요. 그 고난의 시작으로 인해서 많은 아내와 많은 자녀들을 낳습니다. 그 자녀들이 열두지파의 시작입니다. 그 라반의 집에서 야곱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3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야곱이 굉장히 잘한 부분이라고 보고요.
또 얍복나루에서 야곱이 주님과 씨름하는 중에서도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보낼수 없다고 하는 부분이 잘하는 것이죠.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사람의 육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주님을 붇들고 축복을 비는 모습은 굉장히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장인 33장에서 야곱은 32장의 믿음과는 반대의 모순되는 행동을 합니다. 이 부분이 당시에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사람은 불안정한 부분이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 형제님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굉장히 절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서신을 쓰는 로마서 기자의 영적인 상태는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34장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의 리더쉽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같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다가 35장에서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 하시니, 가족들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정결케 하라고 하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제가 중간중간 언급했던 야곱의 모습들과 하나님의 은혜가 어우러져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말씀드리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다만 너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해버리면 저희가 방종으로 갈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가 취해야 할 책임간의 조화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이어서 16-22절까지의 내용도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1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전능한 하나님" 엘 샤다이로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 이름이 처음 나온 곳은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때 입니다. 더이상 아이를 낳을수 없는 노년의 나이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십니다. 야곱의 앞날은 언제 주변 사람들의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두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국민과 왕들이 많이 야곱에게서 날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또 이삭에게 하신 약속과 같은 것입니다. 이 동일하신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이 삼대에 걸쳐서 내려옴을 생각하게 됩니다. 언약은 한 사람의 실패로 좌우되지 않고 세대를 넘어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경륜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야곱이라는 한 사람의 연약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 허물과 죄악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그 민족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인생의 실패보다 크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또한 땅에 대한 약속도 그 조상들로부터 주어진 그 약속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원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상속받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12절)

- 최재홍 형제님 : 13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고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사람인 야곱에게도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오시고 말씀하시고 복을 주시고 다시 올라가십니다. 모든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이에 대해서 합당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14-15절이 그 말씀을 받은 야곱의 반응입니다. 돌을 세우고 그 후손들이 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벧엘에서 처음 돌을 세웠습니다. 이제 35장에서는 전제물을 붓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전제물이 소제와 함께 드려지던 것입니다. 전제물은 부어지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한번 쏟아지면 그것을 다시 되돌릴수 없습니다. 그 의미로 생각하면 전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헌신의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포도주는 성경에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제물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벧엘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은 두번째 벧엘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그 중심이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감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자리를 기억할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벧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곳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벧엘을 엘벧엘, 벧엘로 부릅니다. 엘벧엘은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고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35장에서는 벧엘을 하나님의 집으로만 생각지 않고 그 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엘벧엘로 불렀다고 생각되어지고요.
세겜에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벧엘에서는 벧엘에서는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영적으로 성숙해서 내가 하나님의 집에 속한 사람이고, 그에 맞게 살아야 함을 깨달았기에 '엘벧엘'로 불렀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엘샤다이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8년간의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99세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나오미도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에 자신을 마라라 부르라 하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 회복과 관련되어 있고요. 저희가 돌아왔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것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나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기다리셨지, 탕자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가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로 탕자는 돌아가야 합니다.
룻과 나오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갔기에 그 복이 허락되어졌고, 오르바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복을 누릴수 없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9절에 "그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복이란 무엇일까,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곱이 자녀를 많이 낳고 땅을 받는것은 복이 맞습니다만, 그보다도 놀랍고 진정한 복은 영적인 측면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창35:11-12, 개역한글)

왕들이 야곱의 허리에서 나올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왕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야곱은 더이상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14-15절에서 제사드리는 것은 믿음의 조상인 야곱이 마땅히 취해야 하는 행동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 약속을 성취해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전능하셔야 합니다. 땅과 백성과 많은 왕들의 결국에 그리스도께서 오는 것이 진정한 구속사 측면에서의 축복의 예언의 말씀이라 보여집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 시점에서 야곱에게 해주십니다. 그가 연약이 있었지만 그가 맡은 책임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받은 약속을 그대로 받아 야곱은 이를 잘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이라 불리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어떤 것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약속에 기여할수 있었는가 생각하면 그들이 최초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목표하신 바를 알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창세기 28장에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저희 교회와 연관되지 않습니까? 어떤 형제님은 28장에서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분별하시더라고요. 야곱은 연약이 많지만 창세기 후반부로 가면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고, 그 아들들을 영적으로 축복하고 저주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운 측면이 있습니다. 저희들도 그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보이고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것이 무엇일까, 어떤 것을 주안점을 두고 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8:12, 개역한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개역한글)

고난의 삶 가운데 저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주신 약속을 붙잡고 승리하고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희가 연약할때도 하나님께서는 저희와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이 연약 가운데 있었지만, 주변 민족이 야곱 가족을 공격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로 두려워하게 하셔서 야곱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4:1, 개역한글)

이같은 말씀을 저희들이 마음에 두고 모임 생활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Q. 그러면 야곱이 언제 구원을 받았을까요? 저도 28장에서 야곱의 서원이 구원의 고백이라고 보는데요.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야곱은 계속해서 살아왔고, 그 가운데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35장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다시 부르셨다는 논리로 교제한 것이고요.

- 장승훈 형제님 : A.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야곱이 중간 중간 연약 중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을 따라서 합당한 반응들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낸 것 자체가 그 이상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