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이서 9-13절(요약)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요이1:9-13,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9절에서부터는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지 않는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와 있고요. 12절부터는 요한이서의 마무리가 나와 있습니다.
9-13절을 교제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지난시간 8절에서 사도는 이 공동체를 향해서 스스로 삼가라고 권면했습니다. 9절에서는 그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삼감이 필요한 이유를 말합니다.
"지내쳐" 원문으로는 너무 멀리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이는 긍정적으로 들릴수 있지만, 사도는 앞으로 너무 나아가서 원래 교훈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지금 있는 이상의 진리로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이를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내쳐 나간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지 못함을 말씀합니다.
그와 반대로 사도는 교훈안에 거하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거하는"은 요한복음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같이 나무에 접붙여 거하는 것입니다. 교훈안에 거하는 것만큼 더 높고 깊은것은 없음을 사도는 말씀합니다.(9절)
- 전의석 형제님 : "지내쳐"에 대해서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대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배운 말씀 외에 뭔가를 더해나갈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말씀해 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무엇을 지내쳤는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는 믿는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는 것입니다. 7절에 그와같은 주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는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들의 각각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분명하게 마음 가운데 확신해야 합니다. 여기서 단 하나라도 잘못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내치는 것으로 교훈해주신다고 생각하빈다.
또 10-11절은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그 일에 동참하는 악임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닌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지, 아닌것을 수용하거나 마음속으로만 판단하고 말하지 많는다면 그 악한일에 동참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거리낌이 없다면 교제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저는 과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주님의 마음을 받고 정직하게 받는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겸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12절부터는 사도는 쓸것이 많지만 종이와 먹으로 쓰려하지 않고 면대하여 만나 교제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1-11절까지의 말씀은 매우 긴급하기에 이 서신을 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2절의 말씀은 모임 집회의 참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수많은 자료를 볼수 있지만 그보다 더 유익한 것은, 그리고 저희들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것은 모임에 참석해서 주님을 실제로 만나는 것을 저희들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저희들의 모임에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어떤 모임들 가운데 직접 만나지 않고 화상을 통해서 교제하는 일이 생겼는데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렇게하지 않고 직접 면대하여 교제하여 기쁨을 충만케 하는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0절의 말씀은 사랑을 강조해온 사도요한의 완강한 명령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곧 자매님의 집에 방문하게 될 자들을 경계하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집'이라는 의미도 생각하게 됩니다. 초대교회 당시 교회당이 따로 없었기에 성도들은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이지 말라는 것은 모임안에 그를 초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또 인사도 하지 말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가르침에 권위를 실어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사랑은 때로는 분명한 경계를 요구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 경계하며 진리안에 머무르는 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행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예하는 자임이니라"(11절) 원어적으로 '참예'는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뜻했을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자체가 그 악한 교리에 참예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악한 교리를 반대하고 반응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됨을 이 말씀을 통해서 교훈받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요한일서, 이서, 삼서는 계속해서 이단에 대한 경계가 나옵니다. 이단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합니다. 또 여기서는 진리 아닌것을 진리처럼 모임안에 퍼드리고 진리처럼 말합니다.
8절 말씀이 참 난해하게 느껴지는 말씀인데, 어떤 성경에 이렇게 해석한 것을 보았습니다. "너희는 서로 조심하여 우리가 너희 안에 행한 것을 훼방하지 못하게 하고 온전한 상을 받으라." 실로 사도들이 전한 말씀의 훼받을 받게하는 것이 이단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단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온전한 상을 얻는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받은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 자체가 그 믿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 자체를 받아들인 자가 영생을 얻는 것처럼 그같은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음을 다시한번 말씀합니다.
9절 말씀대로 제가 모임생활을 하면서 이단에 빠져 신천지로 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받은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기에 이단의 교리를 들었을 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완전 성화주의에 빠지는 형제들도 보았는데요. 그들은 자기들이 말하는 것이 새로운 진리인양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신은 남은 사도가 다 순교하고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도요한이 이 서신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도 이후에 그 대를 이어 사역하는 성도들을 속사도라고 부르고 그 이후는 교구라고도 부릅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다 순교한 이후에, 지역교회가 하나의 가정에서 모임을 이룰 때에 순회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회 사역자들이 교회가 충족할만큼 세워지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순회사역자들이 어떤 지역을 방문해서 성도의 집에 머무르면 숙식을 제공받고 다음 여행지까지의 여행경비도 공급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거짓사도, 거짓 일꾼들이 은밀하게 그 가정을 침투해서 일꾼처럼 말하고, 거짓 진리를 말함으로써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으로 강하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11절의 말씀은 안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요일2:19, 개역한글)
이단들이 모임에도 있었고, 모임에서 실체가 드러나서 스스로 나갔거나 출교를 당했거나 할텐데,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감추고 지역교회에 다가왔고 미혹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삼서에서도 잘못 알고 섬겼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전혀 이단들과의 접촉을 금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요한일서 2장 19절을 다시 보시면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이서의 미혹하는 자들은, 또 방문하려하는 그들은 원래 교회와 함께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새로운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영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떠나가버린 자들입니다. 그래서 "지내쳐"라는 단어에 적합한 자들입니다.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지나쳐서 나가버린 자들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연락해오고 가까이 지내려 한다면, 그 연락조차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10절에 나온 것처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거든" 이 말이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는 얼굴을 아는 자이지만 그 사람이 보자고 말하면 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인사도 말라" 이는 좀 심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잘못된 교리 가운데로 나간 자들을 단호하게 끊어야합니다. 그 이유를 7절이 말씀합니다. 주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말씀을 가지고 저희들의 속과 겉을 변화시킬수 있으십니다. 반대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쪽에 있는 자들을 넘어뜨리려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인사조차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이서가 말하는 것은 사랑을 행하되 진리가 그러놓은 경계 안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지내쳐" 사도적 가르침의 경계를 넘어서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범위 안에 있는것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식의 보화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깊이 알아가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고, 아버지와의 교제 가운데 깊이 들어가고,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성경을 더 깊이 배우고 그리스도를 풍성히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에서도 어린아이가 청년이 되고 아비들이 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훈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행하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할수 없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하면서 내 생각을 고집할수 없습니다.
9-11절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지 않는자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정에 영접하거나 지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지나친 배척이나 엄격하게 들릴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교사들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인격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명성에 관계없이 그가 그리스도의 교훈을 전하는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간에 그 사람의 그리스도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은 6절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서는 영적인 환대에 대해서 계속 말씀해주시는데요. 저희의 가진 모든것이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다 맡겨진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맡겨진 것을 저희는 청지기로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과 능력들이 누구를 위해서,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저희도 판단하고 분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11절에 "그에게 안사하는 자"라고 말씀하는데요. 바인 사전에는 상대방의 길과 행동이 잘되기를 축복한다는 단어라고 합니다. 이는 거짓교사인지 알면서도 그를 환영하고 인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말씀합니다. 요한이 이렇게 긴급하게 쓴 이유도 여기 이 서신을 받는 부녀가 그 지역에서 신실하고 잘 접대하는 성도로 알려져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교사가 그 부녀의 집에 머물면서 자기의 행동을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부녀의 섬김을 잘못된 것으로 비틀수 있기 때문에 이 서신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또한 모임의 강단을 누군가에게 내어줄 때에 그가 전하는 말씀을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지내쳐"라는 단어에 대해서 저도 조금 첨언하자면, 앞서간다는 표현보다는 도덕적인 한계를 넘어서고, 벗어난다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지 않는 자"가 지내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게 되면,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게되고 예수 그리스도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5절에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교훈인데요. 이 미혹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논리가 있다고 말하며 지내쳤습니다.
12절에 또 면대하여 말하려 한다고 합니다. 긴급하게 서신을 써서 보냈지만, 많은 할 말이 따로 있습니다.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추측일지 모르겠지만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나옵니다. 이 부녀의 자매가 주님 나라에 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매의 자매가 문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이 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서신을 받는 부녀가 꽤 나이가 드신 자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섬기는 일과 접대하는 일에 헌신된 자매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자매님은 여러 성도님들 앞에 좋은 본이 되는 자매님이셨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오늘 만찬상 앞에서 예배를 드렸는데요. 이는 그냥 저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먼저 헌신되신 성도님들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헌신에서 전달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이때는 "종이와 먹으로"해서 편지를 전달했을 때입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문자나 영상통화를 통해서 쉽게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심지어는 요즘은 줌미팅으로 정기집회를 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있습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나서 얘기할수 있는데 굳이 집회하는 장소에 가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한다"라고 합니다. 얼굴을 마주대할 때 있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있는 기쁨이 아닙니다. 저희가 동일한 진리 가운데 있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가운데 기뻐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13절에 이 안부를 왜 전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요한과 함께 있는 부녀의 조카들도 동일하게 진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 부녀와 자녀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서 교제할 기쁨을 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 김민원 형제님 : 13절에 저도 이 "네 자매의 자녀"가 나왔을 때에 1절에 교제나눴을 때에 이 부녀와 자녀들이 실존하는 자들인가 교제가 되었는데요. 13절의 말씀을 보았을 때에 실제적으로 있는 자매의 자녀들의 안부인사로 생각해 볼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줌미팅 관련해서 어떤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 교제가 생각났습니다. 줌미팅으로 교제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셔야 하는데 그러면 성령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서버의 전파 가운데 계시는 것인가? 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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