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이서 6-8절(요약) / 26년 7월 19일 일요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요이1:6-8,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저희는 오늘 6절부터 나갈것인데요. 4-6절을 함께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교제가 미진했는데요. 질문했던 것을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번주의 저희들의 질문은 '새계명을 쓰는 것같지 않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님들께서 교제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요한이서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핵심 주제는 진리 안에서의 사랑과 그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분명한 구별을 말합니다. 6-11절까지는 서신의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사랑과 진리와 진리를 지키기 위한 구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6절에서 사도요한은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이 저희들과 다름을 보게 됩니다. 저희들은 사랑할때 따뜻한 감정이나 희생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순종이며,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복음을 들었을때부터 들은 말씀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9절에 "지내쳐"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너무 멀리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지 않은 자들을 지내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은 참된 사랑은 처음받은 계명을 따라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순종이야말로 믿음의 본질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새 계명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주님께서 다락방 강화에서 새계명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그 배경에 유다가 빠져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다는 주님을 부인하고 거절한 사람입니다. 새계명과 사랑을 나타낼 때에는 주님이 빠지고서는 참된 사랑이 이루어질수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다른 것으로는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점은 거짓 교사들을 밝혀낸것입니다.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라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처음 가진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실패 했습니다.
6절은 윤철 형제님의 교제처럼 우리가 하는 사랑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사랑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사랑을 말씀할때 계속 계명을 언급합니다. 계명은 이 진리와 뗄수 없습니다. 사랑과 계명과 진리가 계속해서 순환하는데요. 요한이서를 볼때, 가정에서,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부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에, 가정의 사랑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사랑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는 때로 훈육이 필요하고 어르신들에게는 권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진리나 계명이 필요함을 모임이나 가정에 동일하게 적용됨을 6절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지식적인 것으로만이 아니라 나타남으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을 교훈해 주시는것 같습니다.
6절을 이어서 7-8절도 계속해서 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요한일서를 이어서 요한이서에서도 메세지의 중심은 사랑임을 받게 됩니다. 이 사랑이 인간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쪽에서 나옴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서 사랑이 나올수 없음을 계속 교제했습니다.
이 계명은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진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입각해서 나오는 것이 성도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사랑이 나오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자들과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사랑은 주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마음에 두고 그 사랑이 실천적으로 나타날 때에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확보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좀더 깊게 들어가 보면, 형제님께서 성도의 사랑을 말씀하셨는데요. 여기 말씀을 바꿔보면 우리가 진리대로 사랑해야 함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5절에 "부녀여"라고 이 서신을 받는 자매님을 존중하면서 "서로 사랑하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으로부터 존중은 받은 이 자매님은 이미 잘 행하고 있는 분입니다.(4절) 그런 자매님께 다시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 진리에 기반함을 말씀드렸는데요. 10절에 진리가 없는 자들과 교제하지 말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요이1:10, 개역한글)
이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릅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와 가까이 하는것이 사랑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라고 합니다. 이는 자매님이 처음 복음을 들었을때 그때 받은 사랑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말씀해 주셨고, 그것을 들은 제자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졌겠지요. 그래서 이 처음이 자매님이 처음 복음을 들은 그날로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로 전해진 계명대로 사랑하는것 말고 다른 사랑을 언급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7절을 기반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그리고 6절에서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할때 이는 '계명들'로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말씀해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우리가 순종하면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두번쩨, "계명은 이것이니"에서 계명은 단수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계명을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7절에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사도요한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저희 아파트에 가끔 잘못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초인종을 누릅니다. 저는 그때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해서 그들이 잘못되었고 옳은 복음을 알려드리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명확하게 그들이 잘못된 자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자신의 인격이 진리고 생명이고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것도 진리와 생명이 없음을 사도는 말씀합니다. 주님의 육체 없이는 대속도 없고, 죽음도 없고,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되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을때에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Q. 질문이 있는데요. 이단의 뜻은 처음은 같은 끝이 다른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7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는 처음부터 부인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저도 몇가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7절에서 집에도 들이지 말라는 이 말씀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상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사회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데요. 아예 무시하고 인사도 말아야 하는지 궁금증이 있고요.
Q. 또 여기 "처음부터"가 나오는데요. 프롬더 비기닝입니다. 이는 요한일서에서도 나온것인데요. 어떻게 서로 연관해서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이 있습니다.
Q. "잃지말고"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잃을수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Q. "온전한 상을 얻으라" 그러면 이 온전한 상은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7절에 미혹한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진리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짓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것 또한 사랑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깨달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는 것들입니다.
이 미혹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성도들의 가정에 방문해서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리에서 벗어났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나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실제 삶을 사셨고, 고통, 배고픔, 눈물,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주님의 인자이심을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봅니다. 사도요한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와 있는데요. 이 뜻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한명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 가르침을 많이 전하는 적그리스도들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존하시지만 성도들도 진리를 지켜야 할 책임이 그 가정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 한봉래 형제님 : 맨 마지막에 해야 하는데요... 요한이서에서 말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사도요한이 어떤 한 자매에게 쓴 편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에베소에 있는것으로 보여지고요. 이 자매님은 에베소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사는데 자매님의 자녀가 최소 4명으로 보여집니다. 자매님과 최소 두명의 자녀가 그녀의 집에 있고, 또 최소 두명의 자녀가 에베소 교회에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자녀들이 행하는 것을 보니 진리대로 행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모임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서로 돌아보아.." 이것이 명령입니다. 이 계명을 주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이에 순종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한 데는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모임 집회에 잘 참석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도요한이 보고 마음이 너무 좋아서 기쁘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4절에서 보면 사도요한이 말하는 것은 그들이 진리를 행한것에 엑센트가 있지 않고 그 진리에서 행하는 근원이 사랑에서 나온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 "서로 사랑하자"라고 합니다. 그 사랑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항상 동기를 말합니다. 사랑은 동기에 해당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에게 하신 말씀, 교회에게 하신 말씀,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이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사랑하자'입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요. 저희들이 성경을 볼때 성경 본문에 나와있는 단어들, 시제들을 미시적으로 따지고요. 또 거시적으로 큰 틀에서 봅니다. 히긴스 형제님이 그렇게 하시는데요. 개인에게 쓴 서신은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빌레몬서입니다. 이것을 놓고 개인에게 쓴 서신이 6개인데 앞에 세개는 긴 편집니다. 뒤의 세개는 엽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엽서로 썼을까는 조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요한이서는 짧게 쓴 이유가 긴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긴스 형제님이 어떻게 표현하셨냐면, 한사람에게 쓴 편지는 전부 관계를 나타낸다 하셨습니다. 형제 관계를 나타낸 것입니다. 요한삼서는 영적인 형제를 묶어주는 것은 진리다입니다. 요한이서는 영적인 형제의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입니다. 빌레몬서는 영적인 형제들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구약의 오바댜서는 영적인 형제의 관계가 깨지는 이유를 말합니다.
잠깐 다른 배경을 말씀드리면, 지금 저희들과 다른게 그당시 사도요한이 일을 하던때는 순회 전도자와 순회 교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순회 교사나 전도자가 이 자매님이 사는 지역을 방문한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듣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님께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이 자기 집을 개방해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접대하는데 아주 덕이 있는 자매님입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혹시 그 지역을 방문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가진 자를 영접할까봐 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는 사랑하지 않으며, 집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단들이 집문을 두드립니다. 그들을 들여서 토론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말씀에 나온 것은 거짓 교사들이 순회하며 주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가르침을 전할때에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꾼들에게 교회에서 어떻게 재정공급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처음은 같고 끝은 다르다는 것은 이단이라는 단어의 한문을 설명한 것이고요. 그래서 그것으로 이단을 해석하면 안됩니다. 이단이라는 원어의 원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단이라는 원어의 원문을 봐야 합니다. 디도서에 이단이 나오는데요. 이 이단은 통일교, 몰몬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단은 자기가 가진 교리를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가 저번에 북아일랜드를 갔을때에 길리란드 형제님이 아주 난처해 하시더라고요. 북아일랜드에 살고있는 한국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주장하냐면 복음을 전할때에 예수님의 부활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로인해서 영접이 안되었습니다. 이런분들을 디도서 3장 9절에서 이단에 속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단이라고 할때에는 주님의 성육신을 부정하거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합니다.
A. "우리 일한것을 잃지말고"(8절) 가진것은 무엇이고 잃는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요.
7절에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까지 사랑할수 없습니다. 7-8절로 넘어갈 때에 저희들이 잠깐 볼때에 거짓 교사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이 살아있을때 가짜를 다 일으키셔서 사도들이 대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 "너희는 삼가"라고 합니다. 이는 "너희는 너희를 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조심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단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펴 진리 위에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을 떨어뜨리면 안됩니다. 믿음과 행위를 떨어뜨리면 안됩니다. 진리와 사랑을 떨어뜨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약간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두개를 붙여야합니다.
그리고 '상'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입니다. 이 자매님이 순회교사들을 접대하고 돕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으로 접대한 자매님은 선지자의 상을 같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상을 온전히 일한만큼 받아야죠. 그런데 만일 거짓교사들을 집에 들이는 기간동안은 상을 못받는것이죠.
하나만 더 말슴드리면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말고"라고 합니다. 상을 못받는것은 자매님이지만 사도요한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한것이 일어버려진다 합니다. 그 자매님께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고 자매님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했는데 그것이 상실된다고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자매님이 상실되는것이지만, 사도요한이 자기도 상실된다고 말하면서 한 지체고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보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주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게 주님은 굉장히 엄격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세리와 창기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서 돌이킬 것을 따뜻하게 말씀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도 주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할수 없지만 나머지 연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을 나타내야 함을 교훈받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이 사람들은 왜 예수님의 사람되심을 부정할까?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한다든지, 기적을 행하심을 부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람되심을 부정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고 감사함으로 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침례를 받을라." "믿으라." 하나님은 명령문은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보십니다. 그리고 순종의 동기가 사랑이어야 합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더욱 그리하자" 라는 식으로 일반적인 진술문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순종을 보는것이 아니라 성숙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두가지로 나눕니다. 계명이 있고 명령이 있습니다. 이는 순종하는가 봅니다. 다른 하나는 진술문으로 이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단들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없이 죄를 해결하셨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안나타납니다. 이단들이 주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안나타나고 우리의 순종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게 되며 계명이 율법이 됩니다. 이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는 주님의 사람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사셨다. 동정녀에서 태어나시고 자라나시고 또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심판 고통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죽으면 우리는 못견딥니다. 사람은 고통을 가하면 사람은 기절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절하지 않으시고 사람으로써 그 고통을 온전히 100% 겪으셨습니다. 이 주님의 사람되심이 하나님의 사랑되심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단은 이 부분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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