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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이서 2-5절(요약)

박이레 2026. 7. 12. 16:07

성경읽기 : 요한이서 2-5절(요약)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요이1:2-5,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요한이서는 신약에서 가장 짧은 장으로 요한일서에서 다룬 핵심적인 교리를 다루는 장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야함을 지난 시간에 교제가 되었습니다. 또 사도는 자기를 장로라는 표현으로 권위의 표현이 아니라 오해 남겨진 자라는 뜻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또 "택하심을 받은 부녀"라는 단어에는 첫째는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쓰여진 서신이라는 것과 둘째는 지역교회를 비유로 나타낸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2-3절을 교제하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2절에서 사도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주님께서는 스스로 진리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진리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요한이서가 말하는 진리는 무엇을 가르키는가 생각 할 때에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진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주님의 인격이 진리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 진리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진 신약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2절) 이 진리는 외부의 지식이 아니라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살아있는 실체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안에 내주하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진리가 거합니다. 그로인해서 우리가 진리를 아는것을 넘어 진리대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것입니다.
또 여기 "우리"라는 복수형이 두번 반복됩니다. 진리를 각자 하나님께 받은 것이지만 모든 성도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성도들간에 참된 신뢰가 이루어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절에서 요한이 부녀와 자녀들을 사랑하는 이유와 진리를 아는 모든 자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같은 진리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또 부녀가 형제들과 여러 나그네들을 접대하는데 힘썼음을 알수 있고 그 일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심을 말씀합니다. 또 요한복음 17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말씀합니다. 또 성령님께서도 진리이시기에 믿는 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들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2절) 현재 분사형입니다. 지금도 성도안에 거하심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있음을 말씀합니다. "우리와 함께할 진리"(2절)에서 '함께 할' 이는 미래형입니다. 현재도 함께하고 미래에도 함께함을 말씀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를 보존할 것이고 성도들안의 진리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도 그 진리를 지킬 책임이 있음을 말씀해줍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음을 말씀합니다. 진리는 보존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진리안에 굳건히 서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성도들에게 기초가 됩니다. 사도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에, 모든것이 진리 가운데 있음을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성도가 진리안에 거함을 말씀합니다. 단순히 하는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사랑할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진리가 우리안에 거하고, 또영원히 우리와 함께한다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하신 주님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안에 거하실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생각하며 이 진리를 주님으로 이해하는 것도 틀리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진리를 성령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윤철형제님의 교제처럼 이 진리가 주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1절에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이 사랑은 진리가운데 있을때 있는 것입니다. 또 은혜와 평강은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 평강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이1:3, 개역한글)

그리고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왔음을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도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말하지만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와 평강과 긍휼과 같지 않습니다. 성경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영원한 것입니다. 3절까지 교제드렸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3절을 조금 보충해서 교제하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고 합니다. 진리는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실수 없었을 것입니다.
4절의 말씀을 볼 때에 "너의 자녀 중에"라고 합니다. 다가 아니라 일부만 그 계명대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행하는 것을 볼 때에 사도는 심히 기쁘다고 말씀합니다. 이를 통해서 도전을 받습니다. 마땅히 다 진리대로 행해야 하는데 다 그렇지 못함을 도전을 받습니다. 진리와 사랑, 주님의 사랑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가운데서 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은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3절에서 사도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고 인삿말을 마무리합니다. 이 서신을 받는 부녀의 심각한 상황을 생각하면 사도의 이 서신은 부녀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아들로 다시한번 지칭이 됩니다. 이는 이 뒤에 나오는 이단들의 가르침, 영지주의자들의 오류를 사도는 인삿말부터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인삿말에서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전제로 요한이서를 쓰고 있습니다.
또 이 서신을 관통하는 주제인 진리와 사랑이 다시 언급이 됩니다. 진리와 사랑은 서로 분리될수 없는 성격임을 인삿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어서 4-5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3절에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가 서로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가는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4절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것을 볼 때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기쁨을 주는가가 저희들에게 도전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혹을 당하는 형제에 대해서도 무엇이 진리인가를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택하심을 입은 부녀"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요. 제가 스트롱 사전을 찾아보니까, '부녀'라는 단어는 오직 요한이서 1절과 5절에서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신부와 남편에 대한 기록이 있고, 또 어린양의 아내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그러나 이 단어는 요한이서에 사용된 단어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그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가면 좋겠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으로 부녀에게 보낸 서신으로 보는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1-4절까지 진리와 사랑이 나옵니다. 1절에 택하심을 입은 부녀에 대해서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근거가 진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아는 진리는 그들안에 거하고 또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요한이서만 놓고보면 진리가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느껴집니다. 진리가 다른 사람끼리는 사랑할수 없다고 봅니다. 세상에서는 포용을 말하지만, 요한이서 1-2절을 보면 그렇게 말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3절에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아들 예수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논하는 대상이 부녀입니다. 자매님이시고, 자매님만 있는 가정입니다. 저희들이 생각할 때에는 진리를 형제에게 강조해 볼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수 있는데 성별 상관없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 가운데 형제들은 진리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고 자매님들은 사랑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그것이 저희들의 선입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매님들이 비록 입술을 열어서 말씀을 교제하거나 기도하시지 않지만 자매님들도 그 진리를 잘 소유하고 계셔야 합니다.

또 우리가 진리를 단순히 알고 잘 간직할뿐 아니라 우리가 진리에 순종할 뿐이고 행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가 심히 기뻐하는 이유는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갖는 사랑에 대한 관점을, 기쁨의 측면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택하심을 입은 부녀"가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한 개인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것에는 저도 공감을 합니다. Q. 그러면 빌레몬서나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를 보면 개인에게 보낸 서선입니다. 그런데 이를 모든 교회가 교훈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왜 '부녀'를 계속해서 강조하는지 궁금증이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일차적으로는 부녀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래서 부녀가 받았지만, 그 후에 많은 성도들이 이 서신을 통해서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사도요한이 누구를 염두하고 이 서신을 썼는가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절에 하나님께서 진리를 유지할수 있도록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삿말이 아니고 진리를 지키는데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으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진리를 받고, 진리를 지킬 힘을 얻는 것도 은혜입니다. 거짓 교사들, 미혹하는 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심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긍휼'은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거짓교사들은 성도들에게 더 깊은지식, 새로운 내용을 말하며 유혹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것은 저희들이 그 진리를 지킬 책임이 있지만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자라나며 거짓을 대항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강'은 화평과 안식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있을때 진리 안에서 얻는 안정을 말합니다. 평강은 은혜와 긍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은혜와 긍휼로 서있을때 우리에게는 평강이 옵니다. 저희들의 평강은 세상과 같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평강은 진리와 사랑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이 '있다'는 것도 미래형입니다. 사도는 확신가운데 말합니다. 진리가운데 있는 성도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확실하게 옴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려움이 닥칠수 있지만 그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하는 길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사랑이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저희의 성품이 되고 나타나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살아가야 됨을 보여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A. 장승훈 형제님께서 잘 대답해 주셨는데요. 윤철 형제님의 질문에 제가 좀더 첨언하면, 교회적인 교훈과 개인적인 교훈을 너무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처럼 요한이서에서는 "우리"와 같이 복수형으로 사용된 단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것과 복수적으로 모두에게 적용되는 교훈들이 있고, 이 두가지를 다 생각하면서 본다면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질문을 한번 드려보고 싶은데요. 5절에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것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새 계명이 더 좋을것 같은데 왜 새 계명이 아니라고 했을까 여쭤보고 싶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저는 1-4절에 나오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어떤것을 의미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진리가 상당히 광범위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라는 말을 복음으로 바꿔서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이 가장 진리의 진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Q. 그러면 형제님 광범위하다는 뜻이 범위가 크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요?

- 김대현 형제님 : A. 성경에서 저희들에게 주는것은 사랑하고 복음이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이냐 물으면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가장 많이 내포하는 것이 복음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저는 앞서 교제했던 대로 주님께서 진리라고 교제했었는데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광범위하다는 것이 크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다 담을수 없는 크다는 의미로 광범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형제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복음도 진리로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그 진리를 말씀하실 떄에 요한복음 17장 17절이 생각났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개역한글) 이를 보면 복음도 당연히 진리일 것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A. 5절에서 새 계명같이 쓴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는 영지주의자들을 염두해 두고 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새로운 지식이 있다고 계속 성도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새계명이 있지 않다고,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순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5절에서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하고 있고 또 그것이 새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지 않는자는 하나님 안에 있지 않음을 요한일서에서 말씀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동일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이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