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이서 1절(요약)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요이1:1,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요한이서는 장로로 표현한 요한사도가 기록하였습니다. 기록시기는 요한일서와 비슷한 시기로 보입니다. 주후 80-90년 경으로 보입니다. 당시 에베소를 중심으로 순회하며 소아시아 지역을 돌보던 사도요한의 서신으로 보입니다.
요한일서를 통해서 교제했던 거짓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는데요. 이에대한 실질적인 교훈을 요한이서에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보내진 편지입니다.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기를 권면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격려합니다. 또 거짓 교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까지 먼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질문과 개요에 대해서 교제드리기 원합니다. Q1. 민원형제님이 답변해 주시기 원합니다. 앞에 the로 시작되는데요. 이 '더 장로'가 어떤 장로를 의미하는지, 지역모임의 앞선 장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장로를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요한일서와 다르게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파피루스 한페이지 딱 들어가는 규격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요한일서는 모임에 쓰여진 편지이면서 사랑과 계명을 순종하는 것과 영생과 믿는 교회에 다수 증거되는 것으로 쓰였졌습니다. 반대로 요한이서는 아주 개인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요한이서는 '부녀'가 나옵니다. 어떤 한 여자를 두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도 개인적으로 교훈이 됩니다. 요한삼서는 '가이오'에게 쓰여졌는데 개인적으로 한 형제에게 쓰여졌습니다. 에베소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계시록에 에베소를 언급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칭찬은 거짓 선지자를 드러낸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린것이 에베소 교회의 실패였습니다. 요한이서는 두가지 단어, 진리와 사랑이 가장 많이 언급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적인 부분에서는 성공했지만 사랑이라는 부분에서 책망이 있습니다. 저희는 때때로 진리와 사랑이 양립할수 없다고 보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적인 사랑이나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도 분명하게 진리적인 부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요이1:2, 개역한글)
1절에서는 사랑을 말하지만 1절 마지막과 2절은 진리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드는 질문은 Q2. 이 진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요한이서는 한장으로 이루어진 서신서 중 가장 짧은 서신입니다. 이 서신서에서 진리와 사랑이 분리될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장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에게"라고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가 사랑안에서 행함을 말씀합니다. 4-6절을 계명을 지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새 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진 계명임을 말씀합니다. 7-11절은 경고의 부분으로,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그들과는 인사도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12-14절은 맺음말로 사도는 서로 대면하여 교제할 날을 소망함을 말씀합니다. 짧게나마 개요를 말씀드렸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진리라는 측면을 더 교제드리고자 하는데요. 요한복음은 진리를 선포하는 복음서였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기링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그 아는 진리를 실제로 실천할 것을 말씀하는 서신서입니다. 진리를 아는 자들은 삶에서 그 진리를 나타내야 합니다. 요한이서는 그 진리를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요한삼서는 이 진리를 전해야 함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절에 사도는 자신을 사도나 요한이라고 밝히지 않고 '장로'라고 합니다. 그는 생애 말년에 자신을 장로라고 겸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각각의 은사대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택하심을 얻은 부녀"는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한 가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정들이 모인곳이 지역모임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를 볼 때에 각각의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은 서로 사랑하는 이유가 같은 진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진리를 중심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이처럼 진리와 사랑은 서로 분리될수 없음을 1절 말씀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형제님께서 지역모임에게 말씀하시는 교제라고 해주셨는데요. 다른 주석서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만, 조금 더 그렇게 말씀하신 근거가 있으실까요?
- 김윤철 형제님 : A.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자신이 주님을 직접 만진자고 본자로서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서에서는 장로라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은사적인 부분으로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기에 모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형제님은 다른 생각이실까요?
- 전의석 형제님 : 조금 더 생각해봐야 겠지만 4절에 "너의 자녀" 5절에 "부녀여" 10절에는 '집'이 나옵니다. 13절에는 "너의 자매의 자녀"가 나옵니다. 아마도 이 자매의 친 자매가 먼저 주님 나라가고 조카들이 부녀에게 문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개인적인 서신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4절에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또 10절에는 "그를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도 말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모임으로 보면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모임으로 봐도 되지만, 그러한 생각이 조금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요한이서가 개인적인 서신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시나요?
- 전의석 형제님 : 이서는 자매, 삼서는 가이오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부녀는 형제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홀로 남겨진 자매고요.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자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이 서신이 나타낸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 '장로'로 요한은 나오는데요. 요한은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한번도 자신을 장로로 나타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나온 '장로'라는 뜻은 권위를 나타내는 장로가 아니라 오래된, 주님께서 오래 남겨두신 자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절에 보면 "부녀여"라고 나옵니다. 저도 개인적인 한 자매에게 보낸 편지라고 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한 가정에게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도요한도 진리의 책임을 말하기 전에 그녀가 있는 은혜안에 있는 신분을 말해줍니다. 성도가 존귀한 이유 자체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녀에게도" 부녀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에게도 말을 합니다. 이를 볼 때에 진리는 장성한 성도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도 지켜야 함을 말해줍니다. 또 요한은 그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아름답게 지키고 드러냈다고 말씀합니다. 가정은 진리를 배우는 첫 장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다고 보여집니다. 또 부모가 진리를 드러냈다고 해서 자녀들도 자동으로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1절) 이는 현재 시제입니다. 지금도 계속 사랑하는 형태입니다. "내가" 사도요한이 개인적으로 애정을 드러낸 부분이라고 봅니다. "진리를 아는" 이는 사도를 통해서 드러낸 신약의 가르침을 말씀한다고 봅니다.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그들 모두가 같은 주님을 믿고, 같은 진리 안에, 같은 생명 안에 있기 때문에 같이 사랑할수 있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1절을 교제드렸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사도요한이 기록한 성경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21장 20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을 믿게하기 위해서 기록한 성경입니다. 요한일서의 경우는 형제사랑과 믿는자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교회, 하나님의 가정에 보낸 서신입니다. 요한이서는 부녀와 그 부녀의 자녀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이 가정에게 사도요한이 보낸 서신입니다. 그리고 모임의 장로 형제님의 입장에서는 각 가정이 진리 안에 서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를 가정하고 서신을 보낸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삼서는 가이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가정이 아니라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이서는 잘못된 진리가 그 가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진 서신입니다. 이는 작년에 히긴스 형제님의 교제 중에 있습니다.
4절에서 사도요한은 어떤 가정과 그 가정안에 있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 진리가 위협 받으면 굉장한 근심이 있겠지요. 그래서 이를 위해서 쓰여진 서신입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3절)에 대해서 거짓 진리를 전파하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거짓교사들을 경계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성육신하심을 부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으로만 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위 영이 빙의하신 것으로 치부하여 처녀의 몸에서 나신 주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돌아심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잘못된 진리가 특정한 한 가정에 전해질 것을 염두하고 쓰여진 서신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절에서 사도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말합니다. 장로하면 지역교회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서 주님을 대신해서 지역교회를 보양하는 형제를 장로라고 말합니다. 또 한 지역교회의 장로라고해서 다른 지역모임에 가서 장로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장로라고 할때에 이 서신을 사도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썼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도요한은 오랫동안 에베소 교회에 머물면서 에베소 교회를 보양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형제님들께서 개인적인 측면에서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라고 보는 측면도 있으신것 같은데요. 저는 좀 달리보고 있습니다. 부녀는 여자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봅니다. 그래서 그러한 측면으로 부녀라고 할 때에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 주장만이 아니라 주석들을 보니까,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측면으로 교회에 보낸 서신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번째 견해가 더 합당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계속해서 중요하게 교제되는 것이 진리와 사랑인데요. 진리와 사랑은 떨어질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진리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그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히브리서를 공부할 때에 일차적으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히브리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서신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확장해서 저희가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도 받을수 있는 교훈의 서신으로 봅니다.
그래서 형제님들께서 요한이서가 개인에게 쓰여진 서신이라고 하셨습니다. 1절에 나와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개인적인 가정에게 쓰여진 서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가서 교회에게 보낸 서신으로 확장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차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저희가 확장해서 해석해 볼수는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과 교회는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에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가정의 확장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교제를 하신 형제님들께서 잘못된 교제를 하셨다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확장해서 넓게 교회에 적용할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배경을 생각할 때에 약간의 추측은 들어가지만 이런 배경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편이 있었다면 남편에게 썼을 것인데요. 남편이 없어서 자매에게 쓰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매의 자녀들도 진리 가운데서 잘 자라나 진리대로 행하는 자녀들이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임밖에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10절에서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이 자매님은 굉장히 접대를 잘하는 자매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것들이 오히려 모임에 어려움이 된다고 사도는 생각했고요, 이를 긴급하게 수정해야 겠다고 생각하셨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개인적인 서신을 보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김보영 형제님께서도 그런 교제를 해주셨지만, 지역교회라고 보시고, 정결한 처녀로 보시고 교제하신 유명하신 형제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4절에서 심히 기뻐한다고 합니다. 모임에 이러한 문제들이 있는데 심히 기뻐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승훈 형제님께서 잘 교제해 주셨지만 그것이 이상하거나 교훈을 못받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교훈 받아볼수 있는 부분이 모임의 장로 형제님께서 알고계신 진리, 각 가정에 당부하는 진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선 장로 형제님이 받아들인 진리이지, 각 가정에 그 진리를 받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소유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각 개인이 그 말씀을 받고 그에 합당하다 받아서 그대로 살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께서 알고 계신 진리를 분명하게 다시 얘기하는 것이고 진리를 보호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들었음에도 위협에 쉽게 무너져 버린다면 그것은 진리가 바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는 이에 대해서 열심으로 서신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모임과 가정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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