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 / 26년 1월 11일 일요일(요약1) / 한재광 형제님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12, 개역한글)
동방박사들에 대해서 살피고자 합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단순히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지역의 제사장, 박사, 학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별이 유대인의 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24:17, 개역한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이 말씀도 바벨론 지역에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박사들은 이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별이 떠올랐을때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아의 표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박사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의 표적으로 받을만큼 진리를 추구했던 목적이 무엇일까요?
아무리 공부해도 인간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개역한글)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채 다른것으로 만족을 찾으려 하지만, 그 모든것은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그 누구도 피할수 없는 죽음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2:15, 개역한글)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매여 종처럼 살아갑니다. 이 두려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이 죽음의 문제앞에 있습니다. 학문도 성취도, 세상의 영광도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해답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매여있던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3-4, 개역한글)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찾는 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계시라는 것은 가려진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원함으로는 결코 알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1:1-2, 개역한글)
옛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이 부분적으로 드러났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하고 최종적인 계시로 우리 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여러분이 지금 간절히 찾는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영광입니까? 잠시의 만족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그러나 같은 소식을 듣고도 모두가 같이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진리를 찾지만,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2:3, 개역한글)
헤롯왕의 반응은 이것입니다. 왕은 절대적 주권자를 자긴 통치자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로마에 의해서 세워진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왕은 자기의 자리를 도전하는 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소동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왕좌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왕이신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는 그 왕좌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두번재로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그들이 왜 혼란했을까요? 빛이 비춰지면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빛이 우리 삶을 비출때에 드러나기 싫은 두려움과 폭로될 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헤롯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고 지식인들은 미가서 말씀을 들어서 바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쳤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알았지만 말씀을 행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아는것 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실제로 말씀대로 나가는 자에게 구원의 길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전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아기 예수 앞에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별을 단순한 천문형상으로 해석하지 않고, 말씀의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이나 지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예수님 앞에 나갔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은 아는데 머물지 않고 실제로 예수님 앞에 나가는데까지 반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헤롯이나 지식인들의 자리에 있습니까? 아니면 동방작사들의 경배하는데까지 나가고 있습니까?
이 소동하는 것은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을때에 무리를 소동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세상에 전해지는 거룩한 흔들림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주님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모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마2:9, 개역한글)
동방박사들은 별빛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날수 있었던 것은 실제적은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별빛은 방향을 알려줬고, 말씀은 목적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정확한 곳을 계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이 별은 길잡이처럼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별빛이 길을 비춰주었으나, 마지막에 그들을 아기 예수께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지식이 출발점이 될수는 있지만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받을때에 목적지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이 별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단순히 눈으로만 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별을 따라서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별은 단순한 천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길잡이의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별을 따라갔고 마침내 아기 예수께로 갈수 있었습니다.
그 박사들은 19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믿음의 끝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과 기쁨으로 드러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3, 개역한글)
그들의 출발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전심으로 예수님을 찾는 갈망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 전해질 때에 무심코 지나치지만 어떤 사람은 전심으로 찾고 갈망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처음 간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곳은 발전과 종교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아니라 시골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갔고 결국 그들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개역한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1, 개역한글)
여기서 요셉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또 마리아보다 아기신 예수님이 먼저 언급된 것은 그 중심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 경배의 대상이 오직 아기 예수님임을 말씀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께 경배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경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을 자기들의 주인이고 하나님으로 믿은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들이 들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립니다. 황금은 내 인생의 왕좌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는 고백입니다. 유향은... 몰약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2, 개역한글)
"다른길" 여기서 다른이라는 단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말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선택한 다른길은 단순한 경로 변경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하신 사건입니다. 그들은 지시하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 지시하심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명확하게 그 길을 지도하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의 다른길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단순히 감정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생각과 마음의 방향 자체가 바뀌어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방향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무릎꿇음은 믿음의 고백이었고, 다른길은 그들의 삶의 방향의 변화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이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개역한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옛 길을 끊고 새로운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동방박사들의 발걸음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들이 기뻐한 것은 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아기 예수께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변화는 억지라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더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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