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교회 : 큰자, 용서, 인도자들 / 25년 11월 22일 토요일(요약) / 한봉래 형제님
지난 시간에는 마태복음 16장을 통해서 몸인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8장을 통해서 지역교회를 살피겠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마18:1-22, 개역한글)
교회라고 하는 단어가 가장먼저 쓰인곳이 마 16장, 이제 두번째로 쓰인곳이 마 18장입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아직 교회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교회에 말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역모임은 연약이 있고 이것을 지역모임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마 18장은 두개의 질문이 나옵니다. 1. 누가 크냐? 2. 몇번 용서할까요? 입니다. 이 두 질문이 지역모임과 연관해서 나옵니다. 지역모임에서 누가 클까요? 그리고 지역모임에서 몇번 용서해 줄까요? 이 두가지 질문을 두고 말씀을 살피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의 배경을 알기 위해서 앞으로 가서 문맥을 살피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마12:14-15, 개역한글)
바리새인들은 12장에서 주님을 죽이기로 결정했고 주님은 그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거기를 떠나십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분리된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바리새인을 떠나가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사단의 능력을 빌어서 행하는 기적이라고 비방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성령 훼방죄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사단의 능력이라고 하는것은 성령 훼방죄입니다. 이것은 용서되지 않습니다.
12장은 예수님께서 떠나가셨는데, 이 일은 예루살렘과 가버나움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고요. 이제 1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오셨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북쪽 국격지대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입니다. 단이 이스라엘의 밴 북쪽입니다. 이곳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주님은 가셔서 물어보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를 베드로가 옳은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1. 예수님이 누구신지가(16-17절) 계시됩니다. 2. 예수님께서 교회를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가 최초로 나옵니다.(18절) 3. 그리고 십자가를 계시하십니다.(21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6:21, 개역한글)
마태복음에서 십자가는 세번 언급됩니다. 첫번째는 16장, 17장에서 두번째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17:22-23, 개역한글)
그리고 18장에서 지역모임이 언급됩니다. 그래서 두번째 십자가는 18장에 언급된 지역모임과 언급되서 언급니다. 세번째로 십자가가 언급되는 곳은 20장 18절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20:18-19, 개역한글)
20장은 문맥적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면서 언급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대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데 희생없이 세우지 않으시겠다입니다. 지역교회도 마찮가지입니다. 지역교회가 세워지지 위해서 희생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이를 놓고 다시 18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전에 17장 24절부터 읽겠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17:24-27, 개역한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18:1, 개역한글)
가버나움은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18장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본 동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나십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십니다. 본 동네, 그러니까 사역에 관한한 가장 중심지로 놓고 사역하시며 여기저기를 방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낸다고 잘못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집안에 들어왔고 이를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왕이 누구에게 세를 받느냐고 하십니다. 백성들에게 받습니다. 왕의 아들은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성전세는 성전을 유지하는 유지보수비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유지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돈을 받을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16장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17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세를 내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하지 못하고 실제 문제에 있어서 알고 있는 지식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족하지 않도록" 이라고 말씀하시면 낚시를 하면 물고기 배에서 한세겔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18장에서는 계속 '실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16장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본 동네에서 예수님은 배척됩니다. "타인에게냐"(17장 25절) 이는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곧, 이스라엘에게 배척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교제할수 없는, 쫓겨난, 출교된 상태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를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게 배척되었고, 그리고 나와 교제하는 너희도 이스라엘에게 쫓겨난 것이다. 이제 배척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교제권을 만듭니다. 그것이 지역모임입니다. 지역모임은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들, 세상에서 배척된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통체를 만드는 것이 지역모임입니다.
약간 놀란이 있지만, 지역모임은 세상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운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양 가스펠홀을 보면 투표하지 않습니다. 선거에 투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약간 논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모임에서 필요한 것이 1. 질서이며 2.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형제 가족이고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지역모임의 질서와 지역모임의 용서, 이 두개가 실행되는 곳이 지역모임입니다. 하나하나 살피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1. "그럼 우리들 가운데는 누가 제일 큰가요?" 주님의 대답입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개역한글)
천국은 지역교회보다 더 넒은 개념입니다. 첫째는, 이 지역모임에 들어오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못되면 못들어 옵니다. 요 3장에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물어봤을 때에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이 내 죄때문임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된 사람이 지역모임으로 들어옵니다.
두번째, 지역모임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세상과 이스라엘과 다른 개념입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에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낮아지셨는지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 권면을 합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다른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이것이 지역모임 안에서의 새로운 가치관입니다. 이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린아이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용서로 거듭난 사람이 어린아이인데 어린아이의 특징을 언급해 보겠습니다. 1. 자기가 제일 낮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낮춥니다. 2. 이들은 잘 배웁니다. 어린아이들은 가르쳐주는 것을 잘 배웁니다. 3. 서로 싸우더라도 또 잘 용서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잘 다투지만 금방 잊고 잘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냅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지역모임이 성장합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 특징들을 보겠습니다. 지역모임은 이 어린아이들끼리 모여 있는 지역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를 다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뭘 하면 안되냐면, 실족케 하면 안됩니다.(6절) 실족케 하면 그 형제를 가장 악한 방법으로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믿는 자녀들을 실족케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화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경우는, 성도가 성도를 실족케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어리고 연약한 형제를, 어떤 형제를 실족케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십니다.(8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이는 '네'라는 말이 들어갔기에 성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전부 다른 사람 보지 말고 내 자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실족케 하는 첫번째는 말입니다. 다른사람의 연약과 잘못을 바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바로 말하고 금방 말해버리는 성격이 있다면 주님앞에 이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2. 저희들이 다 시기심, 질투가 있습니다. (마포모임의 암송대회 예를 들으시며) 그래서 나의 주목받음이 누군가의 성도의 마음에 어려움을 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돌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가 상처받고 있을 때에 그 성도를 돌보는 천사가 가서 하나님께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주님께서 목자로써 이 성도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지역모임 안에서 그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그가 연약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로 보겠습니다.(15절) 어떤 형제가 모임에서 나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거든" 이는 영어로 전부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식족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족하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그 사람하고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쉽게 잘하지 못하는 대목입니다. "권고하라" 이는 성경을 들어서 그와같은 행동이 성경에서 말씀한 잘못임을 입증하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하고 용서하면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갑니다. 그래도 안들으면 교회에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출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성도들과의 관계가 중요한가.
성경에는 유대인, 이방인, 세리, 세 종류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구원받은 사람, 이방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 세리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못들어 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거보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출교에 대해서는 기준이 명확합니다. 1. 도덕적인 범죄를 했을 때입니다. 2. 교리적인 잘못을 범했을 때입니다. 3. 성도간의 관계를 교회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회복시키려고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지역모임은 화목해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세상에서 배척되고, 지역모임 안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의 성격과 말을 고쳐나가고, 천사가 돌보고 있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주님의 목자가 되시는 성도의 관계를 부정하는 사람은 출교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8, 개역한글)
지역모임이 출교를 하면 이를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이라고 우리말 성경으로 많이 이해합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으로는 모즘 다릅니다. 지역모임은 하늘에서 결정한 것을 땅에서 집행하는 곳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은 음행을 했는데도 고린도 교회가 출교를 안했고 사도바울이 이를 책망합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5:2, 개역한글)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고전5:13, 개역한글)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5:3,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다른곳에 있지만 이미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이미 판단한 것을 지역모임이 실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하늘은 아닙니다.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4절) 하늘의 판단을 사도바울이 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결정된 것을 지역모임에서 집행했을 때 두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1. 지역모임에서 징계된 사람은 나중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묻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부끄러움을 받는 것보다 지역모임에서 징계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18:19, 개역한글)
2. 지역모임의 결정은 최종 법정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원 결정입니다. 지역모임보다 더 높은 법원은 없습니다. 19절에 나온 두세사람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장로들입니다. 지역모임의 책임있는 일꾼 두명이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 일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기도하고 구하면, 이를 처리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리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지역모임의 책임있는 일꾼 두명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떄에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그리고 두세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했을 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저희들이 지역교회를 어떤 관점에서 생활하고, 그 조치들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18장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21절에 두번째 질문, 2. 몇번 용서할지를 물어봅니다. 주님은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지역모임은 성도들이 매우 친밀하고 가깝게 지냅니다. 연약이 보이고, 눈에 드러나는 잘못들이 있고, 그래서 용서가 필요한 곳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은혜로 용서하셨습니다. 이땅에 살면서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행동을 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17:4, 개역한글)
그리고 회개해야 용서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은 언제든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로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그 상대가 회개하고 직접와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회개없는 용서는 위험이 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18:12, 개역한글)
누가복음 15장에서 잃어버린 양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입니다. 아흔아홉마리의 양은 자기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양들은 전부 성도입니다. 아흔 아홉마리의 양은 지역교회에서 평안히 모임생활하는 성도들입니다. 한마리 잃은 양은 실족한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실족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말씀으로 권면을 받는다면, 어린아이는 자존심 생각하지 않고 잘 배웁니다. 그 다음에 용서하라라고 했을 때에 용서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러한 특징을 못갖습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개역한글)
"너희가 돌이켜" 이 돌이켜가 '수동태'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성도는 이 세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2. 권면을 잘 듣습니다. 3. 그리고 다른사람이 나에게 한 잘못을 금방 잊어먹습니다. 이와같은 것이 잘 되도록 주님께서 지역모임을 돌보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잃어버린 양, 실족한 양을 찾도록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임의 인도자들이 목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목자를 인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출3:1, 개역한글)
1. 모세의 목자로서의 기능은 양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모임에서 장로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목자로써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으로 가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 모세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목자였습니다. 양들을 칠 때에 어떻게 쳤냐면, 특이하게 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삼상17:34-35, 개역한글)
2. 다윗은 양을 지킵니다. 그런데 사자와 목숨을 걸고 싸우며 양들을 지킵니다. 양들을 위해 희생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셔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양들을 보호할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각각 양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과 목자와의 관계는 친밀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위해서 내 목숨을 거는 헌신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야곱입니다.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창31:38-41, 개역한글)
3.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맡았습니다. 그 양떼가 건강하고 어려움이 없고, 잘 크고, 수가 늘어나게 만듭니다. 그게 야곱 목자입니다. 그가 밤에도 자지 못하고 낯에도 수고합니다. 그가 헌신과 희생으로 양떼를 건강하게 키워냅니다.
이것을 저희들이 지역모임에 적용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위험에서 보호하고, 건강하고 번성하며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역모임의 인도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지역모임 안에서만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관계를 원치않고 파괴하는 사람은 출교합니다. 주님께서 계속 저희들을 도우셔서 저희들이 속한 지역모임 가운데 합당한 관계들이 이어지도록 저희들이 주님의 본을 좇아 헌신하고 희생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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