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김보영 형제님(요약)

복음 : 회개와 구원의 은혜

박이레 2025. 7. 6. 12:50

복음 : 회개와 구원의 은혜 / 25년 7월 6일 일요일(요약1) / 김대현 형제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1-32, 개역한글)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병원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몸에 아픈곳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갑니다. 아프지 않다면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물과 피로 구속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교제하고자 하는 내용은 '죄인의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3:2, 개역한글)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개역한글)

성경에는 회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목적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는 죄인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15장 말씀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15:1-2, 개역한글)

여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세리와 죄인들이고, 두번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의 말씀은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첫번째는 아흔아홉마리의 양과 잃어버린 양의 비유, 두번째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에 대한 비유, 세번째는 두 아들에 관한 비유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개역한글)

이 말씀은 제가 구원받은 커다란 계기가 되었던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5장 3-7절까지 말씀을 보면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한마리 양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 하나님을 떠난 자, 죄인 하나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들에 있는 아흔아홉마리의 양은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그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죄인 하나라도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두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찾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잃어버려진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찾기 위해서 심히 갈망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말씀합니다.

세번째 비유에서는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 즉 돌아온 탕자에 대한 비유입니다.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15:11-12, 개역한글)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는 타락을 합니다. 그는 첫번째로 세상에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정욕을 좇습니다. 세번째로 집을 떠납니다. 네번째로 방탕한 삶을 삽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15:13-14, 개역한글)

그리고 결과적으로 빈곤하게 되고, 아주 추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주 고난을 당합니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6-17, 개역한글)

그는 아버지를 떠남으로 이러한 고난을 겪습니다.
이제 둘째 아들은 회복의 7단계를 밟기 시작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아갈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돌아갔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멀리서 보고 그를 받아들입니다. 21절에서 아들은 자기의 죄를 자백합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15:21, 개역한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지위를 회복합니다.(22-24절) 그리고 즐거워합니다. 22절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힙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는 것은 구원의 상징이고 신분이 변화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는 것은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로써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을 신기는 것은 노예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는 아버지의 즐거움을 표현합니다. 저희도 과거에는 죽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침례는 과거의 나의 자아가 죽었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등장합니다.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15:27, 개역한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15:29-30, 개역한글)

종은 첫째 아들에게 "당신의 동생"이라고 말하지만 첫째 아들은 "이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버지와 동생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말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의에 자부심을 가지고 단지 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경멸적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눅15:32, 개역한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용서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21:28-31, 개역한글)

그 당시에는 세리들과 창기들이 죄인의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아들 가운데서 누가 진정으로 회개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10, 개역한글)

삭개오는 앞 18장에서 소경이 눈을 뜬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것을 보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삭개오는 세리장입니다. 그는 죄인 중에서도 대장입니다. 그가 부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많이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서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삭개오를 부르십니다. 삭개오는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주님께 회개함을 고합니다.
회개의 원어적 단어의 뜻은 하고싶은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삶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기 위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인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지러운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알고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