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김보영 형제님(요약)

분을 내는 것에 관하여

박이레 2025. 6. 22. 12:48

성도 : 분을 내는 것에 관하여 / 25년 6월 22일 일요일(요약2) / 김보영 형제님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5-27, 개역한글)

우리가 살면서 분내지 않고 살고 있습니까? 가정에서든지, 사회생활에서든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분이 날때가 있습니다. 모임 가운데 진리적인 측면에서 잘못됐다 생각되면 분이 날수 있습니다. 혹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산다면 분이 날수 있습니다. 또 직장에서 내 뜻내로 일이 되지 않을때에 분이 날수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사실 분내는 것에서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분은 내시지만, 인간의 분냄과 하나님의 분냄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내는 것이 성경적인 측면에서 무슨 의미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분내는 것은 행동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내는 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죄를 짓지 말며" 분 자체는 죄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분 자체가 죄가 되는 분도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약1:19-20, 개역한글)

하나님의 분냄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인간은 그렇지 못한 분을 낼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2, 개역한글)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이미 이 '노'가 죄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분에 대한 세가지 종류의 말씀을 찾을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첫번째 단어는 '디모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맹렬한 노를 가리킵니다. 계시록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사용합니다. 이 디모스는 인간의 잘못된 행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두번째 단어는 '오르게'라는 던어입니다. 이 단어는 복수를 추구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즉각적으로 주님께 정죄를 받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세번째 단어는 의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는 단어로써 "아가나크테오"라는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7번 사용되었는데, 의의 분노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세번은 매우 화가 난 상태입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치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이는 악한 감정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분을 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10:14, 개역한글)

주님께서 분을 내셨지만, 그 분을 내신 이유가 어린아이들이 주님앞에 오는것을 막기 때문에 화를 내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셨기에 분을 내신 것입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20:24, 개역한글)

"분히 여기거늘" 이 또한 악한 감정의 분이 아니라 "의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로 잡고자 하는 분이기에 의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증오심이 없습니다. 이기적이지도 않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는 상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됩니다.
예를들면 어떤 형제가 잘못했다면, 그 형제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분을 낼수 있습니다. 주님의 분노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상대의 행위를 바로 잡고 올곧게 세우기 위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 안에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분을 낼 때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순종으로 돌아서기 위한 목적으로 분을 내십니다.
인간의 분은 통제되지 못하고, 증오심을 가진 분을 냅니다. 또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분을 냅니다. 또 어떤 감정을 가지고 해한다거나 손상을 내기 위해서 분을 내며, 또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분을 냅니다.

하나님은 분을 내시는데 있어서 선한 목적 속에 분을 내십니다. 구약성경에서는 200번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분노를 기록하며, 150번은 간접적인 하나님의 분노를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가 인간의 분노와 다른다는 감정적으로 급히 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1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분을 내시는 이유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시기에 인간의 죄악된 상태를 보고 분을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더디하십니다. 그 분을 내는 상대가 바로 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분을 잘못내서 자기 친 동생을 죽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4:5-8, 개역한글)

가인은 자기 동생의 제물은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자기 제물은 열납하기 않은 것 때문에 분을 내어서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렇기에 분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로운 분노가 또 얼마나 좋은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린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울 때에 그가 의로운 분노를 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 본문에 그가 분을 내었다는 내용은 없지만, 그 상황을 보았을 때에 다윗이 분노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17:44-47, 개역한글)

이렇게 말하고 다윗은 물매 하나로 골리앗을 죽이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의로운 분을 다윗이 내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15:26-28, 개역한글)

탕자의 형이 분을 내고 있습니다. 떠났던 동생을 기쁘게 맞이한 아버지가 잔치를 연 것 때문에 시기하는 마음에서 분을 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이러한 것입니다. 자기의 육신의 생각 때문에 분을 내는 것입니다.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면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할 때나 또는 주님의 주님의 말씀에 순종이 안되면 화가 납니다.
내 마음에 분이 일어났다고 생각되었을 때에 이 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분인지, 아니면 육신의 마음으로 인한 분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육신으로 말미암은 분이라면 빨리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분이라 할지라도 오래 품어서는 안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기전에 분을 품지 말고" 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분을 오래 품었을 때에 마귀가 그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모임 안에서도 분노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딛1:7, 개역한글)

이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두면서 분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인의 죄는 처음부터 죄로 가는 분노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말씀의 분은 의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깨달을수 있는 교훈은 누구든지 분을 낼수 있지만 주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분을 내셨습니다만, 주님은 즉각적으로 분노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분냄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노가 일어났을 때에 그 분노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살피고, 그것이 의로운 분노라면 의로운 것으로 사용해야 하고, 만일 그것이 육신적인 것으로 기인한 것이라면 즉기로 내보내야 합니다. 또 의로운 분노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면 그후 즉시로 내보내야 합니다. 분은 오래 간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