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읽기 : 창세기 22장 >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살펴볼 성경 말씀은 창세기 22장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22장 말씀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창 22:1-24).
창세기 22장과 관련해서 신약 성경 두 군데 말씀을 또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한 군데 더 말씀 있겠습니다. 야고보서 2장 21절 말씀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2-24).
창세기 22장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저희들이 대전 중구 모임 성경 수양회 동안에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성경 읽기 첫 시간에는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던 창세기 12장 말씀을 살펴보았고요. 어제는 18장 말씀, 그리고 오늘은 이제 22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2장 1절에 보면 이제 "그 일 후에" 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이제 이와 같은 말씀이 기록된 것이 창세기 15장 1절에도 이제 "그 일 후에"라고 이제 기록이 돼 있습니다. 크게 아브라함의 생애는 이제 세 부분으로 이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14절까지, 그리고 "그 일 후에" 15장부터 21장까지, 그리고 "그 일 후에" 22장부터 이제 25장까지, 아브라함의 죽음까지의 내용을 크게 아브라함의 생애를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가 있습니다.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제 그의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이 부분에서 그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이제 순종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15장부터 이제 21장까지는 그의 믿음이 이제 성장하는 것을 저희들이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점점 알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배우는 이제 22장부터 이제 이후에 25장까지는 오늘 배우게 되죠. 이제 아브라함이 믿음의 그 절정, 믿음의 최종 승리하는 모습을 저희들이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 22장부터 25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씨를 통해서 앞으로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경영하실지, 그들을 통해서 어떻게 복 주실지가 특별한 모습으로 이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아는 대로 22장에서는 이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저희들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23장을 통해서 사라의 죽음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24장에서는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준비되고 그와 결혼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인도하시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삭, 그리스도와 이스라엘과 이 교회는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너의 씨'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씨'가 어떻게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서 이제 만민에게 복을 내리는지를 이제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이제 22장을 이 이후를 저희들이 이제 이해할 수 있겠고요.
이 22장의 첫 1절을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12장, 아브라함을 처음 이제 부르시는 장면에서도 이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저희가 성경 읽기 첫 시간에 이제 형제님께서 이제 이러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 기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저희들을 개인적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저희들의 인생이 어떻게 우연히, 아니면 그냥 세상을 살다 보니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부르시고 그 생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해서 그렇게 하셨고 저희들을 향해서도 분명하게 저희를 복음으로 부르시고 그 목적을 따라 저희들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12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보면 이제 이와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의 부르심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을 향한 부르심도 그와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리고 저희들에게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는 간 것입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라 할지라도 그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는 갔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희생하고, 하나님을 헌신하여, 출발했던 것입니다.
여기 창세기 2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면 이제 그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네 아들, 독자, 네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드리라."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던 것처럼, 네 아들, 독자,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이제 저희가 살펴보겠지만 순종하게 됩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 창세기 22장에서는 왜 드려야 하는지를 아브라함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그는 이제 믿음으로 그 아들을 이제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이제 저희들이 교제한 대로 아브라함의 실패가 이제 기록돼 있습니다. 애굽 땅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 이제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창 12:1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이 이루려고 합니다. 내가 안전하고 내 목숨을 보존해야 되겠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을 자기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버리려고 합니다. 이 실패한 모습이죠. 창
세기 21장에 보면, 그 앞장에 보면, 이삭을 향하여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 12절,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자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그 이삭을 바치라고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22장에서는 그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의 믿음이 성장하고 그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저희들이 참 생각해 봤을 때 참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과 그 완성을 통해서 저희들에게도 이제 교훈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단순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이루어질 것을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이 이제 창세기 이제 22장에서 이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텐데요. 크게 보면 이제 두 가지 측면으로 저희들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저희들의 삶의 실제적인 여러 교훈들을 저희들이 발견하고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의 경륜과 예언, 또 비유, 이런 것들이 아주 풍부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특별히 이삭을 통해서 저희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것들을 저희들이 교훈 받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경륜적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또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는 성경에서 처음 나타나는 단어들이 굉장히 많이 언급돼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독자'라는 단어가 이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것이 이제 창세기 22장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도 창세기 22장에 처음 발견됩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라는 단어도 창세기 22장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그리고 저희나라 성경에는 이제 "준행하였다" 라고 돼 있는데요. 18절에 '준행하였다', '순종하였다', 이 '순종'이라는 단어도 처음 나타납니다. 저희들이 이제 성경을 공부할 때 이제 '첫 언급의 원리'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그 처음 발견되는 그곳에서 그 단어의 본질적인 뜻을 저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들이 또한 풍부한 교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조금 개요를 살펴보면요. 1절, 2절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명령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3절부터 6절까지는 이제 아브라함이 그것을 어떻게 순종해 나가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 8절에서는 이삭이 질문을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을 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고요. 그리고 9절, 10절에서는 이제 이삭을 번제단 위에서 드리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11절, 12절에서는 이제 여호와의 사자가 그것을 막는 장면이 기록돼 있고요. 이제 13절, 14절에서는 이제 아브라함이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칭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15절부터 19절까지는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아브라함에게 그 언약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기록돼 있고요. 마지막 20절부터 24절까지는 이제 나홀의 후예들, 나홀의 족보가 간략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러한 순서대로 저희들이 성경 읽기를 진행할 거고요. 순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1절부터 6절까지 말씀에서 저희들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부터 이제 6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아브라함이 이제 그것을 순종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고요. 이 말씀에 대해서 형제님들 가운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동희 형제님 : 1절에는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해서 시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이런 '시험'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그중에 예를 들면, 역대야 32장 31절 히스기야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알고자 하신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시험한다'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6장 4절과 신명기 8장 2절에 나와 있는 말씀은 역시 동일하게 '시험'이지만 그것은 '드러낸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받는 자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드러낸다라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 본문에 있는 단어는 영어로는 테스라고 그래서 이제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질적인 의미는 '이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드러낸다'라는 출애굽기 16장 4절에 쓰인 말과 같이 '드러낸다'라는 뜻으로 우리가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그가 이삭을 정말 얻게 된 이후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이제 정말로 믿고 그전과 같이 연약함을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이 사람 아브라함을 정말 이렇게 그 사람이 어떠한가를 시험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아브라함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르실 때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역에 사용하고자, 동참하게 하고자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은 성도에게는 큰 영광이 되고 그 부르신 여정과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능력과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니까 저희로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서 부르심에 응답하고 이제 순종하기만 하면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놀라운 부르심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절에 이제 "그일 후에"라고 이제 나와 있는데요. 앞장 21장에서는 이제 이삭이 젖을 떼고, 이제 그 이후에 또 이스마엘이 내쫓긴 후에 그 이후의 일을 이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22장 1절에 때를 보면 이제 이삭은 어느 정도 이제 성장했을 거라고 이제 보여지고 있고요. 이제 그 이유는 이제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먼 곳을 여행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이삭이 나무를 지고 그 산을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이제 보여지고 있고요.
그다음에 앞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1절에서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이제 시험의 뜻이 시련이나 고난 등을 의미를 하고요. 대부분 경우에는 '증명하다'로 이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밝히 드러내기 위해서 이제 말씀해 주고 있고요. 이것은 이제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나 아들 이삭, 그리고 이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이제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그 마음이 그러한가를 또한 이제 드러내신 부분이 있고요.
이 시험을 받을 때 이제 보통 어려움과 고난을 이제 같이 동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시험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이제 보여주게 되고 있고요. 하나님께서 이제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다"고 이제 1절에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통해서 이제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고 있었다고 볼 수 있고요. 또 이제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가 이때는 이미 10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고요.
이제 2절에서는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모리아산으로 그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모리아'는 이제 역대하 3장 1절에서 솔로몬이 이제 지은 성전 터를 말할 때 다시 한 번 이제 또 등장하게 되고요. 이 '번제'는 이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지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내 모든 것이 이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께 다 들려진다고 이제 고백을 하는 것이 이제 번제로 이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처음 '사랑'이 이제 적혀 있는데요. 그의 외아들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고요. 또 이제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 할 때 또한 극심한 영혼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사랑에 대한 이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은 이제 그 아들 이삭을 번져드릴 때 히브리서 11장에 이제 기록된 대로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했"다고 말을 하고 있고요. 이제 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기 때문에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제 행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2절까지 교제 들렸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혹시 1절부터 6절까지 말씀 가운데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부분에서 드러나는지를 말씀해 주시면 또 좋겠습니다. 아까 형제님 앞에 있는 형제님께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이제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고요. 그 이후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 순종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두 번째로 '독자'라는 것에 대해서 간단하게 형제님들 중에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아들이 있거든요.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독자'라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독자라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제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에 대해서 잠깐 앞에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하나님은 여기 믿는 자들에게 이제 시험하실 때는 그 믿음이 진짜인 것을,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인 것을 이제 드러나도록 시험하시는 거고요. 불신자들에게도 시험하십니다. 그 믿음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도록 시험을 하십니다. 저희들이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하나님께서 환란을 주셔서 이제 그 뿌리가 이제 말라버리는 것을 통해서 가짜 믿음이라는 것을 또한 나타내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도들에게 진짜 믿음을 이제 드러내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 더 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절과 2절이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 볼 일은 1절에서 "그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되"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이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라고 하는 이런 측면을 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가 겪었던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실은 완전히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죽은 몸과 같은 남편 아브라함과 사라가 전혀 생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식을 낳은 것이죠. 사실 어제 한봉래 형제님 말씀 교제 중에서도 이들이 이 같은 체험을 통해서 이미 부활의 신앙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녀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죽은 상태입니다. 전혀 생산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습니다. 마치 죽은 나무가 이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놀라운 이와 같은 경험을 한 다음에 지금 이제 하나님께서 그 귀하게 낳은 아들을 바치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가 체험한 부활 신앙을 통해서 이제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자기 체험적인 신앙 때문에 주저없이 드릴 수 있는 그런 영적 상태가 되어 있었다라고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를 아시고 독자 이삭, 우리가 알다시피 이제 이스라엘의 조상은 바로 이삭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아들로부터 이어지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이삭은 독자였다라고 하는 사실이고, 사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을 때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아마 자기 목숨 이상으로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받치라고 했을 때 그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미 죽은 자 같은 상태에서 이삭을 얻었기 때문에 이삭이 하나님께 드려진다 해도 충분히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그런 마음의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시험하셨다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생각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혹시 여기 앞에 계시는 형제님들 가운데서도 1절부터 6절까지 말씀 좀 짧게 코멘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박희준 형제님 : 저희가 이제 22장,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때 로마서에도 이제 적혀 있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라는 이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럼 어떻게 증명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방금 이제 사회자 형제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냐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라는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훌륭하지만 그것이 직접 구현된 것은 마음만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행함을 통해서 이 믿음의 증명이 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행함이 가장 이제 극적으로 드러난 곳이 저희가 오늘 함께하고 있는 22장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은 어떠한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순종의 증거를 드러내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 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3절에 보면 "아침에 일지기 일어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만약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준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 보통 저희들이 어떤 명령에 대해서 불순종하는 것은 하기 싫을 때 이렇게 밍기적거리고 또 늦추고 또 학생들은 숙제를 하지 않고, 이런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만약에 이 명령이 떨어졌을 때 자기가 이것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이 사람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데, 아브라함은 "일찌기 일어나"를 통해서, 이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에 이것을 진행하는 것을 통해서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이제 행함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우리가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지시하는 한 산이 있습니다.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그 장소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실제로 3절 말씀에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라"는 걸 통해서 어떠한 것이 그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당시에 이해를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이 하나님이 그 장소여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그것을 이제 그대로 이행하는 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산에 이르렀을 때 이제 사환에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배하다'라는 것은 이제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심령으로 공경하고 몸으로 섬기는 그 행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다. 내 몸으로 주님을 섬긴다라는 것을 이제 명확하게 드러내서 이 순종이 어떠한 것인가를 경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가 있고, 또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는 표현을 통해서 지금 아브라함은 저희가 이미 읽은 것처럼,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은 이 사람 마음속에 들어 있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그 믿음에 대해서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가고 경배를 한다, 다시 말해서 번제를 드릴 것이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돌아온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이 일련의 과정들이 굉장히 마음 가운데 짐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말이겠죠. 그런데 그러한 마음 가운데 있는 짐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모든 것을 가지고 나아가서 이 일들을 진행하는 것을 한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방지성 형제님 : '독자'에 대해서, 아들이 이스마엘도 있지만 이제 독자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저는 이제 이삭을 통해서 앞에 오실 주님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의 이름 뜻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사랑하는 아들이고 또한 아브라함을 또 기뻐하게 하는 그와 같은 아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마태복음 3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께서 침례받으신 후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던 것과 같이 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을 사랑하셨던 그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저희가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모리아'라는 지명의 뜻을 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택하신'이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장 35절에서 이제 주님을 그 백성들이 조롱하면서 했던 말 중에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라고 조롱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조롱이었지만 확실히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셨던 것을 이 모리아라는 단어를 통해서 볼 수 있었고, 또한 이 산으로 사용된 단어를 보게 될 때 이것은 산으로 사용되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언덕'이라고 또한 사용되는 부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지났던 그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앞에서 번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셨다라는 것을 교제해 주셨는데, 골고다 언덕을 지나시고 이제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주셨던 주님을 또한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여기 이제 '독자'라고 했을 때 이제 형제님들 언급해 주신 대로 이 독자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처음에 그 뒤에 나타난 대로 "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돼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는 다른 아들에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고요. 두 번째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의 관계는 또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다른 아들과 다른 독특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독자라는 의미를 쓸 수 있고요.
우리 주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제 독생자이시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고,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서 특별한 관계 속에 계시는 그런 아드님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이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제 앞에 형제님께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이제 믿음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에 보면 "내가 아이와 함께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과 함께 돌아올 것을 얘기하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다시 살리셔서 둘이 함께 돌아올 것을 이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까 읽었던 히브리서 11장 말씀 다시 한 번 읽고 싶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와 같이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는지를 이제 말씀하고 있는데요.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히 11:18).
그래서 이게 이제 창세기 21장에 기록된 말씀이죠. 첫 번째로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이 먼저 주어집니다. "이미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은 자기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이제 갖고 있는 거죠. 두 번째로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그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막 그냥 눈 감고 이렇게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그 하나님, 정말 죽은 자의 몸에서 아들을 주셨던 그 하나님에 대해서, 그 약속에 대해서 이제 생각을 해본 것이죠. 그리고 17절에 "믿음으로 드렸으니" 그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고, 그 말씀을 생각해 보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22장에 이제 드러나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저희들이 이제 보면 아브라함이하나님께서 정말 어마어마한 명령을 하셨는데 참 이런 명령을 잘 순종했다라고 이제 저희들이 생각을 하는데요. 실제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활이라고 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이 창세기 22장 2절에 이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지금 이제 믿는 거고요. 두 번째로는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할 것을 말씀하시거든요. 주님을 3년 반이나 쫓아다녔던 제자들조차도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제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이 부르신 것에 대해서 이제 저희들이 한 구절 또 말씀을 한 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 27절 말씀인데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아브라함에게 했던 부르심은 저희들에게 했던 부르심과 저는 동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 그리고 네 자신마저도 부인하지 않으면 나를 쫓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했던 부르심과 그의 믿음은 굉장히 놀랍고 특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저희에게도 동일하게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이제 믿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다음 부분 저희들 함께 진행하겠습니다. 그다음은 이제 7절부터 이제 10절까지 말씀을 저희들이 함께 교제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제 이삭이 제단으로 가는 중에 이제 질문하는 내용이 있고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대답을 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9절, 10절에서는 이제 실제로 아브라함이 믿음을 발휘해서 이제 자신의 독자 이삭을 이제 희생하는 이런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7절부터 10절까지 말씀 중에서 또한 형제님들 가운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동희 형제님 : 이 그림에서 질문과 대답 부분을 제외하고, 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된 부분을 묵상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6절에서 "번제할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라고 한 부분은 예수님께 우리 주님께 십자가가 지어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 십자가가 예수님께 지워진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고요. 불과 칼을 아버지가 들고 있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심판과 그 말씀이 아버지께 있다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행하는 것에서는 십자가의 사역이 이 아버지와 아들의 동행으로 완성이 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이제 이삭이 아버지를 부를 때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아버지께 기도하는, 아버지를 부르는 그 모습을 우리가 기억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 이제 이삭이 아브라함에 의해서 결박을 당하는데, 그것은 역시 예수님께서 결박당하는 모습, 마태복음 27장 2절과 에베소서 5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 결박당한 모습을 우리가 다시 기억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제물을 그 위에 놓는 모든 것을 스스로 행하는데 이것을 아버지가 행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 사역을 준비하시고,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실 때까지 필요한 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께서 준비하셨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기억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창세기 22장은 하나님이 주 목적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지만,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지금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있다라고 이렇게 생각이 들어옵니다. 지금도 말씀해 주셨지만은 이제 이삭이 나무를 지고 사흘 길을 가는 그 모습, 그 모습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그런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고, 또한 결박을 당하면서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 이삭의 모습은 겸손히 아버지의 뜻을 순종해서 기꺼이 인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연상할 수 있고요.
또한 이 말씀이 부활에 대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바로 주님이 우리 인생들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지만 분명하게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그와같은 그 사실을 하나의 그림으로서 좀 가장 좀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다라고 이렇게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뿐이 아니죠. 이제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해서 숫양을 준비합니다. 이 수양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야말로 창세 전부터 우리를 짓기도 전부터 우리가 범죄할 것을 아시고 예비하신 어린이 양 대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창세기 22장 말씀은 참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이제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씀하셨는데, 이후에 이제 구체적인 측면에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고 하는 사실을 이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 이 같이 22장에서 나타내서 어떻게 우리 주님이 이 땅에 겸손하게 오시고, 또한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또한 부활할 것인가라고 하는 이는 그 선명한 그림자를 우리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라고 이렇게 분별합니다. 이상입니다.
- 박희준 형제님 : 저희가 이 장을 읽게 될 때 그 이삭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사이에 있는 그 사랑과 이제 신뢰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삭이 아버지에게 얘기할 때 "내 아버지여"라고 물어보고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합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불렀을 때 아브라함이 대답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얘기했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은 아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답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런 장면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되는 예수 그리스도 간에 있던 그 신뢰 관계, 그 둘을 사이에 향한 존중과 무한한 그런 신뢰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볼 수가 있고, 그 아들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아브라함은 직접 너다, 라고 얘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말은 실제로 아브라함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예언의 말씀이 되고, 이러한 것을 들었을 때 이삭이 의구심을 갖지 않고 "함께 나아가서"라고 8절 마지막에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 아들은 어디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끝까지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지시한 곳에 이르러 이제 단을 쌓고 이제 아들을 결박했을 때 이제 이삭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어린 양이 나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이지만 마치 저희가 이사야서 53장에 본 것과 같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이삭은 저항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버지가 그것을 하는 대로 맡기고 순종하는 모습을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러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을 통해서 이제 먼 훗날 이루어질 그 십자가의 사역이 있기까지 두 분 가운데 많은 대화가 있었을 것이고, 준비가 있었고, 이제 물론 마음 가운데 번민이 있으셨겠지만, 그 두 분이 함께 나아가서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신 부분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여기 창세기 22장을 보시면 이제 계속 '아들'이라고 하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이게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굉장히 선명하게, 분명하게 계속 나타내주고 있는데요.
특별히 여기에서 형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그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신뢰하고, 이제 순종하는 것들이 굉장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5절에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6절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8절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에,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하나 되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저희들이 창세기 18장에서 저희들 이제 교제한 대로 하나님을 접대하는 데 있어서 그 가족이 연합되어서 이제 하나님을 접대했던 것들을 저희가 살펴봤다면, 창세기 22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연합해서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저희들도 저희들의 가정이 참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이제 사랑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7절에서 이제 질문을 했을 때, 8절에서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말은 이제 저는 13절에서 이루어졌다고 저는 생각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어린 양'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기는 이제 '수양'이 걸린 거거든요. 그래서 이 말은 아브라함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서 이제 이삭에게 대답을 해 준 것입니다. 이삭은 이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그 어린 양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삭은 아버지를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자신을 이제 기꺼이 드리는 장면을 보게 되고요.
여기 보면 이제 9절에 "단을 쌓고"라고 이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단을 쌓았던 네 번째 단이고요. 이제 마지막 단입니다. 아브라함이 저희가 아는 대로 이제 단을 쌓으면서 살았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이제 창세기 12장부터 이제 네 족장에 대해서 계속 언급이 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족장의 특징들이 또한 아브라함은 단을 쌓는 사람입니다. 4개의 단이 기록돼 있습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4개의 단이 기록돼 있고요. 그 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삭은 4개의 우물을 팝니다. 이 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을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4개의 돌 기둥을 세웁니다. 이것은 '간증'을 나타내는 것이고요. 요셉은 네게 옷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고난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성도의 합당한 모습들, 이런 것들을 이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여기서 이제 그 단에서 이삭 자기의 아들을 이제 받치는 모습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창세기 22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이제 저희가 8절에서 방금 읽었고요. 나중에 14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선지자로서 그 땅의 이름을 또 이렇게 부르는 장면이 또한 이제 기록돼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혹시 이 7절부터 10절까지 말씀에 대해서 특별히 여기 앞에 계신 젊은 형제님들께서 간단하게 또 코멘트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저는 9절에 이삭을 결박한 거를 잠시 살펴보고 하는데요. 이제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했을 때 저항하지 않았던 모습을 나와 있고 그대로 이제 순종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도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이 나와 있는데요. 4절에 보면 이제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봤다고 이제 나와 있습니다. 3일 동안의 여행 기간이 있었었고 이제 자신이 바라본 그곳은 이제 자신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되는 곳이었습니다. 저희가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끝까지 이제 잘 지키는 것은 또한 이제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이 여행이 이제 3일 동안 걸렸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다시 그 아들을 드리지 않으려는 생각이나, 또 이제 순종하지 않겠다는 이제 그런 많은 유혹이나 그런 생각들이 많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이제 3일간의 여행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또한 자신을 인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순종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9절에서도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해서 그 아들을 결박하고 단 위에 이제 놓게 되고, 자신이 바라봤던 그곳에서 그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었고요. 10절에서도 보면 아브라함은 그 뜻을 또한 굽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던 그 말씀을 그대로 이행하는 모습을 또한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방지성 형제님 : 4절에서 잠깐 이제 "멀리 바라본지라"라는 것을 통해서 그냥 멀리 바라봤다라고 이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먼 미래에 오셔서 죽으실 주님을 여기서 이렇게 암시하고 있지 않나 이제 생각이 되어졌고요. 3일이라는 이 숫자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또한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이제 번제로 드리게 하실 수 있지만 온전히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시고 이제 멈추신 것을 보게 될 때 이제 하나님께서 번제나 다른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또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예, 감사합니다. 그다음 이제 단락으로 넘어가서 저희가 이제 11절부터 이제 14절까지 말씀 생각을 해볼 텐데요.
14절에서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순종을 이제 인정을 하십니다. 그리고 13절, 14절에서는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수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이제 '여호와 이레'라고 이제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고 이제 예언하는 장면이 이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으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이제 공급하시는 분인 것을 저희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그래서 11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형제님들 또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박희준 형제님 : 저는 이제 개인적으로 11절 말씀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이제 아브라함을 두 번 부릅니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22장 초반에 나왔던 장면에서도 '아브라함아'라고 한 번 부르는데, 여기서 이제 두 번 부르는 통해서 이 상황이 굉장히 긴박했으며, 진짜로 그 아들을 이제 잡으려고 하는 상황이었던 것을 저희가 알 수 있는데, 이때 아브라함이 대답 여기 보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22장 초반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기 전에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지만 지금 사실 굉장히 마음속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거든요. 내가 과연 이것을 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불렀을 때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나는 되어 있고 항상 주님께 응답할 것입니다라는 것을 이 대답을 통해서 이제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러한 주님의 시험이 우리 앞에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한번 생각을 해보면, 이제 어쩔 때는 저희가 굉장히 금욕적인 태도로 일관할 때가 있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아서 겉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속으로 울분을 삭히고 이제 감사를 드리지 않는, 그래서 주님께서 결코 기뻐 받으실 수 없는 그런 상태일 때가 있고, 어떨 때는 이제 뭐 고양이나 신경질적인 걸 통해서 감정을 분출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제 좌절감 속에서 이제 자포자기 상태 속에서 이제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순복하는 마음에 어떻게 나와야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제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삶에 찾아오는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고, 이제 우리가 그분의 계획에 모든 과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굴복하고 이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을 내가 배우고 계속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이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께서 아브라함께 이것을 허락하신 것은 이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이런 것을 통해서 그분의 놀라운 계획이 항상 있음을 기억을 하고, 우리가 이제 겪는 어려움들을 우리를 패배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이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정확히 변하는 과정 중에 있고,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또 목적 중에 하나임을 생각을 해보게 될 때, 이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또 보였던, 이렇게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저에게 제시한 것 같아서 저희는 그것을 사모함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동희 형제님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제 막으셔서 이삭이 결과적으로는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말씀을 읽어보았듯이 사실은 이삭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 이삭의 죽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드러나게 되었다고 로마서 5장 8절과 또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에 대한, 자기가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온전히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의 경외함이 드러나고, 이것은 우리에게 마태복음 10장에서 우선순위, 너의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라고 주님께서 물으시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에 합당한 삶을 가르쳐 주셨을 때, 저희가 주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고 그 자기를 부인해야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자기를 부인하고 또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그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것을 아브라함이 이 그림으로 보여주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여기 보면 이제 아까 앞에서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렇게 두 번 이제 부르시는 장면이 있는데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대해서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경우가 7번이 기록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째고요. 그다음에 야곱, 야곱에 대해서 이제 두 번째로 부르시고요. 이제 모세에 대해서도 "모세야 모세야", 그리고 사무엘에 대해서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마르다야 마르다야", 그리고 이제 "시몬아 시몬아",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다메섹에서 사울을 부르신 장면이 있고요. 저는 이거 생각할 때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셨던 것으로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이제 12절과 16절에 보면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이 말씀이 이제 두 번 이제 강조해서 이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했는지를 저희들이 알 수가 있는데요. 저희가 아까 방금 형제님 언급해 주신 대로 로마서 8장 32절 말씀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이" 기록돼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이 이제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요.
여기에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과 관련해서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5절에 "경배하고"라고 하는 단어가 있고요. 이제 12절에 "내가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이제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거 관련해서 우리 창세기 18장에서 약간 언급이 안 됐던 내용을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 18:2).
"몸을 땅에 굽혀" 이제 이 단어가 '예배하다'라는 단어, 여기 '경배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고요. 이것이 이제 18장 2절이 예배에 관한 첫 번째 언급입니다. 여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그 주님께 대해서 뭔가 예물을 드린다든지, 이런 게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은 이제 뭔가를 이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예배의 본질임을 18장 2절 말씀에서 저희들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희들이 이제 예배를 드리거든요. 이 예배를 드릴 때 만일 저희들이 주님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분의 영광에 대해서 저희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드릴 때 그 그분의 영광 앞에 합당하게 저희들이 그것을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이걸 통해서 배우게 되고요. 여기서도 보면 아브라함이 똑같이 합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의 영광 앞에 자기 아들을 드리는, 그래서 정말 참된 예배를 드리는 그런 모습을 저희들이 이제 발견할 수 있겠고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8절하고 이제 14절에서 아브라함의 선지자로서의 이제 또 모습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8절에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 어린 양,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준비한다고 돼 있고요. 13절에 있는 수양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모습을 이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첫 번째로 주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번제를 들리신 분이고,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신 분입니다. 저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을 이제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저희들이 또 생각을 해볼 수 있겠고요.
두 번째로 8절에서 어린 양은 '순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수풀에 걸린 수양은, 이제 '수양'은 '힘과 능력'이죠. 그리고 그 뿔은 '권세와 권위'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이 있으신 분이지만, 권세가 있으신 분이지만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들을 대신해서 자신을 번제로 드신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또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참으로 아브라함은 주님의 때 그 볼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그 선지자인 것을 이제 여기서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절에서 19절로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이제 15절에서는 이 예배드린 자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그에게 축복을 또 확증해 주시는 장면이 기록돼 있는데요.
15절부터 19절 말씀 또 형제님들 가운데 또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전 잠시 12절에 이제 '경외'라는 말씀만 잠깐 짧게 교제하고 뒤를 교제하고자 합니다. 다 아신 것 같이 이제 경외는 이제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이제 바라보는 것이고요. 또한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 그대로 이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잘 아는 말씀 잠언 1장 7절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저희가 히브리서 11장 8절 계속 봤던 것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 순종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길로 믿음으로 이제 말씀을 쫓아서 순종해서 나아간 것을 보고 있고요. 신약에서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서 마태복음 15장 8, 9절 기록돼 있는데 제가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8-9).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서도 이제 반대되는 말씀이 모습이 이제 나와서 말씀드렸고요.
이제 16절에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맹세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굳게 하시는 거를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이제 아브라함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거는 자신의 맹세의 근거가 될 만한 더 높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다시 한 번 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께서 이제 말씀하고 계신 여러 언약들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미래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나라를 이제 복을 주실 것이 분명하시고요. 이제 그리스도께서 나실 때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제 택하신 의도대로 다른 나라들에게 복을 주는 통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 내용에 보면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시험을 받았고 그 믿음이 어떻게 순전하게 드러나는지 말을 해 주고 있고요. 그 순종하는 종이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믿음으로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결국은 하나님께 공급받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이제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22장에서는 이제 시험과 순종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이제 말씀해 주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17절 이후에도 보면 이제 17절,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실 때 이제 '씨'라고 말씀을 세 번 언급하고 계십니다. 이제 현재 아브라함의 씨는 한 사람 이삭밖에 없지만, 이제 그 씨가 번성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줄 예정인데요. 하나님께서 그 씨를 복수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단수로 이제 그 단어를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씨는 장차 세상에 오실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이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은 이제 앞선 장들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제 많은 후손들을 약속하실 때 했던 말씀과 이제 동일한 말씀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창세기 15장 5절에서도 "그의 자손은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비슷하게 볼 수 있지만 이어서 다시 한 번 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더욱더 더 구체적으로 좀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하늘의 별을 저희 눈으로, 육안으로 다 얼마의 수가 있는지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려운데요. 그 숫자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과학자들이 바닷가에는 모래를 계산하는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제 모래를 계산할 때 그 개수가 10의 25승이라고 합니다. 이게 1 다음에 영이 25개 있는 큰 숫자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그 숫자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대략적으로만 이제 알 수 있도록 이제 말씀해 주신 것으로 이제 보여집니다. 이상입니다.
- 박희준 형제님 : 저는 이제 아브라함이 이러한 축복을 받은 다음에 19절과 같이 한 말씀을 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창 22:19).
그래서 이러한 고난이 있었고 이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너에게 큰 복을 주고 너의 씨가 이렇게 되리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 가운데 교만함이 있을 수도 있고, 난 이제 다른 삶을 살아야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 사람들과 같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왔고 그들과 함께 브엘세바에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계속 거하였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삶도 이제 이러한 어떠한 것들을 통과한 다음에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이제 출렁임이 있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러한 삶을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아브라함이 이제 이삭을 드린 이후에 이제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것이 "네가 네 아들 독자 이삭이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에 대해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희생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십니다. 두 번째로 그것에 대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그 이삭을 대신해서 뿔이 수풀에 걸린 수양을 공급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 예배하는 자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세 번째로 지금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재확인해 주시고, 확증해 주시고, 확장해 주십니다. 저희들이 더욱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특권을 누리게 되는데요.
여기 '씨'에 대해서 이제 어제도 잠깐 나왔고 오늘도 지금 여러 형제님들이 교재를 해 주셨습니다만 이제 씨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항상 이제 그리스도라고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예를 들어서 여기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들과 같게 한다."라고 돼 있을 때 이것을 주님으로만 해석을 해버리면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아브라함의 씨, 이제 이것을 이제 신약 성경과 같이 이렇게 비교해서 설명을 했을 때, 이제 이것이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아브라함의 혈육적인 후손들입니다. 즉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 이제 아브라함의 씨로서 언급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신약의 성도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신약 시대 때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들, 씨가 되고요.
세 번째로 이제 그리스도라고 이제 저희들이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늘의 별'과 같다는 것은 이 영적인 후손들, 이제 이제 특별히 신약 시대 때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바닷가의 모래는 이 육진적인 후손들, 이스라엘 그들이 나중에 얻을 축복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라고 했을 때는 이제 그리스도를 저희들이 말씀하신다고 저희들이 적용해 볼 수 있겠고요. 특별히 여기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라고 한 것을 통해서 그들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벗어날 때도, 그들이 애굽을 이기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가나안을 승리해서 정복할 뿐만 아니라, 후에 가나안 땅을 실제로 그들이 정복하여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김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씨 안에서 저희들이 이제 이김을 얻는 거고요. 저희들도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이기는 자임을 저희들이 이제 교훈을 받게 됩니다.
1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왔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삭이 언급돼 있지 않죠. 성령님께서 일부러 이제 이삭을 빼고 이제 아브라함만 마치 돌아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아브라함과 이제 이삭이 같이 돌아왔는데요. 이삭은 이제 그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으로 해서 언급이 딱 끝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제 24장에서 신부인 리브가를 만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경륜적으로, 그림자적으로 저희들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이제 교회와 연합되는 그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도 저희들에게 그림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마지막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요. 이제 20절부터 24절까지 간단한 이제 족보가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 보면 아브라함의 동생 이제 나홀의 족보가 기록돼 있는데요. 여기 보면 이제 굉장히 특이하게도 열두 아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본처와 첩을 통한 아들이 기록돼 있고요. 이제 야곱이 낳았던 아들의 수와 이제 이 동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특별히 이 족보가 기록된 의도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형제님들 가운데 짧게 코멘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이제 창세기 22장에서 교제하지 못했던 내용도 짧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짧게 코멘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박희준 형제님 : 여기서 이제 밀가와 동생 나홀 얘기가 나온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도 생각하고 계시지만 이방인들도 생각하고 계신다는 뜻을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고 이제 리브가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은, 이제 이삭이 나오고 리브가가 나중에 이제 결혼을 하고, 여기서 이삭은 전반적으로 우리 주님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 아내 될 교회에 대해서 리브가를 미리 표를 보여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19절까지 보면 이제 이삭의 죽음과 부활이 이제 나타나 있다면, 여기 족보를 통해서는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특별히 그 딸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삭의 신부를 예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저희가 아는 대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교회가 예비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제 보게 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게 이제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이 언급돼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 번째 나타나는 곳이 창세기 이제 24장이고요. 거기서 이삭이 리브가를 24장 마지막 절,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신랑의 신부를 향한 사랑이 두 번째 사랑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저희들이 또한 사랑에 관한 또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정확히 30분인데요. 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이제 오늘 이 시간에 교제하지 못한 내용들은 쉬는 시간에 또 저희들이 함께 모여서 여러 가지 관련된 교훈들을 추가적으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함께 기도드리고 집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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