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의 세번의 잘못 > 한봉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나님 말씀 세 군데를 먼저 찾아 읽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창 12:10-16).
두 번째 말씀으로 가겠습니다. 창세기 16장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창 16:1-3).
그다음에 세 번째 말씀으로 가겠습니다. 창세기 20장입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 20:1-3).
저희들이 아브라함 생애를 이렇게 살펴보면 아주 중대하게, 중대하게 잘못한 경우가 세 번 나옵니다.
하나는 창세기 12장에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있으면 그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 아닌 애굽 땅으로 가면 자기가 자기 보호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라고 하는 거짓말을 합니다. 이게 이제 첫 번째 아브라함의 잘못이고요.
두 번째 잘못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했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이제 사라가 제안을 합니다. 아마 그 당시 관습상 종을 취해서 아들을 낳으면 그 여주인의 아들로 볼 수 있었던 그런 문화적 관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희들이 인정할 건 아니니까요. 이제 그런 당시 시대적인 관습을 따라 사라가 제안합니다.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낳읍시다,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입니다. 이건 굉장히 큰 재앙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게 이스마엘이고 이게 전부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지금도 중동 땅에서 아랍 민족들과 지금까지 전쟁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아브라함이 잘못한 두 번째 선택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이제 첫 번째 것하고 유사합니다. 또 기근이 들어서 이제 이번에는 애굽이 아니고 블레셋 땅으로 갑니다. 애굽은 이제 그 당시 이제 '바로'라고 하는 왕이 있었죠. 이제 블레셋 지역에서는 '아비멜렉'이 이게 사람 이름이 아니고 우리로 치면 대통령이라고 하는 뜻을 가진 지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블레셋 왕입니다. 거기를 갑니다. 그리고 또 이제 누이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랬더니 아비멜렉이 사라가 이제 예쁘니까 또 취합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아내다. 너 손 대면 너 죽는다. 이렇게 하셔가지고 해결이 됩니다. 이게 이제 애굽에서 한 번 거짓말 해서 문제가 생겼잖아요, 하면 안 되죠. 두 번째 반복합니다.
이 세 개가 아브라함의 생애 중에 이제 크게 잘못한 세 가지 중대한 사건이고, 아브라함이 잘못하면 어떻게 하죠? 하나님이 해결합니다. 아브라함은 잘못해놓고 자기가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책임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해결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에게 나타나고, 아비멜렉에게 나타나고, 그다음에 이제 하갈과의 사이에 이스마엘 나오죠. 이거 뭐 결국 쫓아냅니다. 결국 마음 아프게 이스마엘 쫓아냅니다. 이스마엘이 나중에 이삭 희롱하고 이래서, 어차피 이게 어려워집니다.
이제 세 가지 사건을, 세 가지 잘못을 하고 하나님이 세 번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다음에 신약 성경에서 세 번 이 사건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그래서 영적인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저희들이 이제 신약으로 와서 적용하려고 하는데요.
우선 애굽의 기근 문제입니다. 여러 성경 구절은 제가 가능하면 잘 안 찾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근이 왔어요. 기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제 저희들로 이해하면 이제 가뭄입니다. 비가 안 오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돼 있죠.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니까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이 있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물이 풍부한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합니다. 가나안 땅의 특징이 뭐죠?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되는, 강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되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비를 안 내리셨죠? 비가 없으면, 이제 물이 없으면 아브라함의 직업은 뭐냐 그러면 목축업입니다. 짐승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사람도 문제지만 그가 가축을 키우니까, 이제 문제가 되죠. 그래서 이제 기근의 문제는 돈의 문제입니다. 물질의 문제입니다.
우리로 치면 직업, 직업이 가축이죠. 직업을 잃거나, 직업을 통해서 물질이 들어오지 않거나 하는 이 시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 생각에는 이렇게 생각했겠죠. '설마 하나님이 나더러 바보같이 계속 여기 있어 가지고, 가축들 다 죽이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물 많은 곳으로 가서 일단 이 기근을 피하고, 내가 거기 가서 살겠다는 게 아니고 '우거'하려 하여 합니다. 잠시 있다가 기근이 해결되면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오겠다라고 내려갑니다. 하여간 핵심적인 것은 물질입니다. 이 가축이 전부 재산인 거죠. 그런데 가려고 보니까 사라 때문에 자기가 죽게 생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험은 이제 어떤 시험이냐면 물질을 택할 것이냐, 생명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돈하고, 구원하고, 저희는 이제 구원받은 성도니까 물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하고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시험인 것입니다.
잠깐 더 이제 이야기를 확대해 보면요. 이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서, 이제 이제 바로와 이렇게 되고, 그래서 이제 다시 올라오죠. 다시 올라오면서 이제 누가 문제가 되냐면 롯이 문제가 됩니다. 조카 롯이, 이제 올라와서 이제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가축도 많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다투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헤어집니다. 헤어지자, 아브라함이 작은 아버지지만 양보합니다. "네가 먼저 선택하면 내가 다른 쪽을 선택하겠다." 한 거죠. 그래서 이제 롯이 선택합니다. 어디를 선택하죠? 소돔을 선택합니다. 왜죠? 소돔 땅이 롯이 보기에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롯이 보니까 소돔이, 잘못 본 거지만 롯이 죄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하고 그가 자연 환경만, 자기 가축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곳인가, 가축들이 잘 살이 찌고, 또 이제 새끼를 낳고, 그래서 내 재산이 이렇게 우러날 수 있는 좋은 환경인가만 봅니다. 거기에 죄인들이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 죄를 심판하실 것이고, 이건 생각을 안 합니다. 그래서 소돔을 보니까 어떻게 보였냐면 "여호와의 동산 같았고" 에덴 동산 같았다는 겁니다. 에덴 동산, 처음에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던, 물도 풍성하고, 식물들도 잘 자라고, 하는 그런 곳이고, 그다음에 또 하나가 "애굽 땅과 같았더라." 애굽 땅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어려움을 당했지만 빠른 속도로 부를 쌓은 곳입니다. 잠깐 사라 때문에 좀 그렇긴 하지만 바로 왕이 뭐도 주고 그래서 올라오죠. 그래서 빠른 속도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그쪽으로 갑니다. 갔어요, 이제 롯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소돔 땅이 전쟁에 져버립니다. 그래서 롯도 포로가 됩니다. 또 롯에게도 하나님이 묻는 겁니다. 돈을 택할래, 목숨을 택할래? 포로, 이거 잘못하면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고, 평생 종 되는 거죠. 거기 이제 돈 벌러 왔는데, 가축들 잘 키워서 그걸로 부유하게 살려고 그랬는데, 자기가 죽게 생겼습니다. 이 시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롯보다도 아브라함 쪽에서 보자면 어떻게 해요? 구해아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구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를 치고, 그리고 소돔 포로들을 이렇게 다 구출해 내서 옵니다. 그랬을 때 또 한 번 질문합니다. 소돔 왕이 옵니다. 자기는 전쟁에 졌는데, 아브라함이 자기가 전쟁에서 뺏긴 모든 사람들, 그리고 소돔 땅의 재산들을 아브라함이 다 찾아왔습니다. 소돔 왕이 이렇게 제안합니다. "사람은 저한테 주십시오. 소돔 사람들 우리 백성이니까 주시고 거기 있는 물질들은 당신이 가져가십시오." 제안합니다. 사람하고, 물질하고, 뭐가 중요합니까? 여기서 이제 하나 배워야 합니다. 뭘 배워야 되냐면, 롯은 거기 가서 이제 가축을 키우고, 이렇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 거기 갔죠. 그것을 싹 뺏깁니다. 하나도 자기 거 없습니다. 나중에 이제 소돔 심판받을 때도 저는 빈손으로 나와야 합니다. 빈손으로 나오는 순간에 어떻게 술을 또 가지고 나왔어요. 그런데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소돔이 소유한 모든 물질이 아브라함 것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자기 재산 정도가 아니고, 소돔이라고 하는 국가의 모든 재산을 아브라함이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한 국가의, 물론 이제 소돔 국가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한 국가가 가진 모든 경제력을 아브라함이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하고 그다음에 사람 하고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영혼이 중요합니까? 물질이 중요합니까? 거기서 아브라함이 그래요. 소돔 사람들은 당신들 백성이니까 가고, 그 물질들은 내가 차지할 자격이 있으니까 가져올 수 있죠. 오죽하면 거기서 제안을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안한 게 아니고, 그냥 아무말 안하고 예스라고 하는 단어 한 번만 하면 됩니다. 소돔 국고가 자기 것입니다. 그때 멜기새댁이 말하죠. 그래서 선택 안 합니다. 나는 한 푼도 물질을 가져가지 않겠다. 나와 동행한 사람들의 몫만 준다. 나는 취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선택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물질이냐, 영혼이냐? 물질이냐, 사람이냐라고 하는 선택에서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다음에 하나 더 보겠습니다. 창세기 15장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이제 소돔에서 포로들을 다 구출한 다음에 아마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이런 걱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걱정입니다. 소돔이 반격하지 않을까, 이 사람들이 승전고를 울리고 밤중에 이렇게 잔치할 때 기습 공격을 했거든요. 그리고 승리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가나안 쪽 신흥 국가하고 메소포타미아 쪽 전통적인 국가하고 싸운 거거든요. 우리로 치면 세계 대전입니다. 이쪽 나라 4개, 이쪽 나라 5개, 이렇게 연합해서 전쟁한 거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하고,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수해 오지 않을까라고 하는 두려움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방패다 그들이 너를 치려면 나를 넘어가야 된다. 내가 방패다." 이렇게 하시죠. 그래서 이제 계속해서 이 기근 문제는 생명이냐, 물질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부분을 창세기 15장 18절 하나만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애굽강이니까, 나일강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 가운데 있는 땅은 다 네 거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역사상 이스라엘은 이 같은 넓은 땅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천년 왕국에서 또 일어나겠죠. 이렇게 하나님이 생명을 택한 자에게, 물질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게 기근과 관련된 성경의 이야기고, 여기서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선택해야 합니다. 항상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이 중요하고, 영혼이 중요하고, 영적인 것이 중요하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족하다. 하나님은 소돔 전체의 국고를 주시는 게 아니고,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를 다 주신다. 이게 기근과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걸 저희들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삶의 원칙입니다. 어떤 경우도 영혼을 선택한다. 사람을 선택한다. 물질을 택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믿음이 저희들의 삶의 원리로 잡아야 된다. 이게 아브라함의 첫 번째 실수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입니다.
그럼 두 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거 되게 싫어하셨죠. 얼마나 싫어하셨냐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때부터, 그다음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러니까 16장 맨 마지막 줄을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창 16:16).
이렇게 돼 있죠, 86세입니다. 그다음에 17장, "아브라함의 구십 구세 때에" 16장 86세, 17장 99세, 13년간, 이 성경으로는 한 절인데 시간은 13년이 흐릅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13년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야 되는 게 그의 생애의 특징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지 않을 때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자기 삶의 가장 필요 조건인 말씀을 13년인가를 안 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이걸 이제 어떻게 해결하냐면 '할례'라고 하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할례,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거죠. 아브라함의 능력으로 자식을 낳으면 안 됩니다. 이스마엘이죠. 아브라함 자식입니다. 이삭은요?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주신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능력으로 준 아들입니다. 너는 이 아들로 살아야 된다. 이게 이제 할례가 의미하는 거죠. 이 할례에 대해서 이제 신약 성경으로 몇 군데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로마서 4장 보시겠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9).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22).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아브라함이 받은 구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이 이제 일치합니다.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생식 능력이 없습니다. 사라도 자식을 낳을수 없습니다. 이제 여자로서 출산할 수 있는 기능을 못 합니다. 그래서 이제 경수가 끊어졌다, 이렇게 된 거죠. 생리가 끝난 겁니다. 이제 난자가 없는 거죠.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태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식 준다. 이걸 믿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거 어떻게 믿어요? 그래서 제가 이 구절을 설명하면, 이거 믿으면 바보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걸 누가 믿어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이 뭐라고 말하냐면, 17절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아도 다시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몸으로 살려낼 것이다를 믿는 거죠. 이게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하고 지금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걸 이제 그걸 믿은 거죠. 그리고 이걸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뭘 믿냐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래서 우리 죄가 사라진 거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그런데 예수님이 죽기만 하면 안 되고 예수님이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복음에 부활이 들어갑니다. 죽음 속에 부활이 다 이제 포함되긴 하지만, 그래서 십자가만 설명하지만 전부 부활이 내포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이 죽기만 하면 안 되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는데 예수님이 살아나지 않으셨다, 그러면 대속의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야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대신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부활해야 되죠. 그래서 이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냐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3일 만에 부활시키 수 있는 분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그래서 내 후손이 하나도 없는데, 나한테는 후사 한 명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수많은 후손을 만들어 버리시는 하나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믿음을 의롭다, 이렇게 믿는 게 의로운 믿음이다. 구원받는 믿음이다, 이렇게 하신 거죠. 우리도 똑같이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제 의롭게 되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되도록,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활시키셨다. 이거 믿는 겁니다. 조금 논리가 약간 그런데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자기 몸을 이렇게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하나님이 하셔야 되죠. 아브라함이 자기 몸을,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낳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자기 몸을 사용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낳지 않고 자기는 불가능한 사람이야,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녀가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아브라함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은 무덤 앞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우리 죄를 지고,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 연랍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살아나야 합니다. 부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덤에 이렇게 있어서 주님이 살아나셔야 되는데, 주님을 우리가 한번 살려볼까요? 우리가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어도 못 살아났는데,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살려내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셨다. 이게 이제 할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할례를 이제 복음과 연관시키면 이제 이렇게 설명이 되는 건데요. 조금 설명이 미진합니다만, 하여간 그다음 넘어가겠습니다.
그다음에 하갈을 취하는 것과 할례가 연관돼 있는데, 이 할례를 하여간 복음에서 이제 할례를 신약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보겠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2-3).
3장 2절과 3절은 두 사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삼가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개입니다. 두 번째, 행악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손할례당입니다. 이 '손'은 사람의 손을 말하는 게 아니고 훼손시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포경 수술을 해서, 살을 잘라서 할례를 받은 사람, 할례당입니다. 할례당인데 이게 영적인 할례당이 아니고 육신적이고 물리적인 할례당을 강조하기 위해서 손할례당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도 할례당이 있다. 그다음에 이 사람들과 대조되는 겁니다. 개하고 대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봉사는 '예배'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개하고, 성령이 대조되고요. 행악하는 자가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다음에 손할례당하고 대조되는 것이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래서 할례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뭐냐? 이걸 좀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 가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30절 보겠습니다. 이제 창세기에서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는데요.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 4: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이게 유명한 말이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이게 저희들이 횃불 주석 영어본 이름입니다. '왓더 바이블 티치스'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은 하갈입니다. 아들은 이스마엘입니다. "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을" 사라의 아들 이삭을, 이게 거듭난 사람이죠.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그래서 이제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은, 손할례당은,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은 반드시 추방해야 합니다.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사람들이 뭐냐,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조금 생략하고 갈라디아서 3장으로 가겠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구원은 성령으로 받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구원받습니다.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래놓고 무덤에서 예수님을 살리려는 사람, 불가능하지만 그리고 이제 구원은 은혜로 받고, 성령 은혜, 믿음, 이거 같이 가는 거죠. 구원은 은혜로 받고 구원받은 후에 성도의 삶은 육체로 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 성도의 삶도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은혜와 믿음이 아니면 살 수 없다, 라고 하는 이 원칙을 무너뜨리는 사람들, 인간의 힘과 재능과 능력이 영적인데 도움이 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추방해야 된다. 이게 이제 신약에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하갈을 취한 것하고 그다음에 신약에 와서 그 교훈에 대해서, 그래서 저희들이 늘 항상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저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해야 되지만, 복음도 전하고, 성도를 세우고, 또 예배도 드리고 할 때, 이거 할 때 사람의 지혜가 아니고,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이 올바른 목표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능력으로 돼야 된다에 대해서 주의하고, 조심하고, 이것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역사하시는 것을 기대하고, 경험하고, 이게 이제 하갈과 관련된 이제 신약적인 교훈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로 가겠습니다. 다시 창세기로 가셔서 아비멜렉 관련된 것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21장, 아비멜렉을 약간 설명을 해야 되니까요.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창 21:22-31).
잠깐 보겠습니다. 이 아비멜렉과 관계는 이제 아브라함이 또 문제가 생겨서, 이 가나안 땅에 있기 좀 어려워서 이 성경에서 자세하게 그 내용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여간 그가 가나안 땅을 떠나서 블레셋 지역으로 와야 합니다. 이때 또 한 번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조치를 취해 줍니다. 그래서 이제 아비멜렉과 관계인데요. 아비멜렉하고 아브라함 사이에서는 서로 이제 브엘세바라고 하는 '맹세의 우물'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쭉 나옵니다. 읽어보시면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두려워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소돔을 이긴 국가를 치고 소돔을 다 구출해 낸 사람입니다. 이걸 아비멜렉이 알고 혹시 아브라함이 또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누구냐 하면 "나와, 나의 아들과, 내 손자"를 공격할까 두려워합니다. 지금은 자기가 국가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래서 자기가 왕이고, 그런데 이제 아마 아비멜렉이 나이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나는 죽고 그다음 내 아들이 왕이 될 텐데, 새로운 왕이, 아직 젊은 왕이 되면 국가가 약간 흔들릴 수 있고, 이런 위기 때, 이게 전환기 때, 왕이 바뀔 때 아브라함이 혹시 자기 아들을 공격하면 어떡하나, 내 아들이 막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된 거예요. 아들까지는 그런다 할지라도 내 손자, 그래서 후대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당신의 후손들하고 우리들 후손하고 싸우지 말자." 그래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장은 후손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은 이제 내일 성경 읽기가 있겠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관점이 읽겠습니다마는 저는 여기서 이렇게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라고 한 것은 21장에서 아비멜락과 아브라함이 후손에 대해서 맹세로 언약을 합니다. 후손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안전하게 죽거나, 기근에 또 들거나, 이렇게 안 하고, 이삭이 그다음 자녀들을 쭉 낳고 그래서 후손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안전하게 생겨나도록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계약을 합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2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 바쳐라, 이게 무슨 의미냐면 후손에 대한 약속은 이삭에게 달린 거냐, 나한테 달린 거냐? 이삭이 안전하면 후손이 나오는 거냐? 이삭을 죽여도 후손은 나오는 거냐, 나 때문에? 라고 하는 테스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나중에 여러 가지로 교제 할 수 있겠고요. 하여간 여기서는 뭘 말하냐면 그래서 서로 맹세를 합니다. 맹세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으로 와보겠습니다. 히브리서 6장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맹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원래 어떠신 분이냐 하면,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이 전능하시지만 이건 말이 좀 이상한데요. 전능하시지만 거짓말은 못 하세요. 그다음에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시면 그건 진리고, 영원하고,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거기다 맹세까지 하셨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거기다 맹세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건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다른 것도 의심할 필요 없지만 이건 정말로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들입니다. 이걸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뭐냐 하는 거죠. 그래서 다시 이제 신약 성경에서 세 군데를 찾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물질이냐, 생명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으로 가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 불의한 청지기인데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 16:9).
여기 다시입니다. 물질과 사람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불의한 재물은 부당하게 얻은 재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재물이 불의한 것입니다. 세상 자체가 불의하니까요. 그래서 이 물질을 가지고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갔을 때, 천국에 들어갔을 때, 내가 내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했는데 그 혜택을 본 사람이 천국에서 나를 영접할 것이다, 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가지고 전도지를 만듭니다. 전도지를 배포합니다. 물질을 어디다 쓰냐? 영혼들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데 써야 합니다. 성도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데 물질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쓰면, 자기는 전도지에서 돌렸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구원받을지 모르죠. 그런데 천국에 가보면 이제 이게 다 밝혀지죠.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비용을 들여 인쇄했던 그 전도지를 내가 보고 구원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할 겁니다. 이렇게 써야 한다. 이게 누가 복음, 물질과 사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 두 번째 넘어가겠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능력은 우리는 불가능한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해야 됩니다. 이건 에베소서 1장으로 하겠습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19-21).
그래서 이제 교회가 어떤 곳이냐 그러면 이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뭐냐?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능력이 지역 모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지역 모임이 복음을 전할 때, 지역 모임에서 교제할 때, 지역 모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이 능력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라의 것, 할례, 이런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모임을 소중히 여기고 모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모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의 근원이 부활의 능력이다라고 하는 것을 목도하고, 경험하고, 찬양하고, 더욱 주님을 의뢰하고,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이 돼야 합니다.
이게 이제 두 번째고 그다음에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맹세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4).
이게 이제 그리스도 심판대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 주시길 원하십니다. 상을 준비해 놓고 계세요. 사도 바울도 자기 인생의 목표가 뭐냐 하면 "상을 얻고"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상을 얻는 것, 그 상이 뭐냐라고 하는 것은 또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마는, 하여간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치사하게 뭐 상 받으려고 하냐? 상 없이도 하는 거지." 그게 아니고 성경은 상을 말합니다.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순종하고 기뻐하는 일을 한 자들을 위하여 준비한 그 상이 있습니다. 이 상을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요? 금, 은, 보석으로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맹세하셨습니다. 반드시 죽겠다. 미래에, 이 확실한 것에 우리의 삶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게 아브라함이 세 가지 실수를 하,고 하나님이 세 번 교정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서 신약적인 영적인 교훈들을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아브라함 생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제 세 가지를 이제 적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질, 물질이 아니고 사람이 중요하다. 물질은 사람을 위해서 쓰는 거다. 영혼을 위해서, 물질을 얻자고 사람을 잃어버리거나 사람을 무시하면서 물질을 쓰는 것은 안 된다.
그다음에 우리가 뭘 하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 내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능력을 힘입을 수 있다. 이걸 힘입는 방법을 잘 습득을 해야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대로 사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래봐야 인간적인 거죠. 그래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게,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다 한들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영광스러운 약속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그 뜻이 아니라 다른 거였는데,"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문자적이 그대로, 불로 시험해서 금, 은, 보석, 남아 있는 것은 주님께서 반드시 상 주실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거 많이 교제한 건데요. 그냥 간단하게 해봅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 것, 금입니다. 이제 은은 하나님의 말씀은 7번 도가니에 연단한 은과 같죠. 말씀대로 산 것, 말씀을 높인 것,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석, 우리의 은사대로 섬긴 것. 은사가 아닌 영역을 놔두고, 괜히 그거 시기하지 않고, 그 은사가 사람 보기에는 높아 보이건, 천해 보이건, 그건 인간적인 관점이고, 하나님이 각 몸에 필요한 대로 주신 은사대로 섬긴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맹세하사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다. 이게 이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한 교훈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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