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이 말하는 아브라함 > 한봉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이 성경 읽기를 창세기 12장, 18장, 22장에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필 건데요. 이제 내일부터 시작인데요. 오늘은 이 신약 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약 성경이 인용하고 있는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누구를 가장 많이 인용하냐 그러면 모세입니다. 이제 어떤 분이 신약 성경에서 구약에 있는 인물들을 쭉 이렇게 찍어 가지고 이제 몇 번이나 언급되는가 보면 이제 모세가 가장 많고요. 그다음에 또 두 번째가 아브라함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제 로마서도 있고, 히브리서도 있고, 갈라디아서도 있고, 요한복음도 있고, 그렇죠. 여러 서신서에서 이제 인용하고 있는데, 이제 저희는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영적인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말씀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끊어가면서 보겠습니다. 네 가지인데요. 아브라함 생애 중에서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습니다. 의롭다함은 창세기 15장이고요. 할례를 받는 것은 창세기 17장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받는 것은 물론 아브라함 생의 후에 입니다. 율법은 이제 모세에 의해서 주어진 거죠. 율법 그래서 이제 그다음에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낳는 것, 이제 네 가지 사건을 들어가지고 이제 로마서 4장 이야기합니다. 하나씩 읽으면서 해보겠습니다. 4장 우선 1절부터 3절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1-3).
우선 이 3절까지 놓고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2절 보시면 '자랑'이라는 단어 단어가 나오는데요. 자랑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그 유대인들의 경우는 이제 민족의 조상이죠. 우리 같으면 단군에 해당하는 이제 그런 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자랑할 것이 있느냐라고 하는 이제 질문이 나오는데 이건 잠깐 앞에를 좀 보겠습니다. 우선 로마서 3장 27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7-31).
우선 3장 말미에 세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걸 이제 4장부터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뭔지 먼저 보겠습니다. 3장 27절은 첫 번째 질문입니다. "행위로냐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냐" 그랬는데요. 27절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그가 선한 행위를 해서 구원받는 거냐? 행위를 해서 구원받는 거냐, 아니면 행위는 없는데 믿음으로 받는 거냐? 행위와 믿음을 대립시켜서 둘 중에 어떤 걸로 구원받느냐? 이게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질문 29절, 만약에 앞에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답이 나온다면, 27절의 답이 그거라면 그다음에 29절입니다. 그러면 이방인도 그렇단 말이냐? 그러면 유대인들이 행위 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맞다면 29절, 그러면 이방인도 똑같이 유대인하고 이방인이 똑같은가, 이방인도 똑같이 행위 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느냐라고 하는 게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다음에 31절, 세 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면 율법이라고 하는 게 구원받는 데 근거가 되지 않는다면 율법은 왜 줬냐? 그럼 율법은 뭐 하는 거냐? 율법은 필요 없는 거냐? 아니면 율법은 그럼 어떤 용도가 있느냐? 하는 게 세 번째 질문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4장에서 대답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질문은 5장부터 8장까지 연속해서 대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일단 흐름이 세 가지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보고요.
그다음에 우선 자랑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저희들이 4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랑할 게 있느냐, '자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자랑이라는 단어는 일단 몇 개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로마서 1장 1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렇게 돼 있죠. 이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하지 않는다, 이 말인데 이거 다시 바꿔보겠습니다. 나는 복음을 자랑한답니다. 이렇게 놓고요, 그다음에 자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단어들을 보겠습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롬 2:17).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나는 하나님 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우리에게만,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 2:23).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는 하나님을 안다 하고 자랑하고, 그다음에 이 율법이 너무 너무 거룩하고 좋고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진리다, 라고 율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3장 27절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그런 즉 자랑할 때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이제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을 자랑하는데 이제 로마서는 말합니다. 자랑할 수 없다. 이게 이제 로마서가 말하고 있는 대답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아브라함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이 이제 믿음은 조상이죠. 아브라함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나오고요. 그다음에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로 이제 하나님의 친구고 이제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죠. 그런데 그 아브라함을 다루면서 뭐라고 말하냐면 자랑할 데가 없다. 사람 앞에서는 자기가 자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브라함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이건 조금 사도 바울의 다른 표현을 좀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한번 보시죠.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갈 6:13-15).
사도 바울은 이제 갈라디아에서 이미 결론을 내린 건데요. 사도 바울은 주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다시 로마서로 오겠습니다. 이제 신약 성경이 아브라함을 다루면서 첫 번째로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제 말하고 있는 것은 뭐냐하면 아브라함이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사람이지만, 굉장히 칭송받고 높임을 받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게 아브라함을 인용하고 있는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보겠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3).
지금 로마서 4장이 다루고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그 사람의 행위로 가는 것이냐, 아니면 믿음으로 가는 것이냐라고 하는 중요한 교리를 다룹니다. 천국에 어떻게 가느냐? 천국 가는 방법이 뭐냐라고 하는 중대한 교리를 지금 사도 바울은 다루고 있습니다. 이게 잘못되면 다 지옥 갑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교리를 다룰 때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는지 보자. 그래서 창세기 15장 6절로 가는 겁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보면 이렇게 써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여기시고" 이 구절을 든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지가 나와 있다.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 믿음으로 간다. 아브라함이 믿었더니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하신 거죠. 그에게서 죄를 찾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완벽하게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인이다, 이렇게 하신 거죠. 그러니까 의인이니까 그런 천국에 가 있는 거죠. 그래서 첫 번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천국에 가는 원칙이 믿음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그래서 이제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다. 이거 첫 번째,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 가겠습니다.
10절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아까 3장에서 첫 번째 첫 번째 질문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느냐,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이 대답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대답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보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 대답을 그렇게 한 거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질문은 3장 29절에서, 그런데 그건 유대인들은 뭐 그렇게 한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방인도 그러면 똑같이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라고 하는 건데요. 이 질문은 저희들이 사도행전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데요.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제 1차 전도행을 하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그래서 이제 구원받은 이방인들로 교회를 세웠죠. 그랬더니 예루살렘 교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내려와서 안 된다. 이방인들은 구원받기 전에 할례부터 받아야 된다. 이렇게 가르쳐서 이제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제 안디옥 교회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논란이 붙고 저희도 이걸 다룬 거죠. 그래서 이제 이 부분은 이방인도 똑같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롬 4:10).
그러면 이제 똑같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을 때, 이때 아브라함이 할례 받았냐? 할례 안 받은 거냐라고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첫 번째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롭게 여기시고" 라고 하는 게 첫 번째 말씀이 중요하답니다. 두 번째는 순서가 중요하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때하고,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때하고, 이 순서도 순서도 하나님이 영감하신 것이다. 순서에도 의미가 있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이제 그러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창세기 15장, 할례를 받은 것은 창세기 17장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할례받기 전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아서 의롭다고 얻는 게 아닌 거죠. 그래서 이제 그겁니다.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할례 받지 않고도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이거죠. 그러면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않은 상태, 않은 상태가 이방인 상태죠. 이방인일 때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거니까 어떤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처럼 할례받지 않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이게 이제 사도 바울이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지금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입니다. 11절 보시겠습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의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할례는 뭐냐, 아브라함이 아직 이방인일 때,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게 할례다, 이겁니다. 할례는 뭐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 이걸 할례가 말한다는 거죠. 그다음에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할례받은 것은 이런 뜻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너희들도 할례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너희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지금 사도 바울의 논리죠. 그다음에 12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이 된 거죠.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롬 4:12).
그러면 이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할례받은 후에 생긴 후손들이잖아요. 이 후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니까, 이들도 아브라함처럼 할례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을 확정 짓는 거죠. 이제 두 번째, 이방인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유대인하고 똑같다라고 하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잠깐 할례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우선 다시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행위로 구원받냐, 믿음으로 구원받냐라고 하는 이 중대한 문제, 구원의 원칙, 이 구원을 잘 설명하지 않으면, 이 구원의 원리가 혼동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가 아니고 보통 이런 경우도 있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게 아니고 믿음 플러스 선행으로 구원받는다, 이게 이제 카톨릭에서 하는 거죠. 믿음과 선행을 합쳐서 구원받는다. 믿을 뿐만 아니라 선한 일도 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 이제 구원의 원칙이 달라집니다. 이건 굉장히 큰일이 나는 거죠. 그래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이 원리를 어디서 찾아내냐? 구약 성경에서 찾아냅니다.
그래서 이제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갖는 것은 우리는 항상 말씀에 근거해서 확신해야 된답니다. 이거 여러 번 나온 거지만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 베드로전서 1장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중요성을 성경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두 번 태어났다는, 거듭은 두 번이라는 뜻입니다. 위에서라는 뜻도 있고, 두 번이라는 뜻도 있는데요. 우리가 두 번 태어납니다. 하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것이, 구원받은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느냐?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느냐?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중요하고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살아 있을 때, 똑같이 성경을 읽고 성경을 들었는데 어느 날 이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르고, 이 말씀이 나를 비춰주고, 이 말씀이 나에게 기쁨을 주고, 이 말씀이 나에게 확신을 주고, 이 말씀이 살아 있어야 돼요. 그리고 이 말씀은 구원받을 때만 그런 게 아니고 그 후로도, 구원받고 그다음 날 일어나도, 죄를 짓고 나서도, 죄 지으면 안 되지만 죄를 짓고 나서도, 여전히 그 말씀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구원받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말씀이 중요하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입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말씀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후에 계속 말씀을 젖처럼 먹어야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는 것입니다. 성장해야 됩니다. 이 구절 이야기할 때마다 제가 드는 건데요. 어떤 아이가 태어났어요. 너무 기쁘죠. 너무 사랑스럽죠. 그런데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뻤는데 성장하지 않는 거예요. 돌이 됐는데도 못 걷고, 두 돌이 됐는데도 말을 못하고, 이러면 기쁨은 어디 가고 이제 막 걱정이 되는 거죠. 자라야 되는 거죠. 이제 자라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났고 그다음에 말씀을 좋아해요. 말씀을 읽으려고 해요. 말씀을 계속 읽어요. 말씀을 계속 읽으면서 계속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말씀이 해내는 겁니다. 구원받게 한다, 자라게 한다, 그가 점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알고, 예배는 무엇이고, 이런 것들을 알아가는 거죠.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5절 보시겠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이제 운동 경기가 있죠. 운동 경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파울이고,
업사이드가 되면 골집어넣어서도 인정 안 됩니다. 축구에서 그렇죠. 이 법이 있습니다. 경기에는 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운동 선수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을 때 출발선에서 이제 결승전을 목표 지점을 향하여 이렇게 마라톤 이렇게 출발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라톤 할 때 이제 규칙이 있는 거죠. 이 규칙을 잘 따라가야 골인 지점에 이르면 드디어 상을 받는 거죠. 1등상, 2등상, 이렇게 상을 받는 거죠. 그래서 이 법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세 번째 기능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주님을 섬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죠? 말씀대로 삽니다. 말씀을 따라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게 말씀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구원받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말씀이 하는 기능입니다.
저희들의 첫 번째, 구원을 믿음으로 받을까요? 행위로 받을까요? 답을 어디서 찾죠?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알죠? 어떻게 확신하죠? 성경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가면 이 성경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성경 말씀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하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승인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첫 번째 원칙이고요.
로마서 4장,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원칙은 두 번째 원칙은 순서상의 문제인데요. 첫 번째 원칙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원칙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게 할례 이전이다라고 하는 것을 들어서 이방인도 똑같이 구원받는다. 이방인도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원칙을 확정한 거죠.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질문이 나오죠. 그럼 할례는 뭐냐? 왜 할례를 받게 했냐라고 하는 거죠. 이거에 대해서는 구약 성경이 아니고 이제 신약 성경을 통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7-29).
아브라함이 받은 할례에 대해서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어요. 그런데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의 할례를 예를 들면서 뭘 말하냐면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그랬습니다. 할례는 육체에 하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은 육체에 했죠. 그런데 신약 성경 설명합니다. 할례는 마음에 해야 된다.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의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랬죠. '의문' 혹은 이렇게 돼 있죠. 27절에 보면 "의문과 할례" 의문은 문자라는 뜻입니다. 문자적인 뜻이 아니고 영적인 의미가 중요하답니다. 왜 할례를 하라고 했는지 그 영적인 의미가 중요하지, 할례를 했다. 할례의 문자적인 의미가 뭐다가 중요하지 않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그냥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 그게 유대인이 아니고 마음의 할례가 된 사람이 영적인 이스라엘, 참된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두 번째 저희들이 아브라함 생애를 통해서 두 번째 교훈을 받는 것은 우리는 영적이어야 합니다. 외적이 아니고 영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이 모임 생활을 합니다. 주일이면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합니다. 이렇게 겉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속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가 왔느냐, 육체적으로 왔느냐? 와야죠. 육체적으로 온 것을 오지 말라, 이런 게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오고, 그다음에 감사도 드리고, 그다음에 말씀도 교제하고, 교회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봉사도 이렇게 하죠. 행동도 하죠.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외적인 활동들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정말 교회에 올 때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왔는가? 와서 예배의 감사를 잘 드렸는데, 잘 드려야죠. 그런데 정말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그리고 와서 이제 이렇게 모임을 위해서 여러 가지 수고를 했죠. 수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그것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리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너무 소원이어서 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계적으로 늘 하던 거니까, 생각 없이 계속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자문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특별히 4장 로마서에서 아브라함과 할례를 인용하면서 할례는 마음에 하는 거다. '의문' 문자에 있지 않다. 그 생명에 있다. 그 정신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을 저희들이 주님 앞에서 저희들이 다 부족한 게 있죠. 부족하다고 느껴지죠. 그래서 다시 기도하고, 다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다시 주님 은혜 가운데 이렇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두 번째고요.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입니다. 로마서 4장으로 다시 가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말씀이 있고 그다음에 이제 할례에 대해서 했고요. 그다음에 세 번째가 13절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그래서 이제 이 언약이 있는데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 이제 이 언약이 그럼 뭐냐? 이건 창세기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7장으로 가시겠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5-8).
여기 이제 언약을 세우고, 창세기 15장에서 이제 아브라함 언약이 나오고요. 17장은 약간 다른 언약입니다. 그런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를 통해 수많은 민족이 나올 것이다." 지금도 아브라함의 후손 민족이 유대인뿐만이 아니고 이스마엘도 있으니까, 아랍 민족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제 그두라를 통해서 또 저기 다른 민족들이 막 생기죠.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 민족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이 후손들이 어디를 사냐면 가나안 땅 일대를 다 이렇게 차지하고 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는데, "세상의 후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이 약속이 언제 주었냐? 이 약속을 율법하고 비교하는 겁니다. 율법은 모세 시대에 주어졌으니까 당연히 율법 없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 후손 중에 왕들이 나오죠. 지금도 전번에 우리나라에 사우디아라비아 무슨 왕자, 빈살만인가요? 이런 사람이 왔죠. 영어로는 미스타 에브리싱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이 오니까 우리나라 10대 재벌 회장들이 다 모여요. 그게 이제 아브라함 후손이죠. 그래서 아브라함 후손 중에서 왕들이 많이 나옵니다. 또 유에이 왕도 다 아브라함 후손이죠. 그리고 수많은 민족이 나오고 그들이 지금도 이렇게 중동 땅에서 이렇게 억지를 차지하게 된 것은, 아브라함이 혹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냐? 아니다입니다.
잠깐 다른 예를 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들이 율법을 순종해서 들어갔냐? 아니요. 1세대가 싹 죽습니다. 광야에서, 왜요?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율법은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만 섬기라' 잖아요. 그런데 금송아지 만들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 싹 죽여야 됩니다. 그런데 모세의 중보 기도로 하나님이 죽이지 아니하시죠. 3천 명만 죽이시죠. 그렇게 하여간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1세대는 싹 죽고 2세대가 들어갔죠. 그런데 2세대는 은혜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 네가 기업을 받는다." '후사', 혹은 '기업'이라고 하는 단어는 항상 그냥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유산'입니다. 아브라함이 유산을 받는 거죠. 아브라함 후손들이 그렇게 많아지는 것, 왕들이 나오고, 여러 민족이 나오고,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게 되는 것, 이와 같은 것들은 이와 같이 아브라함 후대에 이루어지는 이 놀라운 축복들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에는 율법도 없었답니다. 그럼 뭐죠? 은혜로 된 것이답니다.
이 부분을 저희들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보시겠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2-3).
교회는 천사를 평가할 것입니다.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이제 후사가 되리라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제 기업이 된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어진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천사를 판단하고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우리가 잘 해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서 이 은혜를 이와 같은 일을 갖게 되었느냐? 은혜다. 이것입니다. 은혜로 된 것이지, 우리의 순종으로 된 것은 아니다입니다.
그래서 우선 이 후사에 대해서는 하나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그때 나그네였지만, 그냥 장막에 이렇게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가나안 온 땅이 아브라함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는 하나도 소유를 못 합니다. 무덤 외에는 하나도 막벨라 동굴 외에는 하나도 소유를 못 하죠. 그렇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는 그는 이 온통 가나안의 주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예배당도 이렇게 뭐 좋은, 넓은 예배당은 못 갖고 있습니다. 조금밖에 없고 그냥 겨우 월세 살고 막 이러죠. 대부분 교회가, 그런데 사실은 교회가 이 지구 주인입니다. 이 온 세상이 교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유산을 받을 사람인가? 이제 그렇죠. 이제 다시 좀 유치한 예를 들면 삼성 삼성 회장이 있는데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직은 젖먹이에요. 그는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릅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재산을 자기한테 넘겨주면 자기가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하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니면서 그냥 뭐 조그마한 거 하나 가지고 뭐 먹겠다고 그러고 싸우고 이런 짓 하고 있는 거죠. 사실은 어마어마한 부자인데, 그게 이제 우리인 거죠.
그래서 이제 첫 번째는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네가 세상의 후사가 될 것이다. 네가 세상을 유산으로 상속받을 거다. 어마어마한 민족이 너한테 나오고, 어마어마한 왕들이 다 너한테서 나오고, 그리고 가나안 땅 일대는 다 네 거다, 라고 하는 놀라운 약속을 받았는데 그게 아브라함이 순종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말로 실감한다면 저녁에 잠이 안 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걸 소유하고 있다고? 우리의 미래가 그렇다고?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제 로마서 4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로마서 4장으로 오겠습니다.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 이게 이제 은혜로 된 것이다. 이렇게 지금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다 함을 얻었다. 그다음에 할례 전이다. 그다음에 율법 전이다. 아브라함의 생애 한 사건이 이제 순서를 가지고 지금 계속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19절 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생애 중에서 이제 네 번째 사건인데요.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 아브라함이 99세 때, 사라는 이제 89세죠. 그런데 이제 그 나이 때 아브라함과 사라가 어떻게 됐냐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 상태가 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제 남자 구실을 못하고 살아도 여자 구실을 못합니다. 그와 같은 몸의 상태인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내년에 자식 낳을 거다. 이삭 태어날 거다. 그랬을 때 아브라함도 웃고 사라도 웃습니다. 하나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거예요. 이걸 우리한테 적용합니다. 아브라함은 뭘 믿은 거냐 그러면, 거기 보시면 다시 하나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그들이 육체적으로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는데 이게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부활입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은 것입니다. "없는 것" 후손 없죠. 수많은 후손은 없습니다. 그런데 "있는 것처럼" 이게 이제 우리로 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를 믿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그거고 아브라함한테는 자기 몸은 죽은 거예요. 그런데 자식을 죽였다는 거예요. 이 두 개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마치 우리 식으로 하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라고 하는 복음을 믿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뭐냐 그러면, 아브라함은 미래를 믿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믿는 것입니다. 이 차이 이외에는 내용적으로 똑같은 걸 믿은 건데요.
잠깐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이제 3장을 보시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그래서 로마서 3장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다룹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것입니다. 죽음은 화목 제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 이게 로마서 3장의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로마서 4장은 다시 오겠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여기서 25절에서는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이것은 대속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죽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죽었기에 나는 죽지 않아도 된다. 이게 대속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은 화목 제물로서의 주님을 말하고, 로마서 4장은 대속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로마서 4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죽은 것입니다. 그다음에 25절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죽음을 대신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의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이게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뭐냐? 하나님이 승인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이 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인정한다. 모든 사람의 죗값을 치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를 믿는 모든 자를 내가 구원한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승인입니다. 이 하나님의 승인을 왜 이렇게 강조하느냐 그러면, 로마서 4장 다시 보겠습니다. 로마서 4장 3절입니다. 결국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들어서 이제 믿음의 구원의 원리를 쭉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데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면 그것이 최종적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의 모든 죄를 향한 완벽한 대속이라고 인정하셨으면, 하나님이 인정했는데 네가 인정하지 않겠느냐 나는 인정 못한다,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거죠. 하나님이 승인하셨는데 내가 승인을 못한다고? 안 된다. 이게 로마서 4장의 결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에서는 몇 가지를 이야기했냐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구약 성경을 든 거죠. 성경이 근거다. 성경만이 참된 근거가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 성경의 순서도 근거가 된다. 한례받기 전이다. 율법을 받기 전이다. 할례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식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침례를 받았어도, 교회에 영접됐어도, 물론 침례받고 영접됐으니까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겠죠.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마음으로 침례가 받아져야 합니다. 마음의 침례, 내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다라고 하는 실질적인 영적인 게 중요하답니다. 교회에 영접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이 지역 교회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래서 내가 여기서 섬기고 이것을 가지고 내가 주님 앞에 서야 되는 교회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이제 할례의 의미고, 그다음에 이제 율법 의미는 그런데 아브라함이 후사가 되는데, 우리는 은혜로 우리가 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무엇인지를 정말 실감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온 땅이 아브라함 거다. 그가 나그네일지언정 온 땅이 자기 거다. 은혜로, 그래서 은혜가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는 그 풍요로운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된다.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을 네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되느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라고 하는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의 생애 사건을 통해서, 그가 구원받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제 사도 바울이 논리적으로 전개해서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분명하게 이제 교훈을 받아보겠습니다. 결론을 내려보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혹시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혹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건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구원을 받았다. 그다음에 두 번째 우리는 영적인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다음에 세 번째 우리가 은혜로 받은 놀라운 하늘에 속한 것들은 얼마나 부요한가?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감히 누가 거기에 대해서 반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씀 앞에 승복하는, 말씀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습니다. 하나님, 누가 거기에 이의를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는 태도들이 이제 로마서 4장의 주제인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제 내일부터 아브라함의 생애를 다룰 텐데요. 거기서 나오는 여러 교훈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마음으로 승복하고, 삶으로 입증해내고, 그리고도 겸손하게 주님만 높이는,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그리고 주님이 주가 되신 지역 모임의 한 지체로 평안하게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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