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 그리스도 / 25년 3월 30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막11:1-11, 개역한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마가복음 1-10장까지는 주님의 섬김의 사역에 대해서 기록했다면 11장부터는 주님의 희생사역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개역한글)
"...섬기려 하고" 여기까지가 주님의 섬김의 사역이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여기부터 희생의 사역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이 사건은 세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십니다. 둘째, 실제로 나귀 새끼를 끌고 옵니다. 셋째,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호산나 하면서 주님을 찬송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때 주님을 찬송했지만, 주님의 희생사역이기에 그들의 태도는 곧 바뀌게 됩니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막14:1, 개역한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막15:9, 개역한글)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막15:13, 개역한글)
저희가 11장에서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이 불과 4일 뒤에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소리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두 정하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 길을 정확한 때에 가십니다.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막11:2, 개역한글)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막11:4, 개역한글)
여기서 저희가 받을수 있는 교훈은 이 나귀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나귀가 문 앞 거리에 묶여 있습니다. 주님은 그 나귀를 특정하셨습니다. 주님과 저희의 관계가 이렇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고 구원받고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또 나귀와 나귀 새끼가 있습니다.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귀가 아닌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나귀가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갈 때에 우리가 드러나지 않고 주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은 나귀의 주인들이 할 말을 예상하셨고 어떻게 대답할지도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또 유월절 객실을 예비할 방법도 알려주사 그 객실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저희들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지만 나귀 주인과 같이, 또 유월절 객실을 예비한 사람들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저희는 주님께서 전능하실뿐 아니라 전지하신 분이심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모든것을 아시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막11:9, 개역한글)
이 호산나라는 말은 지금 당장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는 듯입니다. 주님을 환영하는 이들이 원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와같은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시자 그들은 주님을 못박는데 압장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서 입장하시는 시점은 다니엘서 9장을 이루시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령이 날 때부터 69이레가 흐른 후에" 주님께서는 이와같이 정확한 시간이 흐른 후에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스가랴서를 이루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이 인용말씀을 일부 기록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9:9, 개역한글)
스가랴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구원을 말씀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전에 말씀을 인용하기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입성하시는 것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구속하기위한 입성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성전을 정화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요시아왕과 비교하고는 합니다. 요시아 왕은 대제사장이 살았을때만 하나님을 의뢰했고, 또 산당을 제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순종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주님은 지금도 완전한 사역을 하실뿐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을 때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나귀임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조명받지 않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옆에서 일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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