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구원간증 + 두드리노니 > 기드온 쿠 형제님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아마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한 구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는 이 앞에서 마음 문을 열고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구절이 그 마음 문을 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제가 보통 많이 듣는 질문 중에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제가 이제 몇 살이냐라는 질문인데요. 그리고 그다음에 많이 듣는 질문이 제가 어떻게 구원받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15분 정도 제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아마도 여기 있는 어린 소년들 소녀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린 12살 나이에 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물론 많은 것들을 그때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리고 또한 의심을 하고 있었고, 참으로 또 어린 소년들이 하고 있는 그런 여러 가지 또 행동들을 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이제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구원에 대해서 아주 어렵게 어떤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만 구원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른들만 그것을 이해하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아주 수고스럽게 구해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소식,을 이 복음을 단순하고 그리고 간단하게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12살 되던 때에 이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보다 더 어린 나이도 복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린 아이들이건 또 나이 드신 분이건 여러분은 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고 이것도 이해해야만 합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복음을 들어왔습니다. 저는 제가 5살, 6살 때도 이 복음집회에서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어머니는 굉장히 엄격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 집회에 아주 조용하게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됐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5살 소년으로서 그 집에서 아주 그냥 좀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40분 앉아 있는 것은 저에게는 아주 영원토록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시계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이렇게 삐딱하게 앉아 있게 되고, 다른 반대로 또 앉아 있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좀 소리를 그런 가운데 내게 되면 이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홀 바깥으로 끌고 가십니다. 그리고 저를 매를 댑니다. 그리고 울게 됩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어머니는 "울지 마!"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계속 때리면서 "울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울음이 멈춰졌을 때 다시 이 홀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이 집회에서 저는 아주 잘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회에 가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밖에서 뛰노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좀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이 내용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몇 살 때 그 복음을 이해하기 이해하기 시작하였는지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7살, 8살 되었을 때였을 것 같습니다. 이 복음은 매주마다 이렇게 전해졌습니다. 다른 분들이 전하셨지만 같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기억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구원받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경고도 들었습니다. 그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경고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에게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제가 믿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흥미가 없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복음 집회에 앉아가지고 그 복음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유- 또 지옥에 대한 거야?'라고 그러고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또 말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제 아버지도 이제 잘 알려진 그런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는 전도자로 잘 알려진 아버지의 아들로서 어떤 압박감이 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내가 잘 행동해야 되고, 두번째로 나는 아직 구원받지 않았는데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구원받은 척 해야 되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 집회가 끝난 다음에 그 설교자는 앞에서 악수를 하게 되는데요.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저에게는 제일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그 전도자가 저하고 악수를 하면서 "너는 구원받았니?"라고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럼요,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그런 식으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12살 되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매년 성경 캠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이 성경 캠프에 참석해서 일주일간 거기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친구들을 사귑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성경 캠프는 해변가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또한 캠프에는 이제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이제 성경 캠프고, 이제 노는 캠프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이제 많이 이제 성경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성경 캠프 가운데에 이제 '와치 나잇'이라는 어떤 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잠들기 전에 이제 방장이 있는데요. 그 방장과 함께 아이들이 둘러앉아가지고 그날 배웠던 이제 성경 말씀을 이제 다시 한 번 나누어보는 시간입니다. 제가 12살 되던 때의 성경 캠프는 1986년도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그 날짜를 계산하실 것입니다. 제가 예측 가능한 것입니다. 그 12살 되던 때에 그 '워치 나잇'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그 방장이 아이들에게 이제 각각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한번 이야기해보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는 실제로는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장이 사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이제 각각에 대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누가 구원받았고 구원받지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래서 저는 이제 제 머릿속으로 어떻게 말을 해야 되지?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그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저는 다행히도 맨 마지막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에 말할 차례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이제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쭉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중에 어떤 아이들도 분명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해서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예, 구원받았죠. 제가 어떻게 구받았느냐면요. 톰 벤틀리 형제님이 하는 이제 연속 복음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는 복음 집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보험 집회에 매일 밤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요일 밤에 복음을 들었을 때 저는 약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자 저는 그보다 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 일요일이 됐을 때, 이제 완전히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방장 형제님이 제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혜롭게도 그 형제님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저의 간증에 대해서 거짓말한 것에 대해서 죄의식이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간증할 만한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또 나는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날, 바로 그날 제 마음이 칼로 찔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 문제를 올바르게 정리를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그 성경 캠프에서 구원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 복음을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리고 그때 제가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된 것도 없습니다. 그 성경 캠프는 토요일에 끝났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이제 오후에 집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일주일 내내 성경 캠프에 있었고 또 장거리 여행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피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우리 모임에서는 복음 집회가 토요일 저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오늘 있는 복음집회는 너무나 지금 피곤해 가지고 참석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도 부모님께서는 그래 오늘은 여기 집에 있어라라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집에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 집에 참석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복음 성경 캠프에서 많은 찬송가를 배웠는데요. 그래서 그 성경 캠프에서 사용한 찬송가 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앉아가지고 그중에 어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찬송가를 부르면서 저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계속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는 앞에서부터 1장 부르고, 2장 부르고, 계속해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 그것은 제가 어떤 이 찬송가는 잘 알고 있는 찬송가였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그 찬송가를 이미 수백 번 불러왔던 찬송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제가 그 찬송가를 부를 때에, 그것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찬송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찬송가입니다. 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는 그러한 찬송가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그 찬송가를 부를 때에 특별히 제 마음을 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전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으나 나는 이제 보았다'라는 그 가사처럼, 바로 그 순간에 저는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제가 분명하게 죄인이라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모든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분명하게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제가 그 복음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 있든지 그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분입니다. 저는 그 복음을 오랫동안 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이 문제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미 계속 들어왔던 그 복음 말씀들이 그 순간에 저희 머릿속에 분명하게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분명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저는 37년 동안 이 구원받고 그 이후로 살아왔습니다. 제 계산이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하루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 어린 애들에게도, 또 여러분들에게도 참으로 구원받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참 저는 그 이후에 모임을 참 30년 넘게, 거의 40년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일에 있어서 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바가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우리 주님께서 "보라" "볼지어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항상 주님께서 나에게 집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복음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집중해서 잘 들으실 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만이 모든 것을 멈추고 이제 들어라라고 말씀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입니다. 왜 주님이 그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이 땅 가운데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주신 유일하신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바로 여러분과 저의 죄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 아주 끔찍한 것입니다. 이 죄라는 것은 참 무한히 대가를 치러야 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단 하나의 죄가 그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단 하나의 죄가 여러분을 그 불못에 영원히 던져넣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죄 가운데서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단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은 죄가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죄가 바로 그 영혼을 더럽힙니다. 그리고 죄는 영원한 정죄를 우리에게 대가로 치르게 만들 것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죽는다면, 주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그 순간 여러분의 영혼은 이제 영원토록 지옥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여러분 자신 전체가 그 영원한 불못 가운데 영원토록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구주로 믿으신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으신다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여러분은 이제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지금 믿는 순간 받는 것이고 영원토록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신다면 여러분을 위해 예비된 장소는 오직 정제받는 그 멸망의 장소인 것입니다.
저는 아일랜드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저는 아일랜드의 루간을 방문하였습니다.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이 저를 차에 태우고 이제 여기 그 지역을 둘러 보여주셨습니다. 저희는 어떤 특정한 장소를 지나게 되었는데요, 거기에 어떤 묘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한 번 죽었고 두 번 장사되었다.' 그래서 저는 이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았고 데이빗 형제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묻혀 있는 분은 한 여인이다." 그런데 그분을 장사 지낼 때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그 여인을 이제 땅에 묻었을 때에 그런데 이제 그 무덤을 파고 귀중품을 훔쳐가는 그 도굴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을 묻을 때에 그분이 여러 가지 장신구들 보석들을 끼고 그렇게 장사된 것을 그들이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장사된 후에 얼마 안 돼서 도굴꾼이 와서 다 파냈습니다. 그리고 그 관을 꺼냈습니다. 그래서 그 도굴꾼은 칼을 가지고 그 손가락을 잘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석 반지들을 빼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톱으로 손가락을 자르기 시작할 때, 그런데 그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버렸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도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놀래서 도망가버렸습니다. 이 여자가 그 무덤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이제 문을 두드렸습니다. 만약에 제 아내가 살아있었어도 정말 그렇게 노크를 했을 것이다. 만약 제 아내가 하는 것처럼 노크를 하였다라고 남편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은 실제 문을 열었습니다. 이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는 창백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여인은 그 이후로 10년을 넘게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실제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석에 그렇게 써져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죽었고 두 번 묻혔다.' 그래서 저는 구글로 그 이야기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죽었다라고 판정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남편이 또는 아내가 의사라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여러분에게 이제 재밌으라고 드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한 번 죽고 두 번 묻히다'라는 그 문구입니다. 참 이와 같은 여자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사실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은 한 번 죽고 두 번 장사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과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한 번 장사되는 것이고, 두 번 죽는다라고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이 땅 가운데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육체적인 죽음이 단 한 번의 죽음만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다른 죽음, 둘째 사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둘째 사망이라는 것은 우리가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이 불못에 던지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둘째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둘째 사망, 불못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다시 두 번째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을 한번 만져본 적 있습니까? 우리는 한 몇 초도 그 불을 가까이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그 불에 둘러싸여서 영원토록 그 가운데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있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그 불못에 한 번 들어가면 더 이상 돌아올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는 다시 두 번째로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회는 단지 여러분이 살아있는 이때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에, 바로 오늘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에버레스 산, 에버레스트 산에 올라가라고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저는 구원받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라고 말할 수 변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구원받기 위해서 100만 달러를 내야 된다라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저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저는 그렇게 해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라고 원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나라에서는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 고통을 받아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그 몸을 실제로 상하게 해서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그렇게 해서는 저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어렵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한 것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인정하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10살이던지, 12살이던지, 여러분이 15살이던지, 30살이든지, 여러분이 70세이건, 80세이건, 참으로 여러분의 심장이 뛰고 여러분이 이 땅 가운데 있는 한 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오늘 그 기회를 얻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지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에, 우리는 이렇게 노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립니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참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한 3번 정도 그렇게 하고 그냥 끝낼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아마도 나를 보기를 싫어하는 모양인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모양인가, 그렇게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시제를 보면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이것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내가 문 밖에 예전부터 서 있었고, 그리고 예전부터 계속 문을 두드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계속 그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계속적으로, 계속적으로 하고 계신 것입니까? 왜냐하면 주님은 여러분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응답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집회에 앉아 있을 때마다, 다른 형제님들이 자매님들이 여러분의 구원을 받으라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참 여러분의 영혼이 그 지옥을 생각하면서 그 불못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마다, 여러분의 지금 그 의식 가운데 양심 가운데 주님이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두드리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우리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집 안에 누군가 있다면, 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그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는 것은 그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앞에 말씀드린 대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 안에 사람이 없거나, 그리고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중에 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그 집 안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는다면"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그 문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문을 열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 안에 있으면서 다른 음악을 크게 듣고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문을 두드려도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부엌에서 여러 가지 덜그럭거리면서 크게 소리를 내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노크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왜 여러분이 듣지 못합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다른 것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쾌락이, 여러분이 죄 가운데서 누리고 있는 그러한 시끄러운 소리들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철학이나 다른 사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못 듣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자기들의 행위로 말미암은 큰 소리 가운데서 못 듣고 있기도 합니다. 참으로 무엇이든지 간에 여러분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하게, 주님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주님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제 그 문을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문을 연 다음에 주님께서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고 들어가겠다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원하고 계시고 그리고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들어보셨을 어떠한 그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 유명한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그린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그림입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께 묻습니다. "왜 이 문이 열리지 않고 있는 건가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 문은 안에서만 열 수가 있다. 안에 있는 사람만 그 문을 열 수가 있다." 그리고 사실 그 아버지는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강제로 구원받으라고 그 문을 여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만 그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최고로 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그분의 응답에 응답하시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마치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제가 젊을 때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제가 어떤 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때에, 저는 그 프로젝트를 다 끝내고, 그 프로젝트를 이미 끝낸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 대학교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친구들은 제가 이미 끝낸 그 일을 조금 도움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때때로 내 방에 찾아오게 됩니다. 이제 그 방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드립니다. "기드온 안에 있니?" 저는 이제 없는 척 소리를 안 내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끝낸 그 숙제를 네가 그냥 복사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아주 침묵이 흐릅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좋은 친구를 두었는데요. 그래서 제 그 친한 친구에게는 "네가 내 방에 올 때는 특별히 다른 신호를 내라."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노크 암호를 해놓은 것입니다. 어떤 이 박자를 내는 이 노크를 하라고 내 친구에게만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은 그냥 단지 그냥 이렇게만 노크를 했지만, 그때는 조용하게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안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친한 친구가 왔을 때는, 그런데 그는 그 노크 방식을 잃어버렸습니다. 똑같이 그렇게 노크를 하였습니다. 저도 그래서 조용하게 있었죠. 그래서 그는 내가 다른 아무에게나 그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이렇게 했습니다. "기드온 나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나의 좋은 친구인지를 즉각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음성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가 인식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말하기를 "기드온 나야." 그래서 저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노크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가 "내가 그렇게 노크하지 않았는데도 문을 열었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크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노크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지금 여기 말씀한 거에서 주님께서 실제 노크하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했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노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 집회에서, 왜냐하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노크 소리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연다면은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실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손님으로서 오십니다. 그리고 주로 손님이 올 때 안에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분은 주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와 같이 놀라운 것입니다. 여기 어린아이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 장년분들도, 어른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에게 그 문을 열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마음 안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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