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찾아오신 예수님 > 한봉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구원받는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8장 26-39절까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쌔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눅 8:26-39).
아멘. 여기 좀 특이한 사건이 기록이 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주로 이스라엘의 지도를 보시면 이스라엘 북쪽에 갈릴리 호수가 있는데요. 그 근방에서 주님께서 주로 많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배를 타고 이제 건너가셔서 땅에 도착했는데 거기가 거라사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거기 내렸더니 어떤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참 이상하죠. 그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미리 그 귀신에게 나와라. 그 사람에게서 나와라.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놀랍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이렇게 예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예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를 괴롭히십니까? 왜 우리가 사람 속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왜 우리를 나가라고 하십니까? 아직 때가 이러지 않았습니다. 무저갱에 집어넣지 마십시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걸 잠깐 나중에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 이렇게 구합니다. "예수님 우리를 이 사람에게서 나와가지고 무저갱이라고 하는 곳에 넣지 마시고, 대신 돼지한테 들어가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돼지에게 들어가라." 그랬더니 이거 보면 한 사람한테 귀신이 들렸는데요. 이게 보면 주님께서 물어봅니다. 이름이 뭐냐 그랬더니 군대입니다라고 돼 있는데, 군대가 이제 우리나라 말로는 군대라고 돼 있는데 이게 부대 이름입니다. 우리로 치면 뭐죠? 군대가 있고 사단, 이게 6천 명이 되는 로마의 군대 이름인데요. 이게 6천 명 정도가 되는 부대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안에 6천 귀신이 들려있는 거죠. 어마어마한 거죠. 그리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했는데 이 돼지는 또 다른 성경에 보면 돼지 2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6천 명의 귀신이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갑니다. 쑥 들어가니까, 돼지들이 놀래가지고 귀신이 갑자기 들어오니까 놀래가지고 막 비탈을 내려가지고 돼지들이 물에 빠져 싹 죽어버립니다. 이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그 동네 이걸 본 사람이, 돼지를 치고 있던 사람이 동네에 가서 사람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왔는데, 그 동네에 거라사인들이 사는 동네의 그 마을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귀신이 들렸어요. 그래서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어디에 살았냐면 무덤 사이에 살았어요. 그리고 혹시 사람들이 이렇게 그가 이제 너무 자기가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니까, 그를 이렇게 다 묶어놓았습니다. 쇠사슬로, 그러면 이상한 힘이 있는 거죠. 쇠로 된 줄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밤낮 소리 치고, 그래서 아마 그 무덤 쪽으로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지나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일부러 거기 배를 대십니다. 아마 사람들이 "어? 주님, 그쪽으로는 거기다 배 대면 안 되는데요. 거기는 무덤가고요. 거기 이상한 사람 하나 있어서 아무도 그쪽으로는 안 내립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려가셔서 그 사람을 고쳐주시고 이 사람이 정신이 온전해져서 옷을 입고 예수님은 발 앞에 딱 앉아 있습니다. 이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우리 마을을 떠나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상황 속에서 이제 세 가지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단이 얼마나 사람을 끔찍하게 파괴하는가,라고 하는 걸 하나 말씀드리고요. 두 번째,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걸 두 번째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떠나라고 했을까? 라고 이제 세가지 질문을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제 사단의 능력인데요. 이제 어떤 한 사람, 이 불행한 사람의 불행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주님께서 물어봅니다. 그 사람에게 "네 이름이 뭐냐?" 그러면 그 사람이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답을 안 하고 귀신들이 대답합니다. "군대입니다. 우리가 6천 명쯤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입니다." 이렇게 한 거죠. 사람은 다 타고나면서부터 하나님께서 어떤 개성도 주시고 성품도 주시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자라면서 그와 같은 개성, 능력, 이런 것들을 잘 개발해서 이 사회에 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들어가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성, 성격, 재능을 완전히 장악해서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게 이제 사단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런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귀신이 진짜로 있을까요?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 귀신이 진짜 있을까요? 제가 이제 한번 찾아봤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한번 이렇게 찾아봤습니다. 대한민국 무당협회 이런 거 한번 찾아봤습니다. 30만 명 회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무당으로 일하시는 분이 30만 명이에요. 무당 가운데는 뭐 이제 이런 저런 분들이 계시겠지만 보면 뭐 작두를 탄다고 그러고 이렇게 보면 딱 어떤 사람의 과거 미래가 보인다고 그러고 막 이런 분들이 있잖아요. 귀신이 있습니다. 그걸로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그래서 우리가 찾아가면 오기 전에 다 우리 알죠. 생년월일 대면 지금 무슨 문제로 왔는지, 뭐 이혼하려고 왔는지 뭐 사업 때문에 왔는지 이렇게 다 아는 거죠.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람을 창조하셨고 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보이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이지 않는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천사 중에 삼분의 일이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도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 있는 사람은 굉장히 극단적인 예가 나와 있는데요. 잠깐 다른 성경을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잠깐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에베소서 2장으로 한번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그 때에" 그 때에는 이제 우리가 구원받기 전을 말합니다. "너희가" 에베소 성도들이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이게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사단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구원받아야 된다. 그래도 구원을 거부하고 있는 이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사단이 일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구원받기 전에는 전부 사단의 영향력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지금도 사단의 영향력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단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냐? 이 사람에게는 아주 직접적으로 들어가서 이제 그 사람의 완전히 생애를 잔악해버렸는데요. 대부분은 그렇게 안 하고요. 대부분은 어떻게 하냐면 사단이 세상과 육신을 사용합니다. 어떻게 하느냐면 세상을 따라가게 합니다. 세상에서 유행하면 다 그렇게 하고 세상에서 이것이 좋다, 그러면 다 따라서 하게 합니다. 저기 좋은 직장 다녀야 되고 공부 잘해야 되고 다 이 세상에서는 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게 합니다. 사단이 늘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대로 따라가라. 네가 뭐 특별나냐? 왜 너만 유독 교회 다니고 뭐 믿고 그러냐? 믿는 사람, 또 교회 가운데서도 특별히 구원받아야 사람 수가 아주 소수인데 너희들만 왜 특별하게 자꾸 그렇게 구냐? 이런 거죠. 그다음에 원하는 대로 하고 살아라. 그거 하고 싶은데 자꾸 성경에서 그거 안 된다고 그래서 참고 그러지 말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이게 사단이 사용하는 원칙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다음에 사단이 이제 하는 방법은, 에베소서에서는 하여간 세상과 우리 마음을 따라 살도록 계속 우리를 격려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 못하는 건 뭐냐 하면 복음을 이해를 못하게 해요.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근데 계속 생각해요. 내가 뭔 내가 뭐 남한테 해코지 하고 산 적이 없는데 죄인이냐? 그다음에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죄 용서를 자꾸 그 내가 잘못했으면 그거 내가 책임져야지, 무슨 예수님한테 책임지라고 할 게 뭐냐? 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다음에 선한 일을 해야지. 선행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단 말이야? 그게 그게 말이 돼? 그래서 계속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안 받아들이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누가복음 8장에서 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나오는데요. 이건 성경이 극단적인 예를 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제 서신서에서 사실상 우리가 이 사람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다 우리도 이랬었다, 말하고 있는 거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어디만 나오냐면 어디서 나오냐면 복음서에서 나옵니다. 예수님 계실 때 이런 일들이 쭉 벌어집니다. 구약 성경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제 거짓말하는 영, 그래서 몇 개 나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악신이라고 하는 것도 나와서 사울 왕의 그냥 머리를 아프게 하고 이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 들린 사람은 구약에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제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은 딸들과" 뭐 이제 이런 정도가 나오고 그다음에 서신서에서는 언급 안 됩니다. 서신서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두 번 나옵니다. 16장, 19장 두 번 나오는데요. 점치는 귀신들하고 이제 악귀 스게와의 일곱 아들 이렇게 나오는데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계실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제 조금 이제 시대가 좀 다르고요. 이제 나중에 이 귀신들이 서로 말하는데요. 나중에 7년 환란 때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제어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는 거냐면 사람들이 우리는 순수하게 내가 내 의지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하고, 그런데 사실은 배후에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이제 사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놀랍게도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쪽 영향을 받을 것인지는 내가 선택합니다. 사실은 인간은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사단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시 에덴동산처럼 복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게 뭐냐 그러면,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하셔야 되는 일이 뭐냐 하면, 사단을 무저갱이라고 하는 곳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무저갱은 우리나라 말로는 이제 한문이네요. 무는 없을 문자고, 저는 이제 밑에 밑에라는 뜻이죠. 갱은 이제 갱도 터널이죠. '끝이 없는 터널'입니다. 계속 떨어집니다. 그곳에 사단들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단을 제거하면,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면, 이 세상에 수많은 악이 없어집니다. 지금 많이 벌어지고 있는 살인, 전쟁, 끔찍한 범죄들은 보통 이제 어떤 사람이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잖아요. 막 신문에 나옵니다. 그러면 그 옆에 있는 동네 옆에 사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그랬어요? 평소에는 안 그런 것 같았는데, 그냥 얌전했는데, 그 사람이 그런 죄를 지었단 말이에요?"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물론 그 사람이 악하고 그런 것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그냥 정상적으로 삽니다. 그러다가 사단이 어떤 사람을 장악하면 끔찍한 범죄들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사실은 배후에 사단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계시고 사단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 세상에서 죄를, 이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셔야 되는 일은 사단을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단을 가두는 때가 언제냐 하면, 천년 왕국 때 완전히 가둡니다. 그때 이 세상에 이제 평화가 찾아오고 그다음에 예수님이 통치합니다. 그런데 천년 왕국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이 잠깐 사단을 풀어줍니다. 그러면 천년 왕국 막판에 또 한 번 인간들이 또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완전히 사단을 지옥불에 던져넣고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쉽게 영향을 받는 힘이 있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단이 참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냥 나사렛 예수님, 사람이겠지 뭐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예수님은 주장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사람인데, 하나님이라고 그러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거죠. 신성 모독죄로,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단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사단이 예수를 딱 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왜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오셨습니까? 우리를 무저갱에 넣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이걸 그 요청을 들어주십니다. 아니 세상에 하나님이 귀신의 기도를 들으시나요? 들어주세요. 왜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왜 여기 오세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예루살렘으로 안 가고 일이 오셨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저갱에 들어가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저갱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이 지상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때 저희들을 집어넣는 거지, 지금은 아닙니다. 주님이 두 번째 오셨을 때에 무저갱에 넣게 돼 있잖아요."라고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돼지에게 들어가라."
다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우리는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막 그런 게 강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사단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성경을 말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라. 남들이 다 하는 걸로 해라. 유별나게 굴지 말고, 두 번째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아라. 자기 원하는 거 하고 사는 게 제일 복된 거다. 이게 사단이 늘 하는 건데요. 이 사단의 말을 따르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가는가를 극단적으로 이 귀신들린,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통해서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뭐가 없냐, 그러면 예수님이 그에게 물어보십니다. "네 이름이 뭐냐?" 그러면 이 이름을 대야 됩니다. 부모님이 붙여준 이름, 그가 태어났을 때 그를 기뻐하던 부모님이 너는 이런 인생 살아라. 네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부모님이 붙여진 이름을 못 댑니다. 자기가 누군지 모릅니다. 사단이 그걸 뺏어버린 거죠. 그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성격도 주시고, 재능도 주시고, 그래서 그것을 잘 개발하고 그리고 사회에서 사용하고 그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안 합니다. 사단이 그렇게 안합니다.
그러면 이제 그가 이제 한 모습을 보면 첫 번째 옷을 안 입습니다.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의도가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만드시고 이제 이렇게 살게 하셨죠. 그런데 선악과를 딱 따먹었습니다. 그러자 범죄하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느낀 게 뭐냐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자기가 벌거 벗었다고 하는 것을 느낍니다. 벗었다라고 하는 것은 부끄러움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본능적으로 무화과 나무 잎을 가지고 가립니다.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걸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죠?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그 짐승의 피를 통해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용서하시고 짐승을 대신 죽이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죽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옷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을 안 입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특징은 그는 어디서 사냐 그러면 무덤에서 삽니다. 아니 멀쩡한 집 놔두고 무덤에서 삽니다. 귀신이 하는 것입니다. 수치심을, 부끄러움을 모르게 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부끄러움을 이렇게 막아주신 그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옷을 거부하고 두 번째, 무덤 사이에서 삽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은 첫 번째 거짓말쟁이고요. 두 번째 살인자입니다.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누구죠? 아담과 하롸를 어떻게 죽입니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셔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는데 생명나무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있거든요.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것,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그래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게 만듭니다. 선악과를 좋은 걸로 말합니다. 그래서 먹게 하여서 아담과 하와가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살인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단은 항상 무덤, 죽음, 이쪽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사실상 죽은 자입니다. 자기 집에서도 죽은 자일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도 죽은 자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 그는 어떤 사람이 이제 그가 막 이렇게 자기가 한 게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귀신이 막 이렇게 막 날뛰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사슬로 묶어줍니다. 너무 그렇게 막 돌아다니고 그러면 몸도 약해지고 막 다치고 그러니까 좀 안전하게 있으라고 묶어줍니다. 이 묶어준 사람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해서 보호해 주기 위해서 묶어준 겁니다. 그런데 사단이 힘을 줘가지고 사실을 끊어버리고 광야로 몰아가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혼란스럽습니다. 이상한 힘이 있는데 그 힘은 긍정적으로 쓰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가끔 그런 이야기 듣는데요. 이거다고 꼭 맞는 건 아닙니다만 아니 어떤 애들이 게임을 하다 죽는대요. 밥도 안 먹고, 며칠 동안 게임만 하는 겁니다. 무슨 힘이 있어가지고, 기운이 뭐가 있어가지고 몇 주 동안, 밥을 안먹고 죽을 때까지 게임을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이상한 쪽으로 힘을 쏟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사단이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묶어두는 것밖에 없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병원에 가두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걸 보십시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고칩니다. 아무것도 안 하십니다. "나와라." 귀신에게 명령합니다. "나와라. 돼지에게 들어가라." 이분은 누구십니까? 이 사단이 고백한 대로 이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계시지만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 보면 누가복음 8장은 이제 앞뒤를 쭉 읽어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사건 바로 앞에는 주님께서 이제 갈릴리 바다를 쭉 배로 건너오시는데 파도가 바람이 치고 지금처럼 막 태풍이 불고 바람이 치고 그래서 배가 막 위험해졌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에게 책망하신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아니, 뭐 바람이 무슨 뭐 살아있는 겁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바람을 책망하십니다. "잠잠하라." 그랬더니 바람이 잠잠해졌어요. 이분이 누굽니까? 바람에게 명령하시는 분, 그리고 이상하죠. 귀도 없고 아무것도 살아있지도 않는 바람이 이분의 말을 듣고 잠잠합니다. 이분이 누구십니까? 그다음에 여기 이제 귀신 들린 사람이 나옵니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 그 귀신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이 뭐냐?" "군대입니다." 6천 명이 여기 와 있는 상황입니다. "나와라." "아니, 주님 왜 지금 아직 때가 안 됐는데 우리를 왜 괴롭히십니까? 우리는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주님 두 번째 오셨을 때 아닙니까? 지금은 초림인데 왜 우리를 무저갱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가라." 이분이 누구십니까? 그다음에 세 번째 혈루병 걸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의사에게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오히려 병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 병을 고칩니다. 그래서 자연, 귀신, 병, 그다음에 또 누가 나오냐면 야이로 딸이 나옵니다. 야이로 딸이 12살짜리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죽어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이 말 하나로 살려내십니다. 이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십니다. 왜요?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사단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도, 혹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단의 말을 따라 죄를 짓고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데,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자기 운명이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지고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받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을 무저갱에 가두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천 년 후에 다시 사단을 꺼내서 잠시 풀어주었다가 사단을 불못으로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이게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사람을 파괴하는지, 하나님이 창조한 이 아름다운 생애를 어떻게 파괴해가는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을 텐데 집을 떠나서, 그리고 그 사회의 건전한 삶을 떠나서 무덤 속에서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혼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사단이 얼마나 사람을 파괴하는가? 두 번째 하나님은 주님은 얼마나 놀랍게 구원하시는가?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귀신 나가라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됐죠?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주님 발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이제, 옛날에는 막 소리 지르고 막 싸돌아 다니다가 이제는 주님이 계신 집 안에 조용히, 평안하게, 안정되게, 제정신을 가지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얼마나 사람을 파괴하는가? 두 번째, 주님은 얼마나 놀랍게 구원하시는가? 주님은 말씀으로, 주님은 말씀만으로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완전히 바꿔 놓으셨습니다. 이게 구원인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제 다시 보겠습니다. 이제 이런 일이 생기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당신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귀신을 제어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 저도 변화시켜 주십시오. 저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사람의 삶으로 바뀌고 싶습니다." 저도 나쁜 습관이 있는데 그거 고치려고 해도 안 고쳐지고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은 죄를 자꾸 범합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이 사람을 바꾸었듯이 저도 변화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냐? 이게 이제 부정적인 겁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보고 이제 사실은 이제 이 마을은 이제 평안한 마을이 됐습니다. 이제 마을이 있었는데 한쪽에 이제 무덤이 있는 거죠. 항상 마을마다 이제 돌아가신 분들을 거기다가 뭍고 오는 거죠. 그런데 무덤가에 한 사람이 소리 지르고 막 그래서 그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돌아온 거죠. 이제 무덤 무덤도 갖다 올 수 있고 편안하게 된 거죠. 어떻게 해야 되죠? 주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합니다. 이상하죠. 누가복음 8장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눅 8:35).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눅 8:37).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정말 두려운 것이죠? 그들은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 지르며 이렇게 동네를 시끄럽게 하고 위협하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뭘 두려워했다고요? 그가 온전히 정신이 돌아온 것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이걸 보고 기뻐해야죠. 그리고 주님께, "주님 저희들도 이 사람에게뿐만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변화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해야 되죠. 그런데 그들은 구원을 두려워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럼 뭘 뭘 편안하게 생각한 거죠? 죄악된 삶을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게 거라사 지방의 비극입니다. 지금도 구원받아서 정말 변화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거듭나서, 예배드리고, 말씀대로 살고, 거룩하게 살고, 주님 오실 때 칭찬받는 생애를 사십시오. 하면 그거 싫어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시던 대로 사시죠. 뭐, 인생 별거 있나요?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게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이 사람들이 두려워한 두 번째는, 이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첫 번째, 거룩한 삶,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이걸 두려워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아마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한 두 번째 이유는 이런 것 같아요. 자기들이 이제 2천 마리 돼지 키워가지고 마을 공동 재산이죠. 쳐가지고 이익 남으면 그걸로 또 이제 각각 가져가고, 이렇게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몽창 파괴해버렸어요.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아니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려면 안 된다고 그러시면 될 것 같은데, 귀신들 요청 들어줄 필요 없잖아요.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이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래서 온 마을 이게 돼지 떼가 2천 마리면 수억원이 될 텐데요. 돼지 한 마리에 얼마나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억의 돈보다 한 영혼이 귀중하다. 주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편안한 삶, 우리의 안락한 생활, 우리의 부유한 삶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떠나가세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이 사람이 이제 귀신에서 나은 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참 이상하죠. 마을 사람들이 떠나가세요. 그러니까 떠나가십니다. 주님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선택하길 원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귀신에서 나온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 따라가고 싶습니다." 이게 구원받은 사람은 자연스러운 소원입니다. 주님께 구원받아서, 이제 주님 가시는 곳에 같이 가고 싶은 거죠. 그런데 주님이 거절하십니다. 왜요? 저는 이 성경 읽을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니, 귀신 귀신들은 요청도 들어주시고, 거라사인들의 요청도 들어주시면서 아니 구원받은 주님 자녀의 요청은 거절하십니다. "안 된다." 왜요? 하나님은, 주님은, 한 가지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제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셨어요.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이게 어떻게 될지, 귀신들이 돼지에 들어가서 돼지들이 놀래서 호수에 빠져서 다 죽어버렸어요. 귀신들은 어디 갔을까요? 귀신들은 물에 빠져 죽지 않습니다. 돼지는 죽어도 귀신들은 죽지 않습니다. 귀신들은 어디 갔을까요? 귀신들이 이렇게 구합니다. "이 지방에서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이 지방이 좋은 거예요. 죄를 사랑하고, 세상 풍조를 따라 원하는 대로 살아라, 라고 하고 그렇게 그와 같은 삶을 좋아하고 거룩한 삶을 거부하고 있는 이 동네가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동네에 남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지만, 전 개인적으로 6천 명의 귀신들이 다시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직접 들어가건,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주님은 한 변화된 구원받은 사람을 남겨두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이 거라사 지방을 사랑하셔서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그래서 이제 주님께서 그를 남겨두고 이렇게 두가지를 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이 두 가지를 말해라. 너의 변화된 삶이 증거가 된다.
그래서 항상 저희들은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신 피 흘리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 거라사 지방에서 증거해라. 그리고 저희들이 나중에 이제 마태복음 4장 같은 데 가보면, 주님께서 이제 이 마을이 이제 데가볼리라고 하는 마을입니다. 근처가, 그래서 나중에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주님께서 데가볼리 지역을 지나가실 때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옵니다. 왜요? 이 사람은 살아있는 간증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단에 의해서 왜곡된 삶을 살았는가? 그런데 주님은 얼마나 놀랍게 변화시키셨는가? 이 두 개를 증거했기 때문에, 그라사인의 사람들은 주님께 떠나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가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자세히 말 하고 있지 않습니다마는 이제 이 귀신 귀신 나간 사람이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발 앞에 하면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입니다. 베다니 마리아가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뭘 했죠?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가 일을 좀 도와달라고 그래도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우선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저에게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쫓아내시고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로 저를 채워주셔서 변화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하고, 두 번째 주님 발 앞에 앉아서 "주님 저를 가르쳐 주옵소서." 계속해서 주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인류를 향한 세계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 기도를 기뻐하시고, 세상에 귀신의 기도를, 귀신의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떠나달라고 하는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믿고자 하는, 배우고자 하는, 우리의 기도를 얼마나 들어주시겠습니까? 기쁨으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주님, 저는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이 같은 기도를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맛보고, 그리고 그 놀라우신 주님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주님을 위해서 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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