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로마서 9장 6-18절

박이레 2023. 5. 21. 22:55
성경읽기 : 로마서 9장 6-18절(요약)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9:6-18,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저번주부터 9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 가운데서 여러 고백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오늘은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에서와 야곱을 통해서 약속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의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말씀하시면서 그 의로움이 전적으로 선택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자기의 의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며,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6-13절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 교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사도바울은 7절에서 육신의 후손의 문제를 제시하고 창세기 21장 12-13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2-13,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육신적으로 보면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이었습니다. 만일 육신적인 후손이 중요하다면 이스마엘과 다른 아브라함의 자식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는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이스마엘도 그 씨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기로 약속받고 하나님의 진정한 약속을 받은 약속의 아들은 이삭이었습니다. 이처럼 육신을 따라서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따라서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대부분을 실행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을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주권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따라 난 이스마엘을 제치고 기적적으로 태어난 이삭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자연적으로 태어날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하심은 유대인들의 능력이나 특출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인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아닌 다른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이삭을 통해서 축복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도 마찬가지로 에서도 이삭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생각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한 약속이 저희들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아직 사라가 잉태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이스라엘의 계보는 이삭으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녀로 이어집니다. 저희가 이방인이고 헬라인도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을 받았기에 택함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가 되어집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저희가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공부하고 9장으로 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또 저희들이 믿는 믿음을 근거해서 구원하시고 그 구원이 영원하고 변괴될수 없는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특별한 인도하심 가운데서 그들을 이끌어 오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의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6절에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진 것과 같지 않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을 이렇게 하셨다가, 상황이 이러하니, 이것을 무효로 하겠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특별히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을 폐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의 일부가 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씨가 네 씨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나는데, 육신적으로는 이스마엘이 장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이라면 모두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신 것으로 유대인들은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했던 바가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안에 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약속의 말씀들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하면서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8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9:8, 개역한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면, 이것은 저희들의 이해를 벗어난 영역입니다만, 그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정하신 때에 따라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설사 그 부모가 생식능력을 잃었다 해도 정하신 때에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이스라엘 가운데 참 이스라엘,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내용적으로 보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삭을 교제하면 자연스럽게 이스마엘이 나옵니다. 야곱을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에서가 나옵니다. 에서는 에돔의 조상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마엘로 인한 소망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났을때 그는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이 기쁨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얼마나 큰 소망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으로 인해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으로 인해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야곱을 통해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희들 또한 동일하게 약속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우리로 인해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이어서 14-18절까지 교제해 주시길 원합니다. 약속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가 자기의 여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자기의 태가 끊어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인위적인 사람의 방법이 하나님의 계획을 수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실행되어짐을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3절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부모님에게 하나님이 어떠하신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팥죽 한그릇과 장자권을 바꿨습니다. 이 부분을 보았을때, 결코 에서는 억울하게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간에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2:21,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 이삭의 자녀 가운데서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는 아비가 같지만 어미가 다르고 태어난 시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해서 약속의 자녀가 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고 부모가 같기 때문에 그들의 조건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잘난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으로 야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무엇이냐, 라고 질문할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추후에 저희들이 계속 생각해 볼 것입니다.
사람이 이룬 구원이라면 그것은 불완전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원한 이유와 조건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그 사실을 저희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약은 사람입니까? 반대로 에서는 묵직한 면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어떠함을 보고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어떤 연약함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빚어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고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냐고 물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그 가운데 있는 약속의 자녀들은 실패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Q. 11절 말씀을 볼 때에 구도자 스스로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저희가 구원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을 따라서 구원을 받는다면, 어디까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9:11,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 A. 이미 질문하신 형제님께도 답을 생각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여러 성도님들의 유익을 위해서 질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보면 여러가지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와서 토론한다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신약에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것을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반대로 한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책임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 두가지 부분이 다 모순되어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순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9:14, 개역한글)
 
저희들이 복음을 전할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전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지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계시지만,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할 것을 알고 계시지 않았는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에게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는 것을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냐, 아니면 범죄할 가능성을 일부러 두신 것이 아니냐하고 별 생각을 다 할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말을 할수 있지만 사람의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우리)를 택정하셨다는 것입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4-5, 개역한글)
 
이미 이것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퍅케 하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께 힐문할수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조물주이시며, 자기 스스로 강퍅케 했기 때문입니다.
두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택하셨고, 두번째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믿으려고 할때, 받아들이려 할때,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동시에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7월에 한봉래 형제님께서 오시면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수 있을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