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으로 부요하게 하는 것 > 23년 4월 2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3-21, 개역한글)
저희들이 주님을 받아들일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때에 그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탐심이고 물질주의입니다. 선진국에 있는 사람들은 물질이야 말로 사람에게 참된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질주의라는 것은 굉장히 강력해서 저희같이 믿는 자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개역한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분들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어떤 욕심을 취하고자 할 때, 정해진 규칙을 어겨서라도 이 물질을 취하겠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를 짓는 시작이 됩니다. 많은 믿는 자들도 이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12:15,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탐심을 물리치라 하십니다. 내용을 보면 13절에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와서 형이 자기와 유업을 나누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이는 물질에 대한 탐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탐심이라는 것은 그 위치를 뒤바꿔, 가장 중요한 것에 물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땅히 사람에게 위치하셔야 할곳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두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자신의 주인의 위치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자신의 주인의 위치에 돈이나, 목표, 세상적인 안목, 자랑에 두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의 요청은 자신이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형으로 인해서 자기가 받아야 할 마땅한 것을 못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12:13-15, 개역한글)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거절하시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정한 바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저희들이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이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생명은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믿고 받아들일 때에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갖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6, 개역한글)
많은 소출을 얻은 부자는 이 곡식을 쌓아둘 더 큰 곳간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이 곳간이 있었지만 그것을 헐고 더 큰 곳간을 만듭니다. 사람은 물질에 대해서, 어떠한 명예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큰 곳간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러한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더욱 요청하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출20: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분량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탐심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믿는 자들은 이 말씀을 받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전히 탐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3:5, 개역한글)
또한 탐심은 달리 말하면 우상숭배입니다. 설마 내가 사랑하는 자녀를 가장 우위에 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하위에 있다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19, 개역한글)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이 물질을 통해서 평안히 쉬는 것, 즐거워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물질을 추구하다가 평안히 쉬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굉장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그는 평안을 물질을 통해서 평안을 추구하지만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 마음 속에는 기쁨보다는 허무함과 그 물질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20, 개역한글)
이 부자에게는 전혀 죽음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자기의 탐심을 채우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의 재물을 죽음 이후까지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심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유한한 세상 가운데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이기에 두려운 것이 아니고 뜨거운 불못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탐심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이 놀라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저희는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건강까지 해치면서 그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건강이 매우 쇄약해져서 죽게 되었다면 그 얻은 것이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탐심이라는 것은 그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좇게 만듭니다. 우리가 왜 이 주일날 아침 일찍 와서 말씀을 서로 나눕니까? 이것은 육체적으로 피로한 일이지만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연수가 70이고 강건하면 80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합당히 섬기는 기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깨닫고 삶을 교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아서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 그 길지않은 시간동안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고 사람들과 성도들간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탐심이라는 것은 나의 영혼을 채우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18-19, 개역한글)
부자는 재물을 말하고 그 다음에 자기의 영혼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물질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20, 개역한글)
그렇다면 참된 생명과 풍성함을 주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9-11, 개역한글)
이 풍성하다는 말의 의미는 넉넉해서 넘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가 넉넉히 넘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풍성히 넘치는 것을 말씀하시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다가 주님앞에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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