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예배

박이레 2023. 4. 23. 14:12

< 예배 > 23년 4월 23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0-11, 개역한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2, 개역한글)

계시록 2-3장에는 아시아 교회에 관한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4장에 와서는 하늘에 관한 일이 적혀 있습니다. 2-3장은 교회시대를 상징하며 4-5장은 휴거 이후에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개역한글)

이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교회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예배를 드릴때에 천사와 만물들이 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예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어로 하면 워십입니다. '가치 있는' 이라는 단어와 '(배에 실어) 보내다'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릴때에 우리는 가치있는 것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하는 것은 죽임 당하신 어린양께 가치있는 것을 드려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요?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2, 개역한글)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계5:13, 개역한글)

이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어떠한지, 그들이 무엇을 받았는지는 사실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어떠한 간구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배 때에 간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1, 개역한글)

이 경배하다는 말이 헬라원어 포스크네오라는 동사이며 이 뜻은 엎드려 경외심을 표현하다라는 뜻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들이 준비한 것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유향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몰약은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배의 참 원형을 저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배의 다른 원어로는 라드네오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3:3, 개역한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이 '봉사'가 예배(라드네오스)라는 또 다른 헬라어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성막에서 제사장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히10:2, 개역한글)

섬긴다고 하는 것은 성소 안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을 '섬기는 일'로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것들이 오늘날로 가져오면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속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역하는 예배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할 것이지만 죄사함의 효과는 영원한 것입니다.

예배라는 단어가 성경에 언제 처음 나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22:5, 개역한글)

최초언급의 법칙이라고 해서 성경에 처음 언급된 단어의 문맥을 살펴볼 때에 경배가 무엇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1-2, 개역한글)

이와같이 하나님꼐서 말씀하셨기 떄문에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서 모리아산으로 간 것입니다. 경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명령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 예배가 되겠습니다.
예배는 사람들이 생각해서 이런것을 드리자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하고 있는데,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아브라함이 그저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자기 아들을 살인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에서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드리는 인신 제사가 있었다는 것을 저희가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사람들이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할때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 주어져야만 그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22:3,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하나님꼐서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명령을 받았다면 굉장히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11: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로 창대케 할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설사 이삭이 죽는다 할지라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예배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가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드립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모든 생각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귀한 것을 준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렸던 것은 이삭입니다. 그가 100세가 되어서 하나님께 약속의 아들로 받은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저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저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고 있는지요. 일주일 동안 살아오면서 묵상 가운데 주님을 얼마나 생각했나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나요? 세상 일에는 마음이 분주한데 하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마음이 분주하나요? 그럴때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 전체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저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저희 삶의 아주 일부만 드리고 형식적으로 드립니다.
저희들이 드리는 이 예배와 집회가 형식적으로 되는 것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이 자리에 와서 하는, 앵무새처럼 있는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들은 계속적으로 저희를 살펴야 합니다.

다윗왕이 아라우나에게 땅을 살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라우나는 이 땅을 왕에게 그냥 주겠다고 합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삼하24:24, 개역한글)

저희는 주일의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하고 있는가요? 우리는 세상의 일에 어떻게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값진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가 희생을 감수한 예배를 준비한 적이 있나요? 예배에 대에서 이것은 전에도 드린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저와 성도님들이 교훈을 얻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가 드려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