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사사기

사사기 13장 :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차이

박이레 2023. 1. 18. 01:42

< 사사기 13장 :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차이 > 2023년 1월 15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삿 13:1-5).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삿 13:17-20).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삿 13:24-25).

여기 삼손이라고 하는 사람이 태어나게 된 과정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태어나게 되었느냐면, 다시 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이 '여호와의 목전'에 라는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보실때에 그것은 죄인데, 그것을 지으면 안되는데, 라고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잠깐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신들이 생각할때는 죄라고 생각했을까요? 이스라엘이 행하면서 '이것은 죄인데, 행하면 안되는데' 그러면서 했을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아, 이거 뭐 괜찮지.' '이렇게 해도 문제 아니잖아?' 하고 자기들이 생각할때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행동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심판 하십니다. 그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자유고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살고, 그래서 큰 문제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보고 있고, 그 행동에 대해서 반드시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은 괜찮다고 행동하며 살고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냐면 그들을 블레셋이라고 하는 민족, 이스라엘 옆에있는 민족인데, 블레셋 민족에게 식민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식민지가 되게 했느냐면 40년입니다. 40년 그러면 보통 한 세대입니다. 한 세대 전체가 온통 식민지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조금 있다가 살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블레셋 사람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보면, 보통 이스라엘이 이렇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식민지 상태로 들어가면 저희들도 일본의 식민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의 고통이 심했지요. 좋은것은 다 일본이 뺏어가 버리고 우리들은 매일 욕이나 먹고 힘든 일이나 하고, 그러니까 고통스럽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그와같은 식민지 상태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잘못 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하나님 저희를 살려주세요."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셔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이게 일반적인 케이스입니다. 쭉 사사기에 보면 이런 일들이 일곱번 반복 되는데요. 그때마다 항상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더라"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더라" 항상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지금 사사기 13장은 사사기에서 맨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이게 일곱번 반복되는데 이번이 최악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면 자기들이 식민지 상태로 들어가 놓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식민지로 살지 뭐." "식민지도 살만하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안되는 행동인데 자기는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큰 문제고 그 다음에 두번째는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시면 거기서 이게 우리가 지금 문제가 있는 거구나.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야 되겠구나, 라고하는 감각이 없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두가지 문제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것을 보면서 저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안된다고 그러는데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어려움을 주고 계신데 그 어려움을 통해서 '아, 하나님께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거지 뭐, 누구나 다 어렵게 살지. 요즘에 안 어려운 사람이 있나? 시대가 어려운데 뭐.' 이렇게 하고 있는건 아닌가? 이것을 저희들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은 삼손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격이 없는데, 이스라엘은 자격이 없어요. 지금 이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거 했지요? 하나님이 어려움 주는데도 그 어려움을 그냥 견뎌 버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삼손을 태어나게 하셔서 그 어려움에서 건져 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저희들이 알수 있는거죠. 예를들면 저희들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살고, 죄에서 어떻게 구원받지? 죄에서 구원 받아야 될텐데, 그래서 기도해서 예수님이 오신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저희들이 죄인인지도 알지도 못할 때, 죄에 대해서 고통스러워 하지도 않을 때,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세상에 오셔서 저희 죄 때문에 저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누구에게, 어느 가정에 삼손을 태어나게 할 것인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 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 가정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임신 포기하고, '우리는 애 없이 살아야지, 뭐.' 하고 있는 가정인데, 특별히 그 가정의 어머니, 어머니가 아이를 임신해야 하고 그 아이가 삼손이 되는 하죠. 그런데 이 어머니는 사사기에서 끝내 이름이 안나옵니다. 이름 없는 여인입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하고 그리고 아무런 내세울 것이 없는, 이 여인에게 하나님이 삼손을 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늘 하시는 방법입니다. 세상에서 지혜있고, 능력있고,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고, 세상에서 미련하고, 내세울 것이 없고,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을 보면 똑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해서 구원받은 거라고요? 믿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왜 믿지요? 자기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구원할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사람을 지금도 하나님은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기 나타난 이 분은 예수님입니다. 신약의 예수님이, 예수님은 신약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이분은 원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도 계셨어요. 영원토록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렇게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는 이름으로 계시다가, 신약에는 예수님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때는 아직 사람이 되지 않으신 거죠. 그런데 하나님으로서 이 여자에게 찾아가셔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이제까지 아이를 갖지 못했으나" 아마 삼손의 어머니가, 그 당시에 여자가 아이를 못갖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도도 했는데 아이는 안생기고, 그래서 어쩔수 없이 포기하고 이렇게 살고있는 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다가가셔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아들을 낳을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는데 이 아들은 특별한 아들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할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하는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되느냐를 말씀하십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도 먹지말고,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누가해야 하느냐면 삼손이 해야 됩니다. 아들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머니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희들이 팁으로 하나 배울 수 있는것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할 건가? 이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하나님이 주신 자녀인데, 어떻게 잘 키워서 하나님께 돌려 드릴까? 이런 고민이 모든 부모의 고민이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이 아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인생, 그 인생을 부모가 살아야 합니다. 내 아들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예를들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만약에 부모님이 느끼면 부모님이 공부해야 늦게까지 됩니다. 내 아들은 튼튼한, 건강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부모님이 운동하셔야 됩니다. 이게 자녀 교육의 기본 원리입니다. 내 아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해외 선교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열심히 성경보고 기도하는 부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교육의 기본 원리 입니다. 그래서 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니까 이 여자분이 남편에게 말해야죠. 남편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에게 갑자기 어떤 분이 나타나셔서 아들을 낳는대요."  남편 이름은 나옵니다. 마노아라고, 그런데 이것을 통해서 또 저희들이 배우는 겁니다. 부부간에는 대화를 해야 됩니다. 서로 무슨 일이 생기면, "여보, 내가 오늘 어떤 일이 생겼다." 서로 대화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로 공통적으로 알게되고,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게되고, 이렇게 대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노아가, 이렇게 간접적으로 소식만 들어서는 좀 불충분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합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삿 13:8).

그랬더니 이번에도 또 아내에게 나타납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잠깐만 계세요."하고 얼른 마노아에게 가서 "여기 나타나셨습니다." 그랬더니 마노아가 만납니다. 그래서 똑같은 이야기를 또 듣습니다. 아들을 낳을거다. 너희들이 지금 식민지 상태 아니냐? 너희들을 구원해 줄 자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 이렇게 키워야 된다, 라고 똑같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마노아가, 다 좋은데 자녀도 주고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그런데 도대체 이분이 누군가 싶어서 이름을 물어봅니다. 17절에 보시면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임신하고 태어날때까지 1년 걸려야 되니까요. 정말 아이가, 당신 말대로 현실로 일어나면, 진짜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에게 아이를 주시겠다고 하신 당신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당신 이름이 뭐세요?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자기 이름을 댑니다. "기묘자니라" 다른 성경을 참조해 보면 '기묘자'라고 하는것은 메시아의 이름입니다. 기이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기묘자이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마노아가, 이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눈치챈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저희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해서, 저희들이 지금은 입술로 찬양을 드리지만 그 당시에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야 되니까, 번제를 드립니다. 염소새끼는 번제용입니다. 그 다음에 번제는 항상 소제를 같이 드립니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인데요. 그래서 염소와 곡식하고 함께 단에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드렸고, 번제니까 태워서 드리는 것이죠. 단에다가 연소새끼를 놓고 곡식도 같이 넣고 태워서 드렸습니다. 불로 태웠으니까 불꽃이 위로 올라가죠. 불꽃이 위로 올라가니까 그 불꽃을 타고 이 예수님께서 함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자, 이것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첫번째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블레셋에게 식민지로 넘기셨는가? 이것을 첫번째 살펴 보겠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 왜 그에대한 해결책은 삼손인가? 왜 삼손은 블레셋의 해결책이 되는가? 그리고 삼손을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 왜 문제의 해결이 되는가? 이 두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블레셋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블레셋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례받지 못한 민족이다.' 할례라고 하는것은 포경수술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만 받습니다. 세상에 여러 민족이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만 남자이이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할례받은 민족이고 이스라엘이 아니면 전부 할례 안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블레셋을 특별히 할례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할례받지 못한 대표적인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그러면 할례는 뭐냐? 그러면, 이것은 창세기 17장으로 가시겠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10-11).

그래서 양피를 베는 것, 이것이 할례를 말하는 거죠.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령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만 아니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전부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식을 준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어요. 그런데 살제로 자식이 태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예를들면 창세기 12장부터 실제로 이삭이 태어날때까지 보면, 창세기 12장에서는 75세거든요. 이삭을 몇살에 낳느냐하면 100살에 낳습니다. 이게 25년이 걸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생각에 너무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사라가 어떻게 했느냐면, "우리가 하나님이 자식 주는 거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고, 아무 대책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생각을 해봅시다. 하갈이 있는데 나는 아이 못낳을거 같고, 하갈을 보니까 아이를 잘 낳을거 같고, 젊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낳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낳습니다. 그래서 그게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느냐? 기뻐 안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내가 자식을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내 능력으로 준다. 내가 말했으니 내 능력으로 준다. 네 능력으로 낳는것이 아니다. 네 도움으로 낳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해라. 이것은 뭐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룬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그것을 우리가 도와서, 우리가 좀 도와드려서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다는 것을 살에 세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돕지 말자. 하염없이 기다리자. 늦을지라도, 우리 생각에는 왜 이게 안돼지?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이것을 할례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는 무슨 뜻이냐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이게 할례입니다.
이것을 신약으로 가져 오겠습니다. 요즘 우리로치면 뭘 말하는 거냐면, 신약성경에서는 히브리서 10장에 나와 있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세겨지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살에다가 세겼는데요. 신약에서는 마음에 세겨집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하죠. 구원은 어떻게 받느냐? 구원받았다고 하면 저희들이 주로 물어보는 것이 "어떤 말씀으로 구원 받았습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분이 댑니다. "아, 저는요. 요한복음 3장 16절로 구원 받았습니다. " 혹은 "요한복음 5장 24절로 구원 받았습니다." "요한복음1장 12절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죠. 말씀이 내 마음에 세겨져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할례받지 않았다는 것은 뭐죠? 말씀이 마음 밖에 있습니다. 그냥 성경책에 있어요. 돌판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깨닫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이 말씀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은 3장 3절에 이렇게 되어 있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것이 이스라엘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따르고 그대로 행하지만 거듭나지 않은것이 블레셋입니다. 이게 차이가 있는거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원래 거듭한 하나님의 백성인데 뭐처럼 살고 있었느냐면, 거듭나지 않은, 거듭난 경험은 없어요. 그런데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에 적어진 것을 열심히 따라가는 사람이 블레셋입니다. 블레셋도 가나안땅에 살고 있어요.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죠. 거기에 이스라엘도 살고 블레셋도 사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아요. 똑같이 성경대로 하고, 하나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똑같아요. 그런데 차이가 뭐냐면 이스라엘은 거듭난 경험이 있습니다. 블레셋은 그 경험 없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이스라엘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살먄서, "별 문제 없네."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때, 이제 삼손을 태어나게 하셔서 너희들은 다르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같을 수 있느냐?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삼손의 이야기입니다.

블레셋은 첫번째, 할례받지 않았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다윗이 대표적인 대결입니다. 골리앗이 있고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죠. 할례 받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어요. 그 다음에 골리앗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대표합니다. 사람들이 거듭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면, 골리앗은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대로 키웁니다. 예를들면 전쟁을 하려면 군인이 필요하죠. 그러면 군인은 어떤 군인이 있어야 되느냐면, 그가 잘 싸워야 되니까, 키가 커야 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잘 다뤄야 합니다. 그리고 싸울수 있는 기술도 연마해야 합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어떤 사람이냐면, 사람들이 생각할때, 사람들이 가진 기술과 능력을 최대한대로 발휘한 사람이 골리앗입니다. 전쟁하면, 어릴적부터 뽑아서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무기도 주고, 해서 블레셋은 어떤식으로 인생을 살려고 하느냐면, 우리가 인생에서 부딧치는 여러 일들을 잘 대비하도록 배우고 훈련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죠? 다윗은 어린 소년인데 양을 치다보니까 사자와 곰과 부딧쳐야 되요. 그러면 사자는 어떻게 싸워야 되고, 곰하고는 어떻게 싸워야 되고, 그래서 곰의 특징, 사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사자에게 적합한 무기를 가지고 싸웠나요? 아니요.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것입니다. 이게 차이가 있습니다. 블레셋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최대한 훈련시켜서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다윗은요? 이스라엘은요? 자기는 힘이 없어요. 사자, 곰, 당할 능력이 없어요. 지혜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기죠?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서 싸워야 합니다. 이게 이스라엘입니다. 블레셋은 자기의 최대한도의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야 되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처럼 사는 거예요.
우리가 혹시 그런게 아닌가 잘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목도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하고, 우리도 다 블레셋, 세상 사람들처럼, 열심히 우리의 힘 키워내서 그걸로 싸우고 그러면 어떻게 되죠? 자기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차이입니다. 첫번째 차이는 할례가 없다. 이것은 거듭나지 않았다, 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거듭난 사람처럼 비슷하게 사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번째,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자기 능력으로 살아야죠. 거듭난 사람은요?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희를 지키리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하리라." 이런 하나님이 계신 것이죠.

그 다음에 세번째 차이는, 이것은 제가 성경을 안찾고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으니 나중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에 나와 있는데요. 이스라엘과 블렛세이 전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 시대인데요. 전쟁을 해서 이스라엘이 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왜 졌지? 에잇, 언약궤가 없어서 졌네. 언약궤를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블레셋과 전쟁해서 더 져 버립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탈취해서, 블레셋은 다곤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다곤 신전에 언약궤를 가져다 놓습니다. 이유가 뭐냐? 우리 다곤신이 이스라엘 신보다 우월하다. 그래서 우리가 전쟁에 이겼다. 이렇게 생각해서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그리고 갔어요. 그런데 사건이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다곤 신전을 관리하는 사람이 와 봅니다. 다곤신 나무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언약궤를 놓고 갔는데 와 보니까, 이스라엘 언약궤 앞에 다곤신이 엎드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살펴보는데, 지난밤에 바람이 불었나? 갑자기 이게 왜 넘어졌지? 밑에 바치는 것이 헐거워져서 넘어졌나? 이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그리고는 신전이니까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별 희안한 일이 다 있네. 하고 다시 세워놓고 갑니다. 이것이 블레셋입니다. 하나님께서 다곤 신상이 우상이고 이것은 가짜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람 때문에, 왜 넘어졌지? 하고 갑니다. 그 다음날 와 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하면 다곤 신상이 목이 잘리고 손과 발이 잘려 있습니다. 이번에는 보통 일이 아니죠. 이번에는 바람이 한거 아닙니다. 아니 멀쩡한 나무신상의 목이 잘려져 있겠습니까? 손과 발이 잘려져 있는 거예요. 몸통만 떡 있는 거예요.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자기들이 신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이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해야 하죠? 이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우리 신이 이스라엘 신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하나님이 부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징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답지 못해서 내 명령에 불순종해서 내가 내 자녀들을 징계한 것 뿐이지 너희들이 강한 것 아니다. 너희들은 회개해야 된다. 너희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안돌아오고, "이것 참 희안한 일이다. 이거 어떡하냐?"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좀 있었고요. 그 다음에 이제 그들이, 저희들은 하나님 계신곳에 오면 좋아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계신곳, 교회, 성경, 성도들, 오면 평안하고 좋아해요. 할 말도 많고, 그런데 거듭나지 않은 분들은 하나님이 실제로 이 가운데 계시다. 이것을 싫어합니다. 견딜수가 없어요. 언약궤가 우리 가운데 왔더니 골치만 아프다. 언약궤 돌려보내자. 전쟁에서 이겨서 전리품으로 뺏어 왔더니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일만 생긴다. 그래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싫은 거예요. 견딜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돌려보내냐? "그런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진짜 하나님이 살아서 한거야? 아니면 우연이야?" 라고 하는것을 알기 위해서, 진작 알았어야 하죠. 그런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어떻게 돌려보내냐 하면, 수레에 언약궤를 놓고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수레를 소 두마리가 끌고가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소를 고르냐? 새끼 송아지가 있는 소 두마리를 고릅니다. 그래서, 짐승도 마찬가지죠. 어미들은 새끼들을 놓고 가라면 못갑니다. 새끼를 떼어놓고 어디를 갑니까? 그래서 어미소 두마리를 앞에 놓고 여기 송아지를 두고 어미소에게 너 가라고 하고 보냈을때, 소의 기본적인 본능이 있는거죠. 뒤에 새끼가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그래서 가라고 하니까 어쩔수 없기 가더라도 비뚤빼뚤 가면 그동안 있었던 일은 다 우연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소가 본능과 달리 뒤에 송아지를 놓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이스라엘을 향해서 똑바로 가면 그러면 이제까지 있었던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내 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이 어미소가 새끼 송아지를 개의치 않고 똑바로 갑니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하죠?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우리가 그냥, 우연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것이 아니고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거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패배시킨 것은 우리의 신이 강해서가 아니다. 신은 이스라엘 하나님 한분이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거다. 우리는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가야된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합니다.
그래서 블레셋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블레셋은 어떤 민족이냐? 첫번째, 할례받은 적이 없습니다. 거듭난 적이 없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판에 세겨지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그냥 연구대상이고 공부 대상이고 살펴볼 뿐이고 바깥에 있습니다. 내것이 아닙니다. 소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에 말씀이 와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블레셋의 첫번째 특징이고요. 두번째, 그러다보니까 어떤식으로 생활하느냐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이런 것들을 최대한대로 발휘해서 세상을 살려고 합니다. 돈도 가능하면 많이 벌고, 공부도 가능하면 잘하고, 많이 하고, 직장도 일을 열심히 하고, 회사를 키우고, 이렇게 해서 세상을 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안합니다. 뭐 이스라엘은 공부도 안하고 이런다는 뜻은 아니고, 이스라엘은 그런거 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게 차이가 나는거죠. 그 다음에 세번째,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차이는 뭐냐 그러면 우리는 상황 속에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면 배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블레셋은 "에이, 우연이지. 그게 무슨, 그냥 신상이 한번 바람 때문에 넘어졌겠지." 합리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적을 인정 안합니다. 하나님이 뭘 하신다, 인정 안합니다. 이것이 블레셋입니다.


이 블레셋의 문제가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의 통치를 받으면서 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종교적인 활동,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여러 종교적인 활동, 예배, 기도, 성경공부, 이런거 하면서도 그냥 불만이 없는 거예요. 이게 문제가 되는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의 특징이 뭐냐?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뭐냐를 가르쳐 줍니다. 이게 해결책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하고 뭐가 다르냐 하는 건데요. 언제부터 달랐냐하면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때부터 다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뭐가 다르냐?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죠. 그런데 범죄해서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가인과 아벨이고, 이렇게 쭉 흘러가죠. 그러다가 사람들의 죄가 심각해지자 하나님이 사람들을 심판 하셨습니다. 그게 뭐냐면 노아 홍수로 싹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두번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노아입니다. 노아와 그 세 아들로 인해서 다시 민족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샘, 함, 야벳, 이 세 아들의 후손들이 우리가 전부고, 그래서 샘족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이죠. 야벳이 아마 서양이고, 아마 동양은 함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민족이 가고 있었는데,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도 쭉 살면서 어떻게 사냐면, 인간의 문제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때 자연을 전부 인간을 위해서 창조 하십니다. 자연이 전부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나무, 풀, 동식물, 하늘의 새가 전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지구의 주인입니다. 사람이 다스리고, 사람이 이름도 짓고, 그렇게 한 겁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만드신 거죠. 그래서 사람을 언제 창조하시냐? 맨 끝날 창조하십니다. 나머지를 전부 만들어 놓고, 하늘과 땅과 이런 것을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놓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거기에 두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한가지만 명령하시죠. 선악과만 먹지마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 지구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지만 자기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렇게 된거죠.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어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죠? 사람들이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됩니다. 이제 에덴동산 밖에서 살아야 되요.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까, 그 다음에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이 자연이 사람에게 불순종합니다. 원래 이 자연이 다 사람을 위해서 열매도 맻고 그래야되는데 가시 엉겅퀴가 나오고, 그 다음ㅇ. 사자, 곰, 코끼리, 이것들도 다 사람 앞에 순종해야 되죠. 그런데 이것들이 이제 순종을 안합니다. 그래서 이 불순종하는, 자기가 불순종했기 때문에 자연이 불순종하죠. 그럼 이 자연이 인간을 거스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이제부터 땀을 흘려서 일해야 합니다. 저절로 곡식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면, 점점 자연에, 자기보다 강한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농사는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느냐? 해가 중요하고, 비가 중요합니다. 해가 안비친다든지, 가뭄이 든다든지 하면 농사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해를 숭상하기 시작합니다. 비가 중요하니까 비를 신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사람들이 어리석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는 사자, 곰, 이런 것들이 사람 밑에 있는 것인데 이것들이 사람을 해치기도 하죠. 그러니까 곰을 신으로 숭배합니다. 자기보다 강한 것들, 그리고 사자도 사자신, 그렇게 합니다. 이게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딧치는 자연환경에서 인간이 어리석게도 우상을 만든 이유들 입니다. 그래서 전부 인간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신으로 섬기고 그래서 어떻게든지 그것들을 통제하려고 해를 좀 많이 비추게 하고, 비를 좀 적게 오게 하려고, 이렇게 하려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우상숭배의 시대에, 하나님이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한분만 계시고, 이 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세상에 이와같이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인간이 불순종해서, 죄를 범해서 생긴 문제다. 그래서 태양을 신으로 섬길 일이 아니고, 사자를 신으로 섬길일이 아니고, 우리가 이 범한 죄를 용서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된다. 라고 하는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십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죠. 이 민족은, 우리나라도 신들이 많습니다. 어디가면 삼신 할매도 있고, 우리도 신들이 많죠. 전통적으로, 모든 민족이 다 그래요. 그런데 이스라엘 하나만 하나님은 한분이다.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리고 이스라엘만 알고 있는게 뭐나면 창조주 한분이 계신다. 그리고 두번째,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되어 있느냐?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 아니고 자연이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떡하느냐? 이 사람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죄 때문에 피를 흘리신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죄가 용서되고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지닌다. 라고 하는것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두가지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 똑같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특별히 아이큐가 좋은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교육방법이 좋아서, 그거 아니고요. 이스라엘은 딱 두개가 특징입니다. 첫째, 한 하나님 창조주가 계신다. 이것을 아는 겁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주신다.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죄의 문제인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죄는 피로만 용서되는데, 죄 없으신 분이 피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실 분이 오신다. 이 두개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것을 모르고 그냥 블레셋 사람 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꼐서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한 것입니다. 마노아와 그 가족에게 이렇게 말한거죠. 하나님 한분만 계신다. 이게 아브라함 후손들이 지켜야 되는 진리입니다. 보존하고 전파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 한분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이 세상에 메시아로 보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 당신이 누구냐 하는 것이죠. 이분이 기이하신 분입니다. 왜 기이하죠?  이분은 아주 이상한 분이세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세요. 아니 사람이면 사람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어야죠. 그런데 이분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세요. 사람인거 같았는데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이분 이름이 기묘자입니다. 사람의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셔서 알게 된 분,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분, 이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블레셋이 모르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그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블레셋은 경험한 적이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경험했어요.
그런데 이 기이하신 분이 뭘 하시냐?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거예요. 사람이 되어 오셔서, 이것도 기이하죠.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데 왜 죽으세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는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단, 바위에서, 십자가입니다. 거기서 제물을 드려요. 이 염소새끼를 죽이는 것입니다. 거기 피가 흘려지고 그리고 태우고 있어요. 태운다고 하는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향기를 아버지 하나님이 맡으십니다. 사랑하시는 아들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고 피흘리시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믿는자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이제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죽으실뿐만 아니라, 소제를 드렸는데요. 소제는 무슨 뜻이냐면 예수님의 죄 없는 생애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죠. 사람으로 이 땅에 33세 사셨어요. 그런데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만이 죄 없으신 분이예요. 왜? 아니 어떻게 죄가 없어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이분은 죄를 안지세요. 이분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 우리 가운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 앞에서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빌라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 안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버린 가룟유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팔았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분은 죄가 없어요. 그래서 소제입니다. 죄 없으신 분인데, 그런데 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받으셨죠? 왜 피를 흘리셨죠? 우리 대신, 우리가 받아야 될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향기를, 이 불꽃을 하나님이 하늘에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죄를 해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 믿는자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불꽃을 타고 주님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 올라가버리셨어요.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자를 하늘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하느냐? 이스라엘만 압니다. 이스라엘이 틀별나서가 아니고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이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온통 우상을 숭배하고 있을때, 자연을 숭상하고 있을때, 운명을 믿고 있을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두가지를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주셔서 이 지구의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리고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노아에게, 삼손 가정에 그림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산손은 어릴적부터 이렇게 자랍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된다. 이게 하나님이 너를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다. 너는 원래 태어날 수 없는 아이다. 우리는 낳을 수가 없어. 하나님이 낳게 해 주셨다." 그리고 네가 태어난다고 말해주신 그분께서 어떤 분이냐 하면, 바위에서, 그래서 그분 이름이 기묘자다. 그분이 기묘하신 분인데 기묘하신 일을 하신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아니 죄 없으신 그분께서 왜 심판을 받으시냐? 그 일을 받으신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우리가 보았다. 그분을 보면 죽는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보고도 안죽었다. 그리고 그분이 번제를 받으시고 소제를 받으시고 불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 분위기 속에서 삼손이 자랍니다. 삼손만 그렇게 특별히 계시를 받은것이 아니고요. 저희들에게도 우리는 삼손보다 더 명백하게 압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하셨는지, 명백하게 알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영원한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 이게 블레셋과 이스라엘과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씀을 절리해 보겠습니다. 블레셋은 차이가 첫번째, 말슴이 내 마음판에 기록되어 있는가? 거듭남을 경험했는가? 이것을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거듭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내 지혜입니다. 내 능력을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대로 키워서 세상을 사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근거고 의지할게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지식이 있건, 얼마나 부자건,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문제가 생길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풀려고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내 지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해서 풀려고 하는지, 이것을 봐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면 블레셋입니다. 그리고 이제 세번째입니다. 혹시 우리가 종교적인 활동, 외모에 만족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속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예배드릴때에 겉으로 보이는 경건한 태도, 그리고 겉으로 헸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예배 자리에 와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를 하나님은 보십니다. 물론 겉에 있는것은 안보신다. 이런 뜻은 아닙니다. 겉에 있는것도 보시지만 그것이 속에서부터 나오고 있는가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삼손의 이야기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겉으로는 말씀을 따라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지만 속에 거듭난 경험이 없으시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거듭나게 하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이 멀리 있는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세겨진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블레셋처럼 실제로 하나님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말하고 계신데도 "우연이지 뭐, 그런 일이 있을수도 있고, 뭐 그게 꼭 하나님이 한거야?" 이렇게 하지 말고,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개입해 들어오실 때, 그걸 왜 그렇게 하셨는지 성경을 통해서 분별하고,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대로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생애를 살수 있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