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나야를 통해서 보는 그리스도인의 삶 > 2023년 1월 5일 목요일 / 방광식 형제님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삼하23:20-23, 개역한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라는 사람을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생소한 분들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브나야는 다윗의 시위대 장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을 지키는 경호대장입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용사였는데 어떻게 다윗왕 가까이서 그를 호위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용사들이 다윗에게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브나야를 자기의 시위대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브나야는 처음 사무엘하 8장에 언급됩니다. 다윗왕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주변의 모든 대적들을 쳐서 이기는 모습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렉 사람을 관할하는 장군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다윗에게 굉장히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는 두 왕을 섬겼습니다. 그는 다윗을 섬겼을뿐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을 섬깁니다. 브나야는 솔로몬 왕국의 국방장관이 됩니다.
영적인 면에서 생각해 보면 다윗은 이 세상에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머지않아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브나야는 이 두 왕을 섬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배우고 살고 있으며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드리고 사랑하고 섬깁니다. 머지않아 솔로몬 시대와 같은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 나라에서 섬길 것입니다
또 하나는 브나야를 소개할때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라고 꼭 소개합니다. 그냥 그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라고 기록하지 않고 이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여호야다는 브나야의 아버지인데, 여호야다의 뜻은 여호와께서 아신다. 브나야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잠언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 개역한글)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브나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들을 섬겼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다윗의 넷째아들이 왕이 되겠다고 하였지만 브나야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은 세워졌습니다. 또한 솔로몬 왕국이 세워지는데 많은 방해가 되는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브나야를 통해서 다 제거하셨습니다.
세명의 대적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모압에서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모압에서 굉장히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나야가 그들을 치고 죽였습니다.(20절) 사무엘하 8장에서 블레셋을 치고 모압을 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브나야가 이렇게 용맹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왕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윗이 어디 가든지 항상 이기게 하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싸움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압의 두 영웅적인 두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다윗과 함께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 싸움을 이겼습니다.
두번째는 그는 눈올때에 한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를 죽였습니다.(20절) 그는 왜 굳이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를 죽였을까요? 그냥 둬도 죽을 사자인데요. 사자가 함정에 빠져있으면 그 사자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부주의한 사람이 그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부주의합니다. 호기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브나야가 사자를 죽인것은 자기의 용맹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자를 죽인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자를 죽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브나야는 장대한 애굽사람을 죽였습니다.(21절) 그의 키는 거의 5규빗이 된다고 합니다. 그는 거인이었고 배틀채같은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브나야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막대기를 들고 나가서 그 애굽사람과 싸워 그 창을 빼앗아 그 애굽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싸움을 보면 다윗이 생각이 납니다. 다윗이 소년일때에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다윗은 창으로 싸운것이 아니고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이와같은 것을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압은 영적으로 우리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모압은 '아버지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압의 아버지는 롯입니다. 그가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우르를 떠났지만 그의 삶 가운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의 번영을 구하지만 그는 모든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모압은 아버지로부터 이 모든 육신적인 것을 다 가졌습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렘48:11, 개역한글)
모압을 표현할때 포도주를 만들때에 오래 묵혀둡니다. 그러면 모든 찌끼들이 밑으로 가라 앉습니다. 그런데 그 찌끼가 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냄새가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번도 포로된 적이 없습니다. 싸움에서 져본적이 없고, 어려움을 당한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안일함을 나타내는 게으름입니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렘48:29, 개역한글)
또한 모압의 특징은 거만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신 가운데 늘 쌓여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될 대적들입니다. 우리 육체는 계속해서 우리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가 원하는대로 하도록 계속 끌고 갈 것입니다. 육체와 어떻게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육체는 절대로 쉬운 대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다른 힘이 필요합니다. 브나야가 다윗왕과 함께 싸웠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워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개역한글)
믿는자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말씀을 통해 감동하십니다. 기쁨 가운데 우리가 말씀을 알게 될때에 우리는 자원함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육체의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미워하십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할때에 우리는 이 거대한 육체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8, 개역한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부주의함, 우리의 실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좇지않고 자기 뜻대로 하려는 생각들이 있죠. 그럴때에 우리는 사자 앞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적 마귀를 우리가 어떻게 이길수 있을까요?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0-13, 개역한글)
"주 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합니다. 주 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힘은 어디서부터 옵니까? 먹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영적인 양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을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말씀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을 내고 참여해야 하고 우리의 눈이 말씀을 보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취하라. 이런 것들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고나서 우리가 승리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이 모든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대한 애굽사람을 브나야가 싸워 이겼습니다. 이것은 모두 브나야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왕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일뿐만 아니라 이 대적들을 이기고 승리할때에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애굽사람은 세상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은 언제든지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것을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종삼은 나라입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의 모든 시간을 빼앗을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힘과 정신과 마음과 시간들을 이 세상에 집중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 읽은 요한일서 말씀처럼 여러분의 정욕들을 유혹할 것입니다.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브나야가 왕을 닮았습니다.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우리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의지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고 온전히 순종하여 드렸습니다. 또한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권능 가운데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행하신 것입니다.
마귀가 주님께 자기에게 절하면 이 세상 모든것을 주겠다고 시험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4:10, 개역한글)
브나야는 '효용한 일'을 행한자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유용하고 가치있는 일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는 '호용한 일을 행한자'라고 합니다. 호용은 이곳 저곳을 넘다들며 일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브나야는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그것으로 자기 자랑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든지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웁니다. 왕과 그 백성들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최후의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기의 승리에 도취되지 않는 사람이 그 영광 가운데 솔로몬의 왕국의 군대장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것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있습니다. 육체와 세상과 마귀입니다.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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