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9일 수요일 / 강성찬 형제님(요약)
< 주님이 복음을 전하시는데 있어서의 세상과의 네가지 차이점 >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요4:27-38, 개역한글)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셨는지 배울수 있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후에 목포 중부 모임에서 복음집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셨는지 본을 보고 목포중부 모임의 복음집회가 주님의 본을 따라 집회가 열려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완전한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피곤한 행로 가운데 계셨지만 한 영혼을 만나시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구원하신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는것을 우선순위에서 많이 미뤄두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반영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복음 전하시는 모습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네가지 다른 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는 일에서 자기와 너무나 다른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기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여자와 말하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때 생각해 보면, 어떤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것을 볼때 굉장히 놀랄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복음에 관심이 없고 구원 받지 못할것 같은데 그 사람이 복음에 순종하고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것 같은 사람이 끝끝내 복음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이 여자는 하나님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때에 이런 기이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다르며, 이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께 주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어찌하여 이 여자와 이야기하는지, 무엇을 얘기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뜻이 있겠지 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주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복음 전하시는 모습을 볼때, 제자들이 이상히 여길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우리는 숫자에 민감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지금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룹으로 보는것이 아니라 각각 한사람 한사람을 각 개인의 영혼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볼때에 주님께 경외심이 듭니다.
주님의 사랑과 한 영혼에 대한 희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외모가 좋아보이는 사람에게 복음을 쉽게 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외모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은 복음을 전하실때 전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답답할 정도로 말을 못알아 듣습니다. 주님께서 물을 달라고 하자,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으로서 왜 사마리아 여인인 자기에게물을 달라고 하는지 질문 합니다. 주님께서 영생을 얘기해도 사마리아 여인은 마시는 물을 얘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끈기있게 말씀 하시고 주님을 알려 주시고 하나님의 선물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때에 이러한 인내가 필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길게 얘기 하셨지만 아무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간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계속 얘기하셨습니다.
첫번째는 그가- 남편의 이야기를 꺼내게 함으로써- 죄인인것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녀에게 영생이 필요함을 알게 합니다. 그 영생이 내주하시는 성령이며 그 성령을 주시는 분이 오직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도록 촉구 하십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때에 이렇게 주님의 모습을 따라야 하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상히 여기는 제자들에게 이와같은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4:31-34, 개역한글)
여기 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차이점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는 빵, 밥들을 양식으로 잡수시라고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알지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양식이라고 하는것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음으로써 여러가지 힘을 쓰는 에너지를 얻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주는 양식과는 다른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에게 힘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힘을 주는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움직일 동기와 힘을 주는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임무가 주어졌을때, 여러분에게 중대한 사명이 주어졌을때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밥을 먹지 않아도 그 일을 열심으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떠한 큰일이 있다 할찌라도 주님이 맏기신 복음 전하는 일보다 작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맡기신 이 큰일을 생각할때에 그 일을 이루는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하는일을 하면서 온 정신과 시간을 다 쏟고 있습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학교에서의 일과 회사에서의 일도 중요합니다. 그것에 열심하십시요.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맏기신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히 이루는 이것" 곧 단순히 시작할뿐 아니라 그것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시작하고 멈추는것이 아니라 완수했을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것을 생각하며 마치기를 바랍니다.
35절에 보면 또 예수님과 제자들의 다른점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5, 개역한글)
한국에서는 벼를 추수하는데 5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보리나 밀을 심고 수확하는데 4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35절의 말씀은 막 씨를 뿌린 시점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말을 주고 받았을까를 생각해 볼때, 추수한 후, 다음번 작물을 심기 시작할때 곡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제자들은 식량을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것을 염려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동네에 나가서 잡수실것을 구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우리의 생활, 먹고사는 것은 물론 해야 하는것이지만 지나치게 그것만 생각하다 보면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영혼을 바라보지 못하고 당장 먹을것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바쁜 상황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시대에서 우리는 주변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들어"
눈을 들어,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 일만을 바라볼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서 복음을 전해야 할 영혼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희어져 추수할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육신의 눈으로 밭을 바라 본다면 이제 싹이 겨우 난 밭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영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보게 될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도 그런 경험들이 많습니다. 저는 복음 전하는 것과 생활하는것을 완전히 다른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할때에 영혼을 생각하지 않고 많이 생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일상생활 가운데서 눈을들어 밭을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 막내아들이 유치원을 다닐때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은 부모님들이 통학을 도와줄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려하지 않고 조금더 유치원 앞에서 놀다 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시간씩 유치원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올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마주칠때까 많습니다. 그리고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가서 통학을 도와주지 않게 되다보니 이 지역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고 어느 정도 신뢰 관계를 쌓는것이 쉬운일이 아닌데, 몇몇 부모들을 알게 되었을때 복음으로 인도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때는 아이만 데려다주고 데려오는것만을 생각했던것이 아쉬움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시는데 그 기회가 그냥 지나가버린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요4:36-38,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이 복음 전하는 것이 함께 즐거워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복음을 가장 잘 전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복음을 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복음 전하는 것이 함께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함께 함으로써 하늘의 기쁨에 참예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 전하는것을 맏기셨다는 것을 보게 될때 주님께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그런 경험들이 있을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길에 마음에 기쁨이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가운데서 얻을수 없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계속해서 우리로 감당할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이 즐거움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것은 교회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 증거하는것에 대해서 여러 군데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만찬 예배를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외인들이 와서 이것을 보았을때,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복음집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론 개인적으로도 만나서 전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모임 안에서 공적으로 전파되는 복음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고 고백할때에 함께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이와같은 일이 목포중부 모임에도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즐거워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농사일은 뿌리는자와 거두는자의 시간이 넉달이 걸립니다. 그래서 이 둘은 함께 만나서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씨앗을 뿌렸는데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았습니다. 뿌리고나서 바로 거두는 것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영생의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영혼이 구원받는것이 이 세상의 능력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일을 할때에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가지만,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는 것은 그렇게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잣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재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너무나 다른 우리 주님의 모습이지만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본받고 조금 더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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