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2015년 플러싱수양회(요약)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24>

박이레 2022. 7. 13. 23:24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24>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딤전6:17,20, 개역한글)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한글 성경으로는 '디모데야' 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으로는 '오! 디모데야' 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부탁한것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 입니다. 우리가 가진것 중에 받지 않은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두신것은 1. 물질 입니다.   2. 말씀 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쓰며 지켜내야 할까요?

 

말씀의 경우 그내용을 정확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킨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말합니다.
말씀을 지킨다는것은 올바르게 사는것 입니다. 말씀을 받고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그것은 말씀을 지키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시138:2, 개역한글)

 

이렇게 이해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은 귀중히 여기십니다.
사실 이세상에서 인간이 가진 최고의 보물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됩니다.
만일 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방황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왜곡하면 안됩니다. 더해서도 빼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가령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라'는 것은 성경에 대한 크나 큰 오해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오해가 가르쳐 지면 후대가 이 말씀으로 실족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마포모임에서 기도하고 있는 지역모임에 어떤 성실한 청년형제가 있습니다.
그 청년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때문에 속 썩은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집회때 구원간증도 부탁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청천병력같은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 청년을 징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제 마음에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을 보고 제마음에 기쁨이 되고 간증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떨어져 있고 학교때문에 자취하는 몇년의 기간동안 청년에게 사단이 틈을 탄 것입니다.
그로인해 마포모임에서 그 청년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마포모임의 다른 형제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모임만 그런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포모임도 언제든지 넘어질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우리모임 청년형제들을 주일저녁에 불러서 말씀 교제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외부적으로 자극이 심합니다. 신문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보면 신문기사 양쪽으로 어마어마한 광고들이 뜹니다. 그런것들의 대부분은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외부적인 자극에 약한 청년 시절에 어떻게 하면 이 유혹을 이겨낼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원칙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성적인 유혹을 이겨낸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아보라"고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요셉이요, 실패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윗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시편 51편을 공부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자백과 회복을 살피었습니다.
<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시고>
저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한번 내주하시면 영원토록 거하신다. 성령님은 한번 오시면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러한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형제님 이것은 구약의 경륜이고 우리는 지금 신약의 경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는 성령이 언제든지 떠날수 있었지만 신약인 지금에는 성령님이 우리안에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이러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을 구분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섯명중에 단 한명도 불쑥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저는 교파에 있다가 모임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저는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임에 들어왔습니다. 모임에 와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스라엘과 모임을 구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저는 이 말씀을 세대 구분없이 받았을때 죽어봐야 구원받은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에 하신 말씀이 아닌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제가 겪은 것을 2세대 청년 형제들은 겪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이것을 생각하면서 진리가 보존이 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뭐에 대해서 혼란스럽냐면, 14만 4천이라는것에 대해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우리모임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단에 속한 자들의 주장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뭍습니다. "어디 지파에 속하셨습니까?"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베드로 지파입니다"
말이되지 않은 말입니다. 이들은 세대구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모순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정형모 형제님을 초대해서 한달간 요한계시록 강해를 듣고 배웠습니다.
분명하게 14만 4천은 환란기간에 유대인을 비롯한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시킨 유대인 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진리들이 올바로 해석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10:25-28, 개역한글)

 

에수님은 율법사의 지식을 칭찬하시며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사는 이웃이 누구인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웃이 누구인지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를 하십니다.
곧, 필요가 필요한 모든사람이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0:37, 개역한글)

 

예수님은 이와같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흐름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선한사마리아인이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선한 사마리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사는 내가 할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행위로 영생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부은바 되어도 항상 선할수 없습니다. 실패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을 하나라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내가 율법을 폐하려고 온줄로 여기지말라 오히려 율법을 세우러 왔노라>

 

율법을 어긴후 그 형벌에 관한 것으로는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성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면 < 율법이 없었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라고 합니다.
율법은 현대에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것이 율법적인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이라는 것은자신의 힘으로 할수 없는 것을, 자신의 행위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것입니다.

 

신 구약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여러단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로 의롭다함을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곳을 종교로 빼버립니다.
그렇지않고 율법이 아니라 은혜와 십자가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주의 입니다.
그들은 잠실 체육관 같은곳에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가르칩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기에 그들은 복음을 단순화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믿는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 이후의 삶이 없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 빌리그래암이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고 일꾼입니다. 그러나 말년에 이상한 소리를 하십니다.
"카톨릭도 복음이 있다" 이것은 받아들일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구원받는가 하는것보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시는 하나님께 촞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내가 믿었으므로 내가 구원받았구나  하는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하나님이 받아들어졌을때 그것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추천할만한 교회의 기준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사66:2, 개역한글)

 

<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는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에 그 말씀대로 사는 자인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지켜내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다 지킬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6:20-21, 개역한글)

 

굶주린 사람과 울고있는사람과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울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이 변화되지 않고 이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그것으로 인해 우는것이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6:27, 개역한글)

 

이러한 사람은 자기원수를 사랑합니다.

 

<선인을 위하여 죽는자가 쉽지 않고 의인을 위하여 죽는자가 혹 있거니와 >
사람은 자기 원수를 위하여 죽을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원수를 위하여 죽으신 분입니다.
원수를 위하여 죽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은사람이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39, 개역한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는 사람은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는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은항상 인간의 이기심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1. 우는 사람입니다. 2. 원수를 사랑합니다.  3.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는 그와같은 분별력을 갖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뜻대로 물질을 사용합니다.

 

십일조는 구약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참고하지 않습니다.
사실 구약은 1/10을 하지 않았습니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레27:30, 개역한글)

 

십일조를 하지않으면 도적질을 한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당연히 드려야 합니다.
두번째로 드려야 하는것이 또 있었습니다.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12:17-18, 개역한글)

 

< 십일조와> , <먹고 네손으로... 즐거워하되>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서 십일조를 또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2/10 입니다.

 

28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4:28-29, 개역한글)

 

3년에 한번 십일조를 또 냅니다. 3년에 한번이니 한 3% 입니다.
제가 찾은 세개만 가지고도 이스라엘은 23%를 내야 합니다. 이것을 내지 않으면 도적질을 한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내야 합니다.

 

그리고 자원해서 내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막을 만들때 자원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너무나도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게 했습니다.
또한 성전을 지으려고 자원하여 드리게 합니다. 그들은 즐거워 하며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왔사옵고 우리가 주님께로 돌려 드립니다. 우리가 무슨 드릴 힘이 있어 드리겠습니까"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금입니다.
구약에 있어서 십일조는 바로 세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곧 국가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오늘로 보면 공직자 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으로 오면 우리는 세금을 내는것을 아까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금을 내는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대모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헌금은 자원해서 내는 것입니다. < 마음에 정한대로 할것이요 >
안내도 됩니다. 많이 내도 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보면 십일조는 반드시 냈었고, 자원해서는 내는것은 항상 넘쳤습니다.
헌금은 자원해서 내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헌금을 한다면 기쁨으로 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음세대에 이 말씀을 넘겨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 이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잘하고 있었으나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다음은 로마에 인해서 핍박받는 시대의 서머나 입니다. 버가모는 로마 카톨릭입니다.
쭉 지나서 사데교회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곧 회복입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와서 교회진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 타락의 역사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음의 진리와 교회진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빌라델비아처럼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일때 우리의 촞점은 주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것은 주님만 바라보기 위해서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는것입니다.

 

모인다는것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 입니다. 성령님께서 불러 모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는 배교한 교회입니다. 주님을 교회밖에 둔 교회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여러 형재자매들이 나옵니다. 붸붸 자매가 나오는데요. 로마교회에는 여러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었습니다. 중심지에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와서 머무르고 있다 가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포모임도 이와같습니다. 로마교회는 여러가지 다양한 사람들을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끌어가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행18:27, 개역한글)

 

아볼로는 에베소에 있다가 아가야 교회로 갑니다.
아가야 교회는 교사들을 초청해서 컨퍼런스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고 아가야 교회 입니다.
데살로 교회는 또한 자기가 속한 지역을 복음화 하는데 애썼던 교회 입니다.
로마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지킨 교회 입니다.

 

우리는 각 지역 모임의 특성을 세우고 주님 오실때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해가는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러한 길을 계속 걷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