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고린도전서 강해 < 7 >

박이레 2022. 7. 11. 22:49

2014.10.1.수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고린도전서 강해 < 7 >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5:1-5, 개역한글)

 

우리들이 잘 아는대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에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항상 이방의 물리적, 정신적, 문화적인 공격하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위험하게 그 나라를 끌어오고 있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를 보겠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세상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번째 안전 장치는 우리가 죄를 보면 놀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는중에 한 가족이 와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는데 조금후에 소주를 꺼내 남편이 먹는모습을 보는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이 같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세상은 이것이 죄인가? 라는 것을 세상은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이혼이라는것은 옛날에는 없던 단어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연예인들이 이혼합니다. 그것이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사람들은 자연히 죄에대한 안전장치가 사라져 갑니다.

 

결국에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부가 싸우느니 이혼하는것이 자녀에게 낫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부부는 어떤 경우에서도 이혼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이며, 아내는 교회입니다. 주님과 교회사이가 깨질수 없듯이 부부사이는 결코 깨질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속에 빠져 결국에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이혼하는 부부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 가운데 분쟁이 있었습니다. 한 지역교회 안에서 서로 지지하는 사람에게 속했다고 분열이 있었습니다.
이 이유는 세상적인 지식이 교회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며, 말씀이 높여지지 않고 사람의 지식이 높아지며, 하나님이 높아지지 않고 사람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분열은 정신것이며 내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5장에 오면서 그 죄가 육체적으로 드러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반드시 죄는 다른죄를 불러들인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는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음행이라는 육체적인 범죄까지 나타났습니다.
교회내의 분쟁은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음행은 세상이 그 죄를 알게 됩니다.

 

만일 교회가 세상보다 더한 죄를 지으면 교회는 더이상 세상에게 아무말도 할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정죄할수 있어야 하며, 죄를 보고 놀라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훌륭한 교사를 두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바울과, 아볼로가 가르친 교회입니다.
그 훌륭한 교사들이 가르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범죄가 있을수 있다는것을 기억하십시오.

 

첫번째로 교회는 교회가운데서 일어나는 범죄를 민감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아비의 아내를 취한 범죄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범죄가 아닙니다. 이일은 상당한 기간동안 지속되어진 범죄입니다.
그리고 이 범죄가 이혼을 전제로 한 일이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의 죄를 한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모는 믿지 않은 여자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명백하게 말한 근친 결혼이었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이 소식이 고린도 교회의 모든성도들이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오히려 교만해 졌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교만해 질수 있을까요?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는 은사가 많다 > < 어떤 죄를 짖더라도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간다> 라는 방종의 생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다 꾸짖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였느냐?"
통한히 여긴다는것은 이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때 남은 자녀들이 죽은 가족때문에 느끼는 감정> 입니다.
이 범죄는 한 그리스도인이 죽은것과 같은 범죄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통한히 여겼어야 합니다.

 

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1:3-4, 개역한글)

 

느헤이먀가 들은 소식과 그 반응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4절에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진정 통한히 여기는 자의 자세입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는 교만했습니다. 교만이란 항상 자신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범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잘해 나갈수 있다라는 근거없는 자신감, 그것이 교만입니다.

 

교회란 주일날 좋은 말씀을 듣고 은혜가 되었다 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역교회는 영화관, 극장이 아닙니다. 영화를 같이 보는 여러사람들과 상관이 없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악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며 함께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때 우리는 어떻게 조치를 내려야 할까요?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5-17, 개역한글)

 

이것이 교회에서 죄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어떤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을 최초로 알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경찰이 아니므로 먼저 수사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죄를 최초로 본 사람은 조용히 그 형제에게 가서 회개하고 돌이킬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이런문제는 비상식적으로 커집니다.
그러므로 그 잘못을 알게된 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그 형제에게만 권면하십시오.

 

그럼에도 그 형제가 돌이키지 않을 경우에는 두세 명의  증인으로 증거를 삼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논쟁이나 싸움이 아닌 증거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돌이킬것을 거부하면 이 일을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장로들은 온교회를 모아서 징계(출교)합니다.

 

출교는 예베당에 못나오는것이 아닙니다.
예베당에는 나올수 있으나 떡과 잔에 참여할수 없고, 형제로서의 그 어떤 공식적인 일도 할수 없게 되는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이 되기전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5:2, 개역한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5:4, 개역한글)

 

< 너희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   < 너희가 내영과 함께 모여서 >
이 구절은 지역교회의 독립성을 이야기 합니다.

 

지역모임은 독자적으로 처리합니다.
외부모임은 상관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일은 지역모임 안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징계를 하려 할때에 항상 반대를 합니다. 이 반대의 이유는 사람을 잃는다 라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 예수의 일을 훼손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장로의 일을 할때 가장 어려운 일이 징계의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주예수의 능력으로 >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18-20, 개역한글)

 

땅에서 매는것, 출교를 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겠다는 뜻이며 땅에서 푼다는것은 무죄판명 입니다. 교회가 무죄로 선언하면 하나님께서도 무죄로 보시겠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하셨을 일을 교회가 행하면 주님께서 그 일을 인정해 주신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은혜아래 있는것과 세상의 지배아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제 가운데 있으면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출교가 되면 그 사람은 사단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무서운 말입니다. 그럼 사단은 이렇게 합니다. 그의 육신을 멸하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사단이 욥을 괴롭게 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내어 주신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그 몸이 사단에게 내어준바 되었지만 그 영혼은 안전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의 날에 하늘로 인도될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사단에게 내어줄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을 멸한다는것은 무슨 뜻일까요?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만찬상에서 합당치 못하게 행한자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죽거나 병듬)
육체를 멸하는것은 징계를 받음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가질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그리스도인의 세상의 삶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상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더욱 낫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 옆에 있는 성도의 행동에 영향을 바로 받는 하나의 몸이어야 합니다.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서로사랑하며 서로 붙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죄악이 생기면 성경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에 징계가 없다면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행5:13, 개역한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징계를 받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이 일을 가지고 교회를 비난할것입니다. 헌금을 했는데도 징계를 받았다고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이 있더라도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때에 세상사람들은 교회와 상종하지 못하나 교회를 두려워 하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가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는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5:3,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지금 현재 에베소에 있으며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 내가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것 같이 이일 행한자를 판단하였노라 >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2:5,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골로세 교회를 향하여 비슷한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죄가 일어났을때 사도바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 죄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그 첫번째 행동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고린도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그와같은 죄에 대해서 이와같은 결정을 내렸노라 라고 말합니다.
행동하고 있지 않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해다오 라고 사도로서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구약에서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이 왔을때 그 병을 고쳐줍니다.
종인 게아시가 나아만에게 돈을 받았을때 엘리사가 그것을 심령으로 알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그죄의 결론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8-9, 개역한글)

 

요한일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나타내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요한일서 1장에서 요한은 1-4절까지 사람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1장 5절-2장6절 까지는 죄에 대해서 말합니다.

 

세상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이세상에 사람이 되어오신 창조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인정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독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것과,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하며, 그 죄가 드러나면 그 죄를 변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시인하며, 그 죄를 자백합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다윗입니다. 다윗의 죄에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당신이 죄인이라 하였을때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없다 하는것은 < 영지주의 > 입니다.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대합니다.
죄를 자백하면 용서받는것이 아닙니다. 죄용서의 근거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용서의 원리 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2, 개역한글)

 

성경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죄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 이상으로 죄는 엄숙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도 숨길수 있을거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또한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죄가 있을때 교회는 이것을 이중적으로 처리해야합니다.
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되며, 죄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이 작은 죄라도 막아야 하며 그럼에도 죄인을 사랑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대목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어떠한 분인지를 궁극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은 죽어도 해야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목숨을 걸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고서 손해본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모양이라도 죄를 버리십시오.
이렇게 사는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나, 성도님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것은 내가 그 죄를 다룰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혹 예외가 있을수 있으나, 특별히 그일을 행할수 있는자 외에는 대부분 그 일을 할수 없습니다.

 

또한 죄를 처리할때 그 죄인에 대한 긍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시선과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이일을 처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5:3, 개역한글)

 

여기서의 판단은 출교가 아닌 < 그와같은 절차를 밟았다 > 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뜻입니다.
모든것을 성경대로 수순을 밟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그와같은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죄를 누군가가 지적하면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특별히 증인이 와서 있을때 우리는 정말로 두려운 마음으로 돌이키는 수순을 밟아야 합니다.

 

출교는 단순히 그가 교회밖으로 나가는것을 결정하는것을 드러내는것 뿐입니다.
어디에 속하시겠습니까?

 

교회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성장의 모임입니다.
이 주님께서 주신 교회를 거부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세상이 교회를 보고 감히 상종할수 없는 그러한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를 통해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