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26.금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고린도전서 강해 <4>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6-16, 개역한글)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항상 세상의 지혜가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말합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비교합니다.
그리고 2장에 와서는 참된 지혜는 사람이 추구해서는 절대 알수 없고, 하나님이 은혜로 알려주셔야만 알수 있다 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입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개역한글)
사람들은 세가지를 이해(알아야)해야 합니다.
1. 나를 둘러싼 환경은 어디서 온것인가 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다른사람과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환경속에서 기뻐해야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평안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통치안에 들어갈때에 누릴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엡4:13, 개역한글)
우리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참된인간,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그사람을 보면 그것이 참된인생이라고 말할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온전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임을 명시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때 온전하게 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번째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거하며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한사람으로서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수없고, 닮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만 알수 있고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문제에 당면하였을때 우리는 그 문제를 세상의 지혜로 풀어갈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지, 왜 인간이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하는지, 왜 죽음이 오게 되었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모임또한 주님안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 고민에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만 해결해야 합니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2:6-9, 개역한글)
이 세상의 지혜는 사라질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지혜입니다.
잠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보장되어지지 않은 지혜입니다.
관원 : 가야바나 빌라도같은 종교적, 정치적 지혜
-> 그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수많은 지혜를 말합니다.
-> 인류의 4대 성인, 많은 스승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영원할수 없습니다. 그이유는 9절에 나온것처럼 직접 보고 듣고 생각하여 생각해 낸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철학이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거시적은 말하지 못하고 세부적인 심리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수천년간 사람들이 철학을 연구하였으나 진리를 알수 없는 한계에 부딧히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때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과 권위에 놀랐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권위를 빌리지만 주님은 다른 권위를 빌리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영광의 주님은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한 죄인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죄인들을 구원하사 다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죄인들에게 죄를 뭍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의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안에 성령님을 두셔서 주님을 닮아가게 하며, 이후에는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일수 없는 지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성령님을 사용하사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30-31, 개역한글)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이 번역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21, 개역한글)
사람들은 의를 자신이 이루어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손에서 의를 받아갈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속하심이 의인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개역한글)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렇게 볼때 우리가 주님처럼 변화되어 갈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1:18, 개역한글)
구속은 죄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그 값을 치룰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값을 치루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갈6:14-15, 개역한글)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나와 세상은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켰고,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지혜가 괭장히 존중히 여겨지고 하나님의 지혜가 무시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성경이 많이 보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분해 나갈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를 교회에 들이면 반드시 실패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보통 특정한 경우에 안락사를 허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그것이 맞습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것이 무슨의미가 있어 보입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생명을 거두시는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생을 살다보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하나님께서 찾지 않고 세상에서 찾고자 합니다.
교회또한 성도님들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야 할까요?
인재, 프로그램, 물질적인 지원이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이것들은 모두 세상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떠한 것일까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 개역한글)
하나님은 첫번째로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3, 개역한글)
두번째로 하나님은 영감을 주십니다. 계시받은 말씀을 사도들은 성경으로 옮겨 적을때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영감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개역한글)
"이런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2:15, 개역한글)
세번째는 하나님께 조명을 받습니다.
계시는 오직 사도들만이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영감된 단어로 성경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그 말씀을 깨닳으며 조명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쓰시게 하신것이기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습니다.
또한 영감되었기에 그 내용이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모든시대, 모든 형편에 적용할수 있습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4:13, 개역한글)
첫번째 성경을 교회적, 개인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두번째 권함, 즉 그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세번째 말씀의 뜻과 적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 개역한글)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딤후4:3-4, 개역한글)
디모데후서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따르지 않고 다른길로 가더라도 오직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구원받은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교정받아야 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2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8:1-3, 개역한글)
느헤미야서는 성벽과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전이 재건되었을때에 이스라엘에게는 다시 부흥이 찾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합니다.
1. 학사 에스라가 성경을 폈을때 모든 백성이 일어났습니다.
->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을 나타냅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느8:6, 개역한글)
2. 에스라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3. 모든백성은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느8:7, 개역한글)
에스라가 말씀을 전하고 그 뜻을 아는 모든 레위사람들이 그 뜻을 백성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느8:8, 개역한글)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하면서 히브리어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가르침을 받아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8:9, 개역한글)
그리고 백성들은 그 말씀의 뜻을 깨닳았을때 모두 울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기 때문 입니다.
이와같은것이 교회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성도들이 매일아침 일어나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단순히 성경을 읽는것이 아닌 그 말씀을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어떤 형제님이 저에게 이런말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도 슬슬 두분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말씀 공부에 참여하는 성도님들, 또한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 물질적으로 교회에 도움을 주는 성도님들로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을 공부하는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뉘는것은 니골라당, 곧 성직자제도를 나누는것과 같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그것은 나뉘어져서는 안됩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많은 레위사람들이 돕습니다.
우리모두는 습관적으로 30분 말씀을 일고 끝내는것이 아닌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행하시는 이유와 목표를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느8:10-12, 개역한글)
성경을 읽고 우리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하는일은 늘상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에게 놀라움과,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에서 백성들은 그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13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14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느8:13-16, 개역한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초막절을 지킴)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해석하고, 그것을 이해되면 우리 안에서 슬픔과 감사와 참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으로 이루어 집니다.
사람들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의 높으신 뜻에 도달하는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조명으로 인해 우리는 깨닳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진 일이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꼭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모임초기에 있던 사람이 아니기에 모임 초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1세대는 70년대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2세대의 시기입니다.
1세대에는 말씀을 몰랐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1세대 에서는 구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기뻐하고 감격하였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고 알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말씀에 촛점이 잡힌것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과, 귀를 신경쓰며 주변의 지역교회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비켜가고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실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것을 따랐습니다.
깊은뜻을 이해하진 못했으나 너울을 쓰라면 썼고 모든 집회를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씁니다.
예전에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개인을 강조합니다.
과거에는 예배에 집중하였다면 지금은 전도와 성장을 말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이 지금의 교회를 말해줍니다.
우리의 지식은 지금 너무나도 얄팍하고 아는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하나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우리에게 주신 조명을 우리는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계시하셨으며,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적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취심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1, 개역한글)
아무리 아끼는 애완동물이라 하더라도 그 동물은 그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마찮가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3, 개역한글)
하나님은 모든것을 영적인 단어로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개역한글)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이 보기에 미련해 보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말도 안되게 들리는 것입니다.
결코 그들의 지혜로는 깨닳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만 이것을 깨닳을수 있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2:15, 개역한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닳은 사람은 주님을 닮아가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가집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사람이 결코 판단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혜를 총 동원해서 그리스도인을 판단하려 한더라도 세상은 결코 그리스도인을 판단할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고 닮아갈수 있는것입니다.
6절의 온전한 자는 신분적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당하게 주님앞에 서야합니다.
모임또한 합당한 모습으로 주님앞에 서야 합니다.
주님이 쓰신 단어에는 모든 이유와 의미가 있으므로 우리는 공부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교회와, 외부 형제님들에게 물어야 하며 알아야 합니다.
그럴때에 주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주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129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33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시119:129-133, 개역한글)
이와같은 고백이 있길 원합니다.
주님의 생각이 기이함으로 사람은 깨닳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가 사모하고 목마른사슴이 물을 찾듯이 찾아야 하는것입니다.
주님의 영원한 능력에 힘입어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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