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누가복음02_주님의 권세

박이레 2022. 7. 11. 22:42

2017년 5월 5일 금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누가복음2_주님의 권세 >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5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눅20:1-19, 개역한글)

예수님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예루살렘 성에 왕으로 들어가시고 들어가시자 마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앞장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내용은 이어집니다. 그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나와서 묻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같이 하는가?"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하나님)의 권세로 이와같이 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전에 이렇게 물으십니다.

4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5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20:4-8,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더이상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더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백성을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눅20:9-16, 개역한글)

이 아들은 주님이십니다. 이 아들을 아버지가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권세로 와서 이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님을 죽일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사람이 버린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될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영원한 나라의 기초가 되실것을 암시합니다.

이말을 듣고 종교 지도자들이 즉시로 잡고자 하지만 못잡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 당시 서기관 대제사장 장로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처음 질문합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가?"

이 일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린 일입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십니다.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일을 주님께서 공생애 끝에서 또한번 하십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3년간 말씀하셨어도 종교지도자들은 그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습니까? 그리고 이일을 할 권한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첫번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기존 종교체계의 항상 있는 문제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고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느헤미야서의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성경을 인용하셨을때에 그 말을 듣는자는 그것이 성경적인가 또 성경에 맞게 행동하는 가를 봐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게 보지않고 '권한을 어디서 얻었는가'로 보았습니다.
세상에서도 어떠한것을 볼때 그것이 성경적인가에 대해 보지 않고 "신학을 어디서 배웠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성전에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대제사장의 승인하에 장사를 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에게 "내가 쫓애내도 되는가
?" 라고 묻지 않으시고 바로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복음을 전할때 그와같은일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대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고 '무슨 권세로 복음을 전하고 앉은뱅이를 고쳤는가'라고 묻습니다.
이와같은 것이 기존의 종교체계가 항상 하는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일하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병든자를 고치십니다. 그때 바리세인들이 안식일에 병고침을 책합니다.
그리고 이 병고침을 받은 자는 38년간 병든자였습니다. 위급한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이유는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신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행동의 근거를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대답을 할지 알고도 또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에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또 물으면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대답할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성모독죄라고 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지 않으시고 먼저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침례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냐?"

침례요한은 스스로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다음에 오시는 이가 참 메시아이고 회개하고 죄용서를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침례요한은 자기의 권한을 받을 근거를 이사야 40장에서 입증했습니다.

침례요한은 한번도 기적을 행한적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 빈 광야에서 사역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립니다. 왜냐하면 그가 회개를 통한 죄용서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침례요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침례요한의 침례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침례요한의 침례를 받아들이면 평소에 백성들 앞에서 자기들이 의로운 자라고 했던 주장이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스스로 죄인임을 알았지만, 그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위신이 추락될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위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인이지만 죄가 없는척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고통입니다.

침례요한이 침례를 어떻게 전했는가 보겠습니다.

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눅3:3-15, 개역한글)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
회개는 자기가 죄인인것을 시인하고 그 죄가 용서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죄 용서의 비유입니다. 죄용서는 숨어있는 죄가 드러나야 합니다.
다른사람은 모르지만 나만이 아는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든 산과 작은산이 낮아지고>
교만과 자기의가 낮아져야 합니다.

<굽은것>
외곡된 것입니다. 똑바르지 못한것입니다.

<험한길>

이러한 죄들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와같은 죄가 해결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는것이 회개입니다.

<장차 올 진노>
회개의 두번째 요소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내리라>

하나님앞에서 그 죄를 피할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그 죄를 숨길수 있을찌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수 없습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죽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세번째는 종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로, 의식의 결과 용서 받을수 있다고 하는것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교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네번째, 구원은 혈통에 있지 않습니다.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가로되>
다섯번째, 이 회개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욕먹는자 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로마의 편에 서서 백성들의 돈을 빼앗아다 로마에 갔다 바치는 배신자였습니다.

<정한 세 외에는 늑칭치 말라>
<군병들도>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인이지만 백성들에게 죄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변화가 와야 합니다.

이것이 침례요한이 전하고 있는 회개의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내뒤에 오시는 이를 믿어야 한다>

다시 누가복음 20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했을때 백성들은 침례요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신용이 떨어질것을 우려하여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에 지도자들은 난처해졌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모르겠다."
모른다고 하는 대답에 대해서 몇가지 살피겠습니다.

첫번째로 그들이 정말 모른다면 그들은 인도자 자격이 없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들은 어떤 메세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세지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인도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눅20:6, 개역한글)

두번째로, 그들은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관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누리고 있는 특권을 좋아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애매한 중간지대에 숨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이와같은 태도를 취하는 자들은 진리를 아는 자가 아닙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 순종할 마음을 가진 자에게 주님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이제 종교 지도자들은 더이상 하나님께 계시를 받을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이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입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사5:7, 개역한글)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눅20:9, 개역한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낳을수 없는 이삭을 만드시고 자손을 번성시켜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농부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인도자들입니다.
인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키울것을 당부하고 가신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20:10, 개역한글)

기일이 지나 소출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백성다운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들,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와같은 열매가 없는 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종들을 죽여버렸습니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바라보시는 이스라엘의 역사 입니다.

이제 마침대 주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십 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침례를 받을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침례요한도 이를 거부합니다만,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죄있는 이스라엘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보내면 들으리라고 기대하신 것입니다.

아들은 종들과 다릅니다.
종들이 원한 것은 소출입니다. 그 열매가 잘 맺히고 있는지가 종들의 관심사 입니다.
아들은 주인의 후사 입니다. 그 포도원 자체가 아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포도원을 관리하는 농부들이 아들을 죽입니다.
"이사람이 그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으니 죽이자"라고 하지 않고 "아들이니까 죽이자"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죽였습니다.

왜 입니까?
자기가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문제점은, 종교 지도자들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아닙니다. 자기는 맏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이건 교회건 하나님은 인도자를 세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복수의 자격있는 장로를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장로들, 왕들, 사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이 인도자들이 기억해야 할것은 자기는 받은자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도록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잇습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가 원하는 열매를 맺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내말을 듣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게 해야 합니다.

<차지하자>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부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이유입니다.

그다음 주님께서 뭍습니다.

15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눅20:15-16, 개역한글)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이스라엘이 포도원인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말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멸망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후 2000년간 흩어져 살고 이스라엘은 국가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포도원은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을 치우시고 열매맺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세우십니다. 열두사도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가르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후회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 주님께서 오신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십니다.
14만4천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을 버리고 새롭게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딤전6:20, 개역한글)

<너에게 부탁한것을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번역하면 네게 맏겨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게 부탁하고 맏긴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이것이 십계명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맏기신 것입니다.

창조후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아브라함에 알려주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교회에게 맏기신 진리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성령 하나님이 계신 것이 있습니다.
이 진리들을 우리는 보존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게 알리셨다> <이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이와같은 진리들은 디모데에게 지킬것을 부탁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1:14, 개역한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맡겨진 아름다운 진리들>
하나님에 대한 복된 사실들, 이것을 우리가 지켜내야 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4:13, 개역한글)

일꾼들은 성경을 일고 가르칩니다.
가르친다는것은 성경을 설명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고 적용할것을 권합니다.

읽고 가르치고 적용하는 것을 매일 해야 합니다. 교회가 여기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교회가 여기에 실패하면 하나님이 포도원을 버리듯이 교회를 버리십니다. 촛대를 옮기시는 것입니다.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눅20:17, 개역한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지만 그렇게 될것입니다.이스라엘이 그 아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대한 형벌로 이스라엘을 지워버리고 이스라엘을 사용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버린돌입니다. 그리고 모퉁이 돌이십니다. 여기에 부활이 드러나 있습니다.
...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20:18, 개역한글)

이제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주님과 어떤 관계로 있는가가 그사람의 생애의 축복을 결정할 것입니다. 주님이 과연 나의 주인인가? 이것이 심각하고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눅20:19, 개역한글)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눅19:47-48, 개역한글)

19장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은 죽이기로는 결정하였으나 백성들이 기쁘게 들으니 죽일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장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백성들을 두려워 했지만 즉시 잡고자 합니다.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왜 이런 변화가 왔을까요?
백성들이 종교 지도자가 잘못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으며 침례요한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죽일것을 예수님의 비유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는 이탈자들이 나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더 많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통제 밖으로 나갈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권세를 무엇입니까?
누구로부터 권위를 받았는가는 중요합니다.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제가 누군가로부터 이러한 책을 받았습니다.<나의 구원과 부르심>

해외에서 순회 전도자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은 내용이 기록된 책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일을 하는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것을 말씀으로 삶으로 행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자들은 자기가 맏은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끌고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도록 도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두가지 일중 하나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떠한 것도 용납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 예배를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무시하셨습니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행동하셨습니다.

바리세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사람의 보기에 굉장히 경건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세워가시는것과 무관한 일을 한 것입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22:25-27, 개역한글)

인도자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을 보겠습니다.
영적인 인도자들은 세상에 있는 인도자들과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아주쉬운 비유를 인용하셨습니다. <않아서 먹는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세상에서는 앉아먹는자가 큽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섬기는자가 큽니다.
세상의 관점과 교회의 관점은 아주 다릅니다.

교회의 인도자들은 낮아지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으라>

이스라엘 지역에는 먼지가 많아 밖에 나갔다 오면 발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발을 씻기는 종이 가장 천한 종이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희생함으로써 남을 세우는 것이 주님의 종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처음 들어가셨습니다. 20장에서는 기성 종교인들에게 주님께서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22장에서는 교회의 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원칙은 높은자가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원칙이 실행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소출을 맺고 주님을 찬양하는 그와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