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 누가복음04_만찬 >

박이레 2022. 7. 11. 22:43

2017월 5월 6월 토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누가복음04_만찬 >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눅22:8-22, 개역한글)

유월절을 주님꼐서 잡수시는 장면입니다.
그 앞의 부분을 제가 생략한것은, 그 앞의 부분은 주님께서 지상재림할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분을 생략하고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잡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침일찍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시키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을 보내고 감람산으로 나와서 거기서 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백성들과 없을때, 제자들과 소수만 함께 있을때에 주님이 체포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주님을 보면 체포하라고 현상금도 걸었습니다.
주님은 죽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때에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때에는 항상 예루살렘 밖 간람산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만찬을 제정하신 날에는 어두워졌어도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를 보내어 비밀리에 방을 잡으십니다.
<때가 이르매> 이것은 유월절 양잡을때 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22:15, 개역한글)

유월절 식사할 때가 이르러서 주님께서 제자들과 앉으셨습니다.
유월절때는 양 한마리를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가족단위로 12명 이상 20명 이하가 먹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앉으십니다. 가룟유다도 이때에 같이 참석합니다.

이것을 세상에서는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유명한 그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유대인의 풍습대로 그리지 않았기에 성경과 다른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식사이고 마지막 유월절 식사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것을 원하고 원하셨던것일까요.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을 기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걸로 바꾸시려 합니다.

유월절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두번째 더 큰 의미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양의 이미는 주님의 그림자 인것입니다.

이제 과거 출애굽을 기억하고 찬양하던 것을 이제 주님 십자가를 기억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출애굽할때 이스라엘은 육체적으로 애굽의 종된 것에서 해방됩니다.
삽자가는 영적으로의 해방을 말합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계속 지켜야 합니다.
이 유월절은 영영히 지켜야 하지만, 교회 시대에는 잠시 중단하고 만찬으로 대체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것을 바꿀수 있는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눅22:16,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후 하늘에 계십니다. 다시 공중재림하시고 지상재림하신 후 천년왕국때가 이르렀을때 다시 유월절은 시작될것입니다.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눅22:17, 개역한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어떻게 지켰을까요?
보통 가족단위로 모입니다. 가장이 유월절을 지킵니다.
유월절은 네번 잔을 돌립니다. 유대인들이 잔을 돌릴때 이 잔은 물론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를 물에 타서 희석시킨 것입니다.

첫번째 잔은 잡은 양의 피를 상징합니다.
잔을 돌린후 그들이 먹는것이 쓴나물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얼마나 고난받았는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후에 두번째 잔이 돌아갑니다.
그 후에 유월절을 진행하는 가장이 유월절 의식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출애굽 시키셨음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출애굽 은혜를 기억합니다.
세번째 잔이 돌아갑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만찬으로 바꾸신 잔입니다 .이것은 축복의 잔입니다.
이때 유월절 무교병을 먹습니다.
그리고 네번째 잔은 그리스도가 통치할 나라의 소망을 이야기 하면서 돌립니다.

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눅22:17-18, 개역한글)

주님께서 돌리시는 잔은 유월절 잔입니다.
이 때의 잔은 실제적인 어린양을 상징하는 잔입니다.

이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에스골 골짜기에서 아주 큰 포도를 나무에 이고 오는 장면리 있습니다. 곧, 포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포도를 다시오실때까지 마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대까지 비켜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유월절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유월절을 우리가 지킨다고 한다면, 주님께서 천년왕국때에 다시 먹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눅22:19, 개역한글)

이제 이것이 만찬에 들어갑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20, 개역한글)

이 세번째 잔을 주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잔으로 바꾸십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눅22:21, 개역한글)

이것은 무교병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쫓겨나듯 곧바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오늘은 구원받을 만한때입니다. 구원의 시급성을 주님은 떡을 통해 몸으로 바꾸십니다.

이것은 새 언약입니다. 곧 침례를 상징합니다. 새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 세겨집니다.
구약에서는 언약이 돌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람 밖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속에 세겨져 있어 사람이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은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나았다는 것은 그 사람 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순종하는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거절 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거부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교회와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영적인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시행되고, 거듭난 사라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뻐합니다.

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첫번째로 유다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사단이 유다를 통해서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십자가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유다때문에 주님께서 잡히신 것은 아니지만 유다의 기능이 있습니다.

곧 새 언약으로 시작된 이 교회에 늘 사단의 공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눅22:21, 개역한글)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께서 거절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내가 전하는 말은 내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게 일러주신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수 있는가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증거를 보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기적을 보이십니다. 그럼 이제 그 기적을 본 사람의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첫번째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님이 하신 믿음으로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그래도 예수님을 거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할수 있는 자유를 주십니다. 그것이 선악과 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오시고 자신을 증거하시고 기적들을 보이십니다.
그것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을수도 있고 거부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거부하는지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12:24,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기에 그들은 그 기적을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인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능력이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12:25, 개역한글)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개역한글)

이를 바꿔 말하면 '나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왕이니라' 입니다.
12장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물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고 13장부터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납니다.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3장에서 주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일곱번 일곱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일곱번이 나오면 항상 넷과 셋으로 나뉘어집니다.
예외없이 모든일곱은 넷과 셋으로 나뉩니다.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마13:1-2,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바닷가에서 무리들(모두)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거부되었기에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듣는 사람들중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깨닳을수 있고 마음이 강팍한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유입니다.

첫번째 비유는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24, 개역한글)

두번째 비유는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1, 개역한글)

세번째 비유는 겨자씨 나무 비유입니다.
작은씨였지만 어마어마하게 커져버린 겨자씨 비유 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33, 개역한글)

네번째 비유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이렇게 네가지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마13:36, 개역한글)

이번의 장소는 집이고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ㅍ하셨습니다.
총 세가지 비유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4-45, 개역한글)

첫번째,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입니다.
두번째, 값진 진주에 대한 비유 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13:47, 개역한글)

세번째, 그물 비유입니다.

이것들은 전부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거부하여 생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첫번째 특징은 사단이 공격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사단이 들어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승리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이 어떻게 공격할까요?

1. 첫번째,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사단이 교회를 공격할때 제일먼저 공격하는것이 말씀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새가 와서 먹어버렸고, 두번째, 돌받에 떨어져 뿌리가 없어 마르고 세번째 가시떨기에 떨어져 기운이 없어 마릅니다.

새가 먹어버린것, 성경에서 새는 항상 사단을 가르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마13:19, 개역한글)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13:20-22, 개역한글)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때 공격되어지는 것이 세가지 입니다.
사단, 세상,육신 세가지의 공격입니니다.

두번째는 말씀을 받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핍박이 일어납니다. 그때 팝박을 받으면서까지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세상의 염려 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만들어가는곳입니다. 그 교육을 말씀으로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집회, 말씀집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려고 하면 외적으로 방해가 있고 다른 일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는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라 할찌라도, 이와같은 공격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 두번째, 가라지 비유 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13:24-29,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밭에 알곡을 뿌렸으나 다음날 보니 가라지가 뿌려져 있는 것입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8, 개역한글)

좋은씨는 구원받은자고 가라지는 구원받지 않은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살지만 교회에서는 가라지를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우리가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꼭 사단도 일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성령께서 일하시면, 반드시 사단도 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있고 성도들이 잘 성장하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뻐한 후에 반드시 있을 사단의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 앞에 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금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아나니아같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속일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베드로에 의해서 이것이 밝혀지기전에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와같이 정말 성실해 보이는 성도가 성실한 사람이 아닐수 있습니다.
참되 보이는것이 아닌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3. 세번째,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사람들은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어마어마하게 자라납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성도는 겸손하게 순종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갑자기 키가 크게하는것이 있다면 이것은 부작용을 나을 것입니다.

모임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사람을 갑자기 영적으로 만들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입니다.
교회도 어려움을 당하고 하면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를 크게 할수 있다고 사단은 거짓말합니다.

4. 네번째, 누룩의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항상 누룩은 부정적으로 쓰였습니다. 누룩은 죄입니다.
작은것이 온덩이에 다 퍼지게 만듭니다.

교회가 잘 가고 있는데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작은것입니다. 그것을 내버려두면 그것이 온 교회에 퍼집니다.

모방하고 성장하고 침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격하고 비슷한것을 만들어내고 정상적인것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여 부럽게 하고 정상적인것에 아주 작은것을 집어넣어 변질시키는, 이와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와같은 공격을 받으며 이겨내며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22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시고 만찬을 제정하실때에 있던것이 있습니다.

첫번째 있었던 것이 가룟유다, <나를 파는 손>이며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

열한제자 사이에 사기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만찬자리에 있었던 어려움 입니다.

1. 유다 2. 그들 사이에 높아지려 하는 경쟁, 그리고 세번째로 3. 사단이 베드로를 공격하려는 시도 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22:31, 개역한글)

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눅22:35-36, 개역한글)

또 여기 보면 칼이 나옵니다. 4. 네번째, 세상의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그 세상의 공격에서 보호할수 있는 칼이 필요합니다. 이 칼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를 보호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네가지가 주님께서 만찬 자리에서 보고 있는 것들입니다.

1. 가룟유다
2. 제자들간의 다툼
3. 사단의 공격
4. 세상의 공격을 방어하는 칼

하나 하나 살피겠습니다.

가룟유다는 삼년간 주님과 있으면서 그 기적을 다 보고서도 주님을 믿지 않은 자입니다.
주님께서 가룟유다를 선택할때 주님은 그가 주님을 배반할것을 아시고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가룟유다를 선택하십니다. 곧 주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룟유다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열두제자 중에 왜 가룟유다를 집어 넣으셨을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기적은 주님을 믿지 않는자가 옆에서 다 보고도 인정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기적은 주님을 믿는자가, 열광하는 팬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고 하고 조그만것도 많이 했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아니라 반대자가 보는 가운데, 믿지 않는자가 참석한 가운데 냉정하고 기록하고 관찰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운데서도 가룟유다와 같은 존재가 있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 없었다고 할 사람이 배반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실때 우리가 첫번째로 극복해야 하는 고통은 가룟유다의 고통입니다.
우리가운데 가룟유다같은 사람이 나오면 주님께서 그를 어떻게 대우하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자마자 처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두번째, 제자들 간에 누가 크냐 다투었습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눅22:24-26, 개역한글)

이때 주님의 처방입니다.
그와같은 생각이 날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고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릅니다. 이것이 주님의 처방 첫번째 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여러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22장 28절)

그들은 여러거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시험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때 군중들이 예수님을 임금삼으려 하니 피하시고 제자들을 배타고 가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밤 중에 바다를 건너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물위를 걷다가 빠지고 주님께서 구원하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군중들의 입장에서는 주님께서 먹을것을 해결하신 위대한 분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시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흥분하지 말고 이 기적의 의미를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배를 타고 가지 않고 간 것을 보았기에 이곳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없으셔서 주님을 찾아 건너편까지 찾아갑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 살과 피를 마셔야 한다. 내살은 참된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사람들은 이말을 어렵다고 하며 다 떠나갑니다.
그때 주님꼐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시험하시고 얼마든지 갈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가룟유다는 이때 갔었어야 합니다만 가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제자들은 어려움 중에 있을때 무조건 주님편에 섰습니다. 주님만을 믿었습니다.

이 경험을 가지고 그들이 시험을 이겨낼 것입니다. 곧, 누가 더 크냐 하는 싸움을 이겨낼 것입니다.

세번째, 사단입니다.
사단이 베드로를 요청했습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고 저희도 다 사단이 시험하는 것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교회이고 거듭난 사람들인데 이런 시험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단이 시험할때 주님께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른것을 다 잃을찌라도 믿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생명의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패가 성도를 세우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성도를 세우실것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네번째, 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합니다.
우리가 가진 검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할것이요 이보다 큰일도 할것이니>

주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꼐서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내가하는 일을 하며 살것이다'
또 약속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에만 계셨지만 제자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세상에 복음을 전할것입니다.
세상은 주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세상에 있습니까?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기에 주님께서 이땅에 계셨다면 하실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주님께서 만찬을 제정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만찬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새 언약속으로 들어갑니다. 저희 죄와 불법을 다시 기적치 않으십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요,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여러가지 많은 공격들이 있을것이며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지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만찬을 제정하신 것은 교회를 시작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모든것이 편하게 가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격이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그 공격을 어떻게 받고 이겨낼지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하나님의 지혜대로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