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마태복음 강해 27

박이레 2022. 7. 10. 00:56

2016년 7월 27일 수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태복음 강해 27>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5-8,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모습 세가지를 지적하십니다.
이는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먼저 기도에 대해서 저희들이 오해하고 있는것이 있기때문에 살피겠습니다.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막9:2-3, 개역한글)

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9:14-29, 개역한글)

여기 기도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스토리를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명의 제자를 두셨습니다. 그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를 더 아끼셨습니다. 이 세명의 제자만을 데리고 특별히 가신곳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못을 보고 베드로가 너무나 감격을 받아 이곳이 좋아 초막 셋을 짖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 예수님께서 산에 계실때 산아래 마을에 있던 9명의 제자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것입니다. 그때 주변에는 많은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싫어하는 서기관들이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판에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는 난처한 일에 제자들은 봉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때 마을에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아들에게 들린 귀신을 쫒아내지 못함을 보고 믿음이 약해져서 "할수 있거든" 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꾸짓으시고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한 일이 없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쫒아내셨습니다.
이 일후 제자들은 예수님께 종용히 뭍습니다. "왜 우리는 쫒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은 "기도외에 다른것으로 이와같은 일을 해결할수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귀신을 쫒아내기전에 제자들이 다같이 모여서 기도를 했어야 옳았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막6:7, 개역한글)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막6:12-13, 개역한글)

제자들이 "왜 우리가 못했습니까?" 라고 질문한것은 이 6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간에게 주실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귀신을 좆아낼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제로 귀신들을 쫒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것입니다. 그에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기도 때문이다" 라고 하신것입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7, 개역한글)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 개역한글)

또한 귀신을 쫒아낸것은 열두명의 제자만 가능한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쫒는 70인의 제자들도 받은 권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습니다.

기도에 관한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찌어다
3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찌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겔36:32-37, 개역한글)

에스겔서 36장은 흔히 에스겔 복음서라고 불리우는 장입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소망과 약속을 주심을 전파하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복원될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그와같은 회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함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딱 한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구해야 할찌니라"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것입니다.

기도가 외 필요한가요? 무엇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요구하시는가요?

기도는 일이 이루어졌을때 일이 이루어졌을때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일이다 라는것을 분명한 장치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면 사람은 우연히 이루어진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그러한 일이 이루어졌을때 사람들은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일이다라고 고백하게 되는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이 귀신들린 아들을 쫒아낼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쫒아낼수 있는 능력을 예수님께 받았고 귀신을 쫒아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못쫒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기도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라는것은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에게 능력이 있고 그것을 행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귀신을 쫒아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하신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만이 능력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1, 개역한글)

영광을 받으실분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사람에게 영광이 주어져서는 안됩니다.
존귀, 가장 귀하신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무가치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신것입니다.
능력도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사람은 무가치하며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광과 능력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잊으면 안됩니다. 영광과 존귀,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열두제자에게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능력을 썼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는것입니다.
내가 그 능력읊 썼다 하더라도 그 능력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계5:12-13, 개역한글)

능력도 세세토록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자들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찬양하는것입니다.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계7:10-12, 개역한글)

여기서도 하나님께만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만 지혜가 있는것입니다. 감사도 하나님만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과 힘, 이 모든것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것이 기도입니다.

제일 나쁜 기도는 이런것입니다. 사람이 할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사람의 능력밖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것은 잘못된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고 우리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기도로 확인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봐도 기도는 잘 못합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할수 있는것 같기에 기도하지 않는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집회를 준비하면 그에 필요한 돈이나 물자가 없었기에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돈이나 물자가 갖춰져 있기에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구원받게 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적으로도 가능한것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패망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자격없는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스라엘이 구해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회복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것임을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귀신을 쫒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이 자기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것을 잊는다면 그 능력은 저주가 될것입니다. 재앙이 됩니다.

기도는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자랑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 나는 기도로 이렇게 잘 해결되었는데 왜 당신은 기도하지 않느냐? "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하신것입니다. 기도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9:1-7, 개역한글)

다니엘의 기도를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말씀때문에 기도합니다. (2절)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 전 앞세대 선지자입니다.

다니엘은 이 글을 일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된지 70년만에 해방될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 내용은 " 이제 약속된 70년이 되었으니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전에 우리에게 필요한것을 미리 아십니다.
하나님께 이러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도집회때 교회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는데 왜 기도하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다니엘서를 보면서 알수 있습니다.

40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43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레26:40-43, 개역한글)

이스라엘의 멸망은 예레미야가 직접적으로 예언했습니다.
레위기는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레위기에는 이스라엘이 망할것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 스스로 벌을 받았음을 깨닫고 그 죄악에 대한 형벌을 순히 받아야 합니다.
이 징계는 순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가 아닙니다.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한 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약속의 기간이 찼으니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히 그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이제 사람이 없습니다. 동물들이 있고 잡초가 무성히 자랄것입니다.

<땅이 안식을 누릴것이요>

이스라엘은 490년동안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70년간 희년이 선포된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에 대한 대가를 뭍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입니다.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교정하고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지혜앞에 서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을 하나님앞에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도 좋고 저도 좋은 왜 안하시나요?"
라고 기도하는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첫번째. 조건은 항복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이 뛰어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만이 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것입니까?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만드시고 나에대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1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5:1-2, 개역한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둘만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나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는 적게 말해야 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말씀과 같이 가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앞에 우리는 기도할때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함부로 말을 토해내서는 안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면 우리는 재앙을 만날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은 보기 좋아 보여서 기도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하고 돌아가는 자리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교훈하기 시작하십니다. 곧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열두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열두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될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호흡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쉬지않고 하는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수 있는지, 교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지고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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