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복음 : 인생의 참된 피난처와 안식과 쉼이 되시는 주님(요약)

박이레 2026. 10. 4. 12:44

복음 : 인생의 참된 피난처와 안식과 쉼이 되시는 주님/ 26년 10월 4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개역한글)

성경에서 우리의 연수가 70, 강건하면 80이라고 말씀하는데요. 이 부분도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 책인가를 알려줍니다.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가를 계산하게 됩니다. 현명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데 남은 시간을 계산합니다. 저희가 하나님 안에서 그같은 사람이 되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금부터 한번 계산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가? 만일 20년이 남아있다면 20년 전부를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해야할 일들을 하면 20년의 시간 중에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하나님께 드릴수있는 시간은 굉장히 짧은 것이 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사32:1-2, 개역한글)

여기 보면 한 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같이 다스려지는 나라는 현재의 시점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왕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이 세운 나라는 이같이 통치될수 없습니다. 우리가 조그만 단체에 들어가봐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공평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찐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찐저 (사28:1, 개역한글)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찐저" 영어 성경은 맨 앞에 woe라고 시작합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사29:1, 개역한글)

여기도 woe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사30:1, 개역한글)

이렇게 28장부터 33장까지 32장을 제외하고 모두 성경은 "화 있을진저" woe로 시작합니다. 인간의 범죄함으로 죄로 얼룩진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올수 있습니다. 인생들의 세상은 화가 가득한, 고통이 가득한, 슬픔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32장에 와서 "보라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라고 시작합니다. 그 왕은 오늘 우리가 예배드린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독생자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가운데 있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분이 이천년 전에 슬픔의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시고 무시를 받으시고 양팔에 못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지만, 지금은 다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왕으로써 의로 통치하실 날이 올것을 말씀합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사32:2, 개역한글)

비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제게는 우산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기 멀리 큰 바위로 된 굴이 있다면 저희가 그곳에 들어가서 비바람을 피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왕께서 저희들의 피난처가 되실 것을 말씀합니다.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저희들이 인생을 여행에 비유합니다. 저희들은 아주 멋진 집을 사거나 지어서 그 집에서 천년, 만년 살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저희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길어야 80년입니다. 사람들은 이같은 현재 모습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길어야 수십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개역한글)

사람은 우선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 심판이 있음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죽음 이후에 무슨일이 있을지는 사람의 지혜로 알수 없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여러 형제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는데, 그 전에 음부 가운데 고통하는 부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눅 16장 19절부터)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0:11-14, 개역한글)

누가복음 16장은 심판 전에 음부 가운데서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의 내용이 나와 있고요. 그리고 죽은 자들은 결코 다시 죽지 않습니다. 믿지 않고 죽은 그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들을 심판 받도록 내어줍니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은 불못에 던져집니다.
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을 처리하셨던 것인데, 그 용도가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십니다.

저희가 여행을 가는데 저 멀리 먹구름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비바람을 피할수 있는 바위굴이 있다면 그리로 피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을 피할수 있게 하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희들에게 가장 큰 폭풍우가 무엇이겠습니까? 죽음 이후에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피난처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그리고 우리가 사막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면 우리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갈증을 해결해줄 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냇물과 같은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3, 개역한글)

세상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여인은 여전히 목말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개역한글)

저희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저희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물이 저희들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수가성 여인인데 물을 뜨러 나왔다가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의 항아리는 비어있었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생수로 채워졌습니다.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한여름에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면 금방 지쳐버릴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피할 그늘, 안식처를 찾습니다. 이와같이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참된 평안과 쉼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개역한글)

우리는 돈이 많으면 잘 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이 더 걱정이 많은 삶을 삽니다.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이 더 평안한 삶을 삽니다.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들이 왜 자살을 합니까? 이는 인생에게 참된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명예나, 돈이나, 부가 인생에게 참된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에게 참된 피난처이시며, 안식처이시며, 쉼을 주시는 분인데요. 이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아가 방주를 짓고 이 세상에 물로 심판이 내릴것을 알았지만 그 사람이 그것을 알고도 방주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희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안다면 아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앞에 나아와 주님을 믿음으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