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복음

복음 : 참되고 정신차린 말

박이레 2026. 10. 3. 22:32

복음 : 참되고 정신차린 말 / 한봉래 형제님 / 26년 9월 20일 일요일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행 26:13-27).

거기까지,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에서 보면 복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뭐라고 전하냐면 "예수님이 왕이시다. 그분이 다시 오신다. 이분을 믿어야 된다." 이렇게 전하니까 이게 약간 오해가 생겨서 그 당시 로마에서는 로마 황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꾸 "예수님이 왕이시다."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이게 영적인 이야기인데 오해를 해서 사도 바울을 반역을 부추기는 사람으로, 황제를 잘 따라야 된다라고 말 안 하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왕을 잘 따라가야 된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지금 영적인 거죠. 그리고 영적인 이야기인데 이걸 정치적인 이야기로 오해를 해서 사도 바울을 로마 황제 황제에 대한 반역죄로 고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로마로 보내려고 하는데, 사도 바울을 로마로 몸만 보내면 안 되고 로마 황제한테 이 사람이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반역죄 같습니다. 로마 황제께서 직접 조사해서 처치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려고 재판을 연 거예요. 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물어보는 거예요. "너 왜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자꾸 왕이라고 주장하냐? 그러면 너 로마 황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렇게 조서를 꾸미기 위해서 재판을 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 누구누구가 나오냐면 '베스도'라고 하는 사람이 나오고 '아그립바'라고 하는 사람이 나오고, 두 사람이 나오는데요. 오늘은 제가 베스도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베스도는 로마 사람인데 이스라엘에 와서 총독이 됐습니다. 로마 황제가 "네가 이스라엘 총독을 해라."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에 와서 총독으로 일하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의 간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야, 너 미쳤다.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만 너 미친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이제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하냐면, 이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하냐면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사도바울이 구원 간증을 한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안 믿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내용이 뭐냐 하면 이겁니다. 자기가 자기도 안 믿고 믿는 사람을 미워했어요. 사도 바울도 그래서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없어져야 돼,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고백을 자꾸 하게 만들고, 끝까지 버티면 감옥에 넣거나, 죽이거나, 남자건 여자건,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이렇게 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다메섹이라고 하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메섹까지 가서, 외국이거든요. 다른 나라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재판을 받게 하고, 이런 생각으로 다메섹이라고 하는 도시를 향하여 가고 있었는데, 이게 사도 바울은 간증입니다.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메섹에 다 왔어요. 이제 다메섹에 들어가면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해보다 밝은 빛이, 이 세상에 해보다 밝은 빛은 없습니다. 해가 가장 밝죠. 그런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기와 자기 동행을 비춘 거예요. 빛이 비추니까 자기가 놀라서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리고 눈이 먼 게, 눈이 이제 안 보이게 된 거예요.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사울아, 사울아" 하늘에서, 이 멀쩡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이런 소리가 들렸다라고 간증을 했어요. 그랬더니 베스도가 "너, 미친 것 같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저희도 다시 보겠습니다. 저도 처음에, 이제 예수님 믿지 않고 처음에 대학생이 됐을 때, 대학교 1학년이 됐을 때 어떤 분이 저한테 신약 성경을 무료로, 기드온 협회에서 나온 신약 성경을 하나 줬습니다. 읽어보라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만들었죠. 그래서 그 후로 책을 찍어냅니다. 지금 현재도 여러 가지 책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찍은 책,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뭐냐? 성경입니다. 다른 책이 아니고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많이 사람들이 읽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생이 되니까 선배나 친구들이 "이거 베스트셀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이니까 한번 읽어봐라. 교양으로라도 한번 읽어봐라." 그래서 책 준다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때 맨날 공부하던 학생이고, 또 공부하려고 대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고마워서 책을 받아서 읽어봤습니다. 읽어봤더니, 아니 이상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병든 사람이 있는데 고친 거예요. 예를 들면 문둥병, 이게 불치병이잖아요. 예수님이 손을 대서 고쳤다는 거예요. 제가 그걸 읽고 어떻게 생각했냐면 '미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불치병인데.' 그리고 제가 보니까 예수님이 막 기적을 행하는 거예요. 떡 5개 가지고 5천 명을 먹인 것, 미친 소리다. 그래서 책을 덮었습니다. 저는 베스도가 이해가 돼요. 사도 바울이 구원과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됐는가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가 길을 갔는데 하늘에서 해보다 맑은 빛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멀쩡한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자기 이름을 부른다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미쳤다." 이렇게 하는 게 이해됩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로마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몰라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다든지, 성경이 있다든지, 이런 건 모르거든요. 그래서 자기로서는 그냥 로마에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이렇게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총독이 됐으니까 꽤 지위가 높이 올라간 분이죠. 이제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람인데 갑자기 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이 있고, 이렇게 뭐 십자가가 있고,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고, 이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이런 분에게 사도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보시겠습니다.
여기 성경 다시 한번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24절 보시겠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바울이 이같이 자기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까 "베스도가 크게 소리 질러"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하는 거죠. 확신 있게 소리 질러 "바울아 내가 미쳤도다" 이렇게 하니, 25절, 이제 이 대목을 저희들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이렇게 하고 "내가 미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미친 게 아니고요. 그리고 복음을 설명합니다.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 "참되고" 두 번째,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이 두 가지가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이 생각하는 상식적이고,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니, 구원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이런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게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은" 다메섹은 하늘에서 해보다 밝은 빛이 있었고, 하늘에서 내 이름을 막 부르고, 이와 같은 것들이 첫 번째, 1). "참된 말입니다." 두 번째, 2). "정신 차린 말입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된 말"은 뭐고, "정신 차린 말"은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26절,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행 26:26).

사도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걸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을 수 있죠. 이분이 정말로 죽고 부활하셨다면 해보다 더 밝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부활해서 하늘에 계신다면 하늘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핵심은 정말 예수님이 죽고 부활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고 부활을 어디서 하셨냐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곳에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스도가 예루살렘 총독입니다. 그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총독입니다. 그리고 자기 전임자가, 물론 바로 직전 전임자는 아닙니다마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서는 주님이 33세니까, 대충 30년 동안 주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30년간의 생활을 기록하고요.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30년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있고, 지금 베스도가 30년 전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스도는 빌라도 총독이 자기 전임 총독이죠. 전임 총독이 인수인계하고 그다음에 자기가 한 세 번째, 네 번째 총독입니다. 그러니까 30년 전 총독이니까 그걸 알아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총독이 됐으니까 이 이스라엘이 복잡한 나라인데, 아주 종교적인 나라예요. 다른 데는 없는 독특한 종교, 하나님이 계신다는 거예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가고 믿으면 천국에, 이걸 가지고 있는 나라예요. 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려면 이 사람들이 맨날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것과 관련해서 총독으로서 알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죽었냐? 예루살렘에서 30년 전에 이 일이 있었냐? 부하들에게 조사해 봐라. 이거 진짜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지어낸 이야기인지, 그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부활했다는데, 그때 목격자가 있냐? 진짜 부활했냐?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거냐? 알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게 참입니다. 지어낸 게 아니고 일어난 일입니다. 이게 참된 말입니다. 그다음에 "정신 차린 말"은 미친 게 아니고, '예수님이 정말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다면 나처럼 믿는 것이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지도 않고 부활하지도 않았다면 믿을 필요가 없죠. 미쳤다고, 그러면 맞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실제로 죽고 부활했기 때문에 나처럼 하늘에서 소리가 들릴 수 있다.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왜 없겠느냐? 라고 당연히 믿을 수 있답니다. 성경 하나만 더 찾겠습니다. 8절, 사도 바울은 이렇게 도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이 어디 있냐?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 도전합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이게 사도 바울이 도전하는 것이에요. "부활이 어디 있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어디 있어? 죽으면 끝이지."라고 하는 사람에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왜 못 살리겠습니까?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것이 무슨 못 믿을 것으로, 절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신단 말입니까?"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고, 그게 일어난 일이니까 그것을 당연히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죽은 사람 살리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시간 관계상 몇 가지만 찾아보겠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한번 쭉 성경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베스도가 "그래? 그러면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것이 예루살렘에 있고, 내가 예루살렘 총독이고, 그래서 그때 있었던 신문 기사, 또 혹은 뭐 여러 가지 작성된 기록들 를 가지고 조사를 해봐야 되겠다." 하고 조사하면 그는 이 같은 과정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마태복음 27장을 한번 가시겠습니다. 성경이 그때의 기록과 거의 정확하게,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빌라도 총독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이 같은 걸 만날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 27:24-26).

여기 보면 빌라도 총독이, 이 베스도의 전임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최종 승인자입니다. 그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결정해야 예수님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결정합니다. "좋아,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그 대목이 빌라도가 이렇게 했다라고 자기들 서류에도 나와 있겠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빌라도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 죽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지 안 죽이려고 그런 거예요. 그래도 자꾸 죽여달라고 하니까 빌라도가 자기가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있잖아요. 최종 결제를 한 사람이거든요. 자기의 결제가 없으면 예수님이 안 죽습니다. 자기가 최종 결정을 하고 이 결정에 대해서 "나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 내가 이렇게 결정했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서 책임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가 유대인들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습니다. "이 죄에 대해서 나는 무책임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너희들이 져라. 결정은 내가 했지만 책임은 니들이 져야 된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베스도 총독이 빌라도에 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죽이고 싶지 않았구나. 어쩔 수 없이 총독이지만, 총독이라고 그래서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백성들이 막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죽이게 한 거구나를 베스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왜 빌라도 총독은 안 죽이려고 했을까?' 왜 그랬을까? 이 대목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이건 요한복음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 복음서 기자들이 각각 관점에서 기록을 했기 때문에, 조금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에 조금 제가 왔다 갔다 하면서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왜 빌라도가 안 죽이려고 했는지가 나옵니다.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 19:6).

보니까 죽일 죄가 없는 거예요. 죽여야 할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다음에 7절,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7).

사실 어떤 죄 때문에 죽냐면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죽습니다. 이게 죄인 거예요. 유대인에게는, 빌라도한테는 그게 죄 아니에요. 그런데 보겠습니다. 8절, 이 대목을 베스도가 잘 봐야 합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요 19:8).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니까 안 죽이려고 했는데 정말로 안 죽이고 싶었어요. 정말로 하나님 아들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안 죽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한테 물어봅니다. 들어가서 "당신 진짜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이렇게 묻는 거예요. 그 대목입니다. 9절,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요 19:9).

"너는 어디로서냐?" 이 말은 "너가 정말 하나님에게서 왔냐?" 이 말이죠.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대답을 안 하세요. 대답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제 생각에도 예수님이 대답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안 하세요. 이게 의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그랬더니 빌라도가 화가 났어요. 이게 지금 내가 질문을 하는데, 그런데 내 말에 대답을 안 해? 기분이 나쁜 거죠. 그래서 빌라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네 생명은 지금 내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사인하면 너는 죽는 거고, 내가 사인 끝까지 안 하면 너는 살 수 있다. 네 생사 여부가 내 손에 달려 있는 내가 질문을 하는데 왜 대답을 안 하느냐?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12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야 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이렇게 대답한 겁니다. 왜 그렇게 대답한 거냐 하면 하나님께서, "위에서" 하나님께서 너에게 권세를 주신 것이다. 어떤 권세를 주셨냐? 네가 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다. 살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권세를 주신 분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네가 로마 사람인데 이스라엘의 총독이 된 것은 네가 로마 황제한테 잘 보여서, 또 로마 황제가 너를 인정해서, 이렇게 보낸 게 아니고, 그렇게 보냈지만, 사실은 내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를 이곳 총독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한 거예요. "나는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께로 온 분 같은 어떤 능력과 인격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안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또 예수님과 관련돼서 기이한 것은 이런 게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빌라도하고 관련된 것만 계속 찾겠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막 15:43-45).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혼자 사형 집행을 받으신 게 아니고 양쪽에 2명의 강도와 함께, 3명이 사형 집행을 받으십니다.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원래 단칼에 죽이는 게 아니고 이렇게 양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그 못에서 피가 흘러서, 피가 흐르고 흐르고 흘러가지고 죽는, 천천히 죽는 로마가 개발한 가장 잔인한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로마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로 안 죽입니다. 아주 잔인하게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잔인한 형벌입니다. 예를 들면 요즘에 저희들 같은 경우에 사형수를 죽일 때 이렇게 안 죽입니다. 금방 죽게 합니다. 고통 없이 죽게 합니다. 아무리 사형수지만 인간으로서 대우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때는 로마의 십자가는, 오랫동안 보통 한 이틀, 3일 걸리고 길게는 일주일까지 죽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빨리 죽여 주십시오." 왜냐하면 다음 날이 큰 날이어서 성경에 의하면 계속해서 시체를 두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유대인들이 와서 좀 빨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이제 로마의 총독이지만 이스라엘의 아주 지위가 있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 시체를 저한테 넘겨주십시오." 이렇게 하니까, 빌라도가 "벌써 죽었어?" 예수님의 죽는 시점에 대해서 빌라도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거 벌써 죽을 리가 없는데? 그리고 부하들한테 알아보게 합니다. 벌써 죽었나, 확실히 죽었나 보고 죽었으면 내줘라.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으로 다시 가시겠습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1-37).

여기 보시면 베스도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형할 때 있었던 일들을 조사하면 그는 이걸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놓고 유대인들이 "빨리 죽여야 됩니다. 목숨이 바로 끊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빌라도가 군인을 보냅니다. "빨리 죽이기를 원하니까 뼈를 꺾어버려라." 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못 박고 있는데 뼈를 꺾어버리면 버틸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피가 주르륵 나오는 거죠. 그래서 뼈를 꺾어라 그랬더니 군인이 알겠습니다 하고 여기 이제 3명이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가운데 있었습니다. 양쪽에 2명의 강도가 있습니다. 한 명은 구원받고 한 명은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어느 쪽인지를 모르는데요. 군인이 가서 뼈를 꺾습니다. 이쪽으로 왔어요. 뼈를 꺾어요. 빨리 죽도록, 그리고 순서상으로 보면 저희들 상식적으로 보면, 그다음 가운데 있는 예수님에게 올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세상을 통치하신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가운데 안 가고 이쪽으로 돕니다. 이쪽으로 옵니다. 그래 갖고 이 사람 뼈를 꺾어요. 그리고 세 번째에 이 예수님한테 옵니다. 그리고 뼈를 꺾어야 되죠. 그런데 꺾으려고 보니까 이미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뼈를 꺾을 필요가 없죠. 그런데 죽었다는 걸 확인해야죠. 죽었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라고 확인하기 위해서 옆구리에 창을 찌릅니다. 그랬더니 물과 피가 흐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 분명하다.' 하고 빌라도에게 가서 보고합니다. "빨리 죽게 하라고 하는데 했냐?" "예,했습니다."두 사람은요. 뼈를 꺾어서 빨리 피를 흘리게 했고요. 아직 살아 있던데요. 가운데 있는 예수님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확인하고 시체를 내주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기서 한번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 3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3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죽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두 사람은 강도입니다. 제가 상상을 집어넣으면 강도들은 강도짓 하려면 이게 맨 정신으로 못 하는 겁니다. 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이 두 분이 건강이 나쁠 거예요. 우리 주님은 담배를 핀 적이 없습니다. 술을 하시는 것도 없습니다. 죄 없이 사셨어요. 누가 먼저 죽어야 되죠? 주님이 가장 건강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장 먼저 죽습니다. 맨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막 함부로 살던 사람이 더 늦게까지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왜 빨리 죽었을까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자기가 내려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십니다. 베스도가 총독으로서 빌라도가 앞에 이렇게 쭉 이렇게 했었던 일들을 보면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사건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참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일어난 일입니다. 누가 지어내거나 주장한 게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정신 차린 말",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면, "정신 차린 말"은 뭐냐 하면 이제 내 죄가 용서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분이 지금 하늘에서 나를 부르신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분이 하나님 아들인데, 부활하셔서 하늘에 계신데, 그가 나를 부르실 수 있고, 이분이 다시 오셔서 모든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마치고요. 하나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7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고요. '부활'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혼자 성경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마 27:62-66).

빌라도는 이런 보고를 받습니다. "무덤을 지켜야 됩니다." 지금 시체를 넣어놨는데 이 무덤에서 혹시 제자들이 시체 가져다가 부활했다면 그게 거짓말하면 안 되니까 지켜야 됩니다. 빌라도고 보고 갖고 "오케이, 해라." 그리고 빌라도가 로마의 군인을 보내줍니다. 로마의 군인이 3일 동안 계속 그 무덤을 지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무덤에다가 인봉을 합니다. '이 무덤을 건드리는 사람은 로마법에 의해서 중이 처벌한다.' 이렇게 합니다. 여기까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빌라도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아마 기록해 놨을 것입니다. 베스도가 30년 전 서류 찾아보면 다 나옵니다.
그다음입니다. 28장 11절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켰는데,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마 28:11).

제사장에게 먼저 보고합니다. 그랬더니 ,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2-15).

다시 보겠습니다. 거기 읽어보시면 11절에,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무덤을 지키고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한테 일어난 일을 설명합니다. 일어난 일이 뭔지 잠깐 보시겠습니다. 28장 2절 보시겠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그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거예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 28:2).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 이게 무덤의 문입니다. 무덤 문인데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

이 보고를 합니다. 이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이 들어가서 이렇게 보고하고 이 보고가 빌라도에게까지 전해졌을 것입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우리가 무덤을 지키고 있었는데 지진이 일어나서" 우리는 지진이 잘 안 일어나니까 잘 모르는데 이게 아주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무서운 거죠. 그리고 보니까 천사가 와서 돌을 굴러내고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나셨다." 증거가 어디 있냐?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증거는 뭐냐? "누우셨던 곳을 봐라." 예수님의 시신을 넣었던 그곳을 가보면 거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빈 무덤입니다. 자꾸 말씀드리는데요. 유명한 분의 무덤을, 저희들이 예를 들면 마호메트 무덤이라든지, 공자님의 무덤이라든지, 이런 무덤을 사람들이 이렇게 잘 장식하고 거기 와서 또 돌아가신 날만 와서 또 제사도 지내고 기념도 하고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 무덤은 없어요. 예수님 무덤에 그렇게 안 합니다. 예수님도 해야죠. 예수님 무덤에 가서 사람들이 와서 돌아가신 예수님, 거기다가 헌화도 하고 같이 모여서 뭐도 하고 해야 될 거 아녀요? 예수님 무덤 안 해요. 왜냐하면 거기 없기 때문입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어요.
이제 이걸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시신이 왜 없어졌을까? 설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사람들이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가져갔냐? 가져간 사람이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갔거나, 예수님을 반대한 사람이 가져갔거나,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반대하는 사람이 가져갔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하거든요. 그런데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예수님 부활을 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럼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믿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 하면 시신을 제시하면 됩니다. 로마 사람들, 또 유대인 대제사장들이 권력자들이거든요. 예수님은 희생자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희생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권력이 있고 힘이 있으니까 예수님의 시신을 제시하면 복음은 끝입니다. 그런데 제시를 못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그래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가져갔을 리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져가서, 예수님은 죽었는데 시신을 숨겨놓고 예수님이 부활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두 사도들이 전하는데, 가룟 유다 빼고 열한 사도죠. 이 열한 사도들 사도 바울이 전하는데 이 사람들이 실제로는 예수님이 안 죽었다는 걸 아는 거예요. 시신이 있으니까, 그런데 숨겨놓고 사람들한테 부활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제 그런 가정을 한다면, 이 사람들이 전부 순교합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위해서 죽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부활을 진짜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을 위해서 예를 들면 이 당시에 예를 들면 누구죠? 네로 황제가 사도 바울은 목을 치고, 사도 요한 한 명을 빼놓고,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 유배되죠. 그래서 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사람들이 전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걸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해석은 뭐냐? 예수님이 부활하셨답니다.

그래서 하나만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눅 24:46).

예수님이 죽고 살아난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 뭐냐? 47절,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이 반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사함을 얻게 한다. 얻게 하려고 예수님이 죽으셨다라고 하는 것을 믿는다.' 이게 합리적인 반응입니다. 그래서 회개한다. 내 생각을 버리고, '아니, 무슨 사람이 죽고 사냐? 죽고 또 부활한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냐?'라고 하는 내 생각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왜 죽은 사람을 못 살리겠느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다. 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게 "정신 차린 말"입니다.
그래서 “참되고 정신 차린 말”에 대해서 꼭 개인적으로 성경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시면서 정말로 믿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이와 같은 생각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셔서 저희와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