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복음

복음에 나타난 세가지 :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

박이레 2026. 7. 24. 21:26

< 복음에 나타난 세가지 :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 > 한봉래 형제님 / 26년 7월 19일 일요일

제가 로마서 1장 16절부터 18절까지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로마서 1장 1절부터 조금 몇 절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1-4).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6-18).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16, 17, 18절입니다. 복음에는 세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1. 첫 번째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을 잘 들어보시면 복음이라는 단어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이니까 복된 음이니까 소리죠. 그래서 이제 영어로 하면 굿 뉴스죠. 좋은 소식입니다. 이 좋은 소식 저희들이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는데 이 복음에는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17절, 2. 두 번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의라고 하는 것은 옳다죠. 옳은 것, 맞는 것, 의죠. 그리고 18절은 3.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3개를 설명 드리려는데 우선 로마서 1, 2, 3절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

1절 로마서는 누가 썼냐면 바울이라고 하는 분이 썼는데 그분이 뭘 썼냐면, 이제 로마서의 주제가 뭐냐 그러면 '하나님의 복음'을 쓰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은 이제 '기쁜 소식'이고요. 사람들이 들으면 참 좋은 소식이다. 참 기쁘다라고 하는 소식인데, 이 소식을 누가 말했냐면 하나님이 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축복하기 위해서, 기쁨을 주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 이게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 단어를 성경에서 잠깐 좀 찾아보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이 이렇게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인데 사도 바울은 여기다 '은혜'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의 첫 번째 특징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하나만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1절입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딤전 1:11).

그래서 여기서는 또 하나님의 복음 가운데 '영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 단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뭐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두 번째 '영광'입니다.
1. 은혜의 복음은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제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자격이 없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그저 주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는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걸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걸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선물로 자격을 안 따지고 이렇게 주시는 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런 거죠. 우리가 한 짓을 보면 혹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면 받을 수가 없어요. 안 줘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 상관없이, 우리가 누군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성품대로 하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은혜로우시고, 또 긍휼이 많으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대로 우리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그런 분이므로 하나님답게 행동하시는 것, 이게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은 첫 번째 은혜가 그 중요한 요소고요.
2. 두 번째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축복하려고 하시냐면 영광스럽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지만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냐?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존재로,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아까 유다 나오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정말 고상하게, 정말 이기적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해 주고, 이렇게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주겠다.
이게 복음의 두 내용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것인데, 그 두 요소가 내가 은혜로 하겠다. 너희들이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해도, 너희들에게는 그와 같은 그것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내가 거저 주겠다. 이게 이제 복음이고, 두 번째는 너희들을 땅에서 막 경쟁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아웅다웅 살고, 그래봐야 겨우 가난하게 살고, 조금 살고 이런 게 아니고, 하늘에서 모든 것이 풍성하고, 더 이상 바랄 게 없고, 슬픔도 눈물도 갈등도 없는, 그곳에서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살게 하겠다. 이게 하나님의 복음의 두 요소입니다.

다시 로마서 1장으로 가시겠습니다. 로마서 1장 보면 1절은 "하나님의 복음을 내가 전한다." 로마서라고 하는 이 글은 하나님의 복음을 말한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행복하게 축복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복음이다. 거기에는 은혜와 영광이 들어간다.
두 번째, 이 복음은 그 복음의 내용이 뭐냐 그러면 "아들에 관하여"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복음의 주제가 뭐냐 그러면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겁니다. 복음 속에는 항상 예수님이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성경이 성경이 66권이나 되고 양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 66권의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다"입니다. 성경이 전부 뭘 말하냐면, 예수님이 누구며,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이게, 다양하게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간추려서 핵심만 말하면 예수님이 누구고 무엇을 하셨는가, 이게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다음에 2절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고 그다음에 3절, 4절은 아들을 소개합니다. 그럼 예수님이라고 하는 이분이 어떤 분이냐 그러면 3절을 보면 이분은 사람이십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그랬으니까 사람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33년을 사셨던 사람입니다.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상상해낸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이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라고 하는 분이 실제로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이 세상을 우리처럼 똑같이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냐? 첫 번째, 이분은 사람이다.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4절, 그런데 이분은 사람인데 하나의 특징이 더 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 아들이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아주 독특한 분입니다. 아니 사람이면 사람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분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세요. 이런 이상한 분이 있나요? 예수님이 그런 분입니다. 이분이 사람으로 쭉 사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셨어요. 그런 일이 어디 있냐 이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저도 처음에 성경 읽을 때, 친구가 이제 성경을 줬어요. 제가 이제 대학교 가니까 그때는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대학생들한테 기온원 협회에서 나온 파란색 성경, 신약 성경하고 시편 정도가 이렇게 있는 성경을 무료로 나눠줬어요. 그리고 "이거 한번 읽어봐라. 성경이 그래도유명한 책이다. 이게 상식적으로도 읽을 만한 책이다." 예를 들면 공자님 논어, 이렇게 하듯이 그 성경도 한 번 읽을 만한 책이다. 그래서 받아서 읽었어요. 읽었더니 기적이 막 적혀 있고, 제가 제일 못 받아들이는 기적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다녔대요. 이게 뭐냐? 아니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걷냐? 그래서 이제 안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그것보다도 제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예수님은 사람이신데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독특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에 관해서 써놓은 것이 복음입니다. 그분이 물위도 걸으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그다음에 바람을 향해서 "너 잠잠해라." 바람한테 명령을 하세요. "잠잠해라." 파도한테 "잠잠해라." 그랬더니 파도가 잠잠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우리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성경은 말하는 거예요. 이분은 사람이다. 여기까지 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죠. 그런데 하나님이시다. 이게 이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제 처음에 받아들이기 힘드시지만 조금 더 이 부분은 잠깐 접어놓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 이 생각 잠깐 접어놓고 이제 16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게 복음인데, 이 복음을 아까 이제 박용수 형제님이 복음을 전했는데요. 이 복음에는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 16절, 1).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17절, 2).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18절, 3).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이 세 단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인데요. 이건 성경을 하나만 찾고 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예레미야 13장 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구스인은 에디오피아 사람입니다. 흑인입니다. 흑인이 자기가 흑인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게 인종 차별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이 흑인으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자기 피부가 까만 게 싫었어요. 그리고 백인이 좋네. 아니면 한국 사람, 황인종이 좋네. 나 까만 피부 싫어. 그래서 싫으니까 그 피부를 하얗게, 혹은 황인종처럼 만들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또 한 번 말합니다. 표범은 이제 피부가 반점이 있죠. 표범은 이렇게 점이 있잖아요. 표범이 이렇게 태어났는데 표범이 그럴 리는 없지만, 표범이 생각해 보니까 자기 반점이 싫은 거에요. 나는 그냥 까마면 까맣고 갈색이면 갈색이지, 뭔 점이 이렇게 있나, 점박이 이거 싫다. 그래서 표범이 자기 피부를 바꿀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한 거죠. 그리고 이 예를 들어서 뭘 말하냐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죄인입니다. 죄인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왜 죄를 짓냐, 죄 짓기 싫다. 내 양심에 즉, 우리나라 시인 중에 윤동주라고 하는 분이 아주 유명한 교과서에 실린 시를 썼죠. "바람에 이제 흔들리는 잎새에도 괴로워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지요. 그런데 그것을 "바람 너 괜히 죄 없는 이파리를 왜 움직여?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렇게 양심이 민감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양심이 있다면 자기를 살펴보고 아, 나는 왜 죄를 짓지 자꾸? 내가 내 양심에 비추어 봐서 나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행동으로나 생각으로나 말로나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러면 좋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되면,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다라고 했을 때 우리가 가능하냐? 이거죠. 성경은 딱 답을 말합니다. 흑인이 피부를 바꾸려고 하는 것하고 똑같은 소리다. 표범이 반점을 없애려고 하는 시도하고 동일하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하나님 말씀 앞에 서 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선을 행할 수 없다. 악을 행하라, 잘합니다. 누구 욕하고, 비난하고, 뭐 이런 거 해라, 그러면 잘합니다. 금방 하죠. 그런데 선을 행하라. 그 사람을 위해 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용서해 주고 이렇게 해봐라, 그러면 그거 못 합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은 뭘 말하냐면 복음이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무슨 능력이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답니다. 사람은 못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냐? 이 죄인을, 맨날 죄만 짓고 남을 욕하고 누가 봐도 눈살 찌푸리는 행동만 하던 사람을, 그런 행동을 그치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하고 누가 봐도 칭찬받는 사람으로 하나님은 바꿀 수 있답니다. 이게 복음이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 수 있다. 겉에만 행동만 의인이 아니고 속까지, 그 마음속까지 의로운 마음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게 복음이 말하고 있는 첫 번째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복음인데, 그 복음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은 능력이 있답니다. 하나님은 나를 바꿀 수 있답니다.

2).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다시 로마서 1장 17절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뭐가 나타나냐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이 부분은 조금 이렇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계세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다를 아주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한 게 뭐가 있냐면 "하나님은 빛이다"라고 하는 문장이 있고요.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걸 아시지만 찾아보겠습니다. 저희들이 대전 중구 모임에서 요한일서 하면서 많이 찾았던 구절인데요. 조금 조금 어려운 구절이지만 다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하나님은 빛이시라"라고 하는 구절이 하나 있고요. 요한일서 4장 8절 보겠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가진 성품이 하나님의 특징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빛은 어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빛이 딱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이제 뭐가 문제가 되냐면 사람은 죄인인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선을 행하려고 양심대로 살려고 그래도 못 살아요. 그럼 이런 죄인을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되냐면 첫 번째,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납하면, 이 죄인을 살려주면 하나님은 거룩한 분 아닙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하나님이 죄인을 만약에 심판해버리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죄를 용서해야 되죠. 그래서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이 있는데 이 성품이 두 개가 우리가 보기에는 모순된 거예요. 하나님은 거룩하세요. 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죄인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이제 하나님에 대한 고민이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돼요? 만약에 우리 같은 죄인을 용납하시면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고 우리 같은 죄인을 심판하시면 사랑이 안 되는 거에요. 이 둘 사이에서 하나님이 사랑도 포기하지 않고 거룩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개의 요소가 모순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내셨어요. 그게 뭐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 죄인들을 용납할 수가 없어요. 죄인을 심판하셔야 돼요. 그런데 누구를 심판하셨냐면 자기 아들 예수님을 대신 심판하세요. 하나님은 거룩하시니까 예수님을 심판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세요.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두 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셨다. 이게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 말씀이니까 조금 쓸데없는 소리 하나 해보겠습니다. 성도님들이 아실 텐데요. 루터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라고 종교 개혁을 한 사람인데요. 이분이 원래는 이제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학을 가면 어디를 가야 되냐면, 요즘에는 의대를 가든지 의대 가면 돈 벌잖아요. 의대를 가든지, 아니면 법대를 가서 욕 먹지만 검사 판사를 해야 됩니다. 루터가 살던 시대도 우리 시대와 똑같습니다. 루터 아버지가 가난했거든요. 농사 지어서 "너 요 공부 잘하니까 너 가서 공부해라." 그래서 루터가 뭘 공부를 하냐면 법대를 들어갑니다. 우리하고는 입시 제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법학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때 독일이 우리 같은 도시화가 안 돼 있으니까 그 어느 날 이렇게 길을 가다가 번개가 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가 겁이 나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이제 평평한 들판에 번개는 치고 비는 오고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 살려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해버려요. 그러고 나서 살아났어요. 그러고 나서 그가 이렇게 하죠. 아하나님한테 그렇게 말씀을 드렸으니 법대를 전과를 합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합니다. 이제 아버지가 "너 이제 향토장학금 없다. 법대는 내가 돈 벌어서 고생해서라도 내가 가르치려고 하지만, 신학? 하나님 그거 알아서 그거 뭐 할 건데?" 그래서 이제 그가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래서 신학을 해서 이렇게 하는 가운데 자기 위에 있는 분이 "너 시편을 강의를 해라." 그래서 어느 성당에서 그가 시편을 계속 강의합니다. 그러다 그가 종교 개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요. 이게 유명한 구절이니까 한번 상식적으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시 71:2).

"주의 의로" 하나님의 의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그가 이 구절을 딱 만납니다. 시편을 계속 1편, 2편부터 성당에서 자기는 신부가 돼서 계속 성경을 설명하는 중에 72편 2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를 구원한다"라고 하는 이 구절을 놓고 그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뭐길래,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죠. 하나님의 의는 나를 심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의가 나를 구원한다라고 하는 것을 이 구절을 놓고, 그때 면죄부를 팔았거든요. 죄를 없애주는 서류를 팔았어요. 그래서 돈을 주면, 비싼 돈을 줘야 되죠. 비싼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죄가 없어진대요. 이게 사실은 성당 지으려고, 베드로 성당이니까 지금도 로마 가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베드로 성당 지으려고 보니까 돈이 부족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신도들한테 돈을 내게 하려고 "이거 사면 당신이 그동안 잘못한 것, 잘못한 죄 용서됩니다." 하고 판 거죠. 그때 이제 루터가 이 구절을 읽고 죄를 면해주는 것은, 죄에서 용서받는 것은 구원받는 것은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움이다라고 하는 것을 그가 깨닫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로움은 뭐냐 그러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면서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 두 개는 모순돼 보입니다. 거룩하면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그래서 거룩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구원하셔야 돼요. 그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게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온 세상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시는, 대신 심판을 받으시는 이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을 희생하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라고 나오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방법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찾으셨다. 이게 하나님의 의의 의미입니다.

다시 이쪽으로 오겠습니다. 다시 로마서 1장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는 하나님이 거룩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이 찾으신 것입니다.

3). 그다음에 세 번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 있습니다.
저번에도 아마 기억하셨는지 모르겠는데 박용수 형제님이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하신 분입니다. 지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서 제일 많이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합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아니 구원하실 분인데, 구원하려고 하시는데 왜 지옥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실까요? 형제한테 어릴 적에 같이 자라다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 해서 "미련한 놈! 바보!" 이렇게 했더니 지옥불에 들어간대요. 그리고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거기 지옥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데요. 지옥은 죽는 곳이 아닙니다. 계속 살아 있어요. 지옥에 들어가서 아마 죽고 싶을 거예요. 계속 불 가운데 있고, 구더기도 죽지 않고, 꺼지지 않는 불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어떻게 하냐면 울며 이를 갑니다. 지옥에 가면 회개하는 게 아니에요. 지옥이 진짜 있네, 이렇게 하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지옥에 들어가서도 계속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그러니까 지옥이 마땅한 장소가 되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세요. 이유가 뭐냐? 복음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이유가 뭐냐? 구원받아야 될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지옥이 있다더라, 착한 사람은 천국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 가야지, 그래." 이렇게 이제 동의하죠. 그런데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릅니다. 거기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 개념이 안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고, 영원토록 있고, 이를 갈고, 불 가운데 있는, 예수님은 아세요? 죄인들이 궁극적으로 가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아세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맨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지옥 심판을 대신 받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이 가벼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받는 고난이 그냥 한 번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외쳐야 되는, 어두운 3시간 동안 그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아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절대 와서는 안 된다.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죄의 형벌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몸을 죽이고 그 이상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을 죽인 후에 그 영혼을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로마서는 이제 복음을 설명하는 거예요. 복음에는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같이 강퍅한 사람도, 아까 이야기했죠. 유다 같은 죄인도, 다말 같은 죄인도, 천국에 합당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게 복음에 나타난 것입니다. 두 번째, 아니 그런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 만들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며? 하나님은 거룩은 어디로 갔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좋은데 거룩을 희생하면서 사랑하시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그리고 죄인들이 들어가야 될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그래서 반드시 복음을 믿어야 하고 복음을 받아들여야 된다라고 복음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복음은 하나님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전해주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기쁘고 축복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아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냐? 그러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입니다. 이 기이한 분, 어떻게 이런 분이 존재했는지, 이런 분이 뭘 했는지를 복음이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말씀과 이분의 인격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진노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