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은혜로 나아만을 구원하신 하나님 > 한봉래 형제님 / 26년 3월 15일
이어서 계속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한 사람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하 5장, 나아만이라고 하는 사람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가 구원받은 분이거든요.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5장 1절부터 19절까지 제가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찌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쌔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왕하 5:1-19).
아멘, 그리고 이제 신약 성경에서 이 구원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하나 찾아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입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그 원칙을 원리를 말해주고 있는 성경인데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우선 이 말씀을 보면 구원은 어떻게 이제 일어나냐면, 원리가 '은혜' 때문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그 사람은 책임이 없냐? 사람은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믿음이 합해질 때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다음에 10절 보시면 하나님이 구원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구원하셨을까요? '선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자기가 믿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은 후에 선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아만의 경우에 그가 하나님 은혜를 어떻게 입었는가? 그가 어떻게 믿었는가?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 선한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이제 단어를 정의하면 은혜는 '자격이 없는 사람한테 주는 게 은혜'입니다. 자격 있는 사람한테 주면 은혜가 아닙니다. 자격이 있는데 받으면 당연한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격이 없는데, 예를 들면 천국에 갈 자격이 없는데 천국에 가게 해야 그게 은혜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에 갈 만한 사람이네." 천국에 가면 은혜 아니죠. 그래서 은혜는 자격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럼 '믿음'은 뭐냐? 믿음은 이거 성경 하나만 또 찾고 오겠습니다. 믿음은 로마서 1장으로 가시겠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 1:5).
"믿어 순종케 하나니"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 말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격 없는 사람에게 그가 받을 수 없는 놀라운 것을 주십니다. 이게 은혜고,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주실 때 그가 순종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게 이제 믿음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구원이 일어난 증거를 뭘로 할 수 있느냐? 그는 선한 일을 합니다. 선한 일을 통해서 구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열왕기하'로 오셔서 이제 나아만의 경우에 '은혜'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나아만이 무슨 은혜를 받았는가? 첫 번째 1절, 다시 한번 보시죠. 1절에 보시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크고 존귀한 자다.", 그리고 "큰 용사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크고 존귀한 자니" 그다음에 그 뒤쪽에 "큰 용사나" 이렇게 돼 있죠. 단어들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크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 성경으로는 이제 크다 이렇게 돼 있는데, 영어로는 '그레이트'입니다. 위대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위인입니다. 사람들이 다 "이분은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 같은 분입니다. 거기 보면 아람을, 이분이 아람이라고 하는 국가거든요. 지금은 시리아입니다. 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러니까 외국과 전쟁을 해가지고 잘못하면 식민지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나라를 구한 사람입니다.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누구나 다 "아, 이 전쟁 위험하다." "큰일 났다." 하는 그 위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나라를 구한, 그러니까 '크고'는 위인입니다. 영웅이다, 그래 모든 민족 그 나라 사람들이 나아만 그러면, 이분 때문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살아난 거다, 하고 위인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존귀한 자"라고 하는 건 이제 존경합니다. 이분한테 함부로 말하면 사람들이 다 화내고, "그분한테 그런 소리하면 안 된다!" 이렇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크고 존귀하고, 그다음에 "용사다"라고 하는 것은 이분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이제 장군들이 전쟁을 할 때 맨 뒤에서 병사들을 전쟁하게 하고, 자기는 작전이나 짜고 본부에 앉아 있고, 이런 분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가 지위가 높을지라도 쫄병들하고 같이 적군과 맞서 싸웠던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냥 뭐 머리가 좋아서 작전을 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나아만이 정말로 그 나라에서는 존경을 받는, 그리고 그 나라의 영웅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 지위가 높을지라도 실제로 전투에 직접 참여해서 칼을 쓰고 말을 타고, 막 이렇게 했던 분입니다. 저희가 생각해도 참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그렇게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성과를 올리고 그리고 승리를 국가의 승리를 가져다주어서 그가 그렇게 존경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죠. 자기는 아람 사람이니까 이스라엘 하나님은 모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있는지 이런 거 관심 없죠. 그런데 그의 생애는 사실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다 선히 은혜를 베푸신 결과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든지, 이스라엘 사람이어서 한 게 아닙니다. 그는 다른 나라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를 함께하시고, 전쟁을 승리케 하시고, 그리고 그가 용기 있고 전쟁 가운데 그는 자기가 저기 실력이 좋아서 안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면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이제 놀라운 것은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에게 이렇게 한 것이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 거예요. 하나만 더요. 그런데 그가 문둥병자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아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거면 그렇게 군인이고 용기 있는 사람인데 병에 안 걸리게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가 문둥병자라고 하는 게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문둥병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문둥병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둥병은 어떤 병이냐면 그 당시 지금도 아마 한센 병인데요. 지금도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불치병입니다. 현대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리고 이제 병은 항상 뭘 생각나게 하냐면 죽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분이 건강하고, 군인이니까 얼마나 건강하겠습니까? 그리고 생활 습관도 건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에 병이 있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죽을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병은 또 죽어도 아주 비참하게, 요즘에 뭐 암에 걸리면 막 고통이 심하다고 그러잖아요. 이렇게 좀 비참하게 죽게 만드는 병입니다. 이 병은 하나님이 은혜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이 병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어도,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인생을 살아도,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고 하는 것을 항상 의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나님 은혜입니다.
흔히 이렇게 말하죠. 사람들의 문제점이 뭐냐?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다 아시죠?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사냐면 안 죽을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장례식 때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아, 이분이 돌아가셨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시던 분이 돌아가셨구나." 그리고 나를 보는 거에요. "나도 죽는구나." 그러면 죽음은 왜 오는 걸까? 죽은 후에는 뭐가 있을까? 이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문둥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랫 그가 아람 사람이지만 이제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이게 이제 첫 번째 은혜입니다. 여기에서는 이제 아직 이제 은혜만 나와 있고 믿음은 표현돼 있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3절로 가겠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가 문둥병을 고치려고 했는데 자기 나라에서 못 고쳤습니다. 아마 자기나라에 최고의 병원에 갔을 것입니다. 의사들이 "아, 이분이 오셨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이분을 낳게 하자."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아마 병원 말고 무슨 민간 요법,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고 하는 것도 아마 다 썼을 것입니다. 여러 국민들이 정말 존경하는 나아만 장군님, 이제 이러이런 게 낫는다고 하니 한번 써보시죠.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제 소식이 하나 들립니다. 3절 보면 "우리 주인이" 나아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제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이죠.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이 선지자 이름은 엘리사로 돼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가, "우리 주인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계집아이는 이스라엘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마리아 엘리사를 알죠.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가 이분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이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여러 가지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신 분이니까, 문둥병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거든요. 이스라엘 왕도 그렇게 말합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이 아닌데 나한테 병을 고쳐달라고 그래?"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수 있는 분이 엘리사입니다. 그래서 엘리사한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소식이 들립니다. 그런데 이제 이 계집아이도 이스라엘 사람인데, 이 아람 군대가 전면전을 하지 않고 이렇게 부분적으로 영토를 침입해서 거기 있는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을 끌고 와서 포로로 쓰는 겁니다. 이제 노동력으로 쓰는 거죠. 이 계집아이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자기는 이스라엘에서 이제 이렇게 잘 자라고 있었는데, 아니 어느 날 외국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잡아가서 일을 시켜 먹는 하녀가 된 거죠. 그런데 이 하녀가, 이 계집아이가 자기를 강제로 끌고 온 나아만을 위해서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이렇게 잡아다가 이렇게 일시키고, 고향에도 못 가게 하고, 이제 내 인생은 뭐냐? 나의 인생 이렇게 만든 사람 누구냐? 나아만이네. 나아만 문둥병 잘 걸렸네. 문둥병 심해져서 죽어라.' 이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계집아이가 이제 나아만의 부인을 섬기고 있었거든요. 부인의 하녀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건 제가 이제 상상해서 하는 겁니다. 성경에 없는 건데, 이 부인이 어느 날 굉장히 마음에 근심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그랬더니 나는 다 행복하다. 세상 걱정 없이 산다. 그런데 우리 남편 나아만이 문능병에 걸려서, 이번에도 혹시 한번 치료를 어떻게 뭐 해볼까 그랬는데 이번에도 안 됐다. 그 소식을 듣고 왜 우리 남편 나아만이 왜 그럴까? 왜 그게 나는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이 계집 아이가 가르쳐 줍니다. "제가 고칠 수 있는 사람을 압니다. 우리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다 해내시는 분입니다. 그분한테 가면 나을 거예요."라고 말한 거죠. 이것도 사실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자기는 포로로 끌고 왔는데, 자기는 강제로 그 사람 인생을 망가뜨렸는데,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낫기를 바라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거죠. 이게 하나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어요. 나아만에게 낳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나만이 믿음으로 반응할까요? "그러면 내가 사마리아에 가야 되겠다. 내가 선지자한테 가서 고쳐달라고 해야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할까요? 이게 이제 믿음입니다. 나아만이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고, 그다음에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낫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일어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게 아까도 우리 박용수 형제님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이제 장애도 있고 어려움도 있는 거죠. 믿음이 단순할 때가 있고, 이게 이제 약간씩 굴곡이 있습니다. 뭐라고 말을 했냐면, 이제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가야 되잖아요. 자기가 이스라엘로 가려면 요즘 같으면 비자를 발급하든지, 뭐 외국 여행을 해야 되잖아요. 그 나라에서 입국을 해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자기가 아람 왕한테 가니까 아람 왕이 "내가 해줄게. 내가 이스라엘 왕한테 내가 편지 써줄게." 이거 가지고 이제 프리패스 하는 거죠. 이제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계집아이가 뭐라고 말을 했냐면, 이스라엘 왕이 고쳐준다고 한 게 아니고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한테 가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그냥 이 사마리아만 앞에 있는 사마리아만 받아들여서 그럼 이스라엘 일단 가야 되네. 그 아까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갔듯이 왕궁으로 간 거예요. 똑같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갔던 동방 박사를 하나님이 다시 베들레헴으로 이렇게 인도하셨듯이, 이제 이것도 다시 그래서 갑니다. 갔더니 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 이제 아주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7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이관대" 그러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문둥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난 하나님 아니니까 당연히 못 고친다고 해서, 이거 전쟁 일으키려고 시비 거는 거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엘리사가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나아만에게 이 소식이 들립니다. 8절, "그 사람을" 나아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엘리사가 나한테 보내십시오. 이렇게 돼 가지고 나아만 다시 소식을 듣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왕이 사마리아 어디 어디 가보면 엘리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 가세요, 이렇게 하는 거죠. 다시 한 번 자기가 말씀을 듣고 부분적으로만 이해해서 갔더니 다시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다시 소식이 들린 거죠. 그래서 이제 갑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를 하나 보겠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왕하 5:9).
나아만이 어떻게 갔냐면, '말' 자기가 군인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당시 전쟁은 말로 말 타고 했잖아요. 말 그다음에 병거, 그다음에 이건 이제 기병대죠. 이제 마차들이죠. 말과 마차들을 끌고 갑니다. 왜요? 그걸 왜 끌고 가요? 지금 그는 누구죠? 지금 환자입니다. 겸손하게, 아무도 못 고치는 병을 당신이 고칠 수 있다 하니 내가 당신에게 병을 고치기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해야죠. 그런데 자기는 누구죠? 군대 장관입니다. 군 지휘관입니다. 이걸로 이스라엘을 정복한 적이 있고,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온 거예요. 자기의 정체성,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10절 엘리사가 직접 안 나옵니다. 나오지도 않고 하인을 보냅니다. 그리고 말을 간단하게 전합니다. "요단강에 7번 씻쳐라." 그리고 약속을 해줍니다. "낫는다." 다시 한 번입니다. 은혜가 다시 주어집니다. 엘리사를 통해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요단강에 7번 씻어라. 그러면 낫는다. 이 말 순종할까요, 말까요? 이거 이제 순종해야 됩니다. 지금 저희가 왜 왔죠? 병 나으러 왔죠. 그런데 병 낳는 방법이 제시됐습니다. 해야죠. 그런데 사람에게 장애가 있습니다. 뭐가 있죠?
'자존심'입니다. 이게 그게 뭘로 표현돼 있냐면 11절입니다. 그래서 이제 구원 받으시려고 하는 분은 이걸 잘 생각해야 됩니다. 11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구원받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이 주어져 있지만, 그 말씀을 믿으려고 할 때 장애물이 뭐냐 하면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은혜는 주어져 있어요. 낫는다고 돼 있어요. 다만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놓고 나에게 들려진 말씀을 순종할 것인가, 이게 구원받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이제 지위가 높으신 분이고, 존경받는 분이고, 이러니까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분노합니다. 이제 높으신 분들은, 이제 세상에서 잘나신 분들은 뭐 여러 가지 장점이 많으시죠. 그런데 이분들은 결정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자기 생각과 다르면 화를 내는 거예요. 물론 군인이니까 자기 밑에 시킨 대로 해야죠. 자기가 작전을 짠 대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지니까, 만약에 이제 자기 말을 안 하면 화를 내고 그러셔야 되겠죠. 그런데 이제 그 직업에 있었던 일들이 여기 이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도 화를 내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앞에서도 내 생각하고 다르면 "이게 뭐냐?" 그리고 자기 생각에는 "아니 요단강 보니까 이거 아무것도 아니네. 내 고향에 가면 훨씬 깨끗하고 큰 강이 있는데, 이게 뭘?" 그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장군님. 지금 이 사람이 예를 들면 헌금을 해라, 혹은 뭐 뭘 해라, 그러면 그거 안 할 수 있습니까? 무슨 큰 일이라도 해야 될 판인데, 아니 요구한 게 없잖아요. 가서 씻으라고 그랬는데 그걸 왜 안 하세요?" 그러니까 정신이 다시 든 겁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지?" 병은 내가 아람에서 온갖 방법으로 했지만 안 됐던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만이 유일하게 고칠 수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이분이 말을 한 거예요. 들어야죠. 내가 여기 왜 왔지? 들으러 왔지. 고치러 왔지. 이렇게 하면 고쳐진다는데 그걸 왜 안 해? 라고 제정신이 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그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신약 성경으로 오면, 우리들이 이해하는 바로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 요단강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7번이니까, 단번에 온 세상 죄를 영원히 용서했다는 복음입니다. 7번이니까, 7은 성경에서 '완전 숫자'거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우리를 완벽하게, 추가적인 어떤 것도 없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라고 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일을 해라. 구원받으려면 교회도 한 대여섯 개 지어야 되고, 봉사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되고, 또 뭐 선교도 하고, 이런 걸 해야, 위대한 일, 큰 일을 해야 천국에 간다.' 이게 '종교'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번, 과거에 2천 년 전에 한 번 죽으셨는데,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하셨다라고 하는 복음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납득이 갑니다. '그래, 천국에 가려면 뭐 해야지. 저기 선교 헌금도 내고, 교회 와서 봉사도 하고 해야지.' 동의가 되는 거죠. 그런데 복음은 동의가 안 됩니다. '아니, 그런다고 구원받는가?' 이때 잘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어떻게 받냐?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시간이 갔기 때문에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이 사람은 나아만은 구원받았으니까 뭘 하냐 그러면, 이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 뭐냐? 보겠습니다. 17절, "나ㅏ만이 가로되 그러면 흙을 주소서" 흙을 가져가려고 그러는 겁니다. 흙이 뭐냐 그러면, 흙을 가져왔다고 뭐에다 쓰게요? 이스라엘 흙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가 아는 건 뭐냐 하면, 이스라엘 하나님만, 성경의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고 나머지는 다 가짜답니다. 그런데 그는 아람에서 가짜 신을 섬기고 있었어요. 이제는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서 흙을 가져갑니다. 흙을 가져다가 단을 쌓습니다. 이제 흙으로 이렇게 책상 같은 걸 만들어다 놓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흙으로 만든 단이 우리들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떡과 잔을 놓은 그 상자, 떡과 잔을 놓은 그 책상입니다. 그걸 만들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걸 놓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내가 전쟁에서 승리한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승리했구나. 하나님은 나같이 아람 사람인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구나. 그리고 문둥병, 문둥병이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는데 이게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놀라운 은혜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순종했더니, 요단강에서 7번,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완벽한 죄 용서를 이루셨고 그것을 믿을 때, 내가 정말 내 죄가 사해지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것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뻐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거죠. 흙을 그래서 이제 달라고 한 거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자기가 왕하고 너무 친한 거예요. 그런데 왕은 우상을 섬기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왕이 나이가 드셔서 이제 절을 할 때 자기가 옆에서 절을 하니까 잘못하면 자기도 절을 하는 꼴이 되는 거죠. 자기 마음은 아닌데, 자기 몸은 절을 하는 꼬리 되니까, 그때 하나님이 보시고 이게 제가 우상에게 절하는 게 아니고, 왕을 돕는 거니까 하나님이 이해해 주시고 이 부분은 좀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데요. 이때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 이렇게 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제 왕이 나아만하고 너무 친해서 자기가 제사 지낼 때, 우상숭배할 때, "나아만 너 나 좀 부축해서 같이 가자." 친한 사이거든요. 아마 초등학교 같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제 간 거죠. 그런데 나아만은 이걸 걱정했지만, 나아만이 갑니다. 다시 돌아가서 "내가 병이 나았습니다." "어떻게 문두병이 나았느냐?" "이스라엘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한테 뭘 했냐?" "아무것도 한 거 없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더니 나았습니다." "잘 됐네." "그런데 이제부터 저는 아람의 신 섬기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길 것입니다."라고 그가 하면, 제가 이해하기로 왕이 "너 왜 그렇게 변했냐? 너 옛날에는 진짜 좋은 앤데, 어쩌다가 괴팍한 애가 됐네.
아니, 뭐 신이라고 하는 게 여러 개 여러 신이 있고, 모든 신 섬기면 다 좋은 거지." 그리고 이 왕이 스스로 "이제 내 림몬 신한테 우상숭배하는데 너 오지 마." 이렇게 해결될 겁니다.
그래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일을 합니다.
선한 일 중에 선한 일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뭐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말로, 그다음에 두 번째 행동으로, 말과 삶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는,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게 선한 일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이 같은 구원이 저희들 가운데 일어났고,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구원이 계속적으로 일어나서 저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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