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유다서 11-12절 / 마포모임, 23년
- 한재광 형제님(?) 사회 :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유다서 11절과 12절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앞서서 제가 먼저 8절부터 15절까지 우선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8-15).
지난 시간에 저희가 9절, 10절을 살펴보았었는데요. 그래서 9절을 통해서는 천사장 미가엘이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또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다툰 마귀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그리고 지금 현재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기록된", 이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이 심지어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훼방, 즉 중상할 뿐만 아니라, 이제 이것을 통하여 그들의 결국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11절도 이 사람들에 대해서 구약의 세 인물을 예시를 통하여 이 사람들의 결국이 멸망에 이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더 저희들에게 묘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지금 이 세 인물이 가인과 발람과 고라입니다.
가인 같은 경우는 저희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예배, 즉 '하나님의 제사'와 관련된 자로서 끝까지 자기의 생각대로 행한 자이고 결국 그가 아벨을 죽인 살인이라는 죄를 행하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발람을 통해서는 그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자로서 끝내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우상숭배와 음행의 길로 빠뜨리게 한 죄를 지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라의 경우는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대해서 반역을 한 자인데, 특별히 제사장의 지위를 탐낸 것으로써 '하나님의 제사장'과 관련되어 끝까지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여 결국은 멸망하게 된 것을 저희가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성령님께서 구약의 이 세 인물을 이렇게 뽑으신 것과 또 그것이 다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부분뿐만 아니라 이 외에 다른 여러 가지 부분들도 저희들이 묵상한 바에 따라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교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라는 이 인물들에 대해서 이들의 특징이 무엇이고, 또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형제들 가운데서 묵상하신 부분이 있으면 교제해 주시고, 이 외에도 또 다른 부분들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30분에서 35분 정도까지 우선 교제 나눠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 11절 말씀 보시면 구약의 세 인물이 등장하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전에 5절부터 7절까지에서도 구약의 세 가지 예를 들어서 거짓 교사들의 심판의 당위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 줬었는데요. 11절에서 구약에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해서 심판받았던 세 가지 예를 다시 들어서 거짓 교사들의 심판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구약의 예에서 첫 번째 '가인의 예'를 들고 있는데요. 이제 가인의 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길을 생각할 때 배경이 되는 게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하나님 말씀대로 그렇게 드린 게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제물을 드린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또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않아 않으셨는데요. 이와 같이 이 거짓 교사들도 그들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고, 또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가인처럼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적인 거짓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거짓된 섬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음을 가인의 길을 통해서 비교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가인의 잘못에 대해서 저희가 요한일서에서도 한 번 언급이 됐었는데요.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가인이 아벨을 핍박하고 결국 죽였는데, 이 거짓 교사들도 이 가인처럼, 아벨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또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국에는 핍박하고 죽이려 한다. 이제 이런 부분들을 가인의 길을 통해서 교훈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발람의 예'를 드는데요. "발람의 어그러진 길" 발람에 대한 그 내용이 민수기 22장부터 25장에 나오는데요. 그 민수기 말씀을 보면 발람이 선지자였죠. 선지자였는데, 하나님의 뜻을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삯을 위하여 발람이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 이렇게 기록하고 고 있는 것처럼 발람은 이 삯, 재물을 사랑한,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 15절에서는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발람은 발락이 주기로 약속한 그 불의의 재물을 사랑하였고, 그래도 발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했지만, 그 마음 중심에는 돈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에 올무를 놓게 되는데요. 계시록 2장 14절을 읽어보면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이 발람은 재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시록 2장 말씀처럼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의 죄를 범하도록 그렇게 이끌었습니다. 이 거짓 교사들을 발람과 비교하는 것은 그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목적도 결국에는 재물이라는 부분하고, 또 발람이 그런 올무를 놓았던 것처럼 이 거짓 교사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도덕하고 불경건한 삶에 빠지도록 그렇게 유혹하는 일을 거짓 교사들이 결국 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통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로 고라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고라의 패역'을 생각할 때 이 고라에 대한 부분이 민수기 16장에 나오고 있는데요.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는 레위 지파였고 또 지도자의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고라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사실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것은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는데요.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도 앞에서 계속 저희가 지난 시간에도 계속 교제가 되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권위, 또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권위, 이런 것들을 인정치 않고, 대적하고, 그걸 반대하고, 그래서 이 세 가지 예를 통해서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그들의 심판의 당위성에 대해서 계속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이기범 형제님 : 11절의 시작을 "화 있을진저"라고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봤을 때 지금까지 계속 그 "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요. 그리고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그리고 "이 사람들은" 4절에 기록된 것처럼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 있을진저"라고 표현이 된 것처럼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저희가 4절과 함께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 구약의 세 사람을 취해서 "이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11절에 나오는 가인, 그리고 발람, 고라에 대해서 그 특징을 볼 수도 있고, 그다음에 그들의 특징이 가인과 발람과 고라는 "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화 있을진저"라고 나온 것처럼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특징이 있다고 보입니다. 저희가 5절부터 7절까지도 세 가지 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5절에서 7절까지는 딱 어떤 특정한 것을 부각시켰다기보다는, 5절에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해서 두 사람을 제외한 이 사람들을 말하고요. 그리고 6절에도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해서 또 하나의 그룹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7절에도 소돔과 고모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 도시들도"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그에 반해서 11절은 물론 고라를 따랐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마는 세 사람을 정확히 집어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가인은, 저는 '가인'의 경우에는 5절하고 연결을 시키고 싶습니다. 5절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돼 있는데 가인은 '믿지 아니하는 자'였습니다. 저희가 가인과 아벨을 보게 되면 아벨은 히브리서에서 "믿음으로"라고 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이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가인은 5절에 나오는 것처럼 믿지 아니하는 자들 가운데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발람'은 저는 발람을 이렇게 좀 분류를 하고 싶습니다. 발람이 그 삯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어떤 계략을 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희가 민수기에서 보는 것처럼 모압과 음행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7절에 나오는 것처럼 "간음을 행하고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라는 것과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6절에 대해서는 뭐 여러 가지 또 해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개인적으로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차원에서 '고라'의 경우에는 그 권위에 대해서 도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라는 또 6절과도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7절까지 나왔던 그 내용이 믿지 아니하고, 그리고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그리고 결국은 육신적인 것을 추구했던, 이것이 다시 가인과 발람과 고라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한 사람씩을 이렇게 집어서 이야기한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그리고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그리고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해서 3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행한다'라는 것은, "길에 행한다"는 것은 그 길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보입니다. 그러면 "몰려갔다"는 것은 거기에 완전히 빠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하고, 몰려가고, 멸망을 받았다는 것을 통해서 이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순서대로 이렇게 그 11절이 기록이 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게 왜냐하면, 시간 순서라면 가인, 고라, 발람의 순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11절은 그것이 더 악화되는 것으로, 그리고 이 사람들이 화를 피할 수 없다라는 것을 저희에게 보여준다고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형제님 교제하신 대로 이 동사들이 점점 악화되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 과거형'으로 되어 있어서 이 사람들의 그런 특징이 굳어진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 5 ,6, 7절은 “이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면, 이들의 ‘특징’에 대해서 11절부터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는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말씀하셨고, 또 계시록에서 나오는데, 이제 서신서에서는 이 부분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에 대해서 분명한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동사가 점점 악화되는 모양을 나타내듯이, 각 배도자들의 그 길을 표현한 것에서도 악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인은 '길'이었고요. 발람은 '어그러진 길'이었고, 고라는 단지 잘못된 길이 아니라 돌아서서 적극적으로 '패역하고, 거역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교제하신 대로 불순종에서 시작해서, 그다음에 탐욕에 빠지고, 도덕적인 타락으로 가고, 그다음에는 거역하고, 교만하여서 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모든 특징은 배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모르는 이교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한 말씀과 은혜를 베푸신 사람들이고, 그들은 그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떠나고 거역한 사람들이 특징이 이 세 사람의 특징이 되겠습니다.
가인에 대해서도 그가 분노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가 범죄하지 말 것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살인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경고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죄를 범하고 여호와의 앞을 떠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분명히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이며 적극적으로 자기의 길을 간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발람은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밤에 그에게 떠나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또한 나귀의 입을 열어서 또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거듭된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그 거절한 이유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몰려갔으며" 몰려갔다라는 것은 마치 강의 둑이 터져서 강물이 확 몰려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길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탐욕을 쫓아서 그의 길을 간 것입니다.
고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레위인으로서 성막에서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는데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제사장이 되고자 하여 반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루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다음 날 하나님 앞에 향을 들고 나오라 했을 때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 회개를 거절하고 그 다음 날에도 이렇게 반역하는 모습을 취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여러 번의 거절과 무시와 또 반역이 고라의 특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의 특징은 모두 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교만함과 또 탐욕과 불순종 가운데서 자기의 길을 가고 멸망한 사람들의 예를 통해서 이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처음에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그래서 유다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4절에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언급한 정하신 그 판결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서신서를 받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저희들이 이미 배운 대로 1절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었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었다"라고 말씀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24절에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거침이 없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이다" 라고 이 서신서를 읽는 자들에게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계속 말씀한 내용인데요. 이게 세 가지 부류의 배도자들일 뿐만 아니라 그 배도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것에 대해서 아마 4절에서도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하고" 주님을 믿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자기 자기를 더럽히고, 색욕거리로 만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님의 권위를 부인"하는 수준 데까지 이르는 이러한 그 배도의 수준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여기도 동일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가인이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다가, 발람은 자신의 물질을 추구하는 그 정욕대로, 그 마음대로 행하게 되고, 고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적하는, 부인하는 이러한 모습을 동일하게 보게 되고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세 사람은, 가인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을 예배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예배였지만, 그리고 발람은 선지자 노릇을 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가 자기 마음에 있는 걸 얘기한 것이 아니지만 선지자 노릇을 했던 사람이고, 고라는 레위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인데 이와 같은 배도의 길을 가는 걸 보게 되고요.
그리고 "가인의 길에 행했다" ‘행했다’고 하는 것은, 이 동사는 우리가 보통 뭔가를 행하다라는 그런 동사가 아니라 '여행을 여행을 출발하다'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서, "여호와 앞을 떠나서" 자기의 길을 떠난 것이고요. 그리고 발람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그 동사가 '물이 터지듯이'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그 욕심에 끌려서 하는 모습을 나타내고요. 마지막은 그 결국을 "멸망을 받았도다" 이렇게 돼 있어서, 그 결국이 배도의 결국이 멸망인 것을 더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가인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수명을 다 삽니다. 자기가 배도의 삶을 삶에도 불구하고 몇 살에 죽었다고는 기록이 안 돼 있지만 아마 900살 가까이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라는 이 심각한 배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다음 날 심판하는, 그 심판의 강도도 강해지는 것을 저희들이 보게 되고요.
가인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자신의 뜻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의 뜻을 따라서 사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요. 그리고 발람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욕심과 물질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마지막으로 고라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일 가운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앞에서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는 단어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막으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두 번째는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막으시고, 그 다음에는 나귀를 통해서 막으시는데, 이 사람은 그러한 하나님의 그 막으심에도 불구하고 이 물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러한 모습들을 저희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 사람들이 아주 대표적인 구약의 배도자들입니다. 그리고 가인은 인류 역사에 가장 최초의 배도자로 이와 같이 기록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앞에 계속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제 여기 이 세 인물의 경우를 봤을 때에 그들은 자신의 길을 분명하게 정한 사람입니다. 바꾸려고 하지 않는, 그래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또 소돔과 고모라, 천사들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함을 말하고 있었고, 또 여기 이 세 예를 통해서는 이 배도자들이 자기들이 정한 그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들이 끝까지 그 길로 갈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그 길로 행했고, 또 그 길에 몰입되어 있고, 그리고 결국에는 끝까지 멸망을 받는 데까지 그 길을 갈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봐도 이 세 인물들을 살펴보게 될 때에 고집스럽게 자기들의 길을 가려고, 그리고 간 사람들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가인 같은 경우에도 그가 잘못 제사를 드렸을 때에 그가 화를 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를 다스릴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는 거부하고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 그가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여호와의 앞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계속 가인은 자기의 생각대로 고집스럽게 간 이 사람입니다.
또 그다음에 발람의 경우에 봤을 때도 그도 그 예는 더 분명하죠.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심지어 말 못하는 짐승을 통해서도 막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불의의 삯을 위해서 자기의 길로 간 사람입니다.
고라 같은 경우에도 우리가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가 그냥 어느 한 날 반역을 한 게 아니라 그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모세가 그것에 대해서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얼마나 높은데 네가 이러고 있느냐?"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반역의 길로 가서 멸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배도자들의 특징이 첫 번째로 그들은 그들의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그들은 멸망을 끝내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해서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라고 돼 있는데요. 참 은혜의 시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서신서에서 사용되지 않은, 그런 "화 있을진저"라는 특별한 이 표현이 사용이 됩니다. 특별히 복음서에서, 또 계시록에서 사용된 구절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바리새인들이, 서기관들이, 끝끝내 자기들의 길로 가서 그들의 심판을 자초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많은 하나님의 그 심판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그런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들의 바꾸지 않는 그들의 길과, 또 그들의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요. 이제 앞에서 다 말씀을 해 주셨는데 가인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발람처럼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자기의 이익을 위한 것이 그들의 동기이고, 그리고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 고라와 같은 경우에 볼 수 있듯이 교만인 것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 생각, 그리고 물질주의, 또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배도자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고 또 이들의 위험성을 여기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가인, 발람, 고라, 이들을 보면 그 역사 가운데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한 자기 가족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나쁜 영향을 끼치거나 이 핍박하거나, 가인과 같은 경우에는 아벨을 죽이는 것이고요. 그리고 발람 같은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망치게 되는 거고, 또한 고라 같은 경우에도 이 고라의 반란이 일어난 다음 장을 보면 이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꿎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너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였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거짓 교사들 배도자들이 있을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또한 함께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재광 형제님(?) 사회 : 네, 이어서 12절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11절까지는 이 사람들의 결국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고 있고요.
12절부터는 이러한 결국에 가진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는 네 가지 비유가 나와 있는데요. 그래서 암초, 목자, 구름, 나무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특별히 이것을 묘사하고 있는, 앞에 서술되어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네 가지 비유를 든 것과 관련해서 서술하고 있는 이 수식어들을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지금 나열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애찬, 목자, 그리고 구름, 나무,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무엇인지, 그래서 이것의 긍정적인 의미를 우리가 먼저 살펴봐야 되겠고요. 그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앞에 붙여진 수식어를 통해서 이 긍정적인 것을 상징하는 것들을 실질적으로 이 사람들은 전혀 반대로서 지금 사용하고 나타내고 있다라는 것을 지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들에 대해서 마지막 시간까지 형제들께서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재훈 형제님 : 11절은 "이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12절에는 이제 "너희", "너희 애찬"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성도들 사이에 가만히 들어와 있을 때 '그들의 모습'에 대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회자 형제님께서 네 부분으로 이렇게 구분을 해 주셨는데 세 부분으로도 또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를 하나로 묶어서도 이해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목자'라 명사는 없고 '기른다'라는 단어가 '양을 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희는 너희 애찬의 암초이니 왜냐하면 너희가 함께 먹을 때에 그들이 기탄 없이 자기 몸만 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탄', 두려움, 경건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물'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도들 가운데 가만히 들어와서 마치 자기가 목자인 것처럼 양들을 자기는 먹이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실제 주장이 허탈한 것임이 그들의 애찬에서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 것입니다. 애찬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한 번 나오는 이 부분인데 우리가 잘 아는 '아가페'라는 명사의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 성도를 섬기는 그런 그 식사의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을 가지고, 또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섬겼던 것이 아니라, 함께 먹을 때에 자기의 이익을, 자기의 배를 위해서 먹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애찬의 모습에서 그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전반적인 삶의 모습이 그와 같다라는 것을 첫 번째 비유에서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로서 자기들의 말을 통해서 물이 나타내는 그 생명력, 그 신선함을 성도들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다라고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거짓된 약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몰려왔을 때 물이 없는 구름처럼 그들에게서 나온 말들은 참된 양식을 자라게 하는 그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람에 불려가는 것처럼 안정성 없이 시대의 풍조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을 나무라는 것은 추수기가 끝나고 말라가는 나무의 상태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가을 나무와 같이 마른 상태여서 보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열매가 땄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뿌리까지 뽑혔다." 그때만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열매가 없는 사람인 것을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고 또 죽어"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배도함으로 인해서 둘째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자로서 그들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배를 채우려는 사람이었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물 없는 것이었고, 생명력이 없는 것이었고, 실제적으로 결과에 있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박성호 형제님 : 13절을 다음 시간에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은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은유를 써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초와 목자와 구름과 나무, 이렇게 은유인데요. 이 은유는 참된 인도자이신 주님과 또 인도자들과 대비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 '암초'라는 단어는 우리 주님께서 반석이 되시고, 또 베드로의 그 믿음의 고백, 이러한 것들과 대비가 될 수 있고요. 그다음에 '목자'는 우리 주님께서 목자장이시고, 큰 목자시고, 선한 목자이신 것, 이것과 대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구름'은 비가 있어야 되는 건데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상징하는 것과 대비가 된다고 할 수 있고요. 그다음에 '나무'는 열매가 없는 것인데, 우리 주님께서는 첫 열매가 되시고, 또 저희는 찬미의 입술에 열매를 드리고, 그다음에 빛의 열매이고, 의에 평강한 열매이고, 그다음에 위에서 난 지혜는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 이것과 대비된다라고 보여집니다.
- 김회상 형제님 : 12절에서는 그 네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이 사람들이, 이 배도자들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어떤 위험을 주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앞에서 말씀하시는 건 "너희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이들이 마치 목자인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을 보아서, 4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 이 사람들은 성도들 사이에 끼어 들어와서 위협적인 존재로, 그 그리스도인의 모임과 성도들의 삶에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첫 번째로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다." 그러니까 암초라는 게 배가 안전하게 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 부딪히면 배가 파선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체가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러나 거기에 부딪히면 믿음을 파선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비유로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별히 여기서 애찬의 의미에 대해서도 앞에서 형제님이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제 애찬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물질적인 것, 먹는 거나 이런 걸 통해서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거였는데, 그들은 부끄러움 없이, 그러니까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그냥 마치 사랑 성도들을 사랑하는 척 함께 그런 교제를 나눴던 모습을 보게 되고, 이러한 자들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게 되고요.
두 번째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돼 있습니다. 이 목자가 그들은 아마 말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섬길 수 있다, 인도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 있는, 자신의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그러한 자들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리고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 앞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구름이 와서 신선한 비를 뿌려줘야 되는데, 그들은 말로는 그와 같은 약속을 하고 새로운 것, 새로운 지식, 새로 일깨워주는 뭔가를 약속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이 없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또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그런데 이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는 이 구절을 조금 해석하는 거에 대해서 조금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가을이 될 때까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러니까 기다려도 기다려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뿌리까지 뽑혀버린" 원래 나무가 땅을 밟고 있어야 되는데 그 뿌리가 드러나 있는, 그들의 삶으로 인해서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는, 회복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죽고 또 죽어"라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그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저는 보통 저희들이 '거듭났다'고 얘기를 합니다. 다시 태어났다, 새로 태어났다, 그러니까 그가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고백해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고백했지만 그게 참된 고백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하기 이전에도 죽어 있었고, 그리고 고백하고 나서도 그들은 배도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 죽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러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모습들은 이제 하나님의 교회, 또 하나님의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위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이 되고요. 특별히 이 네 모습들은 그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금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1. 첫 번째는 사랑의 교제, 2. 두 번째는 영적 인도자들의 인도, 그리고 3. 세 번째는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들, 그리고 네 번째는 4. 우리들의 열매 맺는 삶, 그리스도인의 주님을 닮아가는 열매 맺는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배경에 이 사람들은 계속 그런 것들을 못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여러 가지 악한 영향들을 끼치는 모습들을 보게 되고, 그런데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또 언급을 언급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11절에서는 구약 시대의 배도자들의 특징을 말하고 있다면, 12절에서는 이 신약 시대에 실제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이 어떠한 위험성이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전효진 형제님 : 보통 사람은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거짓 교사들은 그 역사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죠. 형제님들 교제해 주신 것처럼 그들이 걸어간 길은 자신이 선택해서, 원해서 간 그런 길인 것입니다. 떠밀려서 그냥 어쩔 수 없이 간 길이 아니라 자기들이 간절히 원해서 그 망할 길로 간 것입니다. 그들은 예배가 없는 사람들이죠. 자기 유익만 구하는 그들에게 애찬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애찬에 참여하면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죠.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는 그 별호를 얻었는데, 그들은 목자라는 칭호를 또한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자가 아니라 그냥 양들을 잡아먹는 살육자인 거죠. "물 없는 구름"이라고 그렇게 표현되는데 그냥 구름이 아닌 거죠. 이렇게 비를 뿌리지 아니하고 그냥 바람에 밀려 지나가는 구름은 아무런 유익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그러한 주장과 교훈이 그 허망한 약속에 불과한 것임을 이런 비유를 통해서 또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그런 말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 "뿌리까지 뽑힌 이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돼 있는데 이들은 나무가 아니라 그냥 불을 지피는 땔감일 뿐입니다. 열매 없는 그들에게는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이죠.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맺어야 될 그런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다 거짓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인과 또 발람과 또 고라와 같은 이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이 그들이 가는 길에 결국이 심판이다 하는 것을 보고 또 경계를 삼고, 그들의 거짓에 미혹되지 않고, 이렇게 말씀 안에 든든히 이렇게 붙어있는 것이 더 건강하고 깨끗한 믿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하는 것을 또 이런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배울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앞에 11절에서 가인, 발람, 고라, 이렇게 세 명이 언급돼 있는데요. 이것을 통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께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말씀하고 좀 대조해 보았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예배, 하나님께 나갈 때는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든가,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따라서 하나님께 나갔다가 거절당한 거죠. 그게 이제 가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길인데 주님이 길이 아닌, 주님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는 거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돼 있는 거죠. 그 대목에서 틀렸고,
그다음에 발람은 '오류'라고 돼 있습니다. '발람의 오류' 이렇게 돼 있죠. 그러니까 주님이 진리이신 거죠. 그래서 이 대목을 보면 발람은 타협하려고 했었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와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고 본 거죠. 그래서 이게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 발람이 걸어가던 길이고,
고라의 경우는 이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 반역을 했는데, 이 부분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신데 고라는 생명이 아니고 멸망의 길을 간 거죠. 그래서 길과 진리와 생명에서 다 어긋났는데, 생명은 어디에 있냐면 항상 사람을 낮추고 주님이 높아져야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적 그리스도는 주님을 낮추고 자기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이다라고 경배받으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첫 번째로 저희들이 역으로 적용을 해보자면, 우리는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이 말씀에 대해서 저희들이 한절 한절, 혹은 한 단어, 이렇게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말씀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가인의 길과 다른 길입니다. 그다음에 발람이 결국 한 걸 보면, 발락은 저주해라 그랬죠. 그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한 거죠. 하나님이 안 된다 그런 거죠. 하나님은 어떤 경우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하죠. 실제로 이제 그가 말을 하는데 그가 하나님께서 그를 가게 한 조건이 이것입니다. 조건은 "이스라엘 저주는 안 된다. 너는 내가 한 말만 해라." 라고 하는 조건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죠. 그래서 그가 가서 이스라엘을 축복해버립니다. 발락이 이스라엘 저주하라고 불렀는데 이스라엘을 축복해 버렸으니 이제 안 되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떤 경우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다음 방법,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그러면, 하나님은 안 되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면 됩니다. 그래서 저주를 자초하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모압 여인 모습인가요? 모압 여인을 이렇게 한 거죠.
이걸 보면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모압 여인을 취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그다음에 그 여인이 숭배하고 있는 우상에게까지 가도록 발람이 한 건데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성공했을까? 그와 같은 말을 왜 따라갔을까?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가 라고 생각해 보면, 그가 가르친 것은 이거죠. '결국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라고 하는 교리를 어떻게든지 퍼뜨리는 거죠. '이렇게 해도 하나님은 받으신다' 라고 하는 것이 이제 발람이 결국 가르친 거고 이게 진리 대신 주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다시 보면 말씀을 주의해서 봐야 되고, 성경을 잘 살펴야 되고, 그리고 성경에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들을 그것을 어떻게든지 교묘한 방법으로 허용하거나, 성경이 큰 틀에서 안 되는 건데, 그것을 어떤 작은 구절들을 사용해서 허용하거나 가능하다고 만드는 것에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두 번째 발람의 교훈이고,
그다음에 세 번째 고라의 경우는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은 아론이죠. 하나님이 세운 인도자는 모세죠. ..를 반역한 거죠. 자기가 레위인으로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것을 구한 거죠. 지위를 떠난 거죠. 그런데 고라의 경우는 이것입니다. 아론 같은 제사장은 사실은 예수님이 참된 제사장이죠. 아론은 제사장 되신 주님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역할을 어떻게든지 약화시키는 거죠. 그러면 예수님의 제사장 역할이 뭐냐 그러면, 저희들이 히브리서에서 맨날 말한 대로 첫 번째는, 주님의 제사는 '단번에 영원한 것'입니다. 이걸 약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많이 하는 거죠. '구원받은 후에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냐?' 이런 문제를 말하는 거죠.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이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예수님의 신성, 이런 것들을 자꾸 약화시키려고 하는 가르침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적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낮추고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리에 들어서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말씀을 통해서 1. 말씀에 주목해야 된다. 그다음에 2. 말씀에서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것들을 교묘하게 흐트러뜨리려고 하는 것에 넘어가지 말아야 된다. 세 번째는 3. 주님의 영광을 우리들이 어떻게든지 높여야 된다. 말씀에 나타난 주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계속해서 제시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그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어떤 사람도, 어떤 다른 것도 예수님의 영광을 대체하거나,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은 이 세 가지 배도한 사람들과 반대되는 쪽에 저희들이 힘써야 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제 주님이 요한복음 14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좀 생각해 보게 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한재광 형제님(?) 사회 : 네, 형제님들 교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12절까지 한 것으로 하고 다음에 13절부터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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