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유다서 5-6절 / 마포모임, 23년
- 사회자 형제님 : 오늘은 유다서 5절하고 6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앞에 1절하고 4절까지를 간단히 설명드리면 일단 유다서의 저자는 유다고요. 그래서 유다는 특별한 정보는 없지만 아마도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유다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다음에 쓰여진 시기는 약간 늦은 시기, 그러니까 베드로후서가 쓰이고 난 이후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베드로후서와 겹친다고 교제가 됐었고요.
1절의 대상, 그 편지가 전해지는 대상은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고요. 그냥 일반적인 성도라고 생각됩니다.
3절에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돼 있어서 그 편지를 쓴 목적이 원래 목적이었던 구원에 대해서 쓰려던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기가 있어서 믿음의 도를 위해서 써야 되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도가 뭐냐?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어서, 이 사람들은 전에 교제 되어진 대로 베드로후서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거짓 선지자, 또는 거짓 선생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 가지죠. 1. '경건치 아니 한 것', 그다음에 2.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다음 세 번째로는 3. '홀로 하나이신 주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 세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반대로 생각할 수 있겠죠. 3절에 있는 “믿음의 도”는 뭐냐 하면 1. '그리스도인의 경건', 그다음에 두 번째는 2. '하나님의 은혜'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예수 그리스도' 이 세 가지 진리를 가리킨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5절인데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유 1:5-8).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5절하고 6절 보려고 하는데요.
5절에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유다가 기록하고 있는 목적을 대충 알 수 있는데, 처음에도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서 쓰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뭔가 새로운 것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그 구원, 그다음에 또 여기 5절에서도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그래서 범사는 모든 일이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나고자 적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다음에 예를 들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출애굽할 때 그때 많은 믿지 않은 자들이 멸망을 한 거죠. 멸망을 당한 이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요.
두 번째 6절에서는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그래서 이것은 조금 더 영적인 측면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사실 5절, 6절 이 부분에 좀 논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좀 있어서 한번 같이 교제를 하면 좋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5절에 대해서 교제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제가 궁금한 것은 "멸하셨으며" 멸했다는 게 어떤 건지, 어떤 멸망인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과 관련된 구절은 민수기 14장이라고 알려져 있고요. 민수기 14장은 아시다시피 그 열두 정탐꾼을 보냈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 당연히 10명은 안 된다고 했었죠. 그리고 2명인 여호수아, 갈렙은 가능하다고 했었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부분 부정하고, 또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자들이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다. 두 명을 제외하고" 그 부분을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같이 교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5절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 5절부터 7절까지 내용은, 4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에 대해서 말씀을 해 줬는데요. 이 거짓 교사들, 또 가만히 들어온 배교자들에 대한 심판의 당위성에 대해서, 이제 5절부터 7절까지, 4절에 "옛적의 판결"을 말씀해 준 것처럼, 구약에서 하나님께 대적하고, 반역하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한 그 세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5절 보시면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너희가 본래 범사에 이것을 알았다고 수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고요. 또 '알았다'는 동사가 완료형 시제이기 때문에 수신자들이 5절부터 7절까지 내용들을 과거에 잘 알았고, 지금도 잘 알고 있는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이렇게 이제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들이 잘 알고 있지만 다시금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유다서가 베드로 후서하고 많이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고, 또 같은 내용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제 베드로 사도 같은 경우에도 베드로후서에서 수신자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부분들을 강조해서 일깨웠던 것들을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제 베드로후서 1장 12절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13절에도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5절에서도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한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도 그렇고, 유다서의 수신자들도 그렇고, 이런 구약의 내용들을 잘 알고 있는데요. 이제 이들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생각하게 하는 거죠. 말씀을 생각하게 하는 거고, 구약의 이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이런 배교자들의 운명들, 이런 것들을 다시금 말을 해줌으로 인해서, 그들이 진리에 서 있으나 이런 것들을 계속 깨어서, 3절에서 힘써 싸우라고 했던 것처럼, 계속 깨어서 이런 것들을 경계하고, 또 대적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구약 예를 통해서 다시금 그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그런 것들을 다시 일깨우고자 하는 그런 유다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이것은 사회자 형제님도 언급하셨지만, 민수기 13장과 14장의 그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또 홍해를 건넜고, 그 가나안 땅 입구 가데스에 와서 정탐꾼들을 보냈는데요. 그 정탐꾼들의 그런 악한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했던 일, 이것을 지금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잘 아시겠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성인들이 다 광야에서 죽임을 당한 일을 지금 말씀하고 있고요. 이 부분에 관련해서는 히브리서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 말씀을 잠깐 읽어드리면 히브리서 3장 16절부터 19절에 이 부분을 또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6-19).
히브리서 3장에서 이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했지만 그 믿음이 없었던 출애굽 1세대, 그들은 결국 4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결국 경건치 아니한 게 드러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들이 그 안식에,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첫 번째 그런 반역과 배도의 예로서 들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김영권 형제님 : 5절에서는 "먼저 너희가 알았으나"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그 알던 것의 내용이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리고 2. 두 번째는 '어떻게 멸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구원하신 그것은 백성입니다. 그들의 선조인, 이스라엘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하셨는지를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또 시간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멸하신 자들을 대비해서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라고 이렇게 구분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다시 알리고자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구원'과 '멸하심'에 대해서 알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신자는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편지가 물론 구원받은 자들에게, 교회에게 쓰여져 있지만 이 편지를 읽으면서, 이 편지를 들을 때에, '내가 어떠한 자인가? 구원을 받은 자인가? 아니면 멸함을 받는 자인가?'라고 경책을 받을 것입니다. 5절부터 19절까지가 경고와 논박으로 계속 진행이 되는데,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 주시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렇게 구원하시고 또 멸하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주께서"라고 나와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 형제님께서 4절에 주님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뜻하는 '주재'의 '주'와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주'에 대해서 이렇게 구분해 주셨는데요. 여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주”라는 단어가 5절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해서 부인하는 자들에게 다시금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구원을 행하시고 또 멸하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오시기 전의 일이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다는 것을 저희가 알 수 있고 또 그들에게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예,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좀 전에 형제님께서 베드로후서 2장과 비교를 해 주셨는데요.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세 가지 심판'이 나와 있습니다. 1. 범죄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2. 옛 세상에 대한 노아 홍수 심판, 그리고 3.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심판, 그래서 다른 점은 유다서에서는 '노아 홍수' 대신에 '이스라엘이 광야에 심판을 받은 것'이 나와 있고요. 또 다른 점은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롯을 건지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유다서에서는 배도에 대한 심판이 많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베드로후서 2장은 시간 순서대로 그 심판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유다서는 시간 순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배열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간적인 순서로는 6절, 7절, 5절 이렇게 되어 있는데, 5절부터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심판은 유다서에서 '반복되는 세 부분'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5절에 대한 부분은 4절의 말씀에 따른다면 '경건치 아니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8절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이 '영광을 훼방'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6절은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의 모습이고, 또 8절과 비교한다면 '권위를 업신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7절과 4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 모습이고, 또 8절에서는 '육체를 더럽힌 모습', 그와 같은 예적 판결을 통해서 지금 현재 교회 가운데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심판이 분명한 것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적인 순서의 배열이 아니라 '의미적인 목적'으로 배열이 된 것이 5절, 6절, 7절의 특징인데요. 5절의 사람들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신에서 먼저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믿지 아니하는 것으로부터 배도가 시작됩니다. 그다음은 6절에 "지키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두신 질서, 또 권위를 부인하고 그곳에서 떠나는 것으로 이어지고, 그 마지막 모습은 이제 7절과 같이 도덕적인 타락과 또 무질서와 혼란의 모습, 범죄함으로 끝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심판'에 있어서도 점점 심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5절에서는 "멸하였다" 육체적인 죽음을 나타낸다면, 6절에서는 "흑암에 가두게" 되고, 7절에서는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지금 거짓 교사들이 육체적으로 죽을 것이며, 또한 이제 음부 가운데서 심판을 기다리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을 것임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이제 5절, 6절, 7절이 배열이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이기범 형제님 : 5절에서 시작이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교제가 된 것처럼 그 '알다'라는 것은 '완료형'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알다라는 게 항상 나오면, 이게 경험으로 아는 건가, 직관으로 아는 건가라고 했을 때, 여기서는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만히 들어온 사람이 몇” 있었지만 지금 유다서를 받고 있는 그 수신자들 성도들은 이미 이러한 충분한 성경 지식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흠정역으로 한다면, "너희가 본래 이것을 직관적으로 알았으나"라고 해서 충분한 성경 지식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지난 시간에 저희가 교제가 된 것처럼 그들은 삶에 있어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그리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 삶에 있어서의 세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충분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 유다서의 수신자들은 이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방금 형제님 교제하신 대로 5절, 6절, 7절에 그 세 가지 예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제가 된 것처럼 베드로후서는 이렇게 시간 순서라면 여기 유다서는 시간 순서가 아님을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로 하면 6절이 첫번째고, 7절이 두 번째고, 5절이 세 번째가 됩니다. 그럼에도 그 심판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렇게 하강에 있어서는 5, 6, 7절이 계속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보는 거죠. 저희가 그 계시록을 보게 되면 이 순서가 이해가 된다고 보입니다.
특별히 5절에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구원하여 내시고 믿지 않는 자를 멸하셨으며"라고 돼 있기 때문에, 그 강조점이 "멸하셨다"는데 있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4절에 나온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은 저희가 지난 시간에 교제가 된 것처럼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고, 그들의 운명이라는 것은 5절에 나와서 앞에 있는 구원이 아니고 뒤에 있는 “멸하셨다”라는데 그 강조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저희가 베드로후서를 보게 되면 그 롯이라든가, 또 노아같은 경우를 보게 되면 이 ‘구원’ 쪽에 강조가 있죠. 그런데 5절에서는 이렇게 ‘멸하셨다’의 강조가 있으면서 이들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그리고 이 사람들은 8절에서 "꿈꾸는 이 사람들"로 표현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멸하셨다라는 것, 그래서 이들의 심판은 이미 기록돼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강조점을 보면서 6~7절로 더 이렇게 하강돼 가는 모습을 보면, 8절까지 쉽게 좀 더 깊게 이해가 되리라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여기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 '본래'라는 단어가 3절에서 나온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서 '단번에'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제 성도들은 이 믿음의 도를 단번에 받았고 또한 성도들은 단번에 그 범사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알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나게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놀라운 이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자기를 건축해야 되는 필요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의 도를 단번에 받았다는 것, 우리가 이것을 범사에 알았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특권을 가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여기 나와 있는 이 세 가지 심판의 예를 보아도, 이 심판을 받은 자들이 모두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게 강조돼서 사용이 되어 있는데요. 이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경우에는 '구원'이라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천사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라고 돼 있는데, 이 자기 지위라는 것이 ‘높은 지위’를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었는데도 그 특권에 합당하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경우에도 우리가 창세기에 보면 롯이 그 땅을 바라봤을 때 여호와의 동산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게 물이 넉넉하고, 그러니까 풍요로운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 특권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그러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결국이 심판이 된 것입니다. 이건 물론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그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를 합당하게 건축해야 되는 필요를 강조하는다는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데 망할 수 있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언뜻 보면, 아 이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자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치 않고 그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그 권위를 무시하고 반역을 한다면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분명하게 공의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않은 자들을 멸하셨으며"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제 "후에"라는 이 단어를 생각해 봤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일을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하시기도 하고 멸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생각하고 있어야 됩니다. 단지 하나님은 그 은혜만 베푸신다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멸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고 애굽에서 출애굽하여서 나왔지만, 그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기업의 땅에 들어가기를 불신 가운데 거절했을 때 그들은 이제 다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하신다"라는 것을 조금 생각해 보자면, 이 멸하신다는 것이 어떤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복지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가 받아야 되는 복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육체로 봤을 때는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영생을 생각해 봤을 때는 지옥에 가는 것을, 그 영생을 얻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경우에는 이 경우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할 때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출애굽 사건을 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으로 적용해서 우리가 말을 합니다. 그런데 1차적으로는 그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그 나라가 전체적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개인적인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그 개인이 다 구원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나라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그 나라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그 나라에 약속된 그 영적인 복지를, 그 복지에 참여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게 이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 가나안에서 그 기업을 누리는 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땅 광야에서 육체적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게 여기서 멸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4절에서 저희들이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배도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판결을 정해 놓으셨고, 그것을 미리 기록해 놓으셨고, 선언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5, 6, 7절에서는 그러한 자들에 대한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해 주신 대로 "너희가 본래 범사에 알았으나" 3절에 보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동일한 '단번에' 라는 단어가 또 다시 여기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사도로부터 진리를 전해 받았을 때, 이제 배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그들도 다 함께 전해받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회자 형제님 그 질문대로 "후에" 여기 보면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 여기서 '백성'이라는 단어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 같은 대명사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는데 믿지 않고 멸망한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했다고 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육체가 죽은 것으로 분별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구원받았으니까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다. 저희들이 이 세 가지 예가 하나님께서 배도자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임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이 나머지 6절, 7절을 저희들이 또 생각했을 때, 이 멸망했다는 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사용되는 "멸망치 않고" 즉, 지옥에 가는 형벌인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지 않은 것이죠.
그렇다고 했을 때, 그 앞절에 있는 앞부분에 있는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를 그럼 어떻게 이해해야 될 것인가? 이 '구원'이라는 단어는 저희들이 보통 '구원 받았다' 할 때 쓰는 이 구원이거든요. 그런데 이 구원이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나올 때 그 문맥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문자적인 의미로, 1차적인 의미로 '위험한 상태에서 안전한 상태로 옮기다'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 14장 30절 같은 경우에 베드로가 물속에 빠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말은 '나를 영혼을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얘기가 아니라, 안전하게 해달라고, 이 위험한 상태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희들이 이 단어를 생각했을 때, 그들이 영혼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종 되었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그러한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종 되었던 데에서 건져내시는 은혜와 능력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단어를, "믿지 않은 자들을 멸하셨다." 이것을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제가 읽지는 않겠지만 민수기 4장 11절, 12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멸하겠다"라고, 이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이제 이 세 가지가 앞에서 형제님께서 '배도'에 관련해서 4절과 8절과 잘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이 5절은 이제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의 배도'라고 생각이 됩니다. 배도라고 하는 것은 떨어져 나가는 것, 이탈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 능력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러한 데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그런 데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케이스를 유다는 언급하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하늘나라에 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고, 여기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그 배도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 보면 과거에 했던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적용해 보라고 유다는 계속 저희들한테 얘기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5, 6, 7절에 보면 하나님의 그 엄중한 심판이 나타납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배도자들을 향해서 그 무서운 심판을 내렸던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저희들이 섬기고 있는 그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희들이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합당한 위치에 두고 저희들이 섬겨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사회자 형제님 : 저는 5절에서 "구원하셨는데 멸하셨다." 그래서 그 관주를 읽기 전에는 안 헷갈렸어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특별히 위에 보면 "가만히 들어왔다"고 돼 있거든요. ‘가만히’, 그래서 뭘 생각하냐면 구약에서 섞인 무리들이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 원래 나와야 되는 사람이 아니고 섞여서 들어온 이방인데,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같이 들어온 무리가 있었거든요. 그것을 생각해서 여기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은 약간 그런 것과 이렇게 같이 연관이 돼서 이때 멸망 당할 때, 그런 사람들은 같이 멸망을 당했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관주를 보니까 이걸 민수기 14장하고 연관시킨 거예요. 민수기 14장은 뭐냐하면 두 명 빼고 다 죽는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두 명 빼고 다 죽는다는 걸 여기다 적용시키려고 하니까 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가만히 들어온 사람이 멸망을 당하는 것에다가,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이 2명밖에 없었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으니까, 이제 그거랑 연관시켜서 약간 제가 좀 혼동이 됐는데, 어떻게 보면 잘 교제해 주신 것 같습니다. 우문현답이라고 질문은 우문이었는데 그래도 잘 교제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그다음에 6절을 하겠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그래서 이것도 '언제냐 이게?' 궁금한 건 '어디 나오냐?' 그런 것들인데요. 네, 일단 관련해서 먼저 교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보통 이렇게 교제를 안하면 신영 형제를 지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 신영 형제께 한번 부탁을 드려보겠습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제가 지금 그 생각을 좀 하고 있었거든요. 제 이름이 나올 거라는... 유다서는 준비를 하면서 제가 보긴 하는데 좀 어려워서 준비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앞에 얘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보면서 잠깐 들었던 생각들이랑 주석을 보면서 알게 된 부분들 짧게만 얘기하면, 앞에서 지금 5절, 6절, 7절에 나오는 얘기가 4절에 있는 그 배도한 자들의 심판이 미리 정해져 있고 선언 하셨다 하면서, 5절에 나오는 것들은 "경건치 아니하는 자", 그러니까 그 애굽에서 구원을 하셨는데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가, 경건치 아니하는 자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되고요. 그다음에 6절에 "천사들의 큰 날의 심판과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니" 이 부분은 그 홀로 하나이신 주재를 부인하는 자들이, 이 천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떠나서 자신들이 더 높아지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들을 얘기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자들로 예를 들었다고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7절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한 자들에 대해서 이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제가 여기 유다서를 보면서 이 정도 생각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아까 잠깐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위'라고 번역된 단어는 '처음', '으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천사들과 사용되었을 때는 에베소서 같은 곳에서 "정사들"이라고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천사들 가운데,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기름 부음 받은 그룹이었는데 그 천사가 계시록 12장에는 하늘 별의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천사들 가운데 그와 같은 범죄 가운데 참여한 자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나타내실 때, 특별히 "그 높은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지키라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뜻하는데 그들은 그것에 만족치 아니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라고 돼 있는데 이 처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앞입니다. 그 곳을 떠나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반역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그 천사들에 대해서는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서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완료형으로 이렇게 되어 있고요. 여기 "가두었다"라는 동사가 '지키다'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지키고 현재 있는 것입니다. 이 '큰날의 심판'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단이 최종적으로 불못에 던져지는 그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한 천사들 가운데 지금도 결박에 매여 있지 않고 사단의 종으로서, 수하로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높은 지에 있는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결박으로 어두운 구덩이에 특별히 두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특별히 높은 지위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제하신 대로 그들이 놀라운 특권 가운데 있었는데, 그것을 귀히 여기고 또 감사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반역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용서치 아니하시고 큰 심판을 하셨다는 것을 이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여기 앞에 말씀하신 것처럼 '지키다'라는 단어가 6절에 두 번 나옵니다. 하나는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서 나오고, 그리고 그렇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 흑암 가운데 지킴을 당하게 됩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사단이 그 하나님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한 그 사건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제 가장 음부의 낮은 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높은 특권을 받은 자들이 그것을 그 가운데서 교만해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경우에는 ‘불신’이었고, 이 천사들 같은 경우에는 ‘교만’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만해졌을 때 그들은 이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지는 지금 현재 받는 심판을 받게 되고 그리고 마지막에 큰 날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크게 되리라 했지만, 결국 그들이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 큰 날의 심판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받은 특권하고 또 비교되고, 상반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도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놀라운 특권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특권을 받은 자들이 하는 것은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21절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 라고 봤을 때, 이 천사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고 자기 처소를 떠났는데요. “자기 지위”는 그 높은 위치를 말해주고 있고, “자기 처소”는, 이 '처소'라는게 이제 ‘집’,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따뜻한 애정의 자리, 그 하나님 앞, 거기를 그들은 떠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성도들은 그 따뜻한 애정의 자리,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자기를 지키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그들을 흑암에 가두셨다"라고 되어 있는데, 베드로후서에서는 어두운 구덩이, 어두운 결박, 그걸 그들을 당하게 합니다. 천사들 같은 경우에는 흑암 가운데, 어두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없고, 그래서 그 빛 가운데서 돌이킬 수 없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그런 가운데, 무서운 심판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는 그 심판의 두려운 모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 이기범 형제님 : 6절에 교제가 된 것처럼, 6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교만'입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4절에 나온 것처럼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이러한 교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도 5, 6, 7절이 계속 하강한다고, 그러니까 더 안 좋아지는 것으로 말씀을 드렸는데요. 또 6절을 보게 되면 이 교만이라는 게 올라가려고 그러는 거죠. 올라가려고 하는데, 결국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게 되고요. 그다음에 "가만히 들어오는 사람 몇"이 이러한 교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신 거고요.
지금 "가두셨다"라는 것이 여기에 보게 되면, 6절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는 '부정 과'거로 돼 있고요. 자기 처소를 떠난 뒤, 부정 과거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암에 가두셨"다는 것은 '완료형'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다는 것인데요. 이게 베드로후서에는 동일하게 '가두셨다'는 것이 동일한 단어로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키다'라는 것과 여기 '가두다'라는 것은 같은 단어인데 베드로후서는 이것을 현재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제 완료나, 현재나, 완료라면 그때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렇다는 거고, 베드로후서는 현재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렇다는 것은 지금 유다서의 수신자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일이 아니고, 과거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이 지금까지 가두어지는 것처럼, 이것은 오늘 현재 지금 있는 일입니다. 저희가 지금 이것을 눈으로 못 보기 때문에 그런데요. 오늘 현재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먼 미래에 언젠가 일어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이러한 예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이제 말씀해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을 잘 알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있는, 유다서의 수신자들은 이미 그 교만의 결과가 그 흑암에 가두어지고 있다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앞에서 형제님이 언급해 주신 대로 지금 이 6절에 언급된 이 천사들은 현재 ‘흑암’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의하면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사용된 '지옥'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런 지옥이 아니고 '타타루스'라고 하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여러 악한 영들이 언급돼 있는데요. 그들은 현재 활발하게 영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영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 저희가 이 6절에서 보는 것처럼 흑암에 가두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베드로후서 2장 4절처럼 타타루스에 가두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언급된 이 천사들은 다른 천사라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천사들은 현재 사단과,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권세자와 정사와" 이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천사들이랑 다른 종류의 천사라는 걸 저희들이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이 천사들이 무엇과 관련이 있냐면, 7절에 보면 "그 이웃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여기서 '저희'라는 대명사가 누구를 가르치느냐가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요. 그 6절 앞에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하면 이 천사들은 '성적인 것'과 관련된 천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믿기로, 여기에 지금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영원한 결박으로", 현재 결박된 천사들은 창세기 6장 1절부터 4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들"로 믿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언급된 것은 예외 없이 천사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천사들이 자기 처소를 떠나서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있는 여자들과 성적인 결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후손들이 태어난 것이죠. 창세기 6장에서는 그들을 이제 네피림이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을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지금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둬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노아 홍수 때 다 이제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여기에서 이 천사들은 교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정욕’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맨 처음에 모두 설명해 주신 것처럼 그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그 주님의 권위를, 명령을, 주님께서 정해놓은 처소를, 주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떠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6절에 나타난 이 천사들은 '자기의 지위로부터의 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귀하게 만들어주시고 합당한 위치를 주셨는데, 거기로부터 배도한 것이고 그 배도한 천사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그 형벌을 가한 것입니다. 여기 보면 "영원한 결박"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있고 그리고 "흑암에 가두셨다"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그 깜깜한 그곳에 그들은 현재 결박되어 있고, 그리고 큰날의 심판까지 그들은 결국에는 훗날의 지옥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천사라고 이제 믿고 있습니다.
- 사회자 형제님 : 그래서 이제 짧게 교제하면, 저도 이 부분에 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를 창세기 6장 1절, 아까 말씀하신 그 부분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세상의 딸들이 아름다우니까 자기들이 내려와서 성적인 결합을 한 것을 가리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관주나 이런 데 보면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에스겔서에 나온 태초에, 창세 전에 반역한 것, 그다음에 아니면 창세 직후에 반역한 하늘에서 자기 지위를 높이려고, 그러니까 낮추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이건 지금 내려온 거잖아요. 지금 제가 믿는 것은 내려오는 거고,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위치를 가지려고 올라가다가 교만으로 멸망하는, 그런 거라고 설명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 이렇게 보시다가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이렇게 좀 달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관주에는 그렇게 잘 설명이 돼 있고요. 그런데 저는 이제 창세기 6장에 나와 있는 그런 부분하고 이 말씀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한 가지 더 교제하고 싶은 건 뭐냐하면, 제가 전에 무슬림 이슬람교 분하고 얘기를 하는데 공격을 하죠. "저 기독교가 이상하다." 왜 이상하냐 하면 일사부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한 번 재판을 받으면 더 이상 벌이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벌써 여기 다 심판 받았지 않냐? 그런데 왜 나중에 또 심판이 있냐? 두 번 심판하냐?"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예를 들어 부자와 나사로에서 부자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데 그런데 왜 나중에 또 심판을 왜 또 받냐? 한 죄에 대해서 두 번 심판이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답변을 못 했죠. 거기서 제가 뭐 딱히 그거 반박할 수 없더라고요.
우리가 복음 집회할 때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번 돌아가셨으니까, 두 번 일사부재에 의해서 우리는 심판이 더 이상 없지 않냐, 이런 식으로 교제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제가 아니까 그렇게 반박을 못했는데, 이제 우연히 책을 보다가 아이언사이드 형제님 책에 이 부분을 설명을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여기 보면 이 지위를 떠난 천사들이 갇혀 있는데, 이 갇혀 있는 게 심판이 확정돼서 갇혀 있는 게 아니고 '형을 받기 위해서' 그러니까 큰 날의 심판까지 갇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무슨 개념이냐 하면 형이 확정되기 전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어려운 게 아니고, 지금 우리 현실도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형이 확정되기 전에 어디 가냐면 구치소에 들어가요. 그다음에 형이 확정되면 형무소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어디 가 있는 거냐면 구치소에 갔다는 거죠. 아이언사이드 형제님의 그 표현에 의하면, 그래서 지금 현재 형은 확정이 안 돼 있는데 일단은 구치소에 일단 가 있고, 그러다가 나중에 큰 날이 심판이 되면 형이 확정되고 그럼 이제 형무소로 들어간다. 그게 영원한 불못이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해놓은 걸 보고 '아, 진짜 이게 맞다.' 베드로후서에도 이렇게 돼 있고, 지금 여기도 이렇게 돼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상당히 형제님의 설명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서 한번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제가 한번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항상 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전공이 그쪽이 아니니까,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 이 정도 하겠습니다.
다른 형제님들도 관련해서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사회자 형제님 어떻게 이해한 거예요? 아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 했는데, 가나안 입구에서 멸하여졌죠. 그랬을 때 지금 이야기 나온 걸 보면 둘 중에 하나가 문제인데, 1. 구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이 아니든지, 2. 멸이 지옥이 아니던지인데, 어떻게 이해했나요? 아까 이해를 잘 했다고 그래서요.
- 사회자 형제님 : 저는 관주를 보기 전에는 안 헷갈렸는데, 그러니까 여기서 어떻게 이해했냐면 원래는 가만히 들어온 무리가 있다, 그러니까 가만히 들어왔다는 뜻은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 섞인 무리들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켜요. 어디를 가든지, 문제를 먼저 일으키고,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진짜 안 믿은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당연히 멸망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멸망 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여기서 말해놓은 거기 때문에, 여기서 구원받았다는 건 '가만히 나왔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사람들이 원래 다 죽어야 되는 사람들이 죽은 거다라고, 이제 저는 믿고 있었는데요. 이제 민수기 14장하고 연관이 딱 돼 있는 거 보고, 아니 민수기 14장은 쉽게 말해서 두 명 빼고 다 죽는다는 건데, 이스라엘 백성까지 그거랑 연관시켜 버리면 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고, 이 구원받은 사람들 다 공격하게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제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리는가? 그게 아니고 그냥 육신적인 죽음, 여기서 진짜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냥 이 육신적인 죽음을 그냥 얘기하는 거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신약은 영적인 거니까, 이제 '영혼의 멸망은 아니고'라고 해석을 하신 것 같아요. 옆에 형제님들을 보시면요.
- 한봉래 형제님 : 누가요?
- 사회자 형제님 : 아닌가요?
- 한봉래 형제님 : 그러니까 1. 김회상 형제님은 구원이 애굽에서의 그 '비참한 삶에서 구원'받은 거지, '영적인 구원이 아니다.' 그래서 멸망했다라고 하는 건 지옥 간 거다, 이렇게 해석을 했고요. 그렇죠? 2. 강 형제님은 그냥 이 멸망했다고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죽은 거다. 구원은 진짜로 받은 거다.' 이렇게 교제한 거죠. 제가 잘 이해했나요?
- 강성찬 형제님 : 멸망 부분에서는 말씀하신 대로인데요. 이제 출애굽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개인적인 영적인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아서 그것이 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을 상징하고 있지만, 그 출애굽기 내용을 보면 굉장히 집합적으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어떤 한 가정에서 그 가정이 어린 양을 가져오고, 어린 양을 피를 바르고, 이렇게 가정 단위로 되고, 또 그 나라 전체가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구원은 '이스라엘 나라로서의 구원'이지, 실질적으로 그 사건 자체에서 일어난 것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로서 구원을 받은 거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영적인, 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 한봉래 형제님 : 그러면 가데스 바네아 앞에서 다 멸했을 때,
- 강성찬 형제님 :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그 나라가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복을 잃어버린 거죠.
- 한봉래 형제님 : 그중에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 강성찬 형제님 : 예, 구원받을 사람이 있는 거죠.
- 한봉래 형제님 : 그러니까 어쨌거나 지금 다른 거죠. 회상 형제님은 가데스 바네아 앞에 있던 출애굽 1세대 천국 가면 못 만나는 거죠?
- 김회상 형제님 : 아니죠.
- 한봉래 형제님 : 그래요?
- 김회상 형제님 :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믿지 않은 자들이 멸망을 당했다는 거고요. 거기에 개인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겠죠. 다 안 믿은 게 아니죠. 그 사람들이 다 안 믿었다거나, 다 믿었다가 아니고, "믿지 아니한 자들을 멸하셨다"고 돼 있으니까요.
- 한봉래 형제님 : 믿은 사람도 있나요?
- 김회상 형제님 : 있죠. 모세도 광야에서 죽었지만 믿은 사람이고요.
- 한봉래 형제님 : 그렇죠. 만약에 가나안에 못 간 것을 천국을 못 갔다고 해석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모세하고 아론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또 모세는 변화산에도 나타나니까,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하여간 이 부분은 좀 해석상 조금 어려운 면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잠깐만 하나 말씀드리면, 그리고 이제 창세기 6장하고 연결할 때에도 그 천사가 여자와 결합해서 네피림을 낳고 했을 때 보면, 또 주님께서 천사는 결혼 안 한다고 돼 있는데? 이제 이런 문제들이 계속 생기는 거죠. 그러면 네피림 후손들이 거인이냐? 이건 아닌 걸로 해야 합니다. '이종 결합'을 하면, 그러니까 노새가 뭐하고 결합한 거죠? 말하고, 이렇게 해갖고 만들면 번식이 안 됩니다. 계속 종족 번식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네피림들이 계속 있어서 나중에 보니까 다윗 시대에 또 나타나고, 이런 건 해석이 틀린 거고요. 하여간 그것도 계속 논란이 되는, 창세기 6장도 논란이 되고 있는 건데요. 그건 여러 가지 나중에도 계속 생각해 보기로 하고요.
5절 잠깐 보시면 그런 걸 지금 언급하고 있는데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이제 '본래'라고 하는 것이 3절에 있는 "단번에" 이렇게 한 거죠. 그러면 3절에서도 이렇게 돼 있습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 했을 때 이 믿음을 저희가 '진리'로 이해한다면, 혹은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으로까지 저희들은 이해할 수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진리를 한 번에 주신 거죠. 여러 번 나눠주신 게 아니고 한 번에 주셨고, 최종적으로 주셨고, 전부 주신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성경 이외에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고린도전서를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도 방언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예언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형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그때 그 예언한 형제는 이렇게 했을 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하고, 지금은 성경으로 기록돼 있지만 그 당시에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시에 예언이 있었고, 그다음에 방언이 있었어요. 방언은 전부 외국어죠. 그러니까 어떤 다른 나라, 아프리카 언어도 전혀 가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그 언어를 쓰는 거예요.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것을 또 통역하는, 고린도니까 헬라어로 통역하는 형제가 있는 거죠. 그와 같은 집회가 고린도전서 14장에 있거든요. 그러면 이게 굉장히 기적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인데 어떤 일들이 벌어지냐면, 만찬 예배 때 누구는 많이 먹고 누구는 못 먹고 그래서 취하고, 가난한 사람 배고프고, 세상에 이렇게 성령의 강한 능력으로 기적들이 행해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 시대에도 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을 막 하는 거예요. 그런 게 처음에는 굉장히 좀 이상하다, 어떻게 그게 두 개가 동시에 있을 수 있나 싶었는데, 결국 그게 하나님께서 단번에 믿음을 주시기 위한 거거든요. 그래서 고린도 그 시대에,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다 일어나게 하시고, 사도들이 말씀으로 정리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달돼 있어서 우리는 이제 모든 최종적인 계시를 믿음의 도로 갖고 있는 거죠.
그다음에 이렇게 보면 5절도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도, 유다서를 받는 독자들도 그렇죠. "단번에" 그들에게 뭐가 주어졌냐면, 단번에, “한 번에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모든 것을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배도가 되는 거죠.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한 번에 다 알아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만약에 배도한 사람들을 따라가면 자기들이 배도자가 되는 거죠. 이미 주어진 특권이 있기 때문에, 그 알고 있는 것을 벗어나면 배반하는 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몰라서 하는 범죄가 아니고 진리를 알고 있는데도 어긴 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생각해 보는 거죠. 그 유다서를 받는 독자들이 다 알수 있냐? 그것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다시 보면 요한일서에서 저희들이 이렇게 했었죠. "아비들아, 청년들아, 아이들아" 그러면서 이런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기름 부음이 있으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그게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미 그들에게는 성령이 계시고,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든 것을 안다라고 하는 표현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지식적으로는 뭘 모를 수 있죠. 그런데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성령,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을 가르치시는 것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면 그것은 분명히 성령께 묻고 인도함을 받았더라면, 틀림없이 진리 가운데로 갔을 텐데, 이걸 안 하고 자기 지혜를 믿고, 혹은 자기 경험을 의지하고, 혹은 뭐 이렇게 해서 된 거죠. 그러니까 이제 배도에 해당하는 거죠.
그래서 하여간 5절에서 지금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은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다.", "너희가 단번에" “범사는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그러니까 신약 구약에 있는, 그래서 성경 전체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표현들, 그러나 물론 요한일서에서도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으니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다음에 가르치는 분이 있는 거죠. 여기서 "알고 있지만 생각나게 해야 되고", 그러니까 알고 있는 것을 묵상해야 되고, 그걸 적용해야 되고, 또 예를 들면 저희같이 하자면 모임에서 객관화시켜야 되고, 이렇게 된 거죠.
그리고 하여간 이제 배도한 자들의 심판에 대해서 세 가지 예를 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 그다음에 천사는 창세기 6장으로 이해하면, 그다음에 이제 7절은 안 할 거죠? 내일 할 거죠? 아니 지금 시간이 넘어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지역인데요. 그들이 동성애를 해서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서 지옥을 이렇게 상징하는 심판을 한 거죠.
하나만 더 해보면 최근에 어떤 분들이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어디 갑니까? 천국에 바로 가나요? 아니면 누가복음 16장에는 아브라함의 품에 갔던데 우리도 아브라함의 품에 가나요? 아니면 십자가 강도에게 낙원에 있으리라고 그랬는데 낙원에 가나요?" 그러더라고요. 그다음에 "안 믿는 사람이 죽으면 지옥에 바로 들어가나요? 아니면 아까 말한 대로 대기소에 있나요?" 이제 지옥 대기소, 천국 대기소, 천국이 완성돼야 되니까, 새 예루살렘 성을 최종 목적지로 본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한 후에 데려오시겠다고 했으니까,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집에 가야 최종적인 거라면 지금 믿고 죽은 성도가 간 곳은 최종적인 데는 아니죠. 그러니까 이제 천국 대기소가 있고 지옥 대기소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설명하면 또 어떤 분은 "그러면 예수 천국, 불신지옥, 그거 틀린 말이잖아요? 예수 천국 대기소, 불신 지옥 대기소라고 정확하게 해야지 왜 대기소를 뺐어요?" 또 이런 질문도 받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희들이 계속 성경을 보면서 왜 대기소를 뺐는지, 이게 그냥 일부러 간단하게 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지금 저희들이 사단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고 계신가, 이런 것들을 저희들이 쭉 성경 공부하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걸로 이렇게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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