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모임 성경읽기/유다서 성경읽기

성경읽기 : 유다서 9-10절

박이레 2026. 9. 17. 21:33

성경읽기 : 유다서 9-10절 / 마포모임, 23년

- 사회자 형제님 : 9절과 10절 말씀을 함께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5절부터 12절까지 읽겠습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유 1:5-12).

지금 저희는 계속해서 유다가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거짓 교사들의 위험성에 대해서 지금 경고하고 있으며, 특별히 4절에서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 그리고 8절에서 "꿈꾸는 이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지금 5절부터 저희는 이 말씀을 교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저희가 지난 시간에 8절에서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라고 이 말씀을 교제를 했었는데요.
마지막에 "영광을 훼방한다"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오늘 9절 말씀을 통해서 유다는 구체적으로 천사장 미가엘의 과거 모세의 시체에 대한 마귀와의 변론에 대해서 그것을 예로 들면서, 어떤 변론하거나 그것을 훼방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 사람들" 이제 그 사람들, 앞서 저희들이 말씀드렸던 이 꿈꾸는 그 사람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그것은 어떤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 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오늘 교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9절에서는 흠정역을 보면 처음에 개혁 성경에 안 나와 있지만 그 앞에 "하지만" 또는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꿈꾸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 가지의 문제가 있었죠. "육체를 더럽혔고", "권위를 업신여겼고", “영광을 훼방하는도다"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고요. 이것에 대해서, “하지만 천사장 미가엘"은 이렇게 말하면서 천사장 미가엘과 모세의 시체에 대한 변론을 미가엘과 마귀가 함께 하는 것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9절의 말씀은 천사장 미가엘과의 모세의 시체에 대한 마귀와의 변론에 대한 말씀은 사실 다른 성경에는 나와 있지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이 부분이 어디서 왔을까? 저희가 통상 말씀을 보면 신약 성경에서는 구약에 있는 말씀을 예로 들어서 이렇게 설명을 하곤 했는데요. 특별히 이 부분이 어디서 왔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성도님들께서 이 부분에 대한 어떤, 이 말씀이 어디서 왔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교제가, 만약에 아시는 분이 있다면 교제를 해 주시기 바라고요.
또 왜 유다는 천사장 미가엘에 대한 예로 들어서 이 부분을 설명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마귀와 다투어 변론한다"라는 그 의미하고, 그다음에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한다"라는 이 의미에 대해서 교제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부분은 베드로후서 2장에 있는 말씀, 오늘 9절, 10절은 베드로후서에 있는 2장에 있는 말씀과 거의 어떤 문장의 의미라든지, 그러한 구성이 사실 유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 부분과 비교를 해서도 교제를 하실 수 있겠습니다.

먼저 9절을 교제를 하겠습니다. 현재 시간 10분이니까요. 35분까지 교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형제님들 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 9절에 보면 모세의 시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모세의 죽음이 기록된 곳이 신명기 34장에 기록돼 있는데요. 신명기 34장 1절에 보면,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신 34: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신 34:4).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신 34:6).

모세의 시체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저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신명기 34장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어지는데요. 신명기 말씀처럼 모세는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에 있는 느보산에서 죽었고,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은밀하게 장사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일과 관련해서 사회자 형제님도 말씀하셨지만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오늘 말씀을 볼 때, 이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의 다툼과 변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귀가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했던 것 같고 이때 천사장 미가엘은 천사장이기 때문에 그런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지만, 마귀를 훼방하는 판결, 마귀를 훼방하는 판결은 마귀를 비방하거나, 정죄하거나, 고소하지 않고,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 하나님께 이 일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는 미가엘도 이런 본을 보였는데요.
그런데 지금 8절과 내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8절에 "꿈꾸는 이 사람들", 거짓 교사들은 저희가 8절에서 교제되어진 것처럼, 주 하나님의 권위, 또 하늘의 권세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업신여기고, 또 부정하고, 또 그런 가운데서, 그들은 훼방하는 말을 하고, 함부로 말을 하고, 또 함부로 행동하는, 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 거짓 교사들, 그들의 잘못과 또 심판의 당위성을 천사장 미가엘의 예를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말씀하신 대로 신명기 34장 6절이 유다서 9절의 배경이 됩니다. 실제로 그때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 부분이 신명기에 기록되지 않고 유다서에 기록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있었던 일은 아마도 전승을 통해서 내려오게 하시고, 또 이것을 사용하셔서 유다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유다서에 이 말씀이 기록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의 배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시고 그 책의 주제에 맞게 성경의 기록들을 배치하신 것을 이것을 통해서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신명기 34장 6절에 "장사되었고"라고,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장사한 것이 아니고 아마도 유다서 9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추측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장 미가엘을 통해서 모세의 시체를 장사하게 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천사장은 가장 높은 천사의 위치입니다. 미가엘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리오'라는 뜻인데요. 하나님은 그 높은 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존귀하게 대하시고 장사하셨음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때 마귀, 고소하는 자가 와서 다툰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에 대해서 거짓 고소를 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모세의 시체와 장사됨에 있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변론을 한 것입니다. 그때는 말로 미가엘이 마귀와 변론했지만, 계시록 12장 7절에서는 미가엘이 그의 사자들과 용의 사자들과 실제로 싸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기 전에 미가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다투어 변론하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않았습니다. 판결을 쓰는 것은 재판장이 하는 것입니다. 변론하였지만 그는 천사장이라 할지라도 재판장의 위치에 자기를 두지 않은 것입니다. 재판장이 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그 위치 가운데 계심을 그는 아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비록 타락한 영적인 존재인 마귀이지만, 스스로를 재판장의 위치에서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않고 "다만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길 원한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길 원한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대로 스가랴 3장 2절에서는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비록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재판장의 위치에서 이 사단을 그와 같이 훼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8절에 나오는 “꿈꾸는 이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재판장, 하나님의 위치에 오른 것처럼 그 영적인 존재들, 영광들에 대해서 훼방하는 판결을 썼던 것입니다. 비록 마귀가 타락한 천사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재판장의 위치에서 그들을 정죄할 수 있는 위치에 두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의 이 예를 통해서 꿈꾸는 사람들의 그런 잘못된 교만한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 이기범 형제님 : 8절에 나오는 "영광을 훼방하는도다"라는 내용에 대해서 저희가 9절을 통해서 그 예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사회자 형제님도 "그러나"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여러 가지로 9절에 "처음도" 번역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사장 미가엘은 영광을 훼방하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천사장 미가엘조차 그 영광을 훼방하지 않았다" 이렇게도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9절에 시작이 "그러나"라든가, 아니면 "미가엘 조차"라든가, 이런 표현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은 9절의 예를 보게 되면 그 피조물에도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희가 성경을 통해서 '해의 영광'이라든가, '달의 영광', 이렇게 보는 것처럼 영적인 존재도 영광이 있습니다. 비록 그 사단이, 마귀가 타락했지만 그에게도 영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광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8절에도 훼방이라는 것이 나오고, 9절에도 약간 표현은 다릅니다만 동일하게 훼방이 나오고, 10절에도 훼방이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꿈꾸는 이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를 잘 모르고요. 오해하고, 피조물이 가진, 사단도 피조물이죠. 그러니까 피조물이 가진 그 영광을 이렇게 함부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꿈꾸는 사람들인데요. 그런데 그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이렇게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않았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를 보았을 때, 저희 생각으로는 비난하고, 그것을 저주하고,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오로지 주께 이렇게 맡긴 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가 그 '훼방'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이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영광은 무엇이고, 그 영광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반대로 한번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8절에 보게 되면 "꿈꾸는 이 사람들"의 특징이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4절에서는 특징이 "경건치 아니하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그리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라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제가 성도님들과 좀 다르게 성경을 볼 수가 있는데요. 저는 4절에서 이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 그리고 그 주어진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렇게 바꾸거나, 저주하거나, 중상 모략하거나, 비방하거나, 이런 것 같습니다. 이것을 쉽게 훼방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고요.
그에 반해서 1절에서  성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도 세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입은 자"고요. 그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었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면 영광을 훼방하는 것의 그 반대, 그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훼방이라는 것은 비방하고, 정죄하고, 저주하고, 중상 모략하고, 이런 것이라면 그 저희는 그의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렇게 훼방과 반대되는 것, 그리고 훼방과 함께 볼 수 있는 것들을 볼 수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그 9절의 내용이 지금 성도님들 교제하신 것처럼 신명기 34장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기록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기를 자료를 보게 되면, 유대인들이 이 내용을 써서 그 당시에 전승이 됐을 것이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제가 된 것처럼 그중에서 그 자체가 그런 기록이 남고, 안 남고의 문제보다는 그 당시에 유다서를 받고 있는 수신자들이 이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아, 그 당시에 미가엘과 마귀가 이렇게 다투었구나.' 이런 그 사실보다는 이것이 바로, 이 꿈꾸는 이 사람들이 영광을 훼방한 것이고, 그것의 예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다투어서 변론한 것에 진짜 의미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바로 영광을 훼방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뭐 이렇게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성경이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천사장 미가엘은 영광을 훼방하지 아니하였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이 사람들은 10절에도 나온 것처럼 "이렇게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 원래 모르는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랬지만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훼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9절에서 이야기하겠다고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여기 이제 "꿈꾸는 이 사람들", 배도하는 자들, 거짓 교사들과 대조되는 한 존재로 천사장 미가엘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천사장 미가엘을 언급한 이유는 '천사장'이라고 굳이 언급을 한 것처럼, 그가 영적인 존재 가운데서도 가장 영광이 있는, 가장 영적인 지식이 있는, 또한 영적인 능력이 있는, 그 존재를 내세운 것입니다. 이 거짓 교사들, 배도자들은 자기가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기가 그런 위치와 지식이 있으므로 영광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그리고 육신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여기서 정말로 이 영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다면 이렇게 행동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사장 미가엘을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훼방하지 않습니다. 그 영광을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마귀가 부당한 고소를 할 때에도, 그리고 가장 합당하지 않는 그런 자가 말을 할 때에도 그는 그것에 대해서 훼방하는 판결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베드로후서 2장에 보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여기서도 그게 나와 있지만, "주의 앞에서", "저를 거스려" 이렇게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앞에서"라는 것은 천사장 미가엘은 주님 앞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게 분명히 역사적으로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영적인 지식과 능력 있는 천사장 미가엘은 주님 앞에서, 특별히 '주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기 원한다"라고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 번째로 "저를 거스려"라고 베드로후서에서는 돼 있는데요. 특별히 그 마귀가 지금은 타락했지만 그가 처음에 어떠한 영광을 가지고 창조되었는지, 또한 그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나 에스겔서에서는 완전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사단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중에 타락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이 이것에 대해서 최후 심판을 내리시기 전까지 그는 자기가 먼저 나서서 그것을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께 심판을 맡기고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천사장 미가엘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별히 "영광을 훼방하지 않는 것"이 중점적으로 나와 있지만, 또한 육체에 대해서도 그는 귀하게 여기고, 권위에 대해서도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또한 함께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별히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체라고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그는 다투고 변론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귀는 그 하나님이 백성들의 인도자로 세운 모세에 대해서 고소하고 비방을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인도자로 세운 그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을, 그것을 귀하게 보는 모습을 또한 잠깐 9절에서도 함께 살펴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그 마귀에 대해서, 그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 자신이 먼저 훼방하는 판결을 쓰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높은 권위고 주님께 허락된 권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성도들이 "천사들을 판단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에게 대해서, 이제 우리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굉장히 놀라운 지위를, 그 존귀한 책임을 맡기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물론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것은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놀라운 직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천사장도 감히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후사로서 그 일을 담당하게 되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사회자 형제님 : Q. 한 가지 좀 질문이 있는데요. 여기 "훼방하다"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사실 8절에 '훼방'이라는 단어와 9절에 '훼방'이라는 단어, 10절에 '훼방'이라는 단어가 같이 쓰이는데요. 특별히 9절에서 ‘훼방’이라는 단어를 그 어원을 찾아보니까 비방하다, 비난하다, 이런 뜻이더라고요. 그러면 여기서의 그 훼방은, 보통 훼방이라고 하면 어떤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이런 일인데 여기서의 훼방은 어떤 비방, 비난이라고 이렇게 말을 바꿔서 이해를 해도 될까요?

- 강성찬 형제님 : 사실 9절에서는 그 권위에 대해서 인정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을 강조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A. 여기서 먼저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하자면 '중상하다'는 것입니다. 정당하지 않게, 더 나쁘게 말을 하는 것을 훼방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대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을 훼방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천사장이 특별히 "훼방하는 판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 도에 지나친 중상을 하는 판결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실 보면 미가엘은 그 마귀의 잘못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다투어 변론하고 그리고 주께서 너를 꾸짖길 원한다고 되어 있으니깐요. 그런데 그것 이상의 자기가 판결을 내리고, 그가 자기의 감정과 기분으로 넘어서서,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더 정확한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걸 고민했냐면, 우리가 어떤 권위 아래에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가 명백하게 잘못한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고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천사장 미가엘이 다투어 변론한 것처럼 우리가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기 원한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하지만 더 넘어서서 중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리고 여전히 우리도 권위 아래 있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는 가운데에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형제님도 그렇고, 사회자 형제님도 훼방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는데요. A. 일단 성경에서 훼방한다라고 하는 단어는 뭔가를 방해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모독하고 멸시하고 또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 중상하는 것, 이런 것들을 말씀하는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
특별히 유다서에서 이 배도자들이 왜 영광을 훼방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저도 좀 퀘스천 마크가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 사람들이 훼방을 했는지, 그 의도가 뭔지를 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냥 이들이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이 영적으로 뛰어나고, 어떤 자신의 권위와 자신의 어떤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은 됩니다. 아무튼 그 부분이 저에게는 좀 어려운 부분이고요.
여기에 보면 계속 하셨던 말씀이지만 "영광을 훼방한다" 8절에 이 영광이라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영적인 하늘에 두신 영광들, 특별히 영적인 존재들,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9절에서 그런 천사들이 언급이 되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미가엘도 그렇고, 이 마귀, 사탄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두셨던 존재들입니다. 미가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그 이름에서부터 그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의 능력과 그의 하는 일들이 이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마귀도 원래는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운 존재들인데, 여기에 보면 마귀가, 이 마귀라는 단어가 '중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귀는 지금 모세에 대해서 참소하고 있고, 중상하고 있고, 천사장 미가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지금 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일이 이제 생긴 거고요.
앞에서 언급해 주신 대로 '천사장'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미가엘은 그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만든 영적인 피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존재입니다. 가장 권위 있는 존재고, 그런데 그라 할지라도 이 참소하는 자에 대해서 훼방하는 판결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판결은 주님께서 하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주'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가 앞에서 배운 그 주님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의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 말에는 그분의 권위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판결을 하시고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찾으신 말씀대로 스가랴 3장 2절에서는 실제로 주님께서 그와 같이 사단에게 판결을 하시는 장면들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가장 높은 천사장이라 할지라도 훼방하는 판결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꿈꾸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이것을 언급한 것에, 왜 이 사건이 어디서 근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계속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우리가 이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이것을 전승으로 알았든, 어떤 기록을 통해서 알았든,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고 이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전승을 통해서 알았던, 어떤 기록을 통해서 알았던, 그것이 다 사실이지는 않지만 유다가 인용했던 이 부분은 사실이고, 성령님께서 인용하셔서 이 부분을 썼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독자들이 잘 아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 서신을 읽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좀 생각을 해보는 게, 이 유다서에 보면 이런 기록들이 자꾸 나옵니다. 여기 방금 우리가 배우는 9절이나 14절에도 보면 소위 말하는 에녹서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외경에서 이렇게 자꾸 언급이 되거든요. 왜 유다는 이런 교훈들을 얘기할 때 분명히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구약에 있는 내용들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데서 인용을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데서 왜 인용을 했을까? 전승이나 성경이 아닌 기록이나 이런 데서 왜 인용을 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아마도 저는 이 배도자들이 이러한 기록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가르침이나 주장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유대인들의 전승이나 영적인 권위가 없는, 이러한 것들을 발췌를 해서 이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들이 가르키는 그 교과서로 삼고 있는 그 책에서 실제로는 너희들을 지금 하나님이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주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이게 미가엘이 사단에게 했던 말이고 주님께서 실제로 이것을 사단에게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사단과 같은 일을, 중상 하는 이 일을 배도자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권위를 무시하고 영적인 존재들을 훼방하는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이 말을 통해서 유다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여기 저희들이 14, 15절에도 경건치 않은 자들을 경고하는 그 부분을 발췌함으로써 너희들이 인용하는, 너희들이 사용하는 그런 그 말씀 가운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지 않나, 그런 의미로 조금 이렇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이기범 형제님 : 한 가지만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아까 교제할 때 8절, 9절, 10절에 그 ‘훼방’을 같은 뜻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 성경은 같은 훼방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아마 사회자 형제님께서 흠정역을 보시게 된 것 같은데요. 흠정역을 보면 8절과 10절의 훼방하고 9절이 조금 다른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시 또 헬라어를 보게 되면 그 8절과 9절과 10절은 사실 같은 단어고, 9절에 있는 표현을 정확히 말하면 그냥 '훼방 판결', 이런 식으로 해서 8절과 10절은 ‘동사’로 쓰이고, 9절은 ‘명사’로 쓰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론 또 사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그냥 우리 성경에 있는 것처럼 그 훼방이라는 8, 9, 10절은 사실 동일한 의미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아무래도 표현 자체가 '훼방 판결', 이런 식으로 이렇게 표현이 돼서 형태가 좀 다르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사회자 형제님 : 예, 감사합니다. 10절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10절은 9절에서 미가엘조차도 훼방하는 판결을 하지 않고 "주님께서 꾸짖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그 말을 했는데요. 10절에서는 앞에 "그러나"라는 단어가 흠정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이 사람들" 아까 말했던 8절에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그것이 어떠한 상태이고 그들의 결과가 어떤지를 그 뒤에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1절, 12절, 13절에서 성경에 예를 들어서 11절에는 가인, 발람, 고라를 들었고, 12절에는 여러 가지 성경에 나오는 암초, 목자, 구름, 이런 것들을 예를 들어서 이들의 어떤 상태, 그리고 그들의 결말, 결과, 그리고 그들이 받아야 할 심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요.
10절에서도 훼방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고요. 특별히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라는 뜻이 구절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특히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 그래서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아닌 그런 이 짐승을 말하는데, '본능으로 아는 그것'이 이 부분이 어떤 의미일까라고 이렇게 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후서 2장 12절에도 동일하게 이성 없는 짐승,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 멸망한다라는 그런 구절이 동일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형제님들 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10절에 첫 부분은 "그러나"라고 이렇게 흠정역으로 시작하고 있고요. 우리 성경에 "또"도 '그러나'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그러나'는 9절과 10절을 대비하고 있고요. 두 번째 ‘그러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해방하고 있는 것과 또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는 것을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한다”라고 돼 있는 동사는 우리가 직관적인 앎을 사용하는 안다는 동사인데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 적이 없고 또 그 상태로 지금까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19절에 그들이 성령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영적인 사람, 성령을 소유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영광을 훼방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였는데요.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그걸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부분에 있어서 영적인 세계를 생각할 때, 우리가 땅에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그 존귀와 권위와, 또 하늘에 있는 영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권위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라는 것을, 그리고 이 영광이 하나님이 지으신 영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것을 무시하고 그 알지 못하는 그 상태 가운데서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는 그것으로 멸망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라는 동사는 또 다른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어디 위에 두다', 그래서 '초점을 어디에 두다', 또는 그래서 그 초점을 어디에 두니까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능으로 아는 그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에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지만 본능, 물질적인 영역, 육체적인 영역에 있어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아는 것은 현재형으로 돼 있는데요. 그들은 육체적인 감각에 속한 것, 그들의 육체적인 정욕에 속한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그것에 탐닉하고 그것에 자기를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그 육체의 소욕에 자기를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본능으로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은 멸망하고 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멸망한다"는 단어는 '부패한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가운데서 계속 부패하고 있는 상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흠정역의 표현대로라면 이 육체적인 소욕으로 말미암아 자기 스스로를 부패시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나는 높은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높은 존재이고 거룩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존재가 아니라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상태"이다. 그리고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지금 스스로를 부패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유다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정체를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박종우 형제님(?) : 일단 유다서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권위' 왜냐하면 유다서 1장 1절에 어떻게 시작하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다는 자기를 소개할 때 물론 육신의 동생이었는데도 자기는 "예수님의 종이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예수님의 권위를 깔고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 있는 모든 문제들은 이 사람들이 그 권위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미 지나갔는데요. 일단 9절을 잠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다퉜다고 돼 있는데요. 천사장 하면 저는 가브리엘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가브리엘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미가엘이 천사장이고, 굉장히 권위가 있는 천사죠. 이 천사는, 그죠? 그런데 이제 모세의 시체를 가지러 왔어요. 마귀가 다투는 거예요 뭐라고 얘기했을까? 제가 상상을 해보면 8절에 이렇게 나와 있거든요.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아마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8절에서 그 사단이, 왜냐하면 천사장 미가엘은 굉장히 높은 지위잖아요. 그런데 시체를 치우러 온 거예요. 지금 자기가 직접, 그러면 마귀가 뭐라고 말했겠어요?
일단 "육체를 더럽히면"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시체를 만져야 되니까, 그렇죠. 그래서 마귀가 만졌을 수도 있고, 이렇게 육체를 더럽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미가엘이 치워야 되니까, 그래서 시체를 만져야 되겠죠. 뭐 이런 이런 것들, 그래서 이렇게 비방을 했을 것 같고요. "육체를 더럽히며"
그다음에 "권위를 업신여기며" 이것도 마찬가지죠. 미가엘이 천사장인데 와서 치우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왔죠. 그런데 마귀는 천사장이 왜 치우냐? 이렇게, 그렇죠. 권위를 비방하는 거죠.
그다음에 마지막에 제가 개정 개혁을 보고 있어서 "영광을 비방하는 도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런 사람인데 시체가 있는 거예요. 시체는 뭐냐 하면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이렇게 육신이 죽은 거예요. 그러면 사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는 거리가 되는 거죠. 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사단은 아마 그렇게 얘기한 것 같아요. 이렇게 죽음, 이 결과, 이렇게 영광을 비방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천사장 미가엘은 저는 개정 개역이어서, 아까 말씀드린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길 원하노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이렇게 얘기한 이유는 유다서 앞에 보면, 4절에 보면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판결을 받기로 결정이 돼 있어요. 주님께서 판결을 내리신 거예요. 얘는 어떻게 벌을 받을지를, 그런데 여기서 천사장 미가엘이 자기가 판결을 내릴 수 없는 거예요. 물론 부분적인 거겠지만, 아주 작은 사소한 일이지만 그거 가지고 판결을 자기가, 주님께서 이미 판결을 정하셨는데 그거를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주님의 권위, 주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신 것을 자기가 자기의 감정대로, 자기 임의로 바꾸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을 좀 얘기하고 있고요.

1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 도다" 이것도 권위에 대한 것일 텐데요. 일단 제일 먼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 3절에 있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이걸 알지 못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게 되고, 믿음을 부정하게 되고, 이런 데까지 나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이렇게 되는데요. 이건 정말 제가 좋아합니다.이성은 뭐고 본능은 뭘까? 이런 걸 제가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건 굉장히 방대한 주제일 것 같고요. 어쨌든 중요한 건 뭐냐면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이것도 '권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느부갓네살 왕인 것 같아요.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느부갓네살 왕이 있는데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최고다. 내가 이 거대한 왕국을 내가 다 이루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데 이성을 잃어버리고 짐승처럼 되는 거예요. 본능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멸망했다고 했는데 멸망까지는 안 갔죠.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얼마 후에 다시 회복이 돼서 이성이 다시 돌아오고, 돌아온 다음에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정말 최종 권위고, 그분이 이 나라를 끌고 가시고, 자기는 그냥 그분의 종이다.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그것을 따라간다, 이성인 거죠. 그래서 이런 일들이 역사 가운데 좀 나타나는 것이고요.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 드러나는 것이고, 이 권위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인정하지 아니하고, 종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인으로 살려고 하는, 이런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잘 교제가 됐습니다마는 유다가 모세의 시체를 가지고 미가엘 하고 사단하고 싸웠던 이런 것들이 구약 성경에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기록했을까? 뭐 이런 것들은 그냥 우리 00(?)죠.
그런데 다른 예를 하나 들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얀네와 얌브레를 인용합니다. 이게 모세가 출애굽했을 때 모세가 기적을 행하자 애굽 마술사들도 하거든요. 애굽 마술사의 이름이 구약에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인용합니다. 얀네와 얌브레다, 이렇게 그래서 저희들이 아까 나온 대로 기본적으로 '성령께서 계시해 주신 것'이다. 유다가, 그렇게 그냥 이해하는 게 좋은 것 같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 천사와 천사와 사이에서, 미가엘과 사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이제 모세가 죽고 하나님께서 아마 시신을 미가엘에게 처리해라, 이렇게 명령을 주셨고 그래서 미가엘이 그 모세의 시신을 묻으려고 하는데 사단이 와서 내놔라, 이렇게 한 거죠. 내가 가져가겠다. 사단이 왜 그랬을까? 이렇게 사단이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약간 찾아보면 아마 히브리서 2장에 사단이 "사망의 세력을 가진 자", 그리고 모세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런 거 관련해서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고, 그리고 사단이 그걸 달라고 하는 의도가 뭐였을까? 여러분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느후수단? 모세의 시신을 어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우상숭배의 재료로 삼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모세를 모독하려고 했는지, 여러 가지 사단의 의도가 있었겠죠.
그런데 또 하나 보면 미가엘이 "주님께서 너를 꾸짖기를, 책망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했는데 이 부분은 스가랴서를 보면 또 나옵니다. 스가랴서 3장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있고 그가 옷이 더럽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그 더러운 옷에 대해서 송사하니까, 그때 여호와의 사자,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책망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주님도 사단에 대해서 그 정도로 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미가엘도 당연히 훼방하는 판결은, 훼방은 저희들이 익숙한 단어는 뭐냐 하면 '성령 훼방죄'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인데 그것을 사단이 했다, 이렇게 하는 게 훼방하는 거죠. 하나님이 하신 일을, 혹은 영광스러운 것들을 비방하고, 낮추고, 막 이렇게 하는 것이 훼방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 부분은 저희들이 잠깐 적용해보면 논쟁을 할 때, 예를 들면 저희들도 논쟁할 때가 있죠. "정말 하나님이 계시냐?" 또 무신론자들, 혹은 복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할 때가 있죠. 그럴 때 논쟁에 휘말릴 때 저쪽에서 기분 나쁜 단어를 쓴 거예요. "알지도 못하면서 뭐, 너는 맨날 맹신자고, 생각할 줄 모른다." 이런 식을 썼을 때 우리가 그 수준으로 내려가면 안 되는 거죠. 그건 그가 하는 거고, 그 사람은 이렇게 비난조로 말을 한다 할지라도, 깎아내린다 할지라도, 예를 들면 분명히 말씀에 나와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렇게 깎아내렸을 때, 우리도 "그러면 네 주장은 뭐?"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우리는 최종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 것들을 좀 생각해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이제 다시 보면, 모세 시대에 사단이 이렇게 일했고요. 스가랴 시대에도 사단이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 가운데 꿈꾸는 자들이 또 그렇게 하는 거죠.
미가엘이 그렇게 했고, 약간 다른 예를 들면 저희들이 들 수 있는 게 다윗 왕이죠.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가 죽일 수 있었는데도, 이유가 뭐냐 하면 지금은 폐위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죠. 그래서 사실상 왕은 다윗이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울이 힘을 가지고 있는 거죠. 아직 정권이 바뀌지 않아서, 그래서 억울하게 쫓겨다니는 다윗이 사울 왕을 보고도 죽이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기름 부음을 하셔서 세웠던 왕이다. 비록 지금 폐위되었다 할지라도 과거에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이다라고 하는 이 사실을 존중한 거죠. 이런 게 아마 저희들이 예로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다음에 이 부분은 10절은 조금 어려운데요. 그냥 하여간 이렇게 한번 이해를 해보겠습니다. 그 ‘영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마 지난 시간에 강 형제님이 그렇게 교제를 하셨는데요. 이 영광이라는 단어가 '단수'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 영광이고요. '복수'로 사용되면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미가엘이 사단과 논쟁했던 것들하고 연결해 볼 수 있는데요. 이 미가엘도 사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단의 과거의 영광을 보고, 과거에 사단에게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그가 그가 지금 욕 먹어 싼, 심판받아 마땅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 9절이 그거예요.
그런데 10절, 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꿈꾸는 자들"은 함부로 말한다는 겁니다. 그럼 뭐에 대해서? 예를 들면 "알지 못하는 것" 이게 잠깐만 바꾸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대표적인 얘가 뭐냐 하면, 사도행전에 보면 에베소에서 제가 발음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스게와의 아들들이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죠. 막 그랬더니 그 귀신들이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희들은 뭐냐?" 이렇게 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단에 대해서 물론 심판받아 마땅하고 악한 존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에 대해서 미가엘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에 그런 일이 벌어지죠. 많이 이상한 교회에서 그렇게 하죠. 예를 들면 이제 귀신 들린 사람이 나왔으면, 저도 한 번 그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어디서, 하여간 모임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왔을 때 모임이 어떻게 해야 되냐? 저는 한 번도 안 만나봐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때 이렇게 하는 건 안 됩니다. "사단은 물러가라!" 완전히 뭐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고, 사단은 기도하거나 이렇게 명령하면 그래서 사단을 묶는다든지, 아마 교파에서 요즘에 그런 걸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땅을 딛고 그다음에 뭐 사단으로부터 해방해라라든지, 막 이렇게 하는 것은 꿈꾸는 자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천사들이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그래서 저희들이 번역하면 뭐라고 그러죠? 데몬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막 함부로, 그리고 우리 아래에 있는 존재처럼, 그 근거가 뭐냐 그러면 아까 인용한 고린도전서 6장 3절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구절들을 들어서, 이것을 근거 기준로 삼는 거죠. 또 하나는 골로새서 2장에 보면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이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천사 숭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고린도전서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은 교회를 얼마나 높이셨는가,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천사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거죠. 그래서 막 함부로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알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존재들, 그래서 특별히 천사를 겨냥했다고 보이고요. 천사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느냐? 저희들이 정보가 적으니까 천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하여간 그런 멸시하는 태도,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이유로, 또 우리 아래에 있을 거라고 하는 이유로, 가볍게 여기는 그런 태도고요.
그다음에 이제 '아는 것은 뭐냐' 그러면 이 눈에 보이는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몸, 물질, 이런 것들이죠.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이 물질들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하시고,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되죠.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것은 죄악된 본성을 따라 자기 욕심대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게 아는 것들은 타락시키고, 모르는 것은 함부로 행하고, 그래서 멸망을 자초하는, 그래서 "멸망하다"는 동사가 '현재형'으로 돼 있고, '수동태'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러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멸망해 갑니다. 계속 타락해가고 마지막에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런 것들을, 그리고 '수동태'인 것으로 봐서 그들의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그런 의미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 사회자 형제님 : 예, 감사합니다. 오늘은 9절, 10절까지 교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