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주님과 아벨의 비교(요약)

박이레 2026. 9. 6. 12:52

덕언 : 주님과 아벨의 비교 / 26년 9월 6일 일요일(요약) / 전의석 형제님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10:16, 개역한글)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3-26, 개역한글)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12, 개역한글)

두 말씀 다 저희들에게는 친숙한 말씀입니다. 이 두가지 말씀을 저는 연관지어 보았는데요. 주님께서 오셨을 때에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고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림을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가운데 첫목자가 나옵니다. 그는 아벨입니다. 그도 동일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벨의 죽음과 주님의 죽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벨은 자기가 죽을것을 알지 못하고 들에서 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죽을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이 아벨과 주님의 차입니다.
인류 가운데 첫번째 탄생된 사람이 네번째 탄생된(?)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둘의 사이는 형제입니다. 이들이 죄악 가운데 출생했고 그렇게 죄 가운데 살다보니 그같은 비극적인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 가운데 네명이 형제였습니다. 가인은 농부였고요. 아벨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양을 키우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네명의 제자를 부르셨을때 그 네명의 제자의 직업은 같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함께 주님을 섬겼습니다. 형제들 사이에는 비극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부르셨을때에 형제들 사이에 참된 화평과 연합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가인은 아마도 우발적으로 아벨을 죽인것은 아닌것을 보게 됩니다. 게획적으로 들에 있을 때에 아벨을 쳐서 죽였습니다. 이같은 일이 우리 주님에게도 똑같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 군병들이 주님의 손발에 못을 대고 망치로 힘껏 쳤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들에서 주님께 나아온 자들이 돌아가면서 기신할까 오병이어, 칠병이어로 먹이시는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찾아가 물으십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그리고 가인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그 피의 대가를 물으십니다. 고린도전서에 아벨의 피보다 더 고귀한 피가 십자가에서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주님은 그 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축복의 잔이다.",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를 마셔라." 가인은 자기가 흘린 아벨의 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목자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며 이것을 마셔라" 오늘 저희는 저주가 아닌 축복의 잔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저희를 향한 은혜로운 말씀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를 먹고 마시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며,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가인은 아벨을 죽였을때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때는 땅이 저주를 받지만, 이제 가인은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습니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개역한글)

저희들은 참 큰 변화를 받았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써 변화를 받았습니다. 땅이 소산을 주지 못하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밭으로 부름을 받았고, 은사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많은 열매를 저희는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밭으로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로써 그 밭을 일구십니다.
가인은 땅에서 저주받아 유리하는 자가 되었지만, 저희는 지역교회 안으로 부름받아 그곳에서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저희는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는 은혜로운 양식이며 생명수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계시는 그곳에서 여러가지 축복들과 거하며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 가인은 그 저주를 받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축복으로 부르시고 거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시85:10-11, 개역한글)

긍휼과 진리가 만날수 없습니다. 긍휼은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진리는 의로운 것입니다. 저희들의 잘못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는, 변하지 않는 의로움을 말합니다. 저희들에게 의가 있습니까? 주님을 만나기 전에 저희들에게 의는 없었습니다. 의가 온다면 저희들의 죄악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화평과 공의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에게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삶 가운데 긍휼과 진리가 함께하고, 하나님의 의를 충족하고, 화평이 서로 입맞추는 일이 주님의 공로로 인해서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입맞추는 그와같은 한주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