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 레위기 >

박이레 2021. 7. 24. 15:26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강사 : 조나단 블락 형제님

< 레위기 >

다시한번 오늘 이시간 여러분을 뵙게 되어 참으로 큰 격려가 됩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성경에 나와 있는 한 산에 올라가서 파노라마를 찍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이 파노라마를 보겠습니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4-15, 개역한글)

41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찌니
42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찌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43 너희는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
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46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
47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레11:41-47,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19:1-4, 개역한글)

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찌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20:7-10, 개역한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레위기라고 기록된 제목은 원래의 제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레위인들에게 속한' 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습니다.
제가 지난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경책의 원래 제목들은 성경책의 책머리를 가지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레위기의 원래 제목은 <여호와께서 부르시다> 입니다.

레위기의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회막에서 부르시고>

우리는 이 책의 원래 제목을 가지고 지난 시간에 보았던 출애굽기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장 3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불려 올라가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 레위기에서는 회막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9장을 보게 될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9장에서 십계명의 중요한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게되는 것입니다. 모세 오경에 대해서 각각의 문과 같다고 말씀드린대로 오늘 또 하나의 문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죄가 문앞에 엎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구속을 보게 되며 문지방에 피를 바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레위기 1장 3절에서 제물이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드려지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기 역시 하나의 문을 말하고 있으며 그 문은 하나님의 임재앞에 나아가게 하는 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구속을 통과한 후에 지나갈수 있는 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임재앞에 나오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부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 특별히 언약궤부터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부터 시작해서 바깥쪽으로 나오는 방향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밖으로 나오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향입니다. 우리는 회막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번제단을 통해서 나갈수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차트를 보게될 때, 많은 부분이 제사와 관련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번 시간에는 레위기의 제사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겠지만 레위기 1-5장까지는 이 제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세가지는 향기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자원해서 드리는것이고 사람이 하나님께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경배로서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두개의 제사는 향기가 없는 제사입니다. 그 향기가 없는 이유는 명백하게도 사람의 죄가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제사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말세에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히브리서 9장 12절의 설명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아름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차트에 기록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9:12, 개역한글)

우리는 그 외에 다른 어떤 제사도 이 죄를 없이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온전한 희생제사로써 하나님께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참으로 완전한 제사이고 이 희생제사는 다시는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희생 제사가 더해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희생제사의 효력을 우리가 없앨수 없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죄에서 깨끗케 합니다. 만약 이 자리에 구원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그 완전한 구속사역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모든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 1-5장까지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레위기를 보게될 때 특별히 레위기의 중요단어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읽은대로 우리는 자주 반복되는 단어 <거룩>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교제를 하면서 2016년도에 프란시스 교황이 한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적절한 고려와 많은 기도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의 형제된 여러 감독들과 의논하여 헤커타의 테레사를 성인으로 추대한다. 우리는 그녀를 성인들의 하나로 인정하며 그것은 모든 교회에서 승인된 결정이다."
이 프란시스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녀를 여러분의 거룩함의 모델로 삼으십시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테레사 수녀가 우리의 거룩함의 모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함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참으로 우리 마음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며 제가 19살 젊은이로서 1992년도에 제가 구원받는 순간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밤 구원받게 된다면 여러분도 성도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고난 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에 여러분은 하늘의 성도들의 이름과 함께 기록될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거룩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화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우리가 레위기를 살펴보게 될때, 주요 내용이 제사장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그것이 또한 거룩함에 이루는 우리의 메뉴얼인 것입니다.
모든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함에 이루게 하는 메뉴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성도일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제사장으로서 저는 지난해에 런던에서 한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에디오피아의 두번째 제사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첫번째 순위의 제사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제가 무슨말을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제사장입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은 아론의 후손들이며 레위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우리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과 연관된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관된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멜기세댁이 그리스도의 모형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인 것입니다. 의의 왕이시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후손도 없습니다.

그는 바로 영원한 제사장 직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여러분과 저의 제사장 직분이 연결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레위기에 기록된 거룩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될때, 그 단어가 다른 어떠한 성경책보다도 많이 사용된 것을 봅니다.
베드로가 거룩에 대해서 언급하였을 때, 베드로는 계속해서 <거룩한 제사장>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계속해서 <우리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베드로전서를 계속해서 읽게 될때, 분명히 베드로가 레위기 말씀을 참조하고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게 될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문을 통과해서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했을때, 우리는 아주 독특하고 이상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이라는것의 배경은 성경에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거룩의 예로 이것을 들겠습니다.
우리는 거룩에 대해서 여러가지 부정적으로 언급을 많이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어떤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거룩이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삶에서 긍정적인 면을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 나라들에게 거룩함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분량으로 정결한 것과 부정한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그들을 보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이 거룩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거룩이라는 것의 문자적인 뜻은 무엇으로부터 떨어지다,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로 가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떤것으로 떨어져 나올 뿐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채워지는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에 제사장의 손은 거룩한것으로 차게 됩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제사장이 아주 바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말합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바쁘게 하는것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그리스도인의 거룩에 대해서 단지 어떤것을 하지 않는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거룩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단지 하고싶은것을 못하게 막는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거룩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 나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향한 섬김으로 가득차는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믿는자로 하여금 삶에서 만족을 느끼게 할것입니다.
이 거룩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너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가 있다>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읽는 다른 어떤 책과도 구별되는 책입니다. 그것은 유일하고 독특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책이며 우리가 읽을때마다 기쁨을 얻게되는 책입니다. 거룩이라는것은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창세기를 돌아보게 될때, 얼마나 많은 거룩이라는 단어가 창세기에 사용되었습니까? 그것은 단지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짐작하시겠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일곱째날에 안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따로 떼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을 여러분에게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여러분에게 서론적으로 말해주는 구절일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의 거룩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완성하신 그일에 근거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출애굽기에서 어디에 거룩이라는 단어가 사용된것을 보았을때 흥미로운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모세가 불 붙는 떨기나무앞에 서게 된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거기는 거룩한 곳이 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그곳이 거룩하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서 모세는 위치적으로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거룩이라는 단어가 두번째로 출애굽기에 사용된 곳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두번째 사용된 내용을 살펴볼때, 거룩이라는 단어가 단지 신분적인것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레위기 차트를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보시겠습니다. 일곱개의 여호와의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첫번째의 여호와의 절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 바로 다음에 그들은 무교절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출애굽기 12장에서 <그들이 거룩한 성회로 모일 때>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그와같은 절기를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무교절 기간동안 그들의 집안에 누룩을 둬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유월절을 실질적으로 성취하신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거룩이라는 단어가 두번 언급된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이 창세기에서 있지않고 구속으로 말미암아 거룩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1:18, 개역한글)

우리는 여기에 거룩의 진리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그 근거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는것을 보게 되는것입니다.
제가 출애굽기의 두개의 거룩에 대한 내용을 보고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신분적으로 거룩하다고 선언받게 됩니다. 그것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것이 되었으니>라고 사도바울은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룩함이라는 신분적인것은 변화되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그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 거룩함이라는 단어가 계속적으로 사용된 곳을 볼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막과 관련되서 많이 사용됩니다. 우리는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을 봅니다. 그리고 거룩한 곳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제사를 보게 됩니다. 거룩한 관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시간에 마지막에 본 대제사장의 옷,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소를 보게 됩니다. 이 거룩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삶의 모든곳에 다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 그 거룩이라는 단어가 첫번째로 사용된 것을 보게 될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차트를 보게될때 두번째 제사가 소제인것을 보게 됩니다. 소제를 보게될때 거기에 거룩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 됩니다. 그 소제를 취할수 있는자는 오직 제사장 뿐이었습니다. 그가 소제의 일부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소제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각각의 다섯개의 제사는 주요하게 나타내는 바가 있습니다.
번제를 생각하게 될때 주요단어는 불입니다. 화목제를 생각하게 될때 주요단어는 기름입니다. 속죄제를 생각하게 될때 주요단어는 피입니다. 그리고 속건제를 보게될때 주요단어는 은입니다. 소제에 대해서는 주요단어가 가루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삶, 인격, 인성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분은 죄를 범치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않으셨고 그 안에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떠한 사람을 만났든지간에 어떠한 압력가운데 있든지간에 죄를 범치 않으셨습니다. 어떠한것도 그분의 거룩함을 손상시킬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멸시받는 나사렛이라는 곳에서 자라셨습니다. 하지만 나사렛에서 오신 분은 나사렛에 오신 그대로 오염되지 않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광야로 들어가셨을때 사단을 만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들어오신 그대로 오염되지 않고 그 광야를 떠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시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길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시험을 통과해서 요단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는 광야에서 엎드러졌고 요단강을 건너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이 기록하기를 <내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도다>라는 말씀과 같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이스라엘 백성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나오셔서 광야로 들어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하늘을 여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하실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본질적인 거룩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앞에 광야가 기다리고 있는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주님께서 그 광야에서 실패하지 않으실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비록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이 거룩이라는 주제를 다른각도에서 말하고 있지만, 레위기 11장에서 독특하게 거룩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거룩할찌어다>

또한 여기서는 모세와 아론에게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두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레위기가 제사장과 레위사람들만을 위한것임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모든 믿는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체의 책을 모두 살피고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레위기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맨 처음에 읽었던 세번의 서론들로 여러분이 레위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부분에 걸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11장에서 그랬고, 19장에서 그랬고, 20장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부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11장에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함과 우리가 먹는 것의 거룩함의 두가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레위기 11장을 인용하여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와같은 질문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가?"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아주 단순한 하나님의 설명을 듣게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우리가 단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한다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40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행하심에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거하시며 그 이름은 거룩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서는 찾아볼수 없는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분이라는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이 거룩이라는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본질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레위기 11장 47절 말씀을 보게 될때, 거룩이라는것은 다른것을 분별하는것과 관련된 것을 보게 됩니다.
부정하고 정한것을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그 사이의 중간의 것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47절에서 부정한과 정한것을 분별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11장을 전체적으로 읽게 될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도록 허용된것이 무엇인지 보게될것입니다. 그리고 이 장의 많은 부분이 그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먹을수 있는 음식들이 적은것을 불평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실제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무엇을 섭취하고 있는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 나와서 따로있고 부정한것을 만지지 말라>

여러분은 다니엘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느부가넷살 왕은 다니엘과 친구들의 먹는 음식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마음을 정하였고 그 음식으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왕의 음식으로 더럽히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에게 공급하는 아주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주 좁은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이 제공하는 도덕적인 타락을 볼때 그런 제안은 놀랄만한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가 만질수 없는것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메뉴가 줄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매일과 같이 점점 더 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 자신에게 무엇을 만지는지 주의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주의해야 할것입니다.
여러분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클릭할때에 합당치 않은것을 클릭하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부정한것은 마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것입니다. 또한 주의해야 하는것은 부정한것을 생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정한것을 읽지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정한것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정한것을 다운로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정한 것을 읽게될 때 여러분의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날 인터넷에 부정한것이 많이 있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그러한 부정한 것을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거룩을 유지하는데 중요한것은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 11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정한것과 부정한것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접촉하는데 있어서도 주의할것을 말하고 있는것을 봅니다.
우리는 레위기 11장 11절에서 죽은 시체를 만지지말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목기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부대에든지 무론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레11:32, 개역한글)

다른말로 하자면 거룩함이라는 것은 그릇을 잘못 사용했을때 손상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거룩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때에 오염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특별히 남자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의식하지 못한 채 단지 어떤것을 쳐다보는것 만으로도 오염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고자 하는 그 유혹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룩을 유지하는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계속해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가 어떤것을 먹지말라고 구별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순전한 음식을 우리가 먹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정한것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먹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바일 폰으로 어떤것을 보게될 때, 그것은 반드시 정한것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해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것으로부터 오염되었을 때 그것에 대해서 자백하고 깨끗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너희의 모든 행실에서 거룩할찌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19장을 보게될때,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와 관련된 거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행실을 어떻게 하느냐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에서의 거룩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것과 관련하여 거룩함을 보았을 때 그것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서 볼때, 그것은 우리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거룩함의 증거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그들은 우리의 거룩함의 증거를 보게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것입니다.
다른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을 듣게 될때 그와같이 말하는 자를 본적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혼이 거룩하기 때문이 그 말도 거룩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19장 3절에서 거룩의 근거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19:3, 개역한글)

첫번째로 부모를 경외해야 합니다.

2절에 <나 여호와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는 말후에 3절에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 가운데서는 많은 가족들이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제정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러한 가정이 해체되고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를 경외하지 않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것이고 거룩함을 실제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입니다.
단지 그는 가정과 부모에 대해서 공경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할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3절에서만 십계명의 세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모를 경외하라,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찌니라.

참으로 흥미로운것은 십계명의 순서와는 역순으로 여기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계명이 맨 먼저 언급 되었습니다. 그 다음 네번째 계명이고 그다음 첫번째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가정 안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질서에 대해서 오늘날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때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직장이 가장 첫번째 입니까? 그 다음이 이 지역모임입니까? 세번째가 여러분의 가정입니까? 여러분은 이 순서에 대해서 어떻게 순위를 매기겠습니까? 여러분은 아마도 모임을 먼저 두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될때, 그 집을 첫번째로 둔 근거를 보게 됩니다. 그들이 가정에서 합당치 못하게 생활 한다면 그들은 모임에서도 합당치 못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가정안에서의 증거를 구했습니다. 자기 가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모임을 다스리겠습니까.
거룩함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거룩함이 교제와 관련된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게 될때에>

화목제와 관련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원하여 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교제는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세상 가운데 있는 어떤 조직에서 교제를 나누게 될때, 그곳에는 항상 그 조직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군대 조직에 포함되어 있다면, 어떤 의사 협회에 가입하다면, 저는 그 협회에 가입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의사 자격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지만 의사가 될수 없습니다. 그 조직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들의 교제를 훼손하거나 그들의 교제를 타협하게 하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교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오게 됩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또한 지역교회를 생각하게 될때도, 지역교회는 다른 어떤 모임과도 독특하게 구별되는 모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교회의 교제안에 들어온다는 것도 특별한 기준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모임의 교제는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는 자들이 침례를 받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제와 믿는자들의 교제는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에 걸쳐 여러 성도님들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와같은 사회적인 교제를 성도님들과 누릴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인 교제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10절까지는 이 거룩함을 외부로 증거하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9-10절에서 곡물을 베게 될때, 모퉁이를 다 베지 말고 타국인을 위하여 남겨 둘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실제로 이와같은 일이 행해진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그 베는 소년에게 명하기를 "너희가 벨때에 한줌씩 베어버려 룻으로 줍게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보아스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거룩함이 실제로 밭과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것으로 거룩함의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적으로 지역모임 안에서 하나님의 밭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것은 지역모임의 거룩함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19-20절에서는 도덕과 관련된 거룩함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30절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공경하는 거룩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의 중요단어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것을 알것이라>

우리가 지역모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앞에 나오게 될때 이 경외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서 그 경외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는 옷에서도 그 경외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 경외함을 우리가 거룩하게 되야하는 존재로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 안에서 어떤것을 바꿀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인지, 우리는 거룩한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주의깊게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37절에서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라고 합니다.

36절에서 우리는 공평한 저울과 추를 보게 됩니다. 공평한 에바를 또한 보게 됩니다.
우리가 레위기 말씀을 보게 될때, 어떤 구절들은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젊은 성도님들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들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왜 저울과 에바가 공평한 것이 중요합니까?

여기에 요리를 많이 해보신 분이라면 정확한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것입니다.
정확하지 않으면 요리를 망치는 것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러 나올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속건제를 생각하게 될때, 왜 공평한 에바를 사용하는것이 중요한지 여러분은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20장에 나와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20장은 거룩함이 우리의 결정과 선택과 관련된 된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찌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20:7, 개역한글)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레20: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젊은 성도님들, 나이 많은 성도님들도 거룩함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사람들은 참으로 거룩한 삶을 잘 살고 있다."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저 정도까지는 할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맞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거룩함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안에 거하시는 거룩한 성령님을 통해서만이 거룩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거룩함을 이룰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다면, 만약 여러분이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가 합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정직하게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그렇게 행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다른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아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부정한것을 만지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그 말씀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살피사 제 마음에 부정한것이 있는지 살피시옵소서. 내안에 어떠한 악한것이 있는지를 살피시옵소서>라고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14절에서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벧전1:14, 개역한글)

그리고 베드로는 계속해서 <너희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레20:23, 개역한글)

여러분은 오늘날 이 세상에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자의 행실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어떻게 제가 거룩한 삶을 살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무엇을 없애는 것을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것을 하지 않는것,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에게 거룩함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제가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거룩함이라는 것은 단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좋은것으로 정결한 것으로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매일같이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는것을 허락하는 것을 합니다.

마치면서 야고보가 이 아름다운 예화를 든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집회에 나오기 전에 거울을 살펴봅니다. 제가 쳐다보는것을 여러분은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거울을 보면서 모습을 단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것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갈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격식을 차려야 하는곳에 갈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번 주간에 말씀집회를 하는 목표는 우리가 이 거울을 더욱 잘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거룩함을 더욱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마치면서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술취한 사람과 대조해서 말씀했습니다. 술취하지 말라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먼저 말한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슬프게도 술이 그들 자신을 통제하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그런것은 믿는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자는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성령충만을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성령께서 내주해 계십니다. 성령께서 근심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만질지 통제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행할지 통제를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통제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레위기가 말해주는 거룩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무엇을 먹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서의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레위기를 파노라마와 같이 보게될 때, 여러분은 시내산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제사장의 관을 생각하게 될때, 그리고 우리가 베드로전서의 제사장을 생각하게 될때에 우리는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을 더욱 이루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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