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별을보고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 박용수 형제님 / 26년 3월 15일 일요일
동방 박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게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을 같이 읽겠습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 2:1-18).
이렇게 읽었습니다. 천천히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이제 헤롯 왕 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라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동방으로부터"라고 돼 있으니까 이 박사들은 동방에 살았던 박사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동방에는 하나님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이분들은 하나님을 찾으러 온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정성을 보이고 있는데 지금 이게 믿음의 시작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것이고, 우리 지금 복음을 듣고 있는 분들은 얼마나 내가 하나님을 찾기 좋은 환경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셔야 돼요. 박사들과 비교해 볼 때 여러분들은 얼마나 찾기가 좋습니까? 복음이 매주 전해지고 있고, 성경이 있고, 이 당시에 박사들은 동방에서 왔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환경이었어요. 저희가 정말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이 책망을 하셨어요. "지금 얼마나 믿기 좋으냐? 얘들아" 니느웨 사람들이라고 있었는데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이렇게 믿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시대가 됐는데 이때 안 믿으면 나중에 니느눼 사람들이 너희한테 뭐라고 하겠냐? "나는 예수님이 아닌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는데 너희는 예수님의 말을 직접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하였구나." 하면 그때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죠. 복음이 완성되어 있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고, 매주 이렇게 말씀을 듣는데도 안 들으면 나중에 심판 때 니느웨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 좋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아직도 믿지 않았느냐?"라고 그때 무슨 말씀을 하겠어요? "나는 그렇게 앞에서 말씀 전하는 이 박용수 형제가 그렇게 복음 전하는 사람이 지금 몰랐다."고 "그 사람 말하는 것이
가짜인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지금 이 박사들이 나중에 정죄할 거예요. "나는 동방에서도 믿으러 왔는데 너희는 뭐 하니?" 지금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박사들이라고 돼 있는데 이 박사들은 이제 점성술사라고 별을 보고서 예전에도 동방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별을 보고 이렇게 점치는, 별을 보고 큰 일이 일어났다 안 일어났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박사들이었어요. 이것도 마찬가지에요. 별을 보고 왔대요. 그런데 여러분들에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요. 그러면 박사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지금 박사들은 이제 천국에 가 있겠죠. 천국에 가 있으면서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나는 동방에서 별을 보고 왔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박사들이 얼마나 깜짝 놀라겠어요. "야, 그런 사람도 있어? 복음을 듣고도 안 믿는 사람이 있대." 이렇게 얘기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겪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계시는 거예요.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하나님을 알았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말씀을 믿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걸 얼마나 많이 느꼈습니까? "아, 그때 그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구나." 하나님을 믿게 되면 더 알게 돼요. 저도 하나님을 믿고 나서 알았어요. "아, 그때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불렀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던 시절에도 "그때 그 형제님이 그래서 우리 집에 왔었지. 이렇게 그때 내가 완악한 마음을 품지 않고 집에 있었지. 그리고 그 말을 잘 들었지." 이렇게 모든 일마다 하나님께서 다 개입을 하십니다. 모세가 그랬어요. 모세 아시죠?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을 처음에 만났나요? 떨기나무가 불꽃이 나무가 활활 타는데 타지 않는 거예요. 그걸 보고서 보는 거예요. 신기한 일이잖아요. 그것처럼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삶의 모든 굴곡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돌아오라고, 그래서 저희가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굴곡이 있길 기도해요. 평안한 사람은 하나님 믿기가 너무 힘들어요. 왜? 너무 평안하니까, 하나님 없이도 평온한 사람은 "하나님이 뭐야?" 이렇게 얘기하죠.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다, 싶은 사람은 그런 굴곡을 겪은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복된 사람이에요.
박사들이 어디에 이르렀다고 돼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돼 있어요. 박사들은 왜 예루살렘에 갔을까요? 거기가 수도라서 그래요. 보통 왕이 태어나면 어디에 태어나겠어요? 수도에 태어나잖아요. 그래서 유대의 왕이 났으면 예루살렘에 있겠지, 하고서 예루살렘으로 간 거예요. 상식적인 접근인데 그런데 이게 잘못된 접근이었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 찾아오는 사람은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죠. 길을 잘못들었을지라도 하나님을 찾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내가 하나님께로 가야겠다, 이런 아주 단순하게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찌하든지 방향을 다시 틀어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은 누구를 위한 기회였냐면 헤롯 왕을 위한 기회였어요. 헤롯 왕은 이때 이후로 복음을 듣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의 박사들이 왔을 때 그때가 딱 기회였어요. 그때 이후로는 들을 기회가 없어요. 나중에 이제 죽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복음 들을 기회가 없죠.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는 이 시간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약장수가 말하는 것처럼, 다음 주에도 복음이 전해지겠지만 여러분들의 삶이 영원하지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기회가 그렇게 영원하지가 않아요. 젊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나이 드신 분들도 마찬가지,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라는 마음을 품으셔야 돼요. 헤롯왕처럼, 헤롯 왕이 뭐가 예뻐요? 그런데 하나님은 헤롯 왕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박사들이 바로 베들레헴으로 갈 수 있어요. 뒤에 보면 별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으로 인도를 합니다. 사실은 그 별이 진작에 나타나도 되죠. 하나님을 찾는 박사들에게 베들레헴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 쪽에다, 이렇게 인도를 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를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을까요? 헤롯왕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는데 헤롯왕이 그걸 걷어차버립니다.
다음에 이제 박사들이 와서 묻는 것이 있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돼 있죠.
여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고 돼 있잖아요. 이게 영어로는 '본킹'이에요. 왕으로 태어난 거예요. 그런데 이 말 좀 재미있습니다. 왕이 되는 과정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로 왕이 되는 사람은 창립을 하는 경우 그 사람이 왕이 됩니다. 자기가 왕국을 세워요. 그럼 그 사람이 왕이 되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계승하는 경우가 있어요.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왕자가 되었다가 왕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왕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왕은 없어요. 그런 왕은 없어, 자기가 일반인으로 태어났다가 왕국을 세워서 왕이 되는 경우,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왕자가 되었다가 왕이 되는 경우는 있는데, 그냥 태어날 때부터 왕인 사람은 없어요. 유일하게 예수님만 왕으로 태어나십니다. 날 때부터 왕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특별한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을 해 주셨어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는데,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고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이렇게 예언을 해 주셨어요.
왕으로 태어날 아기가 있다. 이렇게 예언하셨고 이사야서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왕이 있죠, 하고 많은 왕이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왕으로 칭하고 사는 사람도 많아요. "내가 내 삶의 왕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진짜 왕은 한 분밖에 없어요. 다른것은 다 가짜 왕이에요. 죽을 왕이고 사라질 왕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왕이시고 영원히 왕이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박사들이 물어봅니다. "어디 계시냐?" 왕으로 태어나신 유일하신 그분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봐요. 그리고 이 질문은 이 마태복음이 신약의 첫 번째 책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질문은 신약에서 첫 번째 질문이에요. 이성경은 오묘한 책이라서, 성경은 굉장히 오묘한 책이라서 순서와 이런 게 다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얘들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질문을 하려면 이 질문을 해라.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버냐? 이런 거 질문하지 말고, 질문을 하려거든 "어디 계시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고 질문하라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질문을 해야 돼요. 마음속으로 '어디 계십니까?' 인류 최고의 질문이에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길 바라세요. 마음속으로 한번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무슨 질문을 원하셨지? 어디 계시냐고 물으라고 그랬지. 하고서 한번 물어보세요. 하나님이 대답 안 해 주시겠어요?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이렇게 물어봐요.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주세요.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그리고 그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왕인 줄 알고 살았는데 사실 저는 왕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왕이 계시다고 하니, 제가 그 왕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나님한테 기도하셔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동방에 있어도, 말씀이 없어도, 복음을 듣지 못했어도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박사들이 얘기하죠. 뭘 보고 왔대요? 별을 보고 왔대요. 별 별 보신 적 있나 모르겠네요. 요즘 사람들은 별 잘 안 보죠. 별 보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빛 공해가 너무 심해서, 가로등이 많고 이래서, 별 보려면 저기 강원도 산 쪽으로 가가지고 군 생활해야 돼요. 그럼 별 잘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건 "내가 별을 보고 왔다."
하나님을 찾는 일은 수많은 방해가 있어요. 수많은 방해가 있어서 집중하셔야 돼요. 여차하면 대적이, 사단은 지금 빼앗기는 입장이거든요. 맨날 빼앗겨요. 하나님 나라로 사람을 빼앗기는데 그걸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사단은 어느 틈에 하나님이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할 때 사단이 하는 일이 있어요. 듣지 못하게 하려고, "복음 집회 어머니 이번에 나와주세요." 그러면 "내가 이번 주 배밭에 농사를 지으러 가야 되서" 그리고 "아버지 이번 주에 복음 집회에 나오세요." "친척이 결혼하는데 너는 호로 자식이냐?" 방해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별을 보고 오는 것처럼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그 세미하신 주의 음성을 따라 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예수님 만나는 게 저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이에요. 왜냐하면 방해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요.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곧게 서 있는 사람은 너무도 쉬운 길이야. 너무도 단순한 일이야. 우선순위가 분명하면 그거를 틀릴 일이 없어요. 배 농사가 뭐가 중요합니까? 하나님 만나는 게 먼저지, 하나님 만나고 배 농사 지으면 되죠. 친척 결혼식 안 가도 돼요. 더 좋아해요. 요즘에는 너무 식비가 많이 들어서 10만 원 보내면 더 좋아해요. 식비가 10만 원보다 더 커, 그래갖고 10만 원 보내면 친척이 더 좋아한다니까요.
그리고 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뭐 하러 왔다고 돼 있어요? 2절에 "경배하러 왔노라." 이 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왜? 하나님이 누구를 찾으시냐면 예배할 자들을 찾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에 있어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어도, 빛을 보고 정도로 아무 소스가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이유는 이거 하나예요. '내가 경배하고 싶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다고 오면 전혀 문제가 안 돼요. 동방에 사는 것도 문제가 안 되고, 점성술사인 것도 문제가 안 되고, 전혀 문제가 안 돼요.
그리고 이 '경배'는 이제 원어상으로 '개가 주인의 손을 핥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개 키워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개들은 얼마나 충성스러워요. 이렇게 손 대면 이렇게 핥잖아요. 그게 경배예요. 개가 되어서 주인을 섬기는 것, 그게 경배입니다. "나는 개가 되긴 싫어." 이런 사람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럼 자기가 왕대로 살아야 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자기를 찾을 자들을 찾으시는 거에요. 만약에 오랜 세월 동안 내가 구도를 오래 했지만 내가 왜 아직도 못 믿고 있지? 이런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면 생각해 봐야 돼요. 내가 경배할 자를 찾는지, 아니면 그냥 알고 싶은 건지, 경배할 자를 찾으시는데 경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요? 이제까지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낮아진 사람들이었어요.
사례는 수없이 많아요.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구약에 믑보셋이라는 사람은 두 발이 절뚝이었어요. 두 발이 절뚝이어서, 그리고 원수의 자식이었어요. 다윗 왕의 원수의 자손이었어요. 다윗 왕을 그렇게 괴롭히려던 그 사람의 손자였어요. 그런데 다윗 왕이 요나단에게 자식이 있냐고 했을 때 있다고, 사람들은 얘기했겠지. "저거 복수하려나 보다." 그랬는데, 자기도 덜덜 떨었겠죠. 므비보셋이 새로운 왕이 자기를 찾는다고, 그런데 자기는 전 때에 자손이었기 때문에, 보통은 전대의 자손은 어떻게 돼요? 다 죽어요. 후환을 남기기 싫어서 다 죽이는데 다윗왕이 찾는다고 그러니까 므비보셋이 덜더 떨면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떨지 마라고, 네 ㅇ비 요나단과 내가 약속한 게 있다고, 그래서 너는 이제부터 왕자처럼 상해서 먹을 거라고 하니까, 므비보셋이 덜덜 떨면서 "왕이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십니까?" 이렇게 얘기를 해요. 죽은 개가 되어서 구원받는 것, 베드로도 그래요. 베드로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받는 거에요. 나아만 장군도 문둥병이 낫기 위해서는 해야 될 일이 옷을 벗고, 아주 볼품없는 요단강에 내려가서 몸을 담가야 돼요. 그런데 그렇게 낮아진 채로 가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낫는 거예요. 너무도 많아요. 그렇게 자처하는 사람들이, 3절에서는 정반대의 사람이 나와요.
3절에서는 누가 나오느냐? 헤롯 왕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대요. "경배하러 왔어요. 우리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셔요?" 그 말을 듣고 헤롯왕이 깜짝 놀랐어요. 왜 깜짝 놀랐을까요? 내가 왕인데 왕이 또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왕이 얼마나 깜짝 놀라겠어요? 내가 왕인데, 왕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대.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왕 자리를 차지했는데, 어떤 사람은 왕이 태어났다는 거야. 그래서 헤롯이 깜짝 놀라서 "뭐라고? 왕이 태어났다고? 내가 왕인데, 내가 왕좌에서 내려가서 개가 되라고?" 얼마나 깜짝 놀랐겠어요. 그래서 소동했대요. 그런데 이것은 합당치 않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복음을 들을 때 소동하면 안 돼, 소동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아직도 내가 왕이기 때문에, 나는 이 자리에서 내려올 마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너가 이제 그 왕 자리에서 내려와서 나를 왕으로 섬겨라." 이렇게 얘기할 때 싫은 거에요. "그게 나는 그건 너무 싫어요. 하나님 저는 제가 왕으로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아직 저는 때가 아니에요. 저는 좀 더 삶을 즐기고 싶어요." 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할 일이 너무 또 많아, 하나님. 난 아직도 왕이 되고 싶어. 이런 사람들은 소동해요. 이 말을 들을 때 "하나님 믿으셔야죠." 하면 소동해요. 이렇게요. "이제 믿으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직 안 된다고, 아직 아직 할 일이 많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소동하면 안 되는 거예요.
5절에서 보세요. 5절에서는 참 신기한 일이에요. 알아요. 이 사람들이 왕으로서 오실 예수님이 어디 태어날지 알고 있어요.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뭐가 신기해요? 아는데 안 믿어요. 왕으로서 오실 예수님이 예언돼 있어요. 미가서에 예언돼 있는데, 알면 믿어야지. 그런데 너무 또 신기한 게 아는데 안 믿어요. 이 박사들은 몰랐어요. 미가서를 알지를 못했어요. 그런데도 그 별 보고 동방에서 왔는데, 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올지도 알고 있어요. 베들레헴에서 올지도 알고 있어요. 700년 전부터 알았어요. 그런데도 안 믿어요. 그리고 소동해요. "왕이 있어서는 안 돼. 내가 왕이야." 이렇게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안 되는 거에요. 700년 전의 예언은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되는 거에요. 알고도 경배드리러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9절로 넘어갈게요. 9절에 보면 이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가요. 그런데 어딜 가요? 그냥 박사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했더니 박사들이 나왔어요. 그랬더니 베들레헴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인도해요? 앞서 인도해요. 누가 앞서 인도해요? 그 별이, 동방에서 봤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인도함을 받을 때 어떻게 해요? 박사들이 10절에,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아까도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 번째 성경이기 때문에, 나오는 구절 하나하나, 처음 나오는 구절 하나하나가 중요하다고 그랬죠. 여기도 처음 나오는 구절이에요.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신약 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쁨'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람은 언제 기뻐할 수 있는가? 한번 자기 삶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가 기쁜가, 손자가 올 때인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어요. 여러분들이 기쁠 때는 언제가 기쁘냐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께로 향할 때, 그때가 가장 기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돼 있어요. 그게 기쁨의 원형이에요. 그걸 위해서 창조되었고,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기뻐할 일이 잠시 있을 수 있어요. 손자 오는 것 기쁜 일이고, 다 그런 일이지만, 진짜 기쁜 일은 내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구나.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구나.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야겠구나 이 마음이 들 때, 그때 기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영원하기 때문이에요. 나머지는 다 사라져요. 손자도 죽고 나면 못 봐.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일은 죽고 나서도 이어집니다. 영원히,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이제 박사들이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됐고, 그리고 그 원했던 경배를 드립니다. 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엎드려', 아까 개가 되어서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우리가 경배하러 왔다고 했을 때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원하는 사람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드립니다. 세 가지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려요. '황금'은 너무 직관적으로 알겠죠 황금이 뭘 상징할까요? 예전에 왕들은 전부 금관을 썼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황금은 '왕'이라는 뜻이에요. 지금 집에 있는 이 아기는 아기지만 왕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 박사들이 아는 거예요.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군요. 그래서 합당한 왕이신 예수님께 황금을 드리는 거고, '유향'은 이제 기도할 때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향기'예요.
그래서 이것은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는 '몰약'인데요. 몰약은 무엇을 상징하냐면 '죽음'을 상징합니다. 지금 아기가 태어났는데 죽음을 상징하는 예물을 드리는 거에요. 그러면 일반적인 부모님이라면 어떡하겠어요? 지금 뭐 하는 거냐고 하겠죠. 지금 애가 태어났는데 왜 죽음을 상징하는 이걸 드리냐고 이렇게 했겠죠. 재수 없게, 그런데 아닌 거예요. 이 아들은, 이 태어난 아기는 죽음을 겪을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죽음은 아까 하나님이신데 죽음을 겪으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거예요. 하나님이시지만 죽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몰약'이에요.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채취되는 그런 향품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성'을 상징해요.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구나. 박사들이 알았어요. 왕이시며 하나님이신데 사람으로 오셔서 대신 죽으실 것이구나를 알고 몰약을 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박사들이 그토록 찾았어요. 유대인으로 왕으로 오신 분을 찾았는데, 이제 박사들이 인도하심을 받고 안 거예요. 이분은 유대인으로 왕으로 오셨지만, 그리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을 위해 죽으신 분이구나라는 걸 아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서 오는지 알았지만, 찾지도 않았던 그분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뒷부분이 더 있는데요. 좀 빨리 진행을 하겠습니다.
사실 항상 복음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 나오고 정반대인 사람이 항상 나옵니다. 같은 복음을 들을 때 동반 박사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사람도 있어요. 그 반대인 사람이 누굴까요? 헤롯이에요. 여기 헤롯 나오죠. 15절에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다." 지금 헤롯이 죽이려고 그랬어요. 예수님을 죽이려고 막 난리를 쳤는데, 예수님이 죽지 않고 애굽으로 가셨고 헤롯이 먼저 죽었어요. 그래서 교훈을 하시는 겁니다. 주님을 알았어요. 어떻게 오실지, 어디로 오실지, 알았던 그 헤롯인데 얼마나 믿기가 좋아요. 박사들이 알아서 알려줬잖아요. 왕이 어디 계시냐고, 그리고 헤롯도 자기가 자기 입으로 얘기했어요. 그 왕 찾으면 나도 경배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었고, 나는 절대로 내 왕좌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 왕으로 왔다는 그 사람을, 그 아기를 내가 죽여야겠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던 그 왕인데 죽기는 자기가 먼저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거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주인으로 남고자 했던 너는 죽게 될 거라고, 죽게 될 겁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죽게 됩니다. 뭐 그럴 수 있죠. "너는 안 죽냐?" 저도 죽어요. 그런데 저는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서 죽어도 다시 살아요.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죽어요. 그리고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됩니다.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거예요. 그리고 헤롯이 어떻게 됩니까? 16절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최후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다 죽였다." 이게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속은 줄 알고" 속아서 알아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헤롯의 말로는 속은 인생이 되어버린 거에요. 그리고 자기는 박사들을 자기가 속였다고 생각했어요. 박사들을 속여서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찾아야지 했는데, 진짜 속은 것은 자기에요. 자기가 속았어요. 자기가 속아서 인생을 낭비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돼요? "심히 노하여 다 죽이니" 그 인생에 분노밖에 남지 않아요. 심히 노해서 다 죽여요. 어떤 사람은 그럴 수 있죠. "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나 하나님 안 믿어도 나는 그럴듯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누굴 죽이고 있을까요? 자기를 죽이고 있는 거에요. 자기를 죽이고 있어요. 아무도 안 죽였지만 자기를 죽이고 있어요. 하나님 복음 듣고 믿어서 구원받으면 영생을 얻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죽고 있는 거에요. 바로 자기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은 자기 자리를 위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그런데 참된 왕은 죄인을 위해서 오시고, 무죄한 자기를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참된 왕을 자기의 왕으로 모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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