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라합의 믿음과 선택 그리고 구원받음 > 박용수 형제님 / 26년 2월 15일 일요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수 2:1-15).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수 2:18).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수 2:21).
여호수아 2장입니다. 2장은 이제 '기생 라합'이라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 기생은 성경에서 금지하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금지하는 직업이죠. 기생은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에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라." 기생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아주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리고가 지금 이제 심판의 위기에 처했는데 여리고에서 구원 못 받을 사람 하면, 이제 투표를 하게 되면 아마도 이 기생 라합이 1번으로 꼽힐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아도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니까 멸망 받아야 된다. 지금 세상에서도 천대받는 직업이고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직업입니다. 예전에 그 집창촌을 철거하는 시위에 이제 창기들이 나설 때 보면 다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들도 부끄러운 거예요. 자기들도 부끄러워서 가리고 시위를 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조금 달라집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예수님께서는 창기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합니다.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거라고. 그래서 오늘은 이 거대한 아이러니를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왜 천국은 창기가 먼저 들어가는가?
라합이 처한 환경을 먼저 보시면 라합은 지금 어느 시절에 살고 있습니까? 지금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인 상황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앞에 진을 치고 여리고를 이제 쳐들어오려고 하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라합이 살던 집은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15절에 보면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었다."라고 나옵니다. "그가 그 성벽 위에 거하였다" 나오죠. 그러니까 라합이 사는 집은 이제 그 후의 역사를 보면은 이 여리고성이 무너지는데요. 그 무너질 집 위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명백한 죄인이고, 그리고 무너질 집에서 살고 있는 죄인입니다. 구약 여리고에 있었던 가장 큰 죄인, 기생 라합. 그리고 참고로 신약에서도 여리고에 최악의 죄인이 있었는데 삭개오라고, 세리입니다. 아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리와 창기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너희보다 먼저, 그렇게 아주 우연치 않게 도 구약에서는 창기가, 신약에서는 세리가 여리고에 살다가 이제 구원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먼저 정탐을 보내요. 그 나라를 이제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하고서, 우리가 어떻게 공략을 해야 될까 해서 정탐을 보냈는데 그 정탐꾼이 하필이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갑니다. 저희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찾아가요. 이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지금 기생 라합이 '우리 나라가 망할 텐데, 나는 지금 성벽 위해서 사는데. 지금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면서 '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의 집에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여리고 왕이 이제 얘기를 하죠. 3절에 라합한테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너희 집에 지금 첩자가 들어왔지." 하고서 "첩자 빨리 내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지금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첩자를 내놔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첩자를 내놔야죠. 지금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고, 지금 내가 이완용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첩자를 내놔야 되는데 라합이 어떡하죠? 라합이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거짓말을 해요. 지금 난리 났어요. 지금 라합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또 거짓말까지 하고 있어요. 첩자를 숨기고 지금 뭐라고 하죠? 여기 4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과연 내게 왔었는데요. 내가 그 사람들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몰랐어요." 그리고 5절에 "어두워질 때쯤 나갔어요. 지금 빨리 따라가 보세요. 아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이거 뭐죠? 위증이죠. 위증도 큰 죄예요. 지금 라합은 하여튼 사람이 볼 때는 '죄인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이런 죄인이 없어요. 기생이죠. 지금 나라를 지금 팔아먹으려고 하고 있죠. 또 거짓말하고 나중에 수사 방해를 합니다. 지금 저기 갔으니까 저기 빨리 따라가라고, 수사 방해까지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이제 변호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돼서 챗gpt에 물어봤습니다. 이 정도 라합의 죄면 몇 년 형이 나올 것인가? 찾아봤더니 이거는 일반 형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에 이제 저해가 된대요.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아마도 '무기징역' 이상이 나올 거다. 무기징역, 그렇죠. 나라가 풍전등화인데 그 쳐들어오려는 사람과 이렇게 그 사람들을 돕고 막 그랬으니까요.
이 얘기까지 들으면 이제 사람들이 선택을 하겠죠. "야, 내가 아무리 돈 받는 게 급한 일이지만 나는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게 그래 아무리 좋은 일이지만, 내가 태어난 이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되는가? 한 번 사는 인생 바르게 애국하면서 살아야지. 이렇게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을 해봐야 돼요. 라합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라합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요? 9절에 보시면 라합이 하는 이유는 이거예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 내가 안다." 주신 줄 안다. 지금 사실 주시진 않았어요. 그렇죠. 그런데 라합이 말하는 거예요. "주셨다. 이미 주신 거다. 이것을 내가 안다." 그리고 라합은 지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분이 어떻게 행하실지를 알고 있어요. 그냥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매국로의 행동이지만 사실은 이것은 매국노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보면 멀쩡한 나라를 팔아먹는 게 아니라 멸망이 확정된 나라를 탈출하는 거지요. 예전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미군이 삐라를 뿌렸대요. 빨리 탈출하라고, 이 도시는 곧 망하니까 탈출하라고 삐라를 뿌렸는데, 그 삐라를 뿌렸을 때 그 삐라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1번, 나는 대일본 제국의 시민으로서 옥쇄를 각오하고 머물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정말일까? 하고서 피난 가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어떻게 됐을까요? 실제로 히로시마에는 인류 역사 최초로 원자 폭탄이 떨어져서 피난 간 사람들 말고는 다 죽었습니다. 지금 그 상황인 거예요. 여리고가 멸망되는 것은 라합이 나라를 팔아먹든 안 팔아먹든 상관이 없고 확정이 됐어요. 이 도시는 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9절에 보면 라합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았다."라고 돼 있어요. 라합만 벌벌 떤 게 아니라 여리고 사람 전부가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야, 이거 우리 망했다." 간담이 다 녹았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 히로시마 예를 들었지만 사실은 이 말씀을 들으시는 사람들 전부가 같습니다. 저희 모두 같은 운명이에요. 저희들의 세계가 곧 망할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이렇게 멀쩡히 여기 서 있지만, 그리고 내일도 내일의 태양이 뜨겠죠. 그러나 장담이 안 됩니다. 그런데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는 제가 곧 죽을 거라는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여기 계신 모두가 다 장담할 수 있죠. "나는 곧 죽을 거야. 나는 반드시 죽어." 이것은 거짓말할 수가 없는 진리예요. 그리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 확정된 운명에서 탈출하시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곧 죽을 인생에서 탈출하셔야 된다. 지금 곧 당신은 곧 죽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10절에도 나와 있는데요. 10절에 뭐라고 나오죠?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라합이 직접 본 일은 아니에요.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40년 전에, 기생 라합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많이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 이제 말 중에 40년 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하게 하신, 지금 저 광야에서 이렇게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실은 40년 전에 홍해를 이렇게 가르고 나온 백성이래. 이렇게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 가지 사건은 최근의 일이에요. 유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전멸시키는, 그걸 자기가 들었다. 그리고 누가 들었습니까? 자기만 들은 게 아니라 '우리가' 들었습니다라고 돼 있죠. 우리가 여리고 백성들이 그 얘기를 다 들은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반응을 하냐면, 11절에 보면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앞에 사람들이 정신을 잃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야, 뭐 그런 걸로 마음이 녹고 그러냐?" 그런데 그런 분들도 마음이 녹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 부모가 죽거나, 자기 형제가 죽거나, 혹은 자기 자녀가 죽을 때, 그때 마음이 녹아요. 이게 슬픔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에게 닥칠 일이구나, 하고서 마음이 녹는 것입니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아,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그럼 녹죠, 마음이.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두려운 것이지만 사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말씀하세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다. 그런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죽음에서 마음이 녹을 일이 아니라 그 후에 심판을 생각하면 사람이 정신을 잃게 되는 겁니다. 나에게 닥쳐질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 운명 다음에는 내가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겠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녹게 돼 있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일이 끝이라면 사실은 이 세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면 그 심판을 대비해야 되는 겁니다. 라합은 비록 창기였지만 심판을 대비했어요. 매국을 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가 곧 다가올 심판을 피해야겠다. 이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된다. 산 자가 이것을 유심해라." 또 전도서에서는 이 말도 나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 죽음 이후를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매한 사람, 바보는 연락하는 집에 있습니다. 연락은 즐겁게 노는 생각만 합니다. 이제 곧 설날인데 또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아야지, 친척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또 놀아야지.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혹시 지금 복음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안 계시겠지만, '벌써부터 지겹다.' 이러시는 분 없겠죠.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입니다.
라합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11절부터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첞지의 하나님이시다." 이게 라합이 내린 결론이에요. 라합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너희 하나님은, 지금 내 하나님은 아니지만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다. 이 '상천하지', 위로는 하늘로, 아래는 땅으로, 이런 하나님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자기 나라로 이끌어주세요.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기 백성을 자기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권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듣고 '아,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이다. 이 세상에 많은 신이라는 신이 있지만 이런 신은 없다.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시면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외치겠죠. 살려달라고. "나는 아직 당신이 하나님이라고 부르진 못하지만 당신이야말로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까, 나도 제발 당신의 백성에 들어가고 싶다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겠죠. 그렇게 간구하는 게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청하노니" 이제 비는 겁니다.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지금 선대했지 않느냐? 너희도 나를 좀 선대해 달라." 나도, 그리고 내 아버지 집, 나의 부모, 남녀 형제, 또 그들에 있는 모든 자들 다 살려달라.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죽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그 앞에 구하는 것, 살려달라고, 제발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례가 있죠.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가 이렇게 얘기해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세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강도도 사실 이 말하기 직전에는 같이 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고 진짜 잠깐 전만 해도 두 강도가 있었는데, 같이 예수님을 욕하던 사람인데,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시는 일을 보고서 마음이 돌이켰어요. 이런 분은 하나님이 아닐 수가 없다.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다. 그러고서 구합니다. 아주 뻔뻔하게, 뻔뻔하게 구하는 거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 좀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다 죽어가는데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 방금 전에 나 욕했지." 이렇게 안 하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또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문둥병 걸린 사람이 있어요. 문둥병 걸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히 하실 수 있나이다." 이렇게 빌었어요. 문둥병이니까 누가 대우해 줍니까? 누가 만집니까? 그런데 예수님 대단하시다는 분이라는 소리를 듣고 와서 "예수님 저를 좀 깨끗하게 좀 해 주십시오." 이러니까 예수님이 말씀만 "나아라." 이렇게 해도 낫게 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손을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러니까 문통병이 즉시 낫는 거죠.
하나님께 다가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아요. 사람이 구원 못 받는 것은 하나님께 나오지 않아서예요. 그 딱 유일한 이유는 한 가지예요. 하나님이 왜 나만 미워하시냐가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미워하시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소경도 있었어요. 소경이 뭐라고 그래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합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래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곧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쫓으니라.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원받았어요. 하나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다 구원받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지금 구원을 못 받았다면, 범인은 당신이에요. 누구 핑계 댈 게 없어요. 하나님은 팔이 짧아서 구원 못하시는 분이 아니예요. 당신이 원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라합이 아주 똘똘한 사람인 것 같아요. "말로만 하지 말고 표를 내라." 12절 마지막에 나오죠. 맹세하고 나한테 진실한 표를 달라고, 불안하지 않게 표를 달라고 해서 무슨 표를 주죠? 18절에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달아내리는 창에 이 붉은 줄을 매라."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내 앞의 가족들을 다 네 집에 모아라." 붉은 줄을 창에다 매라고 합니다. 라합이 요구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표를 주십니다. 붉은 줄, 이 줄을 성벽 위에 이렇게 딱 매달아 놔라.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을 다 불러모아라. 그 집에, 그러면 성벽이 다 무너져도 그 집은 안 무너진다. 너무 이상하죠. 성벽이 다 무너지는데 그 집은 안 무너져요. 그러니까 여리고성이 다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이 다 무너지는 줄 알겠지만 사실은 여리고성의 라합이 살고 있던 그 집, 그 부분만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약에 여러분들의 인생에 이렇게 뭔가 정확한 표, 이런 표가 있으면 당연히 받아들이겠죠. "이런 표가 있으면 내가 억만금을 줘서라도 내가 사야지." 지옥을 면할 수 있는 표, 살 거예요, 안 살 거예요? 사죠. 당연히 사죠. 이것은 얼마의 가치가 있겠어요? 지옥을 면하게 해준다는데, 그럼 당연히 사는데 의외로 이 붉은 줄을 안 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 붉은 줄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안 받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뭘 하라고 한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예수님께서 2천 년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다 2천년도 아니죠. 그 구약 시대부터 다 이렇게 이 붉은 줄을 이렇게 이렇게 제시하고 계신데, 그것을 잡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극히 드물어요. 이 붉은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합이 이렇게 말해요. 21절에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다." 이렇게 합니다. 너희 말대로 할게. 내가 할게. 너희 말대로 내가 붉은 줄을 매겠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맸다. 이렇게 나옵니다. 라합처럼 하시면 돼요. 들은 복음대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너무 쉬운 일이에요. 그 이후로 이제 여리고는 망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그 뒤쪽에 더 나오는데요. 그리고 여리고가 무너져 내리는 일은 더 재밌는 일이라서 나중에 또 교제할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 여리고가 무너진 다음에 6장을 볼까요? 여호수아 6장 26절,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얘기 참 재밌지만 지금 시간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고 무너진 다음에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여호수아가 이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다음에, 여리고성이 이제 완전히 무너졌어요. 그때 저주를 내립니다.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건축하면 기초를 놓을 때 첫째 아들을 잃을 것이고, 성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을 잃을 것이다." 기초는 성을 쌓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입니다. 네가 성을 쌓기 시작할 때 첫째 아들을 잃을 것이고, 성을 이렇게 지으면서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넷째 아들 다 죽고 마지막에 문짝을 달 때 막내 아들까지 죽을 것이다. 이 말은 뭐예요? 대가 끊길 것이다. 완전히 망할 것이다. 이렇게 저주를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듣고 믿음으로 행해서 라합처럼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성경은 두 가지 예를, 말씀대로 해서 구원받는 사람과 말씀을 오지게 안 들어서 멸망하는 사람 두 가지 예를 다 얘기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라합 얘기를 했는데 이제 반대 얘기를 하려고 그래요.
말씀을 오지에 안 들은 사람이 있어요. 열왕기상 16장으로 가시겠습니다. 이 저주를 기억하시면서 열왕기상 16장을 보시면 돼요.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4).
건축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지금 저주를 내렸는데 건축을 해요. 라합의 정반대에 '히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히엘이라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 살던 사람이냐면 "그 시대"라고 돼 있는데요. 아합 왕의 시대예요. 아합 왕의 시대는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나서 500년 뒤입니다. 그리고 어떤 시대냐면 아합은 어떤 왕이냐면 하나님을 안 믿는 왕이에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왕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대신 풍요의 신, 바알이라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걸까요? 오늘날과 유사합니다. 오늘날에도 풍요가 덕이 됩니다. 풍요로운 게 최고예요. 뭐라고 그래요? "부자 되세요." 다 서로 뭐라고 그래요? 할 말 없으면 부자 되시라고, 예전에 그런 캠페인도 했어요. 부자 되세요.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예전에는 되게 천박한 말이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천박이 아니에요. 그게 덕이 됐어요. 덕담이 됐어요. "부자 되라." 그리고 예전에 낭만이 있던 시절에는 그 무슨 또 천하게 또 부자 되라고 그렇게 막 하냐, 그러는데 요즘에는 그게 흠이 아니야. 다 부자 되라고, 부자 되라고 그래요. 우리가 뭐 요즘에 어떤 시대라고 합니까? '자본주의'라고 하죠. 자본주의가 뭐예요? 자본이 돈이에요 주의는 뭐야? '주' 주님, 자본이 주님인 시대가 됐어요. 이제 설날에 가면 자식 자랑 배틀이 벌어지겠죠. 그 자식 자랑 할 때 최고의 자랑이 뭐예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돈을 잘 벌어." "우리 아들이 나를 싱가포르 보내줬어." "우리 아들이 이 전셋집을 얻어 줬던 거야." 딸이군요. 우리 딸이 날 해외여행 보내주고, 우리 딸이 날 전셋집을 구해주고, 그러면 그런 거 못한 아들 딸들 가진 부모님들은 뭐 하고 있어요? 표정이 이래가지고 집에서 시무룩하고 그러겠죠. 천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이 그래요. 오늘날이 돈이 최고인 시대예요. 그런데 그런 시대에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또 이 얘기도 해야겠다. 벧엘 사람이라 그래요. 벧엘 사람이 뭐예요? 벧엘은 우리나라 말로 하면 '하나님의 집'이에요. 하나님의 집, 그리고 '히엘'이라는 사람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는 뜻이래요. 하나님의 집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하는 행동은 "하나님이 누구야?" 이러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가 많아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모임에서 태어났는데, 그리고 그 이름도 다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뜻으로 지어줬는데, 정작 "하나님은 누구야?" 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부모님을 두었지만 "하나님이 누구야?" 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이 볼 때 여리고 땅은 너무도 아까운 땅이야. 히엘이 딱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기다가 아파트를 지으면 진짜 기가 막히겠는데, 여리고 재건축한다.' 요단강 뷰, 요단강 뷰가 보이는, 서울은 한강 뷰가 유행인데 이제 여기는 요단강 뷰, 뒤에 배산임수, 예루살렘을 뒤에 두고 앞에 요단강에 펼쳐지는 천하의 명당 배산임수 지역, 여리고 재건축 내가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합니다. "야, 그거 사실 예전에 500년 전에 여수아가 저주를 했어. 그거 하면 안 되는 거야." "뭔 500년 전 얘기하고 있어. 지금 여리고 재건축이 지금, 그리고 무슨 하나님 얘기하고 있어? 지금 바알이 지금 모두 부자 되세요! 하는 시대에 내가 지금 여리고 재건축을 내가 이럴 수 있겠나?" 하고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없다.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없다! 하고서 여리고 재건축 고고! 한 거예요. 어떻게 돼요? 기초, 이제 텃파기 공사하고, 콘크리트, 레미콘, 불러다가 채울 때 어떻게 됐어요? 갑자기 첫째 아들 시울이가, 제가 박용수라고 하면 갑자기 시율이가 억 하고 쓰러졌어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돼요? '여호수아서 말씀이 어디였지?' 하고서 여호수서 6장 가서 '어머나 진짜네. 기초를 놓을 때 장자를 잃을 것이라고 하더니 진짜 그러네.' 하고서 거기서 어떻게 해야 돼요? 멈춰야지. 멈춰야죠. 안 그래요? 시작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들이 죽었어요. 실제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돌이켜야죠. 그런데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말을 안 들으려면 이렇게까지 말을 안 들어요. 지금 자기 아들이 장자가 말씀대로 죽었는데도 "우연이야. 걔가 원체 좀 약했어. 걔가 좀, 애가 좀 유별났지." 하고서. "내가 지금 이 재건축만 하면 지금 이게 뭐 부담금이 하나도 없고, 한 채를 사면 두 채를 주고, 막 지금 이 내가 이걸 놓칠 수가 있겠느냐?" 나는 부자 되세요. 해야 되는데, 난 부자 돼야 되는데, 아들이 죽은 게 무슨 대수냐? 하고서 터파기 공사한 다음에 1층, 2층, 3층, 4층 거푸집 공사 들어가서 올라가요. 그러면 이제 누가 죽어요? 서주가 죽어요. 서주가 갑자기 저기 놀이터에서 놀다가 차에 쳐서 죽은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멈춰야지. 멈춰야 되는데 그걸 또 멈추지 않아요. "우연이야. 쟤도 약했어." 제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고집이 셉니다. 둘째 아들이 죽었는데,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재건축을 봐야지. 아들은 또 낳으면 되지. 이렇게 처참한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착착착 진행이 되는데, 말을 끝까지 안 들어서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에 문짝을 달 때 막내 아들까지 죽습니다. 이제 입주민을 받을 때 동유까지 죽는 거예요. 성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믿음으로 자기 가족을 건사한 사람이 있고요. 자기 가족이 다 죽어가는데 성을 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선택하라고, 곧 죽을 인생인데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성이 무너져도 좋으니 제 가족은 살려주십시오, 할래, 아니면 제 가족은 죽어도 좋으니 아파트 하나만 주십시오, 하겠습니까?
라합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디까지 존귀케 하시는지는 마태복음 1장 5절에 나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예요. 예수님의 족보에 4명의 여인이 나오는데 그중에 한 명이 라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귀히 여기실 때는 어디까지 올리시냐면 이렇게까지 올리시는 겁니다. 처음의 시작은 이 여인은 기생이었는데, 마지막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귀한 여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합처럼 마땅히 죽을 인생이지만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믿고 붉은 줄을 붙듬으로써 온 가족을 구원하는,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올라가는 그런 귀한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 무시하면서 끝까지 고집하면서, 나 지옥 가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될지,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시라고 하는 겁니다. 부디 이 하나님의 경고를 흘려듣지 마시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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