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3 : 하나님의 집 > 한봉래 형제님 / 26년 3월 15일
이 시간에는 제가 교회 진리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시간인데요. 디모데전서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4-15).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보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에베소 교회를 가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알고 디모데전서를 씁니다. 디모데전서 가끔 성경 가운데 '내가 이 성경을 왜 쓰는가', 쓴 목적을 이렇게 분명하게 밝히는 경우가 있는데요. 디모데전서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디모데전서의 내용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가'가 그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제 에베소 지역 모임을 사도 바울은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다. 두 번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다, 말합니다. 세 번째는 진리의 기둥과 타다 이렇게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그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집'에 관한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아까도 박 형제님이 첫 번째 언급된 것,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단어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하나님의 집이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곳을 찾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집이 최초로 언급된 곳에서, 구약의 그림자로 하나님의 교회가 어때야 되는가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찾아서 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이 맨 처음에 나온 거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10-22).
여기 '하나님의 전'이 우리 말로는 '전'으로 돼 있는데요.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집'으로 돼 있습니다. 벧엘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죠. 아멘, 이제 야곱과 관련돼서 이제 '하나님의 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제 스토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야곱이 이제 브엘세바에서 떠나서 이제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제 할아버지인데요. 야곱 입장에서는 아브라함이 할아버지잖아요.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는 아버지라고 표현돼 있습니다. 그랜 파더라고 돼 있지 않고 그냥 파더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여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삽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가 이제 야곱이 이제 물론 아브라함은 죽었죠. 그다음에 이제 이삭과 같이 살고 있다가 이제 아버지 집을 떠나, 이삭의 집을 떠나, 야곱이 이제 리브가의 친정 하란으로 가고 있는 여정입니다. 이게 이제 10절인데요. 왜 가게 됐을까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왜 가게 됐냐면 성도님 이제 잘 아시는 대로 이삭은 쌍둥이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이삭이 결혼을 40살에 합니다. 이제 우리들하고 수명이 다르니까 약간 비교할 수는 없는데요. 40살에 결혼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60살에 20년이 지나서 쌍둥이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쌍둥이가 하나님이 자녀를 주셨으니 감사하죠. 그런데 이 쌍둥이가 뱃속에서 서로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걱정이 돼 가지고 다시 물어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하셨냐면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쌍둥이지만 그래도 몇 척 자이로 둘째인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이제 하나님이 이제 이렇게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 이삭에게 넘어가고, 이삭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이 그중에서 성취되지 않은 것은 다시 야곱에게로 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 시대까지 약속을 하셨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 약속이 이제 대대로 이루어져야 되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넘어갑니다. 에서가 아니고,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약속한 축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힘을 씁니다. 그래서 에서가 사냥을 해서 이제는 음식 안 들어가면 죽겠다라고 싶은 순간에 팥죽하고 장자권을 바꾸자고 합니다. 나쁜 거죠. 형제 간인데 있으면 줘야죠. 그런데 그걸 어떤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이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어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 손으로 이루어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이제 이삭이 자기가 죽을 거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이제 축복해야지. 그래서 이삭이 누구한테 축복을 하려고 하냐면,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야곱이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가 인간적으로 선호하는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에서야, 이제 내가 죽게 생겼으니 아버지 아브라함, 그리고 나에게 넘어온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제 너에게 넘기려고 한다. 너 얼른 가서 사냥해서 내가 좋아하는 별미 만들어 오면 내가 그거 먹고 축복할게." 이것도 나쁜 겁니다. 육신을 평안하게 해서 축복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기분이 좋아서 이제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거 먹었잖아요. 그래서 축복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여간 이제 그렇겠죠. 이제 에서가 갑니다. 이걸 리브가가 알고 "아니, 에서한테 축복하면 안 되지. 하나님은 야곱이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야곱에게 "네가 에서인 척하고 축복 받아내라." 야곱이 망설이니까 "책임은 내가 진다, 받아내라." 그래서 이제 야곱이 거짓말로 "내가 에서입니다." 해서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에서가 나중에 와보니까 축복이 이미 야곱에게 넘어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에서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야곱을 죽여버려야 되겠다.' 여기서 이제 저희들이 생각 하는 것은, 이제 물론 물론 밉죠. 축복을 가로챘으니까, 그래도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좀 심하죠.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입니다. 이게 이제 악한 영향을 받은 거예요. 죽여버려야 되겠다. 그러니까 리브가가 야곱에게 "너 잠시 동안 친정에 가서 피해 있어라. 에서가 지금은 화가 나서 저러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릴 거 아니야. 그러면 내가 다시 오라고 할게." 그냥 가라고 그래서 간 겁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아시는 대로 리브가는 야곱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제 떠나가는 거겠죠.
그래서 이제 떠나가는 상황에 대해서 이제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야곱이 이삭과 리브가 어머니, 부모님의 집을 떠나 이제 자기가 알지 못하는 낯선 땅으로 가야 되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가 에서에게 한 대로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이삭의 집에 대해서 이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인도로 결혼합니다. 이제 에서가 먼저 결혼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이제 저기 저기 이방 여자자들과 해서 리브가 속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킬 때 믿는 자하고 결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떠나온 하란, 내 고향 메소포타미아, 그곳에 가서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내가 물론 거기를 떠나왔지만 그곳에 있을 때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친척들에게 믿음을 전파했고, 그래서 믿는 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와야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죠. 조건을 두 개 겁니다. 믿는 자여야 된다. 다음에 두 번째 만약에 그 여자가 오지 않겠다고 하면 이삭을 그리 데리러 갈까요? 데리고 가서 거기서 살아라고 할까요? 안 된다고 합니다. 결혼보다 부르심이 중요하다. 가나안 땅으로 부름 받았으니까 안 오겠다고 하면 결혼을 못할지라도 하란으로 못 데려간다. 이게 두 가지 조건이죠. 그래서 이제 리브가가 "가겠나이다." 그래서 뭐 오빠들이 "아니, 그래도 섭섭하게 그냥 갈 수 있냐? 일주일은 머물면서 같이 마지막 잔치라도 하고 가야지." "지금 가겠나이다." 하고 온 겁니다. 믿음으로 결혼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결혼했다고 믿음의 가정이 되는 건 아닙니다. 결혼은 믿음으로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됐냐? 부부가 어떻게 됐냐? 남편은 에서를 좋아하고 축복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럼 아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교제해야죠. 이삭 찾아가서 "아니 여보, 하나님 말씀이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시려고 합니까?" 해야죠. 말 안 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남편과 교제를 통해서 이걸 해결해야 하지 않고, 속여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이루어 버립니다. 부부 사이에 교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입니다. 믿음으로 결혼했다고 믿음의 가정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결혼 후에 믿음의 삶은 다르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 보겠습니다. 이제 이삭의 집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데요. 잠깐 보시면 이때 야곱의 나이가 몇 살이냐? 이제 어떤 이런 거 잘하시는 형제님들이 이렇게 계산해 냅니다. 계산할 수 있거든요. 이제 야곱이 저기 내가 바로 앞에 섰을 때 "내가 130세입니다." 해서 쭉 이렇게 해보면, 이 28장 10절에 야곱의 나이를 계산해 냅니다. 77세입니다. 어떻게 계산됐는지 궁금하시면 제가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굉장히 나이가 많죠. 물론 야곱은 140세 정도를 사니까 한 자기 생애의 한 절반이 넘어갔을 때입니다. 그게 한 70, 80하면 우리로 치면 한 30대, 40대입니다. 그 나이에 이제 떠나가는 겁니다. 야곱은 아브라함하고 몇 년을 같이 사냐면 15년을 같이 삽니다. 아브라함하고 15년을 브엘세바에서 같이 살고, 그다음에 아버지 이삭하고는 77년을 삽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77세에 떠납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면 첫 번째, 아브라함이 이제 손자 야곱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야곱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줬을 것입니다. 뭐라고 들려줬냐? 제가 추측컨대 이렇게 합니다. 내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영광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비, 본토, 친척집을 떠나라. 그래서 내가 말씀을 따라 떠났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단을 쌓고 장막 생활을 했다. 단이 예배드리고,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왔다. 이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너도 그래야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이삭, 이제 아버지 이삭도 야곱 어릴 적부터 무릎에다 놓고 이제 가르치죠. 이삭은 아마 하나님과의 경험을 이걸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모리아산, 어느 날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예배드리러 가자고 그래서 갔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뭘 들고 갔냐면 칼하고 불하고를 들고 가고 나더러는 나무를 등에 지고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가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이게 번제를 드리려면, 제사를 드리려면, 짐승이 있어야 되는데 나머지는 다 준비가 됐는데 짐승이 없어가지고 내가 물어봤다. 아버지한테 아버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건 우리가 준비 안 해도 된다.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어린 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 어린 양으로 예배드릴 거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정상에 갔더니 나를 묶어버리셨다. 이게 웬일인가? 그런데 그때 내 나이가 스물 몇 살이어서 아버지는 이미 나랑 씨름하면 내가 힘이 더 셌던 때다. 그런데 내가 그때 조용히 아버지에게 순종하기로 했었다. 이게 이삭의 간증입니다. 너도 네 힘을 쓰지 말고 순종해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에게 순종해라. 이게 야곱을 가르친 거죠. 제가 여기 이제 어린 학생들한테 당부하고 싶은데요.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면 잘 배웁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아브라함의 손자라니요? 이삭의 아들이라니요? 놀라운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섬겼는지 잘 보고, 듣고, 그보다 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게 야곱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 이 대목만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삭의 믿음은 이삭의 믿음입니다. 야곱은 자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히긴스 형제님은 이 대목을 야곱의 '구원 장면'이라고 봅니다. 구약 성도들이 구원 언제 받았는지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하고 조금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 그다음에 이삭의 하나님이셨으나, 아직 야곱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제는 부모님의 믿음을 배워서 배우는 게 아니고 자기가 직접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되는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본인이 직접 개인적으로, 혼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가 이제 구원받은 구원받는 장면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이 야곱은 저희들이 옛날에 옛날부터 이제 많은 형제님들이 그렇게 했는데 야곱은 이렇게 하잖아요. 아브라함은 그러면 뭘 하냐면 '단'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네 번 쌓죠. 이삭은 '우물'입니다. 이삭의 생애는 우물과 관련됩니다. 야곱은 '기둥'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이제 요셉은 '옷'이죠. 채색 옷, 그다음에 종의 옷, 옷이죠. 그리고 이제 야곱의 경우는 '집'과 관련됩니다. 야곱은 어느 집에서 사냐? 아버지 집, 이삭의 집에서 삽니다. 그리고 누구한테 가죠? 라반의 집에 갑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집을 이룹니다. 이제 자기가 가장이 된 집을 이루죠. 그런데 야곱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은 뭐냐 그러면 이런 겁니다. 야곱의 경우는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뭘 보고 자랐냐면,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내가 택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야곱이 장작권을 사지 않아도 장작권은 야곱에게 넘어갈 겁니다. 그가 팥죽으로 에서와 그와 같은 거래를 하지 않았어도 장자권은 야곱에게 줄 겁니다.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다음에 이삭이 지금 에서에게 "너 얼른 사냥한 거 갖고 와. 사냥해서 별미 만들어 나한테 가져오면 내가 너를 축복할게."라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뭘 믿어야 되죠? 하나님이 무슨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기적적인 방법으로 야곱을 축복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내가 야곱을 택했다." 그러니까 이삭이 아무리 에서를 축복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무슨 사건을 일으켜서, 예를 들면 뭐 짐승이 안 잡히든지, 어떻게 된 건지, 그래서 하여간 알 수 없지만 야곱에게 이삭이 축복할 거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못 믿었어요. 잘못하면 하나님은 야곱이 축복받는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에서가 축복을 받게 생겼네? 이때 개입해야지, 이게 불신입니다. 그들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는다. 누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는가? 이삭이 불가능하다. 이걸 배워야 합니다. 어디서요? 하나님의 집에서, 이게 야곱이 이제 배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하나님의 집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이루실 때까지 내가 개입하지 말아야 된다. 나는 믿어야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분임을 믿어야 된다. 이게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게 모임에서 배워야 합니다. 모임에서 배워야 되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하실 것이다. 우리의 도움 없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자기 계획을 이루신다. 이게 이제 떠나는 거고요.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나중에 이제 야곱의 생애를 보면서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서 그걸 배웠는지 저희들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제 야곱이 죽을 때 이제 축복하는 거, 이런 거 보면 이게 하나님의 집에서 배웠구나. 야곱의 생애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이루어졌구나, 브니엘에서 이제 이런 것들을 보는 건데요.
하여튼 오늘은 이제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11절, 그래서 그가 떠납니다. 이제 떠나는 길이 보통 이제 형제님들이 떠나는 장소가 아마 이제 터키 쪽, 이제 브엘세바를 찾아보면 터키에 있는 곳으로 보시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하란까지 구글 지대를 놓고 이렇게 보면 걸으면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하는데 한 3주쯤 걸리는 거리로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냐? 이제 이 여정의 시작 대목, 이 벧엘, 그러니까 루스라고 하는 이곳에서 한번 보고, 그리고는 곧 도착한 곳에서 말합니다. 그런데 그 여정을 길게 묘사하지는 않고 두 번만 묘사하는데요. 하여간 이제 벧엘에서입니다. 이렇게 보겠습니다. 그는 이제 브엘세바를 떠나서 이제 벧엘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는데요. 보통 얼마나 걸렸을까 계산하면 3일길로 봅니다. 하루 가고, 자고, 하루 가고, 둘째 날 가고, 셋째 날 도착했는데, 루스라고 하는 성인데 그 성문이 닫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전에 도착했어야 되는데 늦게 도착한 거죠. 그래서 이제 야곱은 이렇게 결정합니다. 여기서 자야 되겠다. 여기서 유숙하고 일어나서 루스성으로 들어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리고 이제 이 길은 이제 누가 왔던 길이냐 하면 리브가가 왔던 길입니다. 친정으로 가는 거니까 리브가가 자기가 그 친정에서 이렇게 가난으로 이삭과 결혼하기 위해서 왔던 길이지요. 그래서 아마 리브가가 알려줬을 것입니다. 어떤 어떤 길을 따라간다, 뭐가 나오고 뭐가 어떻게 알려줬겠죠. 이제 가고 있는데 루스라고 하는 성 앞에 와서 그가 이제 자려고 보니까 이제 그 당시 자연 환경을 저희들이 잘 모르지만, 아마도 들짐승도 있고 이렇게 하니까 이제 그가 자기가 잘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뱀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이제 공간은 일단 만듭니다. 그리고 이제 돌베개를 베는 거죠. 나중에 이걸 기둥으로 세우는 걸 보면 이제 베개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긴 걸로 생각이 됩니다. 이게 기둥이 돼야 되니까요.
이렇게 자고 있었는데 꿈을 꿉니다. 그리고 다시요. 이 꿈은 우리가 생각하는 꿈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장에 의하면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여러 부분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야곱에게는 하나님이 꿈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제일 처음에 그가 본 게 하늘과 땅, 사다리가 보였습니다. 사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 사다리인데요.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뭐 이렇게 사다리가 아니고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왕복 2차선입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해야 되니까 꽤 넓은 사다리입니다. 이건 야곱에게는 뭘 말하냐면 하늘과 땅은 연결돼 있답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내가 아브라함에게 듣고 이삭 아버지에게 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멀리 보이죠. 이 하나님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라고 하는 것이 하늘과 땅처럼 멀게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연결돼 있답니다. 이미 천사들은 내려와 있답니다. 이건 뭐 하고 연결하냐면 잠깐 비교해 보면 바벨에서 사람들이 하늘에까지 닿기 위해서 바벨탑을 세웁니다. 하나님 무너뜨리죠. 바벨탑을 싸운 이유 중에 하나 뭐냐 하면 '우리 이름을 높이자'거든요. 그리고 이 바벨의 반역에 대해서 하나님이 반대로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높여주십니다. 그리고 여기 보면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한테 내려와 있습니다. 이미 천사들을 보내서, 천사들은 메신저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첫 번째 메시지는 뭐냐 하면, 이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뭔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건 뭔가? 예배는 또 얼마나 추상적인가가 아니고 하늘과 땅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제 너 야곱의 하나님이다, 입니다. 이건 무슨 무슨 말이냐면 내가 너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너를 택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너를 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약속합니다. 이제 이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다 주어진 약속입니다. 첫 번째, 이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아브라함에게 한 거죠. 이삭에게도 한 거고 그다음에 두 번째, 후손이 이 땅에서 살 것이다. 수많은 후손, 그다음에 이것과 연결되어서 메시아가 너의 후손으로 올 것이다. 네 자손으로 인하여 세상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건 주님입니다. 여기까지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어진 약속이 야곱에게 넘어갑니다. 그대로 넘어간 거고요. 그다음부터입니다. 이게 야곱에게만 독특하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첫 번째가 '너랑 함께 있겠다.' 이게 하나님의 집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어디를 가든 내가 보호한다.' 너는 내가 지킨다. 그다음에 세 번째, '너를 돌아오게 하겠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다음에 네 번째입니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
떠나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은 누구한테 주어진 약속이냐면요. 성경에서 찾아보시면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여호수아 1장을 보면 모세가 죽고, 모세도 못 들어간 가나안 땅을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 데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모세가 못했거든요.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기가 모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의 선배인 모세가 실패한 일을 자기가 해야 합니다. 어떻게 모세도 못한 일을 자기가 할 수 있을까요? 그때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은 모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너에게 준 임무를 완수하게 해 줄 것이다. 완수할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솔로몬이 기도합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솔로몬의 기도의 핵심적인 내용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저희를, 이스라엘을 떠나지 마옵소서." 이게 핵심적인 기도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으로 오겠습니다. 히브리서는 핍박받은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13장 5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합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여간 이제 그의 그 약속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떠나지 않겠다.
그랬을 때 야곱이 잠이 뺍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제 계시를 붙이셨습니다. 그랬을 때 이제부터 야곱의 반응입니다. 야곱이 깨어나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데 나는 전혀 몰랐네." 몰랐구나. 그다음에 두 번째 "두렵도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니 참으로 두려운 곳이다. 하나님의 집은 두려운 곳이다."입니다. 이제 물론 공포의 느낌은 아니고 경외하는 그런 느낌이죠. 그다음에 세 번째, 그다음에 이곳 이름을 댑니다. "이곳 이름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다."
여기서는 하나만 하나님의 집은 이제 하나님이 주인인, 하나님이 가장인 집에 들어왔다. 이런 거고요. 그다음에 하늘의 문은 이렇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문'이라고 하는 것은 열고 들어가는 문이 아니고 이제 성경에서 이제 이곳에서 쓰인 문들은 '통치하는 곳'입니다. 저희들이 아는 대로 롯이 소돔 땅에 들어가서 어디에 앉았냐면 소돔 성문에 앉았습니다. 소돔성의 인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뭐가 있었냐면 룻기에서 보면 보아스가 이제 자기가 친족이니까 룻과 나오미, 이제 구속을 해야 되잖아요. 친족이 땅을 사는 거잖아요. 그걸 어디서 하냐면 성문에서 삽니다. 성문에서 10명의 증인을 세워놓고 가장 자기보다 가까운 친족을 불러놓고 거기서 계약합니다. 그래서 이게 행정을 하는, 통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문은 이런 뜻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가장인 집이고, 두 번째 하늘이 통치하는 곳이다. 이게 야곱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리고 베개를 기둥으로 만들어서 이제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을 붓는다고 하는 것은 '전제'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여기다가 물, 혹은 포도주, 기름 이런 걸 붓습니다. 이것은 기쁨으로 드린다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기둥을 세운다고 하는 것, 기둥을 세우고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래놓고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 것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이 기둥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오 제가 10분의 1을 드리겠습니다." 10분의 1은 성도님들 다 아시는 대로 상징적인 것입니다. 모든 게 하나님께 와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쓰시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쓰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쓰고 하나님이 전부 주신 것입니다라고 하는 상징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놓고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디모데전서가 말하고 있는 에베소 지역 모임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집은 구체적으로는 야곱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부른 곳에서 그 하나님의 집의 특징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 특징들이 그래서 이제 처음 언급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리고 굉장히 치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 창세기 28장의 하나님의 집이 에베소 교회의 특징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이쪽에서 특징 7개만 뽑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뭐 했죠? 팥죽으로 거래하고, 장자권 속여서 받고, 아버지에게서 속여서 축복을 받고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야곱이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에베소 교회의 특징이 돼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은혜를 말해야 합니다. 은혜 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은혜 입은 사람들만이 베풀 수 있는 은혜를 나누는 곳이 돼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집의 특징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하나님께서 자고 있는 야곱에게 꿈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누운 땅을 주고, 이렇게 계속 말씀하시죠. 내가 너를 지키고, 막 이렇게 약속하셨잖아요. 하나님의 집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고 설명하고 증거하는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하나님의 집은 뭐 하는 곳이냐? '하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야곱은 전혀 몰랐는데 보니까 자기가 하나님 집 안에 들어와 자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가 하나님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가장인 집 인 거예요. 하나님이 있는 곳이에요.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십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이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모이고 있는 것이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모임에서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여기 계신다. 주님 앞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게 이제 하나님의 교회죠. 그다음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그다음에 네 번째, 하나님은 하늘의 문이죠. 그다음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다. 하늘의 통치, 하늘의 문이니까 하늘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여기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데가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비난하는 게 뭐냐 그러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사사기입니다. 왜 사사기를 비난하냐? 사사기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때는 왕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왕이시죠. 그런데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어떻게 했다고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교회가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각각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통치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모임은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복수 장로들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이게 지역 모임입니다. 이게 하늘의 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은혜가 있는 곳이고, 말씀이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이 결정하고 순종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에베소교회의 네 가지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창세기 28장에서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다시 세개를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야곱이 어떻게 하냐면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습니다. '헌신'이 있는 곳입니다. 이제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이곳에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기쁨의 헌신들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보면 천사가 있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천사가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교회에 천사가 관련돼 있습니다. 어떻게 관련돼 있냐?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자매님들이 너울을 씁니다. 왜요? "천사들을 인하여" 천사가 야곱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천사들이 교회에 관심이 있습니다. 천사들이 이제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는 건 뭘 보는 거죠? 저희들이 맨날 하는 거죠. 범죄는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세우셨거든요. 사람, 그중에서도 남자, 그다음에 여자, 그리고 짐승,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에덴에서 거꾸로 되죠. 뱀이 말하니까 하와가 듣고, 하와가 주니까 아담이 먹고, 이렇게 돼 있는 거죠. 그래서 교회에서의 너울은, 자매들의 너울은 우리는 자매들의 역할에, 하나님이 세우신 자매들의 역할에 순종합니다. 이게 너울인 거죠. 천사들을 인해서, 이제 천사들이 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고 있는 모임은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곳이다, 라고 하는 것이 간증으로 나타나는 거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천사가 성경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곳이 어디냐 그러면 천사라고 표현은 안 돼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사자'라고 돼 있습니다마는 어디냐? 그러면 창세기 16장입니다. 거기 무슨 사건이 벌어지냐면 이제 하갈이 임신을 했죠. 사라가 학대를 하죠. 그러니까 도망갑니다. 그리고 여주인이 학대하니까 도망가 버리죠. 도망간 건 좋은데 도망가서 이제 뭐 물도 없고 막 죽을 지경이 된 거죠. 그때 천사가 하갈에게 나타납니다. 이게 이제 최초 천사인데요. 천사가 최초로 한 말이 뭐냐 하면 "돌아가서 순종해라." 입니다. "하갈 너를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런데 네가 할 일은 여주인 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순종해라." 그래서 천사는 항상 순종과 관련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루시퍼가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반역했거든요. 이게 모든 비극의 시작이거든요. 그래서 그 자기 지위를 떠나지 않은 천사들의 경우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제 천사가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 하나만 보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 6개를 한 거죠. 다음 마지막으로 7개입니다. 여기 보시면 이제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잠이 깨어" 야곱이 잠이 깨요.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알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심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놀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고, 그 하나님에 대해서 놀랍니다. 이게 뭘로 표현되느냐? 지역 모임에서 예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탄,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찬양과 예배가 하나님의 집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8장에서 있었던 모든 은혜,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 하늘의 통치, 그리고 기름을 붓고, 십일조를 드리는 헌신, 그리고 천사, 그리고 예배, 이 7개가 28장에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이게 그대로 디모데전서 3장에 에베소 교회에서 있어야 되는 일들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집'이다.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를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 28장을 배경으로, "네가 섬기고 있는 에베소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7개의 일들이 있어야 된다. 이게 진정한 하나님의 집이다." 주님께서 저희들이 섬기는 지역 모임 가운데 이와 같은 7개의 영적인 특징들이 나타나서 주님을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한봉래 형제님 >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교회 2 : 지역모임, 질서, 관계, 목자 (1) | 2025.12.19 |
|---|---|
| 교회 1 : 몸인 교회와 지역 모임 (2) | 2025.12.16 |
| 스데반의 변론 : 점진적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 지역모임 (1) | 2022.11.23 |
| 성령님의 사역과 교회의 순종 (0) | 2022.06.17 |
| < 19. 찬송(2) > (0) | 2021.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