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창세기 성경읽기(요약)진행 중

성경읽기 : 창세기 21장 22-34절

박이레 2025. 8. 20. 20:52

성경읽기 : 창세기 21장 22-34절(요약)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날을 지내었더라 (창21:22-34,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22절부터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는 내용이 나옵니다. 22-24절까지 서로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고 25절부터는 아미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에 대해서 맹세합니다.
오늘은 22-34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로와 서로의 후손에게 거짓없이 행하자고 맹세를 제안하고 아브라함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간증으로 드러났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우물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은 특별히 암양 새끼 7마리를 아비멜렉에게 주면서 아브라함이 우물판 증거를 삼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 우물은 그 땅의 소유권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세우고 그곳을 브엘세바로 합니다. 곧 언약의 땅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영생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단순히 우물을 지킬뿐 아니라 이를 하나님에 대한 예배로 연결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드리는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함을 교훈받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은 동일하게 이삭의 시대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들을 동일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동일한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20장에도 아비멜렉을 만나는데요. 20장의 아비멜렉과 21장의 아비멜렉이 동일인물이 아닌 같은 직책은 가진 사람으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간증으로 나타내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의 시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전에 이스마엘을 떠나보냈고요. 이것들은 좋은 테스트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맹세를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과의 맹세이기도 하지만 그 후손들과도 연관되어 있는 언약이고 맹세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안전과 이삭의 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야 하는것은 사람들과의 언약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같은 일을 이루시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아마도 긍정적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25절부터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책망합니다. 그 원인은 우물 때입니다. 우물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우물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지 않고 그가 다시 확보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지 않고 확보하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32절에서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습니다. 야곱도, 이삭도, 왕들의 시대에도 이 브엘세바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입니다. 이 브엘세바 밑이 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22장의 하나님의 시험까지 아브라함이 점점 나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볼수 있다고 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3절에 아비멜렉은 그가 아브라함에게 선대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명세합니다. 그런데 이 맹세의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방의 왕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또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라는 것은 어느 한 시대만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효력이 있는 맹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이렇게 요청한 것은 아브라함의 삶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맹세하겠다고 합니다.(24절) 그는 다른 조건을 걸지 않고 답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과 화평함으로 맹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것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이에 대해서 아비멜렉은 이 사실에 대해서 몰랐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말을 믿습니다. 늑탈이라는 단어의 뜻은 폭력적이고 고의적인 악의로 행한 일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언약을 세울 때에 이 잘못된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아브라함은 목축을 하였기에 우물은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우물에 대해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에 이는 크게 전쟁으로까지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대해서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합니다.
아비멜렉은 이 우물 사건에 대해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자기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그 능력의 한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있었을 때에 이 이방왕은 정직하게 답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회피하거나 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암양 새끼 일곱으로 우물 판 증거를 세우는데요. 이는 고대 중동에서 이러한 양들을 사용해서 많이들 맹세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문제가 있는 가운데 분쟁으로 키우지 않고 평화롭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2-34절까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맺는 언약이 나옵니다. 그리고 형제님들께서 교제해주신 대로 많은 교훈을 얻게 되는것 같습니다.
22절의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의 고백을 생각할 때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20장의 사건과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본 일이 큰 증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의 성도들과도 함께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23절을 보면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거짓말한, 한번의 실수가 아비멜렉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신뢰할수 있는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합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 성도는 어떠한 가운데서도 거짓되어서는 안되며 진실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맹세라는 단어는 파사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일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일곱번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일곱 증인을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곧, 일곱번 맹세라는 것으로 이보다 명확한 맹세는 없다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이같은 맹세를 아브라함에게 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비멜렉의 요청대로 맹세합니다. 그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합니다. 이는 다시는 연약에 빠지지 않겠다는 결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20장의 아브라함의 모습과 22장의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사랍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 지경에서 안전하게 지내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맹세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자비심이 생겨서가 아닙니다. 그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후대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아비멜렉은 상당히 지혜로운 사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마음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이 맹세한 지역의 이름이 브엘세바입니다. 아브라함은 앞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21장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장 같습니다.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태어났고,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22-34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아브라함이 우물을 파고 정착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