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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21장 14-21절

박이레 2025. 8. 13. 21:07

성경읽기 : 창세기 21장 14-21절(요약)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창21:14-21,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이삭이 태어났고 8절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했습니다. 그때 16살 정도 되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습니다. 그전에는 이스마엘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을 잘 순종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아들이 오자 이스마엘의 본성이 드러나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자들이 믿음의 자녀를 핍박하는 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이같은 일에서 벗어나는 솔루션은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약속의 자녀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라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말했다기 보다는 자기 아들을 생각하는 감정적으로 한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마침 하나님의 뜻에 맞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브라함에게 큰 근심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16년간 이스마엘을 키웠기에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을 무시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16:10, 개역한글)

그 말을 하갈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했든 하갈과 이스마엘의 일로 아브라함은 근심합니다. 또 아브라함은 17장에서 직접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찌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17:18-20, 개역한글)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로 인해서 근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종의 아들에 대한 약속을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브라함이 물과 떡을 주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냅니다. 아마도 물을 하갈이 이스마엘보다 더 섭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쓰러지고 하갈이 그것을 바라보며 울게 됩니다.
오늘은 14-21절까지 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아브라함은 다음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겠지만 그 일을 순종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물이 떨어져 이스마엘이 쓰러지고 하갈은 자식의 죽음을 그냥 볼수 없어 큰 소리로 웁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나타나십니다.
이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는 16세 정도 됩니다.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1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아무것도 할수 없는 아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갈이 아닌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마엘도 큰 민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약속의 자녀는 아니지만 그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아이라고 부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의 관점에서 하갈의 울움이 아니라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갈의 눈을 밝히셨다고 합니다. 이는 이미 샘이 있었지만 하갈이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갈이 절망 가운데 있어서 그 샘을 볼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마엘과 하갈을 보존할 방법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자녀는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것과는 다른 문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희가 이스마엘에 대해서 보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과 대조를 이루며 신약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인간적인 부분을 살필 때에 그에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마엘은 죽어서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함께 하시고 그에게도 복을 주시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에서가 헷 족속의 여인들이 이삭과 리브가를 기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취합니다. 그 딸의 이름의 뜻은 '용서'라는 뜻입니다. 이스마엘의 자녀가 이삭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도 동일하게 약속을 받을수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마음 가운데 근심이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되면 그것을 제쳐두고 단호하게 다음날 일찍 일어나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물 한가죽 부대와 떡을 줍니다. 그러나 이 물은 곧 다합니다. 사람이 주는 물은 이렇게 마시면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심을 생각하며 감사가 됩니다.(요 4장)

- 최재홍 형제님 : 14절에 떡과 물 한가죽부대를 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음식만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준 것은 12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그들의 안위를 모두 맡겼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갈은 16장에 도망했을 때에도, 그리고 21장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었다고 합니다. 떨기나무는 광야 가운데서 휴식처가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갈은 자기 아들이 죽을것으로 확신하기에 슬퍼합니다. 그녀는 16장에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무것도 할수 없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 집니다.
21장을 이스마엘을 율법으로 보고, 이삭을 은혜로 본다면 율법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보여주며,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함을 또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갈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을 외면하고 울고 있지만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심을 보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자녀고 이스마엘은 육신적인 생각으로 태어난 자녀입니다. 육신과 영을 봅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함께 갈수 없습니다. 육신을 좆는 사람과 영을 좆는 사람은 함께 동거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둘을 분리시키십니다. 하갈은 애굽을 향해서 갑니다. 육신의 사람은 육을 좇아 가며 영적인 사람은 영을 좇아 감을 생각하게 됩니다.
16장에서 이스마엘이 열두부족의 족장이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통곡합니다. 그녀는 믿음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합니다. 14절에서 조금의 물과 떡을 준 것은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작은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갈이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둔 것과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보며 방성대곡합니다. 이는 무기력한 어미의 마음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또 17절부터 20절까지 보면 "하나님이 ~~하시매"라는 구절이 계속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들을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지만 이제는 장성하여 바란 광야에 거할수 있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배필로써 하갈은 자기의 고향 애굽 여인을 취합니다.

Q.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이스마엘에 대해서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이렇게 이스마엘이라는 그 이름이 표현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8절에 "일어나 아이를 일으키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실수 있지만 하갈에게 하라고 시키십니다. 하갈이 자기 아들을 외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절망 가운데서 다시 믿음과 책임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로서의 일을 다시 감당할수 있게 세우십니다.
또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샘물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하갈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눈을 밝히셔서 그 샘물을 보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그곳이 광야든지, 어떠한 곳이든지, 그들은 안전한 것을 보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A. 이스마엘은 이미 장성한 사람입니다. 17살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못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장성해서 '아이'가 아니라 '그'가 됩니다. 이러한 구절들이 단서를 조금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저희가 여기서 보게 되는것은 사람이 준비한 것과 하나님이 준비한 것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준 것은 물 한가죽 부대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은 샘물이었습니다. 사람이 준비하는 것은 사람의 갈증을 영원히 해결할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갈증을 영원히 해갈해 주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지만 당장 하갈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들이 곧 죽을것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300m 정도 떨어져서 통곡합니다. 자기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의 소리를 들을수 없어서 멀리 떨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의 모든 고통의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삶에도 이렇게 저희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갈은 계집종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의 어미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까지 하나님은 선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활쏘는 자가 됩니다. 그는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 위에서 능력을 행사하는 자가 하나님은 되게 하십니다.

A. 김대현 형제님의 질문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에 답해 드리자면, 이스마엘은 21장 이후로 이스마엘이 아예 배제됩니다. 그래서 21장에서 이스마엘이 등장하지만 그의 이름이 앞서 생략되었다고 저는 보여집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22장 19절에 이삭이 아브라함과 함께 돌아오지만 이삭의 이름이 빠집니다. 그리고 이후 24장에서 이삭의 아내를 데리러 갈 때에 이삭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는 승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그 모습을 그림자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같이 이스마엘의 이름이 21장에서 언급되지 않고 22장에서 이스마엘이 등장하지 않는것은 우리의 육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함에 대한 그림자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