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 / 25년 6월 22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26:47-56, 개역한글)
이 동일한 내용일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에 따라서 기록된 정보들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26장만 볼것이 아니라 4개의 복음서를 다 보면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을 보면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내로라"하시고 그렇게 말하실 때에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다 엎드러 집니다. 이 모습을 보면 이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잡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을 기록한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기록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 사람이신 주님의 모습을 말하는 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주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실 "내로라" 했기 때문에 가룟유다가 나와서 주님께 입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2장을 보면 유다가 주님께 입맞출때 "네가 나를 파느냐?"라고 하시며 유다가 회개할 기회를 한번 더 주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주님께 입을 맞춥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49절)라고 하면서 입을 맞추는데요. 이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모습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섬기는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가룟 유다를 가증스럽다고 할수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배반의 절정을 가룟유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룟유다에게 주님께서는 '친구'라고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칼로 자릅니다. 누가복음 22장 49절에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라고 제자 중 하나가 물어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자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기적인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십니다.
그리고 검으로 흥한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잡히시지만 환난의 마지막 때에 사단 마귀를 오히려 잡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옥불에 넣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한 일로 베드로를 혼내십니다. 베드로의 한 일로 인해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방해될뻔 했다고 하십니다.(53절) 주님께서는 당장이라고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낼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천사를 부르지 않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26:54,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천사를 부르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지금까지 주님게 수종들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였지만, 주님은 천사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성취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의 생각이나 계획이 이뤄지기를 원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표준을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끝으로 마태복음에서는 볼수 없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순순히 잡히시는 모습으로 기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순히 순종하십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셨는가, 또 말씀이 이뤄지기를 얼마나 원하셨는가를 마가복음을 통해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대조가 되는것은 11 제자가 다 도망했습니다.(물론 요한과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뜰까지 따라갔지만) 주님의 말씀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서 다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낙담하지 않으시고 평정심을 가지고 담담하게 이 일을 감당하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하고 낙심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더 어려운 상태로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성취하기를 원하셨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내게 맡시긴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보호하시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시는가, 또 고난을 당할때에 이를 얼마나 담담히 받으시는가를 교훈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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