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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13장 11-15절

박이레 2024. 10. 13. 16:22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13장 11-15절(요약)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13:11-15,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이 나오는데요. 둘중 어느쪽이 적그리스도인지에 대해서 여러 교제가 있었는데요. 이에 이어서 계속 교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1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옵니다. 이 짐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1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1절에 또 다른 짐승이 나옵니다. 이 짐승은 첫번째 나온 짐승과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성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첫번째 짐승도, 두번째 짐승도 용이라는 동일한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번째 짐승은 새끼양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해해 보입니다. 이 짐승은 자기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 짐승의 교활함과 본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단의 권세에 절하게 됩니다.
두번째 짐승은 첫번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첫번째 짐승을 신격화하고 사람들에게 그를 숭배하게 합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2:9,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 13장에서 경건한 삼위일체를 모방하는 거짓된 삼위일체를 보는것 같습니다. 큰 용인 사단은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그가 땅으로 내어쫓깁니다. 그가 아버지 하나님을 모방했다면, 첫번째 짐승은 그리스도를, 두번째 짐승은 성령님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단의 미혹에 대해서 앞으로 여러번 교제하게 될 것인데요. 사단의 권세가 정점에 도달하면 이땅의 사람들이 진실을 믿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할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은혜의 때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환난을 지나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두번째 짐승은 어린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용과같이 말합니다. 이 두번째 짐승은 첫번째 짐승을 경배하게 합니다. 또 우상에게 생기를 줍니다. 그러나 생기는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 것으로서, 우상에 생기가 있는것은 사단의 어떠한 속임수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도 사단에게 경배하지 않는 남은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의 육체는 죽일지언정 영혼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을 모두 멸하실수 있는 분입니다.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적그리스도는 안티크라이스트로 그리스도를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문자 그대로 의미를 취하면 그리스도를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왕을 반대하는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첫번째 짐승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짐승은 뿔이 열개이고, 뿔에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짐승은 제사장과 선지자 측면의 적그리스도는 두번째 짐승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가 사람들로 첫번째 짐승에게 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짐승은 주님처럼 마치 죽은것 처럼 보였지만 살아난것같은 모방을 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주류이긴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다각도로 생각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첫번째 짐승이든, 두번째 짐승이든, 굉장히 훌륭한 인물로 보여질것 같습니다. 많은 왕들 가운데 으뜸되는 자가 첫번째 짐승이며, 두번째 짐승은 유대인으로서 겸손해 보이며 말을 아주 유려하게 잘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은 다 짐승이며 야만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이 모든일을 꾸미는것 같지만 이 모든일을 제어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해진 마흔두달동안 정해진 권세만큼만 그들은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13절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큰 이적을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저희는 엘리야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 큰 대조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큰 이적과 기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충동적이고 가시적인 것을 따라가는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이런것들을 생각하면서 불꽃놀이, 드론놀이, 워터쇼같은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몰고가는 것이 마지막 때의 전조증상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가지를 더 첨언 드리면, 삼위일체를 모방하고 있음을 윤철 형제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짐승을 주님으로, 두번째 짐승을 성령님으로, 용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요.
두번째는 첫번째 짐승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두번째 짐승을 예수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배후에 있는 용을 성령님으로 배치시킵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요. 계시록에서 성령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에 이러한 대치를 정확하게 매치해서 봐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다 매치가 안된다 할지라도, 그들이 모방하는 점이 있다 생각할수는 있지만, 그것을 대치시켜서 정확하게 대입하는것이 13장의 주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이어서 15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1-14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가 보는것은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이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아주 일사분란하게 자기들끼리 연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짐승을 세워주는 것으로 두번째 짐승이 역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연합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이 옳은 분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5:43, 개역한글)

적그리스도가 역사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리게 하는 일로 사람들이 자기를 쫓게 합니다.

또 15절에 그들이 하는 일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을 다 죽이면서까지 자기들을 좇게 합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서 말하게 하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앞서 교제해 주셨습니다.
요즘 AI가 발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많은 사람들이 AI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사람을 앞서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에 주님의 오심이 너무나 가까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7절에서 경배하는 것과, 경제적인 것을 가지고 둘째 짐승이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이름이 있는데 주님께서 이름을 적지 않으셨습니다.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이름을 적지 않은것은 이름을 적기 싫어하셨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666이라고 했을때에, 생명책에 녹명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이 있고, 버가모 교회에게 흰돌에 새긴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고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이름이 있음에도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시고 숫자로만 적으셨습니다. 저는 이 숫자가 죄수번호라고 느껴집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지옥에 영원히 멸망시키실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남자 성인만 5천명을 먹이십니다. 그랬을때 사람들이 주님을 왕삼으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6,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로마서에서 말씀하시는데요. 여기 짐승이 표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과 비슷한 외향으로 기적들을 행합니다.
표적을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게 절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는 요한복음 6장에 있는 것처럼, 경제적인 배부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원리를 짐승은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표적을 말하지만 그 내면에는 물질적인것, 경제적인 것들로 넘어오게 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용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합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신에게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배후에 용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용에 대해서 공부했듯이 이 용은 창세기 3장에 나왔듯이 뱀입니다.
뱀은 종신토록 땅을 기면서 흙을 먹는 저주를 받습니다. 용의 하수인인 짐승 둘이 우상을 만들고 그 배후에 있는 용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뱀이 종신토록 흙을 먹는 일을(사람은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사단이 하고 있습니다. 용이 사람들을 먹고 있습니다.

정형모 형제님이 하신 교제 중에 666이라는 숫자중에 라틴어에서 숫자를 얘기할 때에 1,5,10,50,100에 그러한 숫자들이 대입이 되는데요 1+5, 10+50, 100+500을 모두 더하면 666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짐승이 로마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지만, 666에 대해서 많은 견해가 있는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주목하고 싶은것은 이 수, 표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이 표를 받는데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는 조건과 같습니다. 짐승은 이런 모든 원리들을 짐승은 다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환난의 때에 짐승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 구원받지 않으면 7년 대환난 때에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구원받기는 불가능하다는 예전의 교제 내용들이 더 확실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