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2일 화요일
강사 : 히긴스 형제님
< 베드로전서 4장 >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벧전4:1-19,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을 통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느부분에 있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베드로전서 1장에서 우리가 소유한 구원에 대해서 말씀해 드렸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인 진보가 있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순종의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말씀 드렸습니다. 4장에서는 우리의 섬김과 고난을 전망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4장을 볼때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가지 다른 각도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처음 국면에서는 싸움에 직면한 군사들로 제시 됩니다.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으로서 제시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난을 받는 자로 제시 됩니다. 군인들이며 종이며 고난을 받는 자 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살펴볼때에 베드로 자신의 삶이 이 장에 녹아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베드로는 이 서신을 받는 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을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셨을때에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베드로는 말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 12절에서 베드로는 이 고난이 그리스도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며 또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다니엘서를 상기시켜 줍니다. 저는 첫시간에 이 베드로서가 바벨론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바벨론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베드로는 생각하며 이 서신서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 5장에서 거기에 큰 연회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니엘 3장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시험을 통과한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이 시험을 통과할때,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를 읽게 될때 우리는 다니엘서를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우리가 도전에 직면했을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7절에서는 <근신하다> <정신을 차리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죄를 선택하는 장소입니다. 7절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우리가 고난을 받을때 이러한 마음으로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여러분이 무엇을 행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유혹이 왔을때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유용성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전을 줍니다.
그리고 이 장은 또한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는 우리의 지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기전의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것은 구원받고 난후 이후의 삶에서 무엇을 선택할것인가 입니다.
4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조물주>라고 언급합니다.
다섯번에 걸쳐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조물주'라고 말씀하신적이 다섯번 있으셨습니다. 첫번째는 전도서 12장입니다. <너의 젊을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그리고 자신을 가리켜 조물주라고 말씀하신 다섯번째 구절이 이 베드로전서 4장 19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벧전4:19, 개역한글)
사도 베드로는 왜 여기서 하나님을 그를 미쁘신 조물주라고 하였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다음시간 베드로전서 5장을 이해하는데 다뤄질 개요가 됩니다. 5장에서는 또 하나님에 대한 다른 이름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5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그 이름은 성경에 단 한번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제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전체에 걸쳐서 각장에서 항상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봅니다.
이제 4장에서는 고난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들의 본으로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도움을 받는 다른 성도들의 섬김을 주십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장래에 있는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이 짧은 장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많은 내용입니다.
이제 차례대로 이 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7-11절까는 다른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12-19절까지는 장래에 오는 세상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아주 중요하고 놀라운 주제 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우리삶에서 모든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차 오는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격려가 되는 동기가 됩니다.
1-6절을 보면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6번째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때에 고난을 받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와있는 고난은 갈보리에서 받은 고난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할때 항상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땅에 계실때에 고난받으신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사단이 주님께 그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했던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시지 않고 오히려 굶주리시는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분의 삶 전체에 거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기에 그분의 삶은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갈보리에서 그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제 그와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서 잠시 다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서 성경에서 세번에 거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으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성경을 읽으시면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입니다.
이제 빌립보서 2장에서 제시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참으로 종과같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베드로전서와 연결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또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받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을때에 이러한 변화가 기대됩니다.
이제 그는 죄를 그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좆아 그의 남은 생애를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순간에 이 선택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남은 생애를 살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뜻대로 남은 생애를 살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중에 어느 누구도 우리의 남은 생애가 어느정도 되는지 모릅니다.
이 장은 시간과 관련된 것을 여러곳에서 말씀합니다.
지난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때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가깝다라고 말씀합니다. 13절에서는 미래의 영광의 때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염두해두며 이 현재를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삶을 끊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현재를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리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 살라고 압박을 주는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 학교 동료들과 똑같이 살것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옷을 입는 것처럼 입어야 할것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말해야 할것 같은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대로 그대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 가운데서 속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싶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다니엘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단지 네명의 소년들만 왕의 식사를 거절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동일하게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잡혀 왔습니다.
다니엘과 세명의 친구들이 느꼈을 압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생각하기에 '저들은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가?'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왜 스스로를 어렵게 하고 다른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을 주는가?" 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다른사람과 동일하게 행해야 한다는 압박 가운데서도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분명하게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는데 오직 세명만이 굳게 서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것을 따라하기를 강요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이 학교안에서 다른사람들과 다르게 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다른사람들과 다르게 서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이웃들들과는 다른 여러분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우리로 고난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 기록된 것처럼 '저들은 이상히 여겨'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상히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비방하도록 만듭니다. 우리에게 조롱과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록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충성스럽게 행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고난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렸을때 구원받았던지, 나이가 많아서 구원받았든지간에 구원받은 순간 그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때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다른 성경 말씀들을 찾아보게 될때에 남은 삶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서는 우리 삶에 있어서 한가지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라>
우리는 모든 도덕적인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형제님들과 자매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성적인 범죄가 만연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적인것을 이용해서 자동차부터 치약까지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인 순결함을 아름답다고 보십니다.
젊은 형제 자매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신다면 성적인, 도덕적인 정결함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장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사도바울은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것이 여러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냥 불평하는 나이많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같이 우리삶에 감사를 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다양하고 자세한것을 성경에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우리의 삶이 거룩함으로 특징 지어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장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여러가지 댓가를 치뤄야 할것입니다.
이제 어려운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4:6, 개역한글)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것은 그들이 죽은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죽은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교해 죽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그들이 살아있을때 전파된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전파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서 그들은 순교하는 댓가를 치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법대로 심판합니다. 그들의 육제를 사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하나님과 살며 하나님과 계속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여섯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가운데 고난을 받을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순교하게끔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가운데 있는 분 중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해서 순교하는 일은 매우 드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핍박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핍박을 받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의 두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은 이스마엘과 이삭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육체로 난 자가 영으로 난 자를 핍박하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기록합니다. 구약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합니까?
이삭이 젖을 뗄때가 됬을때에 아브라함은 큰 연회를 엽니다. 아브라함이 큰 연회를 열였을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그가 그 동생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육체적으로 어떠한 해를 가한것이 아닙니다. 그가 한것은 단지 이삭을 희롱한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두고 성령께서는 갈라디아서에서 핍박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우리가 믿는자라고 조롱을 당항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핍박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는 일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조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핍박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는 믿는 믿음을 작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서 조롱과 경멸을 견디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것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입니다.
7-11절까지는 이제 다른사람의 복지를 위해서 사는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은 네가지의 아주 큰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절정,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릴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기도할것을 말씀합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이 우리가 다른사람을 위해서 사는 삶에서 제일먼저 제시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때가 멀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이 모든것들이 하나님께 달렸고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순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해변가에 거의 다 온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것은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한 극단으로 치우치기 쉬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로 행하던지 아니면 방임주의로 행하던지 극단으로 갑니다.
근신하다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다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규칙과 그런것들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더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엇인가를 빼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 생각을 균형잡히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각 가운데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에 직면했을때, 어려움에 닥쳤을때에 균형잡힌 생각을 유지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어떤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의 정신은 균형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 이것은 우리의 정신이 어느 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것들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어느 한 방향으로 끌고가 버립니다.
하루의 어떤 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각이 다 함몰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균형잡혀 있어야 하며, 분명하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문맥을 보게 될때, 기도하는것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다른성도들을 위한 기도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것이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뜨거운 불과같은 빨갛게 달구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입니다.
분명히 이 죄라는 것은 지역모임안에서 공개적으로 알아야 하고 처리되어야 하는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믿지 자들이 연약한 가운데서 행한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한 분명한 예는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후에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막가운데서 벌거벗은채로 있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샘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런데 함은 그 아버지의 벌거벗은것을 다 얘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샘과 야벳은 그 아버지의 벌거벗은것을 보지 않고 뒤로 들어와서 아버지를 덮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다른사람의 범죄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사람의 죄와 실수에 대해서 알릴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덮는 사랑이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며 실수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그러한 가운데서 그러한것을 보완해 줍니다.
그리고 이 사랑에 대하여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핍박과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며 사랑으로 대접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탕과 연락과는 다릅니다. 성도들에게 그러한 연회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접대는 특별히 핍박을 받고 있어 어디로 갈곳이 없는 성도들에게 할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 서로 접대한다는 표현을 볼때, 그것은 한 모임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접대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으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교제의 끈을 더욱 돈독히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짐들이 다른성도들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가벼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로 그러한 역할들을 자매들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은 지역모임 안에서 인정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는 섬김 입니다.
아마도 이 가운데 갓 결혼한 부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결혼하기를 계획하고 있는 성도님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러한 분들에게 이 접대가 여러분의 가정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나는 드릴것이 많이 없는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것을 드리면 됩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주님께 드린다면 이것과 관련된 비결을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돌려주실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성도님들께 접대하는 것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초대하지 않는 분들을 먼저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은 나이드신 성도님들을 초대해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나이많은 성도님들이 그들의 삶가운데서 주님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줄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서로 접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격려하는 유용한 것입니다. 이제 다른사람들을 섬기는 것들을 말씀합니다.
이제 10절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 합니다.
영적인 은사에 대해서 신약성경에서는 네군데에서 말씀합니다. 그중에 두군데는 4장에 있고 그중에 두군데는 12장에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께서 그 뜻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은사를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은사와 관련되어 삼위의 모든 하나님께서 지역모임의 축복과 다른사람을 섬기는 것에 관심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은사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 근원이 어디있는지를 생각할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이나 경쟁심이 즉시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은사 사용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각 부분에서 누가 그것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각각 은사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들도 지역모임을 섬기는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어린 형제님들이라고 할찌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에 따라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 4장에서 베드로가 기록한 것을 보게 될때 참으로 격려가 됩니다.
우리는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서로 봉사하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내 책임의 범위가 어디인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대로 봉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다른사람이 받은 은사에 대해서 행할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어떤 형제님들에 대해서 그분들이 가진 은사에 대해서 굉장히 좋아하고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서 책임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우리는 서로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서로 봉사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각각 받은 이 은사는 다른 성도들의 복지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잠시 멈춰서 이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좀 길게 다루어야 할 주제 입니다.
짧게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초 자연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때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 의해서 그 은사가 개발됩니다. 그리고 다른사람들의 축복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연적인 재능은 은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것을 염두해 두시고 우리에게 자연적인 재능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 어떤 형제 자매님들은 아주 놀라는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이 구원받을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기 위하여 그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자연적인 재능은 우리가 구원받을때에 하나님께서 주실 성령의 은사를 염두해 두고 미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받은대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역모임 안에서의 유용성은 여러분이 다른사람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맏은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청지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손에 무엇인가를 맏겨 놓으셨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맏기신 것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것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행했는지 하나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직고하게 될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나의 섬김의 동기에 대해서 주님께서 평가하실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내가 지역모임을 세우는데 있어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 주님께서 평가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짚과 풀과 나무로 된것은 다 불살라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2장에서는 내가 다른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두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내가 어떻게 행했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이 모든것들은 이 청지기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맏은자에게 구할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행했는지를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많은 격려가 됩니다. 이 가운데 있는 자매님들은 '내가 할수 있는 일이 굉장히 적은데..' 라고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매님들에게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책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내가 할수 있는 일이 굉장히 작다라고 느끼며 내가 하는 일이 이웃에게 접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이,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큰 상을 받을것이라고 생각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은사에 대해서 상급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행했는지에 대해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자매님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완수하신다면 전도자들에게 주신 전도자의 일을 완수하는 상과 같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의 비유를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다른 달란트를 받았지만 같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자나, 두 달란트 받은자나, 그들이 받은 모든 능력을 사용해서 그 일을 충성스럽게 행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사람에게 같은 칭찬을 하십니다.
<너희가 작은일에 충성하였으니 더 큰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그들은 모두 같은 상급을 받은 것입니다.
이 가운데 젊은 분이나 나이드신 분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것을 충성스럽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나이드신 성도님들이 하실수 있는 한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어떤 분들도 저만큼 나이들어보이지 않지만 여러분들도 그 나이가 될것입니다. 그리고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이 일을 할수 있습니다.
다른사람을 위로하는 일은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 필요한 일입니다.
나이드신 성도님들께서 젊은 성도님들을 위로해 주실수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아주 좋은 예가 구약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은 나오미와 그의 며느리 룻의 이야기 입니다.
나오미가 룻을 격려합니다.
나오미는 결국에 룻을 격려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룻은 보아스와 결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으로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모든 여자들이 그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룻에게 한 아이가 났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나오미에게서 났다 라고 말합니다. 나오미가 그 아이를 낳게 된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격려와 교훈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결혼이 이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그 열매에 대해서 감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같이 젊은 성도님들을 잘 격려해주실수 있습니다. 참으로 젊은 성도님들이 격려를 받고 놀랍게 섬길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여러분의 격려로 말미암아 하게되는 일에대해 감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예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손을 굳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둔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를 격려한 또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있을때에 그에게 떡을 가져온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격려의 사역은 모든성도님들이 할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는 삶에 대해서는 어떠한 능력과 위치에 있든지 할수 있는 사역임을 보게 됩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 은사에 대해서 이렇게 측량할것을 말합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준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데 있어서 이 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서 말씀 드리는 것처럼 이 자리에 서서 말하는것은 굉장히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외로운 장소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자리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봉사해야 할것을 말씀 듣고 있습니다.
또한 접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한서신서에서 사도는 젊은 가이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이오에게 그를 방문하는 전도자를 접대하고 그를 섬길것을 말씀 합니다.
그리고 가이오에게 말하기를 그가 어떠한 것을 할때에 하나님께서 그와같이 하실것을 말씀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러한 일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봉사를 하던지간에 그 기준은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대로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그 송용으로 이 부분을 마치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에게 이것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에 대해서 지역모임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은사로 주셨고 무엇으로 섬기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때에 그들을 전도자로 삼으실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은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것은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순복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가 침례를 받았는가, 내가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모이고 있는가, 내가 다른 잘못된 친구와 교제하고 있다면 그것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내가 어떻게 주님을 닮아가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그럼 내가 네가 되길 원하는 것을 되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간다면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일을 해가는 가운데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민감하게 보고 있어야 합니다. 이 지역모임 안에서 내가 어떠한 도움을 줄수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필요가 일어날때에 그것을 도울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것을 하겠다고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러한 작은 걸음을 이용해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인 장차 오는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장차오실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을 누릴 능력이 더욱 커져 갑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믿는자의 고난의 한 측면을 알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가 기쁨을 누리게 할수 있는 능력을 더욱 크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그 고통이 없었을때 얼마나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까? 라고 물어보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 육체가 아주 건강해서 고통이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다가 그것이 완쾌되면 그것의 기쁨은 정말로 큰 것입니다.
그와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인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올때에 누리는 기쁨이 더욱 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나타나실때에, 주님의 영광이 온세상에 밝히 드러날때에 우리는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은 1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욕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핍박하고 욕을 할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날때에 부끄러워 하지 말것을 말씀 합니다.
그리고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우리위에 계십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 가운데서 있었던 세명의 친구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분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증거를 위한 고난 가운데 있을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부갓네살은 본것입니다.
이제 그는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무슨일이 일어날지 미리 말한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때가 되었나니>
18절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이라는 것은, 우리가 겨우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부르기 위한 모든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어찌 서리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받고있는 고난은 잠시이며, 우리가 앞두고 있는 영광은 매우 크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불시험을 겪고있을때에 이와같이 바르게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이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제 자신도 이 불시험을 원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 불시험에 대해서 가르치는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는것은 완전히 다른것입니다. 하지만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다면 이 모든것은 다 제자리에 놓여지게 됩니다.
이제 그로 인해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으며 그것을 참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의 처음부분에서 이 고난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맏겨진 고난입니다. 이것은 2 장에서 우리에게 메아리처럼 말해주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조물주께 부탁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다섯번에 걸친 '조물주'에 대해서 찾아보게 될때에 전도서 12장에서는 우리의 모든 삶의 근원이신 그분께 모든것을 합당하게 드려야 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에서는 이스라엘로 말해지고 있는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잊어버리셨는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귀있는 내가 듣지 않겠느냐, 모든것을 창조한 내가 듣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복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주권자이신 것입니다.
어떤것도 하나님앞에 가려지지 않고 어떤것도 하나님 앞에 잊어버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샤야 43장에서 다시한번 조물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43장에서는 그 나라의 구원자로서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피조물을 창조자보다 더 숭배하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정죄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에서는 고난을 받는 자들이 조물주 안에서 안정과 평화를 누릴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을 창조하신 그분께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을 부탁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난을 받을 것이며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받을때에 이 모든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이 모든 고난을 이길 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각자가 우리 삶에서 은혜를 구하며 올바른 선택을 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어떠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보다 더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에는 더욱 큰 댓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왜 인생 가운데서 구원하셨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에 앞에서 받을 영원한 상급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남은때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살도록 그렇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들에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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