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기억하라 > 존 쇼트 형제님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단지 이제 짧은 찬송이지만 이 찬송으로 말미암아 저는 여러 번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가 두려움입니다. 바로 그 두려움을 사용해서 믿음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 동안 그렇게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까지 계속 그때까지 계속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북한에 억류되었을 때 저는 매일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여기까지 참으로 기억하기 쉽습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아무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이 노래를 기억하면서 부를 수 있습니다. 억류되어 있는 가운데에 이 찬송을 부르면서 저는 주님을 바라보고 제가 두려움에 빠지는 그 절망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이러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몇 마디 말로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영어를 말할 수 있고, 또 중국어를 말할 수 있고, 홍콩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어는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북한에 억류되었을 때 이제 북한 군인들이 이제 저를 겁 주기 위해서 한국어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한국어를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냥 그 사람이 겁 주는 것이 그냥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뿐인 것입니다. 통역이 제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통역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서 또 이제 저를 겁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데려와서 계속 겁 주어 없습니다.
이 중국의 한 종은, 주님의 종은, 세 가지 원리에 대해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 세 가지 원리를 배웠습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할 것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그리고 두 번째 원리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신뢰한다. 나는 당신의 말, 당신의 그 부패함, 그런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한다. 세 번째 원리는 나는 당신이 당신의 정부가 나한테 주는 뭔가 이득을 원치 않는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만 바란다.
그들은 저희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이제 마치 중풍에 걸린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승리와 생명을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참된 승리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각각 선교사로 행해야 됩니다. 점심시간 이후에 이것에 대해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가 fon이라는 영어 단어인데요. 그것은 마치 핵융합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다시 새로 거듭나는 그런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임무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임무를 할 수 있도록 직무를 맡기는 위임을 하십니다.
우리는 오전에 우리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주 일 첫날 이렇게 모여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 더 그 만찬 예배를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사실상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 수가 한 번 줄어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때까지만 이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구절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11장 23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고전 11:23).
그래서 사도는 다시 한 번 이 놀라운 비밀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 12가지 비밀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숙제로 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에 방문했을 때 여러분이 이 숙제를 잘했는지 한번 물어보면서 확인할 것입니다. 이 12가지 비밀이 무엇인가? 여기 영어로 돼 있어서 죄송합니다마는 이게 한국어로 드렸어야 되는데요.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이것은 구약에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 드러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이 비밀들은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날 이것이 여러분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11장 23절에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는 주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이 만찬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 11:24).
여기서 우리 말처럼 이제 "떼어"라고 되어 있는데요. 영어에는 이제 '브로큰'이라고 나누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맞지 않고 우리 말처럼 "떼어 가라사대"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떡을 떼지만, 주님의 몸이, 주님의 뼈가 부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양쪽에 두 강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그것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강도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들이 더 이상 숨 쉬어서 지지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빨리 죽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다리 뼈를 부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미 주님의 때에 숨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강도의 다리 뼈를 부러뜨렸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 지지하지 못하고 폐가 위축돼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25절에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것은 포도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담는 "잔"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주의 뉴 기니 지역에서는 이제 포도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는 이 포도주 대신 코코넛 밀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물 자체보다는 성경에서는 그것을 담고 있는 이 '잔'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이제 출애굽기 12장을 가겠습니다. 이 장에서 두 구절을 특별히 주목해서 보겠습니다.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2).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제 이 날은 유월절이 됩니다. 각 가정별로 양을 잡아서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이제 그 안에서 그들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분명히 가장 중요한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우리 구속의 놀라운 모형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그들은 구속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들은 그 구속의 노래를 애굽에서는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홍해 이제 저쪽 편에 자신들의 대적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나서 그리고 구속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1-2).
그래서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그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과거의 것은 잊어버리고 이제 여기서부터가 너희들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것이 바로 그 시작의 시작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가 기억해야 된다. 그런데 그것은 이제 단지 절반만, 제가 말씀드릴 게 이제 그 앞에 해야 될 일을 위한 능력이 또한 필요합니다.
이제 그들은 불에 구운 양을 먹고 이제 앞에 그들에게 펼쳐진 일을 할 힘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양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멸망하게 하는 사자가 그 애굽의 집을 다닐 때에 그들은 그 피 아래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구원받았습니까? 왜냐하면 그 형벌이 그 죽음이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양을 잡아서 그 양의 피를 그들의 문에 발랐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힘이 없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그리고 그분은 이제 하늘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구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이, 그분의 그 부활의 생명이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장 2절에서 "그리고 바로 이 날이 너희의 시작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과 10절에서는 "우리의 힘을 위해서 이것을 먹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1절에서 그것을 어떻게 먹을지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여러분은 이후에 이 역사를 모두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로 이 날을 기억하라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날은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절반만 말씀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유해야 되는 그 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구속해야 됩니다. 그들은 기억해야 되는 날이 있고 소유해야 되는 땅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사막 그 광야를 지나서 가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갈 때에 그들이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을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왜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말했습니까? 제가 사실 이 3가지 모두를 다 말씀드릴 시간은 없습니다마는 그 광야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저는 여러분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뭘 말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를 죽게 하느냐?"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그들은 김치를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애굽에서 노예되었을 때의 생활을 기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땅을 아직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소유해야 하는 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직 몰랐습니다. 그들이 소유해야 하는 그 땅의 그 축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신으로 들어가야 되는 그 땅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찬송가의 내용과 성경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됩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 그것을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은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기업을 상속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나는 이미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가 속한 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그 교회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고 우리는 그 안의 지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될 날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기억해야 되는 날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가 점심식사 후에 이것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회심했을 때, 여러분이 믿었을 때, 여러분은 이 여러분의 시작의 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그 날들은 우리가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은 날은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 우리에 대해서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인생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되는 날이 있고 소유해야 되는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애굽 땅에서 나와서 그리스도를, 그 가나안을, 그 소유를 누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그들은 기억해야 되는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7장 38절입니다.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행 7:38).
참으로 그 광야 가운데서 이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애굽과 그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시아에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많은 친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광야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 그들이 말하는 것은, 여전히 광야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했었던 것을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받은 그 기업을 누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아직 교회가 머물러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그것은 실망스러운 상태입니다. 또한 광야 상태에 있는 그 교회에서 젊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볼 때 그건 참으로 슬픈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성경을 읽습니다. 그들은 매일과 같이 만나를 이제 모읍니다. 여기 기록된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십니다. 그들은 이제 이러한 만나를 매일같이 모읍니다. 그런데 제가 놀라게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놀라운 만나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백성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매일처럼 그 만나를 내리시고 그들은 만나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없게 여기고 그냥 밟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만나를 통해서 그들의 양식을 계속 얻고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만나에 대해서 그것은 마치 과자 같은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나를 통해서 그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루해, 매일 성경만 읽으라고 하고, 매일 만나 만나를 거두라고 말하고, 지루해서 못하겠다. 우리 부모는 너무나 참 따분한 사람이야." 참 그것은 광야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그 약속의 땅에 그 유업을 아직 온전히 누리지 못한 부모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그 약속의 땅에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냥 따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따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참으로 성경적인 그 토대 위에 이 모임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만으로 우리는 이 지역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모이는 것은 그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이 성도들을 우리를 함께 모이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굉장히 주의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따분하게 말을 한다면, 우리가 주님의 약속한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내 자신이 그것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가 서로 균형을 맞아야 됩니다. 이 객관적인 진리와 내가 그것을 누리고 있는 것이 균형이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분의 객관적인 진리 그분을 우리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내 자신이 그것을 주관적으로 누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이것은 어떤 순복음파 사람들이 광적으로 막 이렇게 흥분해가지고 하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객관적인 진리이며 그리고 그것이 내 주관적인 생명이 돼야 됩니다. 우리는 모임에서 참으로 훌륭한 그 진리들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단지 그냥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사단이 그렇게 이용했던 것입니다. "너는 그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어야 된다. 그래야지 너가 지식을 아주 잘 가질 수 있다. "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 나무이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광야에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즐겁지 않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40년 동안은 광야를 배회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들이 복된 약속의 땅에서 누려야 되는 그 복된 하루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그날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려야 되는, 여러분이 누려야 되는 그 약속의 땅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 땅의 모든 놀라운 자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그 놀라운 축복을 우리가 누리지 못하도록 그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얼마나 놀랍게 이것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구절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매주 이 구절을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내가 이제 사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는 그 육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몸은 다른 단어입니다. 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17장을 우리가 읽을 때마다 감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26절에 이 아름다운 기도는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에게 알게 하였고 그리고 또 알게 하리니 이를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24절에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갈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는 그가 살아있을 때에 주님을 믿고 이제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대적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그들이 하늘나라 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24절입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있는 곳에 그들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믿는 자들이 한나라에 가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믿는 자 안에 있습니다.
참우리가 해야 되는 시작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저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애굽에서 그 어린 자녀는 부모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아빠 왜 우리가 노예죠?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왜 여기서 노예입니까?" 그 애굽에 있는 부모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냥 조용히 해.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일해. 그게 우리는 운명이야. 우리는 노예로 태어났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어린 자녀들에 대해서 참 우리 마음이 슬프고 참 마음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세상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 노예된 상황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광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도 상황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우리는 약속의 땅을 들었는데, 왜 지금 우리는 광야에서 이 따분한 만나만 먹고 있는 것입니까? 광야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약속하신 최종적인 그 정착지가 아닙니다. 신명기에 보면 우리가 왜 광야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통과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있는 상황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 광야에 있는 상황도, 그 광야에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는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들도 믿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오직 그리스도를 누리는 자들만, 그 약속의 땅의 기억을 누리고 있는 자들만 만족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모세가 이제 그 광야의 약속의 땅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너네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는지를 기억하라." 그 광야 교회에 있을 때에 너희들은 그냥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했다.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는 너희들이 너희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너희 생각하기에 이것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라고 하는 대로 행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헌신된, 그리고 확신한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만 따르며 그 가운데서 온전히 만족했던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데요. 우리는 이제 그 비밀에 대해서 한 가지 한 가지 다룰 때 아마도 여섯 집회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이 바이러스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 우리는 이제 여섯 집회의 날을 준비해서 그 비밀에 대해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여러분 졸지 않고 잘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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