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

박이레 2024. 3. 3. 13:25

< 덕언 :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 > 24년 3월 3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5-17, 개역한글)

여기서 '세상'이라는 단어가 이 짧은 말씀속에 6번이나 나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있고, 또 하나는 마귀의 통제를 받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6번이나 나온 세상은 마귀의 통제를 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마귀의 통제를 받고 살았습니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2-3, 개역한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그 같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5, 개역한글)

이는 그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대상이 바뀌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대한 대적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4:4, 개역한글)

우리가 마귀의 체계를 다시 좇아간다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아주 참담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고 하나님과의 평안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6, 개역한글)

먼저 정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욕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육체의 정욕이 아닙니다. 정욕은 마귀를 좇아가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악한 본성입니다. 마귀는 이 정욕을 통해서 사람을 통제하고 통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마귀가 우리의 정욕을 통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사랑하면 마귀를 좇아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경건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좇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해서 항상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교만을 불러옵니다. 내가 높아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높아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삶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은 버는 것으로 나타나는 악한 결과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육신의 정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아닌 안목의 눈으로 본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기의 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선택했을때 그는 실패했습니다. 또 다윗도 실패했습니다. 마음이 한가하니까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다가 벌거벗은 밧세바를 봤습니다. 그가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면 그렇게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육으로 보았기에 실패한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이용해서 그러한 일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우리를 범죄로 빠뜨리는 것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서 믿음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기 쉽게 됩니다. 믿음으로 행한 가장 본이 되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는 수많은 유혹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모든것을 거절했습니다.
세번째로 이생의 자랑이 있습니다. 그는 나는 높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없는 것을 있는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철저히 경계할 것을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세상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좇아 온 것임을 말씀합니다.
세상을 좇는다고 하는것은 빛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둠으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선을 버려두고 악으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금해야 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7, 개역한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결과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좇아간다면 그것은 허무하게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시103:15-16, 개역한글)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성도가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육신것을 좇아 살아가는지, 아니면 영적인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지 살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