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평강의 하나님 / 23년 9월 10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6:19-24, 개역한글)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감히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징계를 내린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심하라고 하면서 여호와 샬롬을 깨닫게 합니다.
저는 오늘 샬롬의 하나님을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샬롬은 하나님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샬롬은 평강, 평화입니다. 또 더 나가서는 안식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와같이 샬롬을 누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 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자신의 인격과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누구도 누릴수 없는 평강을 누리시는 분입니다. 그 평강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29:10-11, 개역한글)
하나님은 기본적인 측면에서 그 목적이 재앙을 내리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평강의 하나님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사9:6, 개역한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이 땅에 하나님만이 누리는 평강을 누리게 하시기를 원하심을 보게 됩니다.
샬롬이라는 의미 속에는 가장 두드러지는 속죄와 화목이라는 뜻이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외에 정의, 질서, 영생이 샬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평안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대적관계를 가져서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습니다. 이 관계가 화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불의 가운데 평강이 없습니다.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정의를 구현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무질서 속에서 평강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한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와같은 것들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눅1:77-79, 개역한글)
이것이 주님께서 인자로 이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평강입니다. 우리가 모든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평안이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19, 개역한글)
주님은 그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참으로 누구도 빼앗아 갈수 없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 평강은 주님 나라가면 온전하겠지만 이 땅에서도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죄사함이 먼저 필요합니다. 죄 있는 자가 평안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속죄했습니다. 원수에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로 가까워졌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엡2:13, 개역한글)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3-18, 개역한글)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무시로 하나님 앞에 나갈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도 하고 그분의 은혜속에서 살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평강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이 평강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5:1, 개역한글)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합니다. 이 화평, 평강을 누리는 것은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평안한 상태에서 생활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었지만 늘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그 삶에서 열매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26:3, 개역한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믿음이 견고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만치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누리는 평강이 다릅니다. 주님을 확고히 의뢰하는 사람은 평강을 누릴수 있습니다.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3:1-2, 개역한글)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말씀을 잊지말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평강을 누리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금방 평안이 깨져 버립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평강을 누립니다.
'대전 중구 모임(요약글) > 덕언 말씀(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언 : 풍성함 (1) | 2023.10.08 |
---|---|
덕언 : 양심 (1) | 2023.10.01 |
덕언 :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0) | 2023.09.03 |
덕언 : 기도의 중요성 (0) | 2023.08.13 |
덕언 :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의 삶 (0) | 2023.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