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프랭키 차 형제님(요약)

모세를 부르심

박이레 2022. 7. 14. 15:06

2015년 9월 14일 월요일          강사 : 프랭키 차 형제님

 

형제자매님들 안녕하신가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저는 출애굽기 3장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3:1-22, 개역한글)

 

지금 이 말씀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찌로다 (신33:16, 개역한글)

 

<거하시던 자>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가시떨기나무 앞에 모세에게 나타나신것과 요셉의 고난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모세는 이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읽은 신명기 33장 16절은 출애굽기 3장과 연관되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떨기 나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저희가 욥기 33장 14절을 읽었던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욥33:14, 개역한글)

 

지금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기도 하고 두번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어제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두번 부르시는것에 대해 교제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3:4, 개역한글)

 

그때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대답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모세와같은 답을 하셔야 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22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대신하셨다는 중요한 주제를 배웠습니다.
이제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두번 부르신것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모세를 두번 부르신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하신것에 대해 교훈받고자 합니다.
이것을 한번풀어 설명한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유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죄를 깨끗케 하신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우리주님의 피로 깨끗케 되엇습니다. 하늘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삶가운데서 죄가 다시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물론 우리 죄를 자백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자백했을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가장 먼저 되어야 하는것은 구원입니다.
두번째로 되는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부르실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기 3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하나님과 모세와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11절부터 15절입니다. 이부분은 모세의 걱정, 근심입니다.
세번째 12절부터 마지막 부분까지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출래굽기 3장 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부분이 왜 중요하냐면 신명기에서 말씀 드렸던것처럼 이일이 모세의 삶에서 매우 중요했기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절부터 1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계시하는것입니다.
여기 계신분중에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분이 계시다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야 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다음 애굽으로 보내셔서 핍박가운데서 구원해 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절과 장과 출애굽기 전체에 걸쳐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창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관에 들어가는것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죽어서 관으로 들어가 땅안에 있습니다. 이 요셉의 뼈는 다시 옮겨져야 합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그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 처음에 사람이 시험가운데 있게 된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입니다.
창세기 마지막에 나온 요셉은 지금 관에 들어가 있습니다. 요셉은 이 시험을 이긴 사람입니다.
아담과 요셉 그 중간에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기에 창세기의 중요한 부분을 다루는 인물입니다. 창세기 전체가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겟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다시 오고 있습니다.
요셉의 유언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다시 찾아오실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오실때 나의 뼈를 들고 애굽을 나가라" 라고 말햇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뼈는 소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끌어내고자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망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 책입니다.
창세기에서 우리가 아래로 들어갔을때 우리는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로지 유월절때문에 이스라엘은 나갈수 있었습니다.

 

구속은 오직 피에 의해서만 나갈수 있습니다. 그만큼 죄는 심각한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용납치 않으시며 그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는 우리가 나가는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다음으로 레위기에 가게 됩니다. 레위기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는 희생을 드리는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섯가지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다섯가지 제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수 없으며 제사장만이 나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한사람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를 누릴찌리도 오직 한명만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사람만이 들어가기에 모든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사람이 들어가기에 모든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수 있었습니다.
이 한사람은 우리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다음 민수기는 어떤것일까요?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에서는 정말 많은 문제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 내십니다.
여러가지 방식들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 바위를 치게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불평합니다. 그래서 불뱀을 보내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 민족들은 죽은사람을 땅에 뭍어야 합니다. 

 

시체를 만지게 되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 부정함을 깨끗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부정한사람을 깨끗케 하는 방법들이 있는것입니다.

 

민수기 19장에서는 붉은 암송아지를 제물로 드린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죽인지 모른 시체에 대해 부정하게 되었을때 제물을 드림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깨끗케 되는것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이 계속 광야게서 헤매는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님들, 이세상이 우리집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인수기에서 이스라엘이 광야를 헤메는 것처럼 우리는 순례자로써 이세상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갈때 이스라엘이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 졌던 것처럼 우리가 더럽게 되는 경우가 있을것입니다.
이때마다 우리는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창세기는 땅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이세상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 신명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신명기에서 다시 이야기 되는것입니다. 수많은 계명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하늘로 불러 올리시기전까지 이세상에서 계속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기도하고 말씀을 봐야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주님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오경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출애굽기고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구속의 책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두번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구속자가 일어납니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불완전하게 볼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많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지만 이것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남녀간의 데이트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남자에게 여자의 사진을 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여인의 사진을 보고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 여인을 실제로 보고 그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의 그림자는 위의 예와는 전혀 다른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보게 되면 그림자와는 비교도 안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보러와서 한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더 아름다운것을 기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두번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대답은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어제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 부분을 통해 아브라함은 예배에 대해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모임에서 어떤 형제님이 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자매님은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희생을 위한 준비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야곱의 경우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셨을때 야곱은 "내가 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은 순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순례자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휴거 될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세상 가운데서 부패할수가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거가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장막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부요했지만 큰집을 짖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세상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올 세상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막 가운데 산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곱은 순례하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말한 사람인 사무엘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두번부르신 사람은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입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오랜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그만하라고 하시기까지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서도 기도 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부적합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만하라고 하신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기도의 삶인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며 순종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기를 결심한 사람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을 말하겠습니다. 그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 입니다.
이사야는 섬기는 사랍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이야기 할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의 지문은 <누구를 보낼것인가> 입니다.
그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은 성도님들중에 다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고 있는 성도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기 안계신 성도님 중 한분은 네팔과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형제님을 보지 못해도 행복합니다. (강선찬 형제님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이사야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시기 전에 이사야서를 일게 되면 흥미로운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를 보내기전에 하나님꼐서 말씀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전에 이사야 5장에서 이사야가 무어라고 말했는지 볼수 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사5:8, 개역한글)

 

이사야서 5장 8절에서 <그들은 화있을진저> 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11절에서도, 18절에서도, 20절 21절 22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섬길때 <화있을진저> 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 후 5장 넘어 6장 5절을 보면 <나에게 화로다> 라고 말합니다.
여섯번이나 남들에 대해서 화있을 진저라고 말했으나 나에게 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가 '나에게 화있을 진저'라고 말했기 떄문에 하나님앞에서 쓰임을 받을수 있게 된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싶으시다면 남을 판단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오직 나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자세가 있을때에 남을 도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하는 네명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3장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3:5, 개역한글)

 

무엇이 이땅을 거룩하게 만들고 있나요? 무엇이 우리가 모인 이곳을 거룩하게 만들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이곳을 거룩하게 할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곳에 임재하지 않으신다면 이곳은 더이상 거룩한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다면 거룩한곳은 있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까 읽었던 것처럼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것을 모세는 다시 기억하고 있는것입니다.
떨기나무는 아주 작은 가시나무 입니다. 무엇이 이 떨기나무를 특별하게 했나요?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떨기나무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떨기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것의 증거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도 나무가 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입니다. 그런데도 나무는 불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었일까요?
그것은 거룩함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떨기나무가 불타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거룩함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기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린 성도였을때 다른모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지금 제가 섬기는 주챗모임이었습니다. 그때는 다른큰 모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챗모임의 한 성도님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랭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아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저는 장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로 형제님들은 제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로형제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말씀한 그 형제님들은 청년들이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신적이 있습니까? 불타는 떨기나무는 언제나 불타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그말은 한것은 제가 그때에 너무나 교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말을 한것이었습니다.
사실 1-2년 후에 저는 너무나 지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힘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기억하시나요?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6-7, 개역한글)

 

지금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달려갈길을 마쳤다> <믿음을 지켰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긴 사람의 마지막의 말들입니다.

 

저희들이 주님을 섬기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요. 이런것들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은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동기도 깨끗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동기가 깨끗하지 않다면 그것은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미국모임에서 성도님들과 교제할때입니다. 그곳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성도님들이 홀을 청소했습니다.
이것은 청소로써 주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이 되면 홀은 더러워지고 다시 청소해야 합니다. 홀이 더러워지면 마음가운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섬기고 싶으시다면 다른성도님들이 섬기시는것도 주의깊게 보셔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주님을 섬긴다면 그것을 다른성도들이 보게 되고 장로형제님들도 그것을 보게 됩니다.
섬기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이 땅은 아주 거룩한 땅입니다. 이 거룩한 땅을 우리가 더럽히며 섬길수 없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는 말씀에 따라서 섬겨야 합니다.

 

복음집회때에 우리는 말씀에 근거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집회때 악기들을 가져와서 하는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화려한것들을 가져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츠포츠나 그런것들을 통해서나 혹은 천국에서의 드라마같은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거룩한 땅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이땅의 것을 가져와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원칙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 떨기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요 신약에서는 교회로 적용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만 불타서 사라지지 않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3장 초반부는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11-15절)
모세는 하나님에게 두가지를 거절합니다.
4장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나옵니다. 3장에서 두가지의 이유를 말하고 4장에서 두가지를 말해서 총 4가지의 하나님을 못섬기는 이유를 말합니다.

 

모세의 거절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1. 내가 누구관대
2. 하나님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다
3. 사람들이 내말을 듣지 않을것이다. (4장 1절)
4. 입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불신하고 능력이 되지 않아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할수 있다는것을 확신 시키셔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3:11, 개역한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11절에서는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굽니까?"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이 120년은 세 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번째 40년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학술과 지혜를 모두 익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에서 힘세고 강하고 부유한것을 사용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이세상에서 비참하고 비천한것들을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수 없습니다.

 

두번째 40년은 모세는 혼자있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40년이 지나 80세가 되었을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바로에게 갈수 없으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낼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장 연약함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세번재 40년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을 교회에 적용해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형제님을 다른지역의 선교사로 파송할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형제님을 파송할때 전부 악수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일을 할수 있도록 도와주실것이라는 덕담도 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야기 했던것은 파송나가는 형제님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잘 사용하실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많은 형제님이 나아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하면 사단이 일을 망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겸손하고 낮아진다면 사단은 우리를 이용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모든것을 가진 분이라는것을 알고 있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모세는 받게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3:13, 개역한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개역한글)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신 이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3:15, 개역한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실때 이 이름을 쓰셨던것을 기억하시나요?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

 

여기서 주님께서 하시고 하고자 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이름입니다.

 

1.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이땅 가운데 오셨을때 요한복음에서 7번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료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참 포도나무요> <하늘로부터 온 살아있는 떡이요> <나는 세상의 빛이요> <나는 문이요>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고 자신을 설명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나는 끝의 시작이요>
특히 나는 알파요 오메라가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알파는 그리스어에서 첫번째 문자입니다. 오메가는 마지막 문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요한복음 1장 1절은 열수 있는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계시로 나타나십니다. 모든 지식이나 개념들은 계시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다음은 <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속이십니다.
특별히 신약은 5번에 걸쳐서 주님께서 첫번째 난 자라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우리주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아담입니다. 두번째 사람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또한 두번째사람은 마지막 아담인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외에 구속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끝의 시작이요>
우리주님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비견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출애굽기 3장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확신을 주시며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성을 모세에게 보여주고 계신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중요한 것이 가까움과 믿음입니다.
주님꼐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것을 기억하시나요?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
오늘 모임의 목적은 여기 계신 형제자매님들을 격려하고자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섬길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안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에게 부르심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