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강사 :정형모 형제님
<스가랴 강해 3>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계속되는 지뵈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씀을 먼저 상고하기 전에 스가랴서에 나오는 몇가지 말씀에 대한 그림을 보고 설명드리고 갔으면 해서 프로젝트를 비췄습니다.
이 나무가 첫번째 환상에서 홍마탄 사람이 골짜기에 있을때에 <화석류 나무 가운데이 있었다>는 말씀을 보았죠. 화석류 나무는 바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꽃이 희거나 붉습니다. 상록수 입니다. 키가 일반적으로 작습니다. 이 화석류 나무는 초막절에 초막을 짖는데 쓰이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나무의 성격을 볼때, 이사야서에서 처럼 천년왕국 시절에 광야에서 꽃이피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열매를 맻게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아름다운 나무들 중에 화석류 나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은 것을 보게 될때 화석류나무를 상징하며, 작고 연약한 당시의 이스라엘을 잘 말해줍니다. 또한 홍마탄 사람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있었습니다. 연약할찌라도 주님께서 같이 계십니다.
그리고 화석류 나무는 초막절을 상징합니다. 화석류나무로 초막절에 초막을 짖습니다.
스가랴 당시 이스라엘은 대단히 연약하고 좌절과 실망속에 있었지만 그러나 이 민족은 장차 메시아의 강림과 함께 위대한 약속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마이크에서 떨어지셔서 소리가 안들립니다...)
어제 다섯번째 환상에서 이스라엘의 증거에 대해서 간증에 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가운데 등대가 있고 양쪽에 두 감람나무가 있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945년 2월 10일 이스라엘은 국가 상징을 만들게 되는데 이 상징이 이 환상에 나온 그림입니다.
그 그림 맨 아래쪽에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신으로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국가 상징입니다. 이것은 가운데 등대와 양쪽의 감람나무 두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가상징은 오랫동안 스가랴서 환상에 나오는 말씀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말씀대로 국가 상징을 만들었다는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간증을 세계에 드러내는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적으로 이러한 간증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저희들이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어제에 이어서 스가랴서 5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1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4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11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슥5:1-11, 개역한글)
주님께서 읽은 말씀에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이 어제까지 스가랴가 다리오왕 12년에 환상을 하룻밤에 여덟번을 연속적으로 봅니다. 그중 5개를 저희들이 보았습니다.
그환상은 낙심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의 잔존자들이 고심하고 질문하며 염려가운데 있었습니다.
앞서 다섯가지 환상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계시며, 원수를 제거해 주실것이며 예루살렘은 불성곽이 되고 번영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행한 악은 더럽혀진 옷이 벗겨지고 정결한 옷을 입은것처럼 정결케 될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사장 직분을 행할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섯번째, 민족의 간증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금관을 통해 기름은 계속적으로 공급이 되고 등불은 지속적으로 타오를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속적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힘으로나 능으로 되지 않고 <나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뿐만아니라 사실상, 이 두 감람나무는 당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상징합니다. 스룹바벨은 왕을, 여호수아는 제사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천년왕국때에 회복된 이스라엘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인도를 따라서 위대한 간증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다섯가지 환상을 보게 될때 이것은 복에 관한 환상입니다.
그러나 이후 우리가 볼 세가지 환상은 저주에 관한 환상입니다.
첫째, 오늘 저희들이 읽은 5장 말씀에서 두가지 환상이 나옵니다.
첫째는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입니다. 두번째는 에바속에 있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시날로 날아가버립니다. 옮겨집니다.
그리고 6장에는 마지막 환상이 나오는데 말과 병거에 관한 환상입니다. 두 놋산에서 나오는 네 병거의 환상입니다.
이 세가지 환상은 전부 다 죄악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5장 초반부에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에서 개인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실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에바의 환상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의 죄에 과냏서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병거에 관한 환상에서는 열방의 죄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다루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5장 1절부터 시작되는 여섯번째 환상을 보겠습니다.
1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슥5:1-2, 개역한글)
두루마리가 날아갑니다. 두루마리라는것은 역사적으로 왕의 칙령을 반포하는데 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루마리에 적어 둘둘 말아서 보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두루마리는 펴있는 두루마리입니다. 그리고 양편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는 날아가고 있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잔존자들에게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고 하나님을 불쾌케 했습니다. 그 죄로 그들은 이방에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이 잔존자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입니다.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특히나 그들앞에는 커나란 역사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성전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성전재건은 이미 시작됬지만 스가랴의 사역을 통해서 이것이 어떻게 진척될것인가 하는 많은 부담감들을 않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희들은 <능으로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격려하심을 보았습니다.
잔존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유효한가'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시편 19편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고 세미하고> 그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를 지탱하시며, 우리를 보양하십니다. 그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음식이요, 그것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우리와 대화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잔존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생각이 있었다는것은 대단히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잔존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십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대단히 빠른것입니다. 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이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살피는 것입니다.
그들이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가, 대단히 심판은 빠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와 비전과 힘과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수 없습니다. 많은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없이 살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없이 살수있는 인생이 아닌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 잔존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하게 될때, 그들은 말씀없이 살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율법의 말씀이 날아가게 될때 이것은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수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의 기준대로 낮출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의 수준에 우리가 맞춰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렇게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나 능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혹시라도 노력할찌라도, 소원이 있을찌라도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속에 들어오시고 우리에게 능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수가 없습니다.
이제 잔존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봅니다"라고 스가랴가 대답했습니다. 그 크기는 어떻습니까?
장이 이십규빗 광이 십규빗입니다. 이 사이즈는 회막의 성소의 사이즈입니다. 참으로 큰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두루마리중에 이렇게 큰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환상속에 달아가고 있는 앞뒤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이 두루마리가 대단히 빠른속도로, 마치 맹금이 먹이를 잡기위해 쫓아가는 것처럼 대단히 빨리 하늘을 날아가고 그땅을 위에서 바라보며 날아간다는 것은 심판이 대단히 빠르다는것을 뜻합니다.
죄를 짖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심판으로 임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그것은 이십규빗과 십규빗이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토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임의로 하시는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사를 성소의 저울로 우리를 달아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때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앞에 우리는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니므이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기뻐하시는지는 우리가 성소에 나아갈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소에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견해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저울로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다른데 기준이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앞에 갈때 우리가 어떤사람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도 마음의 가책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십규빗, 십규빗 크기의 두루마리라는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슥5:3, 개역한글)
왜 저주가 떨어질까요?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때 저주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온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있다는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의 대상이 되는것입니다.
어떤범죄를 하나님께서는 다루고 계십니까? 두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편에는 도적질하는일에 관한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중 제 8계명입니다. 그다음 다른 한편에는 맹세하는자에 관한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제 3계명입니다.
한편에는 인간에 대한 계명이며 다른 한편에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입니다.
열계명 중 왜 둘만 기록하셨을까요? 십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책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인간의 책입니다.
첫 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계명부터 마지막까지 인간을 향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향한 인가느이 책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인간의 책입니다.
두가지 8계명과 3계명을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율법 전체를 말씀해주고 계신것입니다.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또한 맹세하는자는 저편글대로 끊쳐지리라>
맹세하는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어떤면에서 그렇습니까?
할수없는것을 호언장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꺼내는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을 향한 범죄에는 언제나 '도적질'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인간에게 범죄할때 도적질합니다. 내것이 아닌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범죄하게 될때 그것에는 항상 '거짓'이라는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 두가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고 동료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율법은 잔존자들에게 아직 유효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상항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말씀에 주의하는자는 많은 복된것을 얻습니다. 말씀을 등한히 하고 소홀히하고 말씀으로부터 멀리 떠나는것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에 대해서 상당히 혹독한 심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슥5:4, 개역한글)
심판은 대단히 강하고 혹독합니다. 빨리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집집마다 날아다니면서 수색합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범죄를 행한자의 집으로 들어가서 사릅니다. 나무와 돌을 아주 살라버리는 것입니다.
70년 포로생활 이후 돌아온 잔존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단히 날카로운 관심,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을 했을때, 이들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답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을, 천년왕국때에 있을 먼 미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것은 스가랴 당시에도 적용할수 있습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중적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과 동시에 먼 미래에 일이어날 일을 항상 말씀하십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처년왕국때에 어떻게 할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살것인가요?
처년왕국때에 주님께서는 철장으로 다스리십니다. 천년왕국때에는 믿는자들만 그곳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년동안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들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속에 죄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까요?
그러나 그 천년동안 우리 주님께서는 의로 통치하십니다. 의로 통치하실때 모든 의가 바다처럼 편만할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불순종 한다면 즉각적인 심판이 그들에게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것입니다.
다섯가지의 복을 먼저 말씀하시고 이제는 저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개개인의 잘못에 대해서 심판하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에바의 환상을 통해서 민족의 죄를 다룹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슥5:5, 개역한글)
나오고 있는것이 있습니다. 나오고 있는것을 스가랴가 봅니다.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슥5:6, 개역한글)
에바는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비교적 큰 그릇입니다. 그것은 곡식을 측정하는 단위입니다. 에바는 상업을 말합니다. 측정해서 달아서 파는것입니다.
잔존자들의 마음에는 이런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에서 살면서 전에는 모르던 것을 배웠다'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농사꾼이며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되어 바벨론에 갔을때 그들은 상업을 배웠습니다. 무역과 상인으로써의 기술을 배웠고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 상업이 그들에게 악이 되었습니다.
잔존자들의 마음속에는 이 상업이 '악'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악이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것에대한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스가랴의 일곱번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 악은 개개인의 악이 아닌 민족의 악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하고 있습니다. 무역과 상업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땅에서 그 모양이 그러하니라>
이 말씀은 한쪽에 국소적으로 번져있는 모양이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의 다 퍼져있는 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저울을 미워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의 다른 말씀을 보면 '에바를 작게하고' 거래하게 될때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속이는 것입니다.
상업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돈 자체도 악이 아닙니다. 거래하는것도 악이 아닙니다. 경제 자체도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경제가 어떻게 가동되느냐는 다른문제고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가도 다른문제입니다. 돈에 우리가 지배받는가, 아니면 돈을 우리가 통제할수 있는가는 다른것입니다.
우리가 무역을 할때 정직한 무역, 정직한 거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정상적인 사회와 도덕적인 사회에 필요한 것은 도덕적인 거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속이는 거래,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해를 가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가서 배워온 악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번 잘못하고 두번 잘못하고 계속 잘못하면 그것은 그에게 습관이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습관적인 악은 무역과 상업과 관련해서 있었습니다.
이 에바 가운데는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성경에서 여인이 나오면 그것은 주로 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에바 안에 앉아있는 이 여인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경쟁적인 상업주의 무역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 거짓과 속임수로 상대를 해하고 경쟁적인 상황속에서 많은 악을 끼치는 영을 여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에바에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에바는 상업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상업안에 경쟁적인 상업주의가 안주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악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스가랴서 당시의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오늘날 주님이 오시기 직전의 환란시대의 세계의 가장 큰 중심이 되는 것은 '물질'입니다. '상업'입니다.
상업이 세상의 가장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질서 입니다.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이기 때문에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사람을 우러러봅니다. 물질이 없으면 그사람 자체적으로 많은 능력과 좋은점과 성격을 가지고 있을찌라도 사회속에 존경받지 못합니다.
'물질' 상업적인 속임수로부터 나오는 이와같은 악은 우리가운데 만연해 있습니다.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슥5:7, 개역한글)
에바의 납뚜껑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여인을 우리는 봅니다. 뚜껑이 에바를 닫고 있을때 우리는 그 여인을 볼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안에 그 여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제 뚜껑이 열리고 여인이 튀어나오려고 할때 우리는 그 여인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납이 들렸다가 다시 닫혀졌습니다. 못나오게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말씀에서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서신서를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옛부터 있었고 곧 우리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영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성령께서는 그 영을 억제하고 계시며 지금까지도 억제하고 계십니다.
아직까지 지표면에, 사람들의 눈에 볼수 있도록 적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찮가지로 이 에바안에 있는 여인, 상업적인 영의 무역주의적이며 속이는 영은 옛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눈에 뚜렸하게 보이지 않았을뿐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뚜렸하게 보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납 뚜껑이 열리다가 눌러서 못나오게 했습니다.
대신 두 여인이 황새의 날개를 가지고 날아서 이 에바를 번쩍 들어 옮깁니다.
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슥5:8-9, 개역한글)
두 여인은 학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 황새는, 레위기서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나오는것을 우리는 압니다. 어떤것이 부정합니까? 굽이 있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것은 부정한 것이요, 굽이 갈라졌지만 되세김질 하지 않는것은 부정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기준들이 있습니다.
황새는 어떻습니까? 황새는 부정한 새입니다.
황새의 특징이 어떻습니까? 날개가 크기 때문에 먼데까지 비행할수 있는 새입니다.
한국에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황새가 부리에 아기를 달아서 날아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황새가 아기를 물어서 가져온다는 서양의 이야기입니다.
그처럼 황새는 먼데까지 날아올수 있는 새입니다. 그런데 이 황새 날개밑에 바람이 있습니다. 날개밑에 바람이 있어 밭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아가는데 대단히 효과적으로 날아가게 해줍니다. 바람이라는것은 영입니다. 영에는 성령이 있고 악령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영입니다.
이 마귀의 영이 역사하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눈이 성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게 될때, 마몬, 돈을 통제할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돈을 통제할수 있고 경제를 주님안에서 통제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돈을 주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삶은 수많은 악의 가능성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주님의 일에 힘쓸수 있게 해줍니다.
주님을 섬기는것은 우리 자녀들을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보호할수 있는 길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순간에 벼락치기로 대박같이 벌어들이는 로또같은 돈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살아가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물질주의는 대단히 강한 것입니다. 물질주의는 속이는 저울추요, 속이는 에바입니다.
어떤이는 에바를 크게 만들어서 나에게 유익하게 하고 어떤이는 에바를 작게 만들어서 속이는 일을 합니다.
전에는 라면이 스무개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16개만 들어있습니다. 샴푸가 전에는 아주 찐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짜면 물같이 줄줄 흘러나옵니다. 가격은 같지만, 겉의 모양은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다른것입니다.
수많은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얻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습니다. 이러한것들은 세상에서 흔한 사람드르이 철학 방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들의 백합꽃을 보라>
그들은 자기들이 실을 짜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실을 짜게 만드십니다. 그들이 땅의 진액을 빨아먹고 살때 그 줄기를 통해서 올라오는물과 영양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수많은 세포와 조직들을 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지 않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을 나가든지, 사업을 하든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에 한해서 우리는 기대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매일같이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대박을 터뜨리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교만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생은 살만한것이 못된다고 하면서 자살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든지, 자기를 자랑하던지 입니다.
이와같은 삶속에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불신속에 사는것입니다.
애굽과 같이 나일강을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애굽은 어떤것입니까? 미즈라임이라고 말합니다. 미즈라임이라는것은 강옆에 딸려있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나일 중심으로 삽니다. 그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퇴적토가 나일강가에 쌓이고 농사는 풍년이 되고 물이 부족할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나안에 삽니다. 이른비가 있어야하고 늦은비가 있어야 하고 우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즈라임과 같이 애굽사람과 같이 나일강에서 하늘을 바라볼 필요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과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을 삽니다. 잔존자들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파고들어있는 이와같은 악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이 악이 어떻게 될것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에바가 나왔고, 에바안에 여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날개를 가지고 있는 두여인, 그리고 바람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귀신의 영이 역사합니다. 어디로 이 베바를 끌고 갑니까? 시날로 갑니다. 시날이라고 하는곳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우상의 원조일뿐 아니라 시날땅은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땅에 퍼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 우리가 대를 쌓고 하늘에 닿자"고 합니다. 그것이 바벨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연맹을 맺고, 동맹을 맺고 하나님을 조직적으로 대적하는 일을 한곳이 시날입니다.
시날은 마지막에 상업의 중심지가 될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물질주의, 상업은 신이 되어있습니다. 물질주의는 우리 코 앞에 와있습니다. 이와같은 물질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을 따라 걸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물질주의의 악에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서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갈것입니다.
잔존자들은 이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말일에 물질주의의 중심인 시날이 어디로 갑니까?
이 잔존자들이 살던 곳에서 바벨론으로 가버립니다. 바벨론은 전에 멸망했습니다. 이사야 13장에 보면 바벨로느이 멸망에 관해서 나와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벨론은 완전히 명말했다고 합니다.
바벨론은 페르시아가 침공해 옴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완전히 없어진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100년에 실라라는 도성을 압니다. 이것이 말에 가서는 54만명이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랍지역의 옛날 바벨론 근처에 있는 도시인데 그 도시는 곡식무역중심의 도시입니다.
바벨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바벨론은 멸망할 것입니다.
어떻게 멸망 할까요?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계18:14, 개역한글)
바벨론이 사랑하는 물질을 다시 보지 못할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21-23절 말씀을 보면 '결코 다시'라는 표현이 여섯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계18:21-23, 개역한글)
여기에 신랑과 신부의 음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결혼의 기쁨입니다. 또한 음악과 쾌락과 즐거움과 고급 명품은 결코 다시 들리지 않을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철저한 멸망입니다.
잔존자들이 이 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질문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 악을 제거하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이 환상을 통해서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저희마음속에 두어야 할것입니다.
1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3 세째 병거는 백마들이, 네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7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슥6:1-8 개역한글)
이제 마지막 장을 보았습니다. 오늘 저희는 여섯번째 환상에서 날아가는 두루마리에서 하나님께서 개인의 죄를 심판하심을 보았습니다. 일곱번째 환상에서는 민족의 죄, 부패한 상업주의 물질주의에 대해서 주님께서 제거하시겠다는 답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벨론으로부터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장에 들어와서 마지막 환상을 말씀해 주십니다.
잔존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원수로부터 보호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대해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 환상은 두 놋산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네 말들과 네 병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가 눈을 들어봤을때 두 놋산에서 네병거가 나왔습니다. 첫번째 환상에서는 홍마를 탄사람이 있었습니다. 말이 있고 말탄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네 말이 있고 네 병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거는 흑마, 백마, 홍마, 어롱지고 건강한 말에 부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달려갑니다. 이 병거는 무엇일가요?
이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이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이다> 라고 합니다. 곧 네 영인 것입니다.
전에 저희들은 네 뿔을 보았습니다. 이는 뿔 네개라는 말보다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방의 세력들이었습니다.
여기 네 바람이라고 할때, 이것은 온세상, 온사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네영은 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실때에 계시록 말씀을 보면, 천사들을 사용하신것을 여러번 보게 됩니다.
심지어 구약시대때에 히스기아 시대에 예루살렘을 앗수르가 침공해 들어왔을때 감당할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아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8만 5천의 군사들을 하룻밤사이에 다 죽이셨습니다. 천사들을 이용하신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천사들은 구원얻은 사람들을 섬기라고 보내준 영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바람이라고 할때, 말이 있고, 병거가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열방을 심팜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원수들을 심판하실때에 그들은 두 놋산에서 나왔습니다. 놋이라고 하는것은 성경에서 심판을 말합니다.
놋제단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시는 곳인데 인간대신 양을 받으셨습니다. 양을 심판한 장소가 놋제단입니다.
또한 산이라고 하는것은 하나님의 정부, 주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산이 하나가 아니고 둘입니다.
둘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증인을 요구합니다. 증인은 언제나 두사람 이상이어야 합니다. 증인이란 또한 공의의 숫자입니다. 공의롭게 재판할때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이 없으면 모임에서 징계할수 없습니다. 증인이 없으면 모임에서 출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증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요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때에 공평가운데 의로움 가운데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열방을 심판하실때, 이스라엘을 보호하실때도 하나님은 공의가운데, 정의가운데, 주권가운데 심판하십니다.
네 말들이 하나님의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 원수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 개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심판하실 뿐 아니라 열방도 심판하십니다.
이 순서를 보면 어떻습니까? 베드로서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때 하나님의 집부터 심판하십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은 먼저 믿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세상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판단하고 계시고, 믿는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게 될것이고, 우리가 행한 말과 동기와 봉사를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심판하실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 그리고 여덟번재 환상에서는 열방의 죄도 심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이십니다.
이 병거가 말에 이끌려서 나올때, 앞에서 말씀하신것처럼 네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인 천사가 나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나갑니까?
제일 첫번째, 흑마는 북편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백마가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말이 색깔이 있습니다. 계시록 말씀에서도 백마가 나오고, 인의 심판이 나오고, 검정말이 나오고, 여러말들이 나옵니다.
백마는 승리고, 붉은 말은 유혈이요, 검정말은 기근이요 사망입니다. 다시말해 심판의 성격들을 말씀하실대에 말의 색을 사용하십니다.
처음 흑마가 나오고 이어서 백마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심판은 승리했다라는 뜻입니다. 심판은 집행됩니다.
이세상에서도 범죄가 일어나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범죄자보다 약하면 어떻게 됩니까? 경찰은 범죄자에게 얻어맞고 범죄자는 유유히 도망갈 것입니다. 공의가 집행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 공의가 집행되기 위해서 흑마가 나가고 그다음 백마가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게 될때, 그것은 절대로 좌절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롱진말은 남편으로 갑니다.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바벨론은 항상 북편에 있습니다.
숙적들을 항상 북편이라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앗구르나 바벨론이 침공해 올때 항상 북편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동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북편이라고 할까요? 바벨론은 티그리스 강때문에 동쪽에서 그냥 쳐들어 올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군이 먼저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남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항상 북편에서 내려오는 적들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먼 훗날 앗수르의 왕이 임마누엘의 땅을 침공해 들어올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째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건장한 말들은 땅에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홍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가랴 1장을 보면 천사가 세상을 다녀보니 세상 사람들이 아주 안일하게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보고 합니다. 그것이 환상 8개 중에 첫번째 환상에 나옵니다.
그런데 스가랴 1장에서 홍마탄 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보의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왜 중보의 기도를 하십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슥1:12, 개역한글)
사실상 여덟번째 환상은 첫번째 환상에 나온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에 의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열국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악을 심판하실것입니다.
건장한 말을 나가서 땅을 두루 다닙니다. 첫번재 환상에서는 열국은 안일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의 악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스가랴 1장에서 열국이 안일함 가운데 있었다면 이제 6장에서는 혼란과 심판 가운데 들어갑니다.
첫번째 환상은 골짜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환상은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은 짖밟혔는데 이제 승격되는것을 말합니다. 원수는 이제 짖밟힙니다. 이제 하난미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슥6:8, 개역한글)
북방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이 아스라엘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하나님의 원하신 것보다 훨씬더 많이 악하고 잔인하게 대우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보내어 열방을 징계할때에 하나님의 마음은 시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불의가 계속되는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기에서 심판이 집행된다는것은 보복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공의로써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에 대해서 '아주 쌤통이다' '아주 잘됐다' 이런 인간의 악한마음이 아닌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한것은 공의가 실행되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이에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그의 종이 삽자가 위에서 고난 받는것을 기뻐하셨다>
기뻐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 죽는것을 기뻐할 일입니까?
그 자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이 위대한 일, 은혜로운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9절 이하를 살피겠습니다.
스가랴 1장은 서문입니다. 그리고 2장부터 6장 8절까지는 환상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여기 6장 9-15절까지는 절정을 말합니다. 이방이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은 후에는 무슨일이 있을것인가 하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성경 전체를 통해 저희가 지끔까지 알수 있는것은 환란기간을 통해 이스라엘이 심판받고 주님께서 강림하시면서 원수를 격파하고 제압하고나서 주님께서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왕국을 세운다는것은 다른말로 우리 주님께서 왕관을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래전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그렇게 물었지만 유대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 왕을 거절했습니다.
그 왕을 거절해 십자가에 죽이고 "우리의 왕은 가이사 외에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왕입니다.
바로 이 민족이 거절했던 그 왕입니다. 그 왕이 이제는 여기 6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방이 완전히 심판을 받고 난 후에 메시아께서 대관식을 하실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예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11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4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15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슥6:9-15, 개역한글)
읽은 말씀에 주님께서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여기에 임합니다. 하룻밤의 환상은 끝이 났습니다. 하룻밤동안에 연속으로 이어지는 여덟개의 환상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10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11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슥6:10-11, 개역한글)
주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네가 요시아의 집에 가면 바벨론에서 온 대표단 셋을 만날것이다. 그들이 예물로 가져온 은과 금을 취해서 여호수아를 위해서 면류관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씌우라'
밤이 끝났습니다. 환상이 다 끝난 것입니다. 환상이 다 끝나싿고 하는것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이방이, 열방이 심판 받았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해가 돋았습니다. 이방이 심판 받는것 까지가 어두운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면류관을 쓰고 왕과 제사장이 되고 대관식을 하는 때는 밝은 낮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세사람을 보십시오.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 이들은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왔는데 올때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면류관을 만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십니다. 이런사람, 저런도구를 사용하셔서 준비하십니다.
세사람이 예물을 챙겨왔고 그것은 면류관을 만드는데 놀랍게 쓰여졌습니다.
핼데, 힘이라는 뜻입니다. 도비야,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여다야, 하나님은 아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 사람은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고 하는 사람을 뭐라고 표현하나요? 핼대입니다. 하나님은 힘이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기도합니다. 뭐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드릴 힘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힘은 주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드릴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것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시간이나 나의 재능이나 돈이나 모든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것입니다. 내것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드릴 힘을 주셨기 때문에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알기 때문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드리게 될때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힘과 관련해서는 이런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말씀을 보면 마게도냐 성도들은 힘에 지나도록 드렸다고 합니다.
이만큼이 힘인데 그보다도 더 많은것을 드린것입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추가로 더 주신것입니다. 그래야만 더 드릴수 있는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그래서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원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앞에 드리게 될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동기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왜 드리는 것인지, 무엇때문에 드리는 것인지, 액수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마음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스가랴는 요시아의 집에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곳에 왔음을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가랴의 말을듣고 하나님께 그 예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 세사람은 그 예물이 이 일에 쓰일거라는걸 모르고 가져왔을 것입니다.
이 모든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인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두 쌍방이 어느 시점에 둘이 만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입니다.
우리는 헤아릴수 없는 위대한 뜻입니다. 그 뜻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 모든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슥6:12, 개역한글)
이제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순은 어떻게 순이 되었습니까? 몰락해 가는 다윗의 왕가는 그루터기 입니다. 그것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순이 나왔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몰락한 다윗의 이름에서 순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입니다.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나온 그분은 그래서 왕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왜 사람이라 합니까?
그분이 이세상에 오실때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인간이 되지 않으시면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십자그이 구속, 위대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을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제사장이 인간이 아니면 될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때 체율하고 동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를 체율하지 않는 자가 아니로되 우리를 동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순이라 이름하는 왕족이 되셨습니다. 다 무너진 다윗의 왕가로부터 싹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대제사장으로 오시는 사람 입니다.
순이라 이름하는 분이 낮은곳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으로 우리주님께서 아기로 오셨을때 누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배받을 만한 분이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동방박사 이외에, 목자 이외에 사람들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낮은 곳에서 겸손히 무명한 곳에서 우리 주님은 조용히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떻습니까?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이제 보좌우편에 승격되셨고 이제 영광 가운데 통치하기 위해서 오실 분입니다.
이제 이분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이분께서는 천년왕국때에 왕의 왕으로 오셔서 성전을 건축하실 것입니다.
이 성전은 천년왕국의 성전입니다. 이 성전에 대해서 에스겔 서는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9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개서와 이사야서와 스가랴서 딱 세 책에서 이 분이 건설할 성전에 관해서 말합니다. 그 성전은 영화로운 성전이다. 그 성전은 아름다운 성전이다. 그리고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지으실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슥6:13, 개역한글)
<이 두 사이에>
그분은 영광을 얻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사 통치하실 것입니다.
<제사장이 그 위에 있으리라> 왕의 보좌가 있는데 그위에 제사장이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웃시아 왕이 제사장 일을 하려 할때 제사장들이 막았습니다. 그가 무시하고 계속해서 들어가려 할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셔서 그는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유일하게 왕이시며 제사장인 분은 살렘왕 멜기세댁입니다. 그는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우리의 참된 멜기세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왕이시며 제사장이십니다.
한 인격안에 두가지 직분이 있으며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년왕국시기에 통치하실 것입니다. 통치하실 동안에 완전한 통치와 의가운에, 평화를 보장하고 통치하실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두 직분이 충돌없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이사야가 얘기한 것처럼, <그의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아버지요 영존하신 하나님이요 평강의 왕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오실때만 평화가 이땅에 깃듭니다. 주님께서 통치하셔야만 예루살렘이 서고 예루살렘이 간증을 내고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분은 이 온세상을 모든사람이 평화가운데 살수 있게 합니까?
그분께서 제사장이시며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사라고 말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분입니다. 평화를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제사장으로써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근본적으로 모든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구원자가 되셨으며 구속자가 되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셔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연약을 체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왕으로써 온세상의 불의를 통제하십니다. 즉각즉각 심판하십니다.
더이상 이세상에서 불의가 역사할수 없게 효과적으로 통제하실 것입니다. 깊은 평화가 온세상에 편만할 것입니다.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슥6:14, 개역한글)
조금전 바벨론에서 온 대표단 세사람게서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었습니다.
그 면류관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씌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그당시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왕은 아니었지만 다윗의 후손이고, 귀족이었습니다. 총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왕을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제사장이 왕관을 쓰는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스룹바벨이 왕관을 쓰는것이 옳습니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스룹바벨이 왕관을 쓰는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왕관을 씌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왕관을 여호수아가 계속 쓰는것이 아니라 이 왕관을 성소에 기념으로 보관하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잠정적, 상징적으로 이관을 쓴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사실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관을 쓴다는 것은 주님이 장차 관을 쓰신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대관식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이 성소안에서 보존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보존이 됩니까?
대표단 세사람과 자기를 지붕아래서 재워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서 입니다.
형제 자매님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것을 기억하십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것을 적대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형제 자매님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때, 이와같은 방법으로, 혹은 저와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것을 주님께로 드리게 될때(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우리의 것을 드리게 될때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광이며 영예입니다.
이런것이 없다해도 우리는 기쁘게 그렇게 할것인데, 주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주님은 기억하시고 기념하십니다.
특별히 여기서 '헨'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아라고 말하지 않고, 특별히 헨이라고 하였습니다. 헨, 이라는 뜻은 은혜, 은총이라는 뜻입니다.
은혜, 요시아는 바벨론에서 온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으로 둔것입니다.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슥6:15, 개역한글)
여기 나온 <멘데 사람>은 이방인을 뜻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찾진 않겠지만 이사야 말씀을 보면 이제 왕국이 세워지게 될때, 주님께서 강림하시게 될때 먼 나라에서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들이 올것입니다.
이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흐름과 분위기가 바뀌어 버립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건축하시게 될때 많은 재물과 재료를 가지고 먼곳에서부터 주님께 헌물하기 위하여 이방사람들이 찾아올것입니다.
전에 이방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압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료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많이 매료되어 결국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이 이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것 분만 아니라 이 민족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여호와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 주님께서 성전을 지으실때, 우리 주님께서 원수를 격파하는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아! 이분이 메시아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문맥적으로 보면 주님께서 성전을 건축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분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깨닳게 될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동안 이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스라엘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온 이방사람도 '이분이야 말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구나!'라고 인정할 때가 이를 것입니다.
여기서 절정이 이루어 집니다.
범죄와 정말과 괴로운 오랜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인정받는 시대가 올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1장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 죄를 돌이키라 회개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찐대 이같이 되리라>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데 있습니다.
이 미래의 복은 우리 교회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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