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말씀 : 하나님의 사랑 / 2022년 5월 8일 / 김보영 형제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개역한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씀에 대해서 순종이 잘 되나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5, 개역한글)
우리가 사랑한다는 자체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하나의 표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분이 예수님을 믿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요한 사도는 우리가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씀합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7-11, 개역한글)
이 말씀에 보는대로 사도는 자신을 빼고 너희가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받은 성도라면 예외없이 모두가 다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왜"라는 원어가 들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서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기독교를 가리켜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창조된 세계를 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3-6, 개역한글)
사랑의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상정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이 범죄했을때 사랑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따라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어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따라 삽니다. 이는 행동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8, 개역한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3:15, 개역한글)
사도요한은 15절의 말씀을 가인을 마음에 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라는 원어를 보면 부정 과거형 동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9, 개역한글)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과 비슷합니다. 사도요한은 복음 말씀을 전하면서 담대했는데 바로 이 말씀을 근거로 그는 담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갖은 수치를 겪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개역한글)
여기 말씀에 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합니다. 원어로는 과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현재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죄를 그 아드님이 그 생명을 희생해서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때에, 죄인 되었을때에, 원수되었을때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11, 개역한글)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명령에 대해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나 모임적으로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라는 것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측면에서 사랑은 어떻게 나타내는 것일까요?
첫째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증거하는 것 또한 큰 사랑에 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개역한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큰 사랑입니다. 만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궁핍한 자를 돕는 것도 큰 사랑입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2:15-16, 개역한글)
또한 믿지 않는자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서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준다고 하는 것은 큰 사랑입니다. 또한 재물적인 부분에서 어려운 성도를 지원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런 일꾼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돕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바울의 사역에도 그를 핍박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참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 일했던 성도가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고난받는 성도들을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이 격려는 무엇보다도 기도로 돕는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연약해서 어떠한 실수가 있다거나 침체에 빠져 있는 성도에 대해서 권고하는 것입니다. 권고하고 권면해서 그가 듣지 아니하면 경고하는데까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고 연약한 성도를 그냥 무시하고 간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혹, 이러한 권면을 받지 않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모임 안에 영적으로 연약하고 잘못하는 성도가 있다면 권고하고 권면하고 경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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